소설리스트

환생천마-116화 (116/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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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동주(1)

“개수작 그만하고 사마군사를 꺼내주게.”

언제나처럼 마봉기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했다. 그리고 오늘은 그 표현이 좀 더 과격했다.

“참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이지. 자네 눈엔 허수아비처럼 보이겠지만, 적어도 자네 목은 따버릴 수 있는 허수아비라네.”

“우리 쪽에서 한 일이 아니오.”

그 말에 마봉기가 깜짝 놀랐다. 생각지 못한 표현이었다. 실수로 나온 말이 아니라는 듯, 주철룡의 표정은 담담했다.

“우리? 드디어 시인을 하시는군.”

주철룡이 처음으로 배후를 인정하는 순간이었다. 동시에 그의 태도도 달라졌다. 이전의 깍듯함이 사라진 것이다.

마치 거래를 위해 만난 상대처럼, 오히려 위압적인 눈빛을 보였다.

당연히 마봉기는 심히 불쾌했다.

‘너희들은 나에 대해 전혀 모르는구나. 내가 이런 수모를 겪고도 계집질이나 하면서 여생을 끝낼 줄 알았다면, 정말 큰 착각이다.’

마봉기는 주철룡의 태도를 개의치 않기로 작정했다. 어차피 이 싸움의 끝에는 죽느냐, 죽이느냐 밖에 남지 않을 테니 욕을 하든, 개지랄을 하든 상관없다.

“어쨌든 그쪽이 아니시다? 그럼 집법당주가 갑자기 미쳐 날뛰는 이유가 대체 뭐지?”

“그건 알 수 없소.”

“대체 아는 것이 뭐지? 정의각에도 사람을 보냈다더니, 집법당에도 보내시지?”

“그래야 할지도 모르겠소.”

“뭣이?”

“한 가지 추측은 사마천이 우리 존재를 알아차렸던 것 같소.”

주철룡이 다시 한 번 우리란 말을 사용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내 날개를 잘라버리겠다?”

“우리가 한 일이 아니라고 하지 않았소? 그리고 사마천은 날개라고 하기에는 너무 비루한 인간 아니오?”

비루하다는 말에 마봉기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그 말은 자신을 모욕하는 말이기도 했다. 사마천을 오랫동안 옆에 두었고, 그와 함께 어울렸으니까.

마봉기가 표정을 풀었다. 화가 너무 나니까, 오히려 헛웃음이 나왔다.

“나 역시 비루하니까 괜찮네. 자네가 하지 않으면 내가 직접 명령을 내려서 풀어줄 테니까.”

“맹주가 집법당의 일에 개입하면 수하들의 신뢰를 잃을 거요.”

“괜찮아. 나를 신뢰하는 자는 없으니까.”

“좋소. 그 분께 직접 말하시오.”

“그 분?”

“만나고 싶었던 분을 만나게 해주겠소.”

마봉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드디어 배후를 만나게 해주겠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단…….”

이어진 조건은 마봉기의 자존심을 짓뭉개는 것이었다.

“맹주께서 그 분을 뵈러 가야 하오.”

꽈드득.

태사의의 손잡이 부분이 다시 박살났다.

“이 미친놈이!”

마봉기가 살기를 쏟아냈다. 지금껏 아무리 화가 나도 주철룡에게 살기를 내뿜은 적은 없었다.

그가 오지 않고 자신이 간다는 것은 놈의 아래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자존심도 자존심이지만, 막상 가서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를 일이었다.

주철룡이 그래봤자 소용없다는 듯 냉정하게 말했다.

“선택은 맹주께서 하시오.”

정중히 인사를 하고는 곧장 돌아서 나갔다.

꽝! 꽈아앙! 꽈앙!

돌아서 걸아가는 동안 태사의가 완전히 박살났지만 주철룡은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문을 나섰다.

마봉기가 비웃음 섞인 결의를 내뱉었다.

