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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의 향기 속으로(3)
종천락은 지금껏 말하지 않았던 극비사항을 밝혔다.
“마교가 부활한 사실은 아실 거요.”
“그런 정황이 있지요.”
갈사량이 슬쩍 그것이 완전히 밝혀진 사실이 아님을 짚었다.
“아니. 그 일은 확실하오.”
“어찌 그리 확신하십니까?”
“이번에 마교의 고수 중 한 사람이 우리에게 투항의사를 밝혀왔기 때문이오.”
갈사량이 깜짝 놀랐다.
“그게 누굽니까?”
“나 역시 모르오. 하지만 마교 내에서 상당한 위치에 있는 인물인 것은 확실하오. 이제 내가 왜 이번 작전을 포기하지 않았는지 알겠소?”
“설령 그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놈들이 우릴 공격한다는 것은 이미 우리가 그와 접선하려는 것을 알아차렸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그는 이미 죽었을 겁니다.”
“그렇지는 않을 것이오. 검향림에 강력한 진법을 작동해서 아무도 들어올 수 없게 해두었다고 하오. 약속된 시간에 우릴 위해서 진법을 해제한다고 약속한 상태요. 오래 버티진 못할 테니, 최대한 빨리 가서 그를
데려와야 하오.”
“그 말을 어떻게 믿으십니까?”
“그가 마인인 확실한 증거를 보내왔다고 하오.”
“증거를 보셨습니까?”
“맹주께서 보셨소. 그래서 이 명령이 내려온 것이오.”
“아!”
갈사량도 마찬가지였겠지만 나는 이것이 완벽한 함정임을 알아차렸다.
이런 내용의 작전이라면 중간에 어떤 일이 벌어져도 약속 시간에 맞춰 갈 수 밖에 없다. 공격을 받더라도 돌아갈 수 없는 작전인 것이다. 오히려 무리해서 속도를 올려야 하는 상황.
어떤 놈인지 몰라도 제대로 함정을 팠다. 놈들에게도 갈사량과 같은 머리가 있는 것이다.
“마교가 다시 세상에 나오면 수많은 사람들이 죽게 될 거요. 만약 그를 구해올 수 있다면, 마교 놈들을 소탕해서 전쟁을 사전에 막을 수 있을 것이오. 그래서 우리 임무는 그야말로 막중하오.”
강호를 지키려는 의지가 강하고 무림맹에 대한 충성심이 높은 종천락에게는 완벽한 덫이었다. 속임수다. 마교는 절대 부활하지 않았다.
“어제부터 내일까지, 삼일 간 유시(酉時)부터 딱 일 각만 검향림에 펼쳐진 진법을 해제하겠다고 했소.”
“대책 없이 가면 위험합니다.”
“나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오. 그러니 나를 설득할 생각이라면 시간낭비 하지 마시오.”
갈사량이 나를 한 번 돌아보았다. 눈짓으로 내 생각을 물었다. 나는 고개를 한 번 끄덕여 그의 뜻을 따르는 것이 옳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어차피 바뀌지 않을 생각이라면, 어서 움직이는 것이 이로울 것이다.
갈사량이 종천락에게 말했다.
“가시지요.”
내가 가자고 해서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 아니었다. 갈사량 역시 종천락의 의견을 따를 생각이었는데, 내 의사를 물어서 내 체면을 세워준 것이다.
“좋습니다!”
종천락이 수하들을 불러서 몇 가지를 지시했다.
인근 무림맹 지부와는 거리가 멀어서 지원을 바랄 수 없었다. 게다가 종천락은 그럴 생각도 없어 보였고.
내가 혁낭에서 한 가지 물건을 꺼내서 갈사량에게 건넸다.
“이것 입으십시오.”
그것은 호심갑(護心鉀)이었다. 상의가 아니라 심장만을 보호하는 휴대하기 좋은 작은 호신갑이었다.
“이것이 어디서 났는가?”
“제가 가지고 있던 것입니다.”
이 호심갑은 황금대연 당시 저잣거리에서 샀던 몇 가지 물건 중의 하나였다. 이천 냥이었던가? 호심갑치고는 너무 싼 값이었는데, 값에 비해 제법 잘 만들어져서 샀던 것이다.
진짜 고수의 공격을 막아줄 수는 없겠지만, 눈 먼 검을 한 번쯤은 막아줄 것이다.
“자네가 차게. 싸움을 해도 자네가 할 것 아닌가?”
“아닙니다. 군사께서 차셔야 합니다. 그래야 제가 마음 편하게 싸울 수 있습니다.”
나야 그 어떤 호신구보다 훌륭한 것을 차고 있었다. 남해어옹의 낚싯줄에 사용된 특별한 천잠사를 감은 호완사를 손목에 차고 있었던 것이다.
“자네?”
“적어도 이 문제만큼은 제 말에 따라주십시오.”
갈사량이 나를 바라보았다. 표를 내지 않으려 했지만 살짝 감격했음을 알 수 있었다.
“알겠네.”
그가 호심갑을 착용했다. 내가 직접 그의 심장에 대어주었다.
나중에 정말 좋은 것으로 입혀주마.
지금은 그런 것을 입혀주고 싶어도 입혀줄 수 없는 처지였다. 설령 보의가 있다 하더라도 수만 냥짜리를 함부로 내줄 수는 없었으니까.
내가 호심갑을 채워주는 모습을 무인들이 지켜보았다. 다들 조금은 부러워하는 눈빛이었다. 호심갑을 부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호심갑을 채워주는 사람이 있음을 부러워하는 것이다.
“어떻습니까? 편하십니까?”
“아주 좋네.”
“다행입니다. 임무를 마치고 돌아가실 때까지 꼭 차고 계십시오.”
“그러지.”
이 순간 갈사량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어린 군사를 보호하며 데려왔다고 생각했는데, 출발 이후에는 그에게 어떤 보살핌을 받는 든든함을 느꼈던 것이다.
출발 준비를 마친 종천락이 앞장서 걸으며 말했다.
“서둘러라!”
* * *
노인 하나가 뒷짐을 쥔 채 나직한 언덕에 서서 멀리 보이는 숲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전에 천궁단이 이동을 시작한 그곳이었다.
“방패를 동원했는데도 실패했다고?”
“네.”
뒤쪽에 선 중년사내가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그럴 수 있겠지. 우리 쪽 피해는?”
“오십 명이 죽고 이십 명이 크게 다쳤습니다.”
“저들은 몇 명이나 줄였나?”
“그게…… 한 명도 죽이지 못했습니다.”
노인이 스윽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가 내뿜는 날카로운 살기에 중년사내가 자라처럼 목을