“좋아, 이렇게 나오신다면 나도 생각이 있지. 날개가 잘렸으니 새 날개를 달아야겠지. 너희는 결코 나의 새 날개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 * *

정의각은 어수선했다.

집법당에 의해 사마천이 끌려가고, 집무실의 모든 서류들을 쓸어갔다. 정의각이 생긴 이래,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군사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과연 사마천이 무사히 나올 수 있느냐부터, 만약 나오지 못하면 차기 정의각주가 누가 될까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누가 수장이 되느냐에 따라 모두의 운명이 바뀔 수도 있었으니까.

혼돈의 상황에서 나는 집무실에서 갈사량과 단둘이 승리의 기쁨을 나누었다.

“그는 이번 일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거네.”

죄가 밝혀지는 대로 사마천은 뇌옥에 갇히게 될 것이다. 물론 그냥 당하진 않을 것이다. 온갖 방법을 다 써서 빠져나오려고 하겠지.

하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마봉기나, 혹은 그 배후 놈들에게 제거당할 수도 있었고.

“정말 훌륭하게 해내셨습니다.”

갈사량이 자랑스러웠다. 세력 하나 없는 빈 손으로, 단지 모략을 사용해서 무림맹 총군사를 바닥으로 끌어내린 것이다. 물론 내 도움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결정적인 판을 짠 사람은 그였다.

이 갈사량이 바로 나의 총군사이다.

잘했다, 사량아.

갈사량이 나를 보며 말했다.

“자네가 아니었다면 해낼 수 없었을 것이네.”

전생에 내가 그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 중에 하나였다. 이제 그 말을 내가 들은 것이다.

“별말씀을요.”

“아니네. 자네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이룰 수 없는 일이었네. 처음에 자네가 들어왔을 때, 묘한 유대감을 느꼈다네. 한데 자네와 여기까지 오게 되는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내게 마음의 문을 열었다. 하지만 아직 내 뜻을 밝히고, 백표의 일까지 알릴만큼 활짝 연 것은 아니다.

아직은 감정의 교류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복수심으로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중이다. 아직은 나를 이용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고.

좀 더 깊은 관계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속마음을 진심으로 나눌 수 있는 진짜 동료가 되어야 한다.

바로 그때 문밖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들어가겠습니다.”

문이 열리고 한 여인이 안으로 들어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그녀를 보는 순간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방으로 들어온 여인은 바로 칠호였던 것이다.

“이번에 천궁단의 작전과 관련해서 조사를 나왔습니다.”

“어디서 나오셨소? 집법당이오?”

갈사량의 물음에 그녀가 사무적으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맹주 직속 명령입니다. 앞으로 조사에 적극 협조해 주시길 바랍니다.”

정말이지 생각지도 못한 그녀의 등장이었다.

하나의 산을 넘자, 더 큰 산이 앞을 막아선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저들의 배후를 밝힐 기회가 다시 온 것이라고.

내가 정중히 그녀에게 인사했다. 나는 세 번째 만남이지만, 진짜 내 신분으로는 처음이었다.

“반갑습니다. 신입군사 벽리단입니다.”

* * *

칠호는 관찰에 능한 사람이다.

다시 말해 스스로를 잘 숨기지 않으면 정체가 드러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다행히 나는 그녀를 세 번째 겪어보기에 나 자신을 감추는 것은 자신 있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갈사량을 걱정하는 것 역시 그를 너무 얕잡아 보는 일이 될 터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녀가 먼저 한 일은 보고서를 받는 일이었다.

원래 보고서를 받아야 할 사마천은 조사를 받고 있었고, 천궁단은 외부로 특별훈련을 나간 상황이었다. 그녀가 무림맹에서 조사할 사람은 우리 두 사람뿐이었던 것이다.

그녀가 보고서를 읽고 질문을 던졌다.

우린 있는 그대로 설명해 주었다. 물론 그 중에서 내 활약은 쏙 뺐다. 마지막 생사루에서 독미랑을 죽인 것은 천궁단주가 한 것으로 진술했다. 미리 그렇게 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그 외에 본 사람은 없나요?”

나는 그녀가 묻는 사람이 바로 그 정체모를 노인임을 알고 있었다.

“없었소.”

“없었습니다.”

그녀가 갈사량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를 알아보려는 것이겠지만, 우리 두 사람의 표정과 말에서 그것을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좋아요,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죠.”

“다 끝난 것이 아니오?”

“보고서를 작성할 만큼 충분한 조사가 되지 않았어요. 끝나면 말씀드리죠.”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가볍게 인사를 한 후에 집무실을 나갔다.

내가 갈사량을 보며 말했다.

“보통 여인은 아닌 것 같습니다.”

갈사량이 그녀를 소홀히 생각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한 말이었다.

“맹주가 보내서 왔다는 것만 해도 벌써 예사롭지 않은 여인이네.”

다행히 갈사량은 그녀를 경계하고 있었다. 아마 그라면 배후세력이 보낸 여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을 것이다.

“자네야 말로 각별히 언행을 조심하도록!”

“네!”

큰소리로 대답했지만 나는 그녀를 대할 다른 방법을 떠올리고 있었다. 조심하는 것보다는 조금 적극적인 방법이었다.

* * *

칠호가 서류를 덮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여러 번 살펴보았지만 보고서의 내용에서 이상한 점을 찾을 수는 없었다.

작전 중에 기습을 당했고, 막아내고. 만약 칠호 자신이 이번 작전의 내막을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역시 대단한 천궁단이라며 감탄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작전의 결과는 이상했다.

일단 천궁단의 피해가 너무 적었다. 두 명이 죽고 대여섯이 다쳤다. 반면 이쪽의 피해는 백여 명이 훨씬 넘는다.

상대가 천궁단임을 알고 투입한 병력임에도 말이다. 상대에게 기습을 당하지 않고서야 이런 결과가 날 수가 없다.

따라서 흑수검이 죽은 것도, 고노가 실종된 것도 전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변수는 그날 따라갔다던 두 명의 군사라고 판단했다. 천궁단이 아니라 이곳에 먼저 온 이유도 그 때문이고.

‘분명 뭔가 있어.’

그때 밖에서 누군가 인기척을 냈다.

“계십니까?”

문을 열고 나가보니 앞서의 그 신입군사가 서 있었다. 이름이 벽리단이었던가?

그가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내밀었다.

“지나가다 불이 밝혀진 것을 보고 일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요깃거리를 사왔으니 드시고 하시지요.”

칠호가 엉겁결에 그것을 받았다.

“고마워요.”

“별말씀을.”

벽리단이 인사를 하고 가버렸다.

문을 닫고 자리에 와서 주고 간 것을 열어보았다. 아직 온기가 남은 몇 개의 만두였다. 그것을 책상 위에다 던져 놓고 자리에 앉았다.

창밖 저 멀리 화원을 가로질러 걸어가고 있는 벽리단의 모습이 보였다. 뜻밖이긴 했지만 어떤 의도가 느껴지진 않았다.

서류를 들여다보다가 문득 만두에 시선이 갔다.

‘저대로 두면 식어버릴 텐데.’

그녀가 만두를 꺼내서 한 입 베어 먹었다. 어디서 사왔는지 몰라도 맛이 좋았다.

* * *

다음날 칠호가 집무실로 찾아왔다.

“군사께선 출타중이십니다.”

“기다리죠.”

칠호가 한 옆 자리에 앉았다. 내가 주전자에서 식은 차를 한 잔 가져다주었다.

“고마워요.”

그녀가 살짝 목을 축였다.

“어제 만두 고마웠어요. 맛있더군요.”

“입맛에 맞았다니 다행입니다.”

“무가의 자손인데 어찌 군사가 되었죠?”

“이곳에 와서 제가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지요.”

그녀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머리 좋은 무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군사께는 반대로 말씀드렸지요. 싸움 잘하는 군사가 되고 싶었다고. 이거 비밀입니다.”

다시 말해 이곳에서 머리 쓰는 법을 배우러 왔다는 말이었다.

“내가 상관에게 이르면 어쩌려고 알려주죠?”

“그래서 미리 만두를 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녀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실소를 기대했지만 그녀는 웃지 않았다.

여전히 그녀를 보면 첫 만남의 강렬한 모습이 떠오른다. 달빛 아래서 연못을 바라보던 그 외로운 모습이 내 마음속에 각인된 것이다.

그녀를 내 편으로 끌어들여야 하나?

그 목적이 배후의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그녀는 극도로 감정이 배제된 채 키워진 비밀조직의 한 사람이다. 비밀을 알아봐야 얼마나 알겠는가?

그저 그녀에 대한 호감에서 비롯된 마음이었다. 그녀를 적으로 삼고 싶지 않은 마음, 그녀를 죽이고 싶지 않은 호의.

일각쯤 기다리던 그녀가 물었다.

“군사께선 어딜 가셨죠?”

* * *

갈사량이 맹주전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붉은 융단의 끝 태사의에 마봉기가 앉아 있다. 참으로 낯선 느낌이다.

마봉기여! 이 붉은 융단은 피로 만든 길이다. 얼마나 많은 적들을 죽이고 만들어낸 자리인지 너는 알지 못하리라. 네가 정액을 뿌려대고 있는 동안, 전대맹주께서 얼마나 많은 피를 뿌렸는지 너는 결코 알지 못할 것

이다.

갈사량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부르셨습니까?”

“어서 오시게.”

마봉기의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지난 번, 사마천과 왔을 때는 말 한 마디, 눈길 한 번 제대로 주지 않던 그였는데.

갈사량은 누구보다 잘 안다.

사람의 태도가 갑자기 달라질 때는 원하는 것이 생겼을 때라는 것을.

그것이 권력자라면, 강한 힘을 가진 권력자일수록  더 많은 것을 원한다는 것을. 그것을 구해주기 위해 훨씬 더 큰 희생과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마봉기가 태사의에서 일어나 계단을 내려왔다. 그리고 앞에 서 있던 갈사량의 손을 맞잡았다.

“그간 자네가 고생이 많았다는 것, 내 모르지 않았네. 하나 자네도 알다시피 내 입장도 있지 않겠나? 사마군사의 눈치도 봐야 해서 따로 챙기지 못했을 뿐이라네.”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자, 이리로 와서 앉게.”

맹주전 한 옆에 마련된 자리로 갈사량을 이끌었다.

“한 잔 받게.”

갈사량이 마봉기의 술을 받았다. 그는 말을 돌리지 않고 곧장 본론을 꺼냈다.

“염치없는 말임을 알지만 나를 도와주겠나?”

“무슨 말씀이신지요?”

“다시 무림맹의 총군사가 되어달라는 말이네.”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기에 갈사량은 깜짝 놀랐다. 계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봉기의 두 눈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지금 그가 보이고 있는 눈빛은 진심이었고, 간절했다.

갈사량은 알 수 있었다.

이번 일로 배후세력과 갈등이 심화되었음을. 그래서 그가 본격적으로 배후세력과 싸우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을.

그 싸움에 자신을 이용하려는 것이다. 물론 그는 자신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그저 이용하려는 것이다. 이용하다 잔인하게 버려 버릴 것이다.

갈사량의 마음이 격동했다. 정말 기다려 왔던 기회였다. 하지만 덥석 미끼를 물지 않았다.

“너무 당황스러운 일이라서…….”

“지난 섭섭함은 잊으시게. 내 사과함세.”

마봉기가 자리에서 일어나 갈사량의 손을 맞잡았다.

“부탁함세. 내가 아니라, 맹을 위해서 나서주시게.”

“맹주님!”

갈사량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숨겨둔 복수의 칼날은 깊숙이 감추고, 이 순간을 순수하게 기뻐했다.

“충성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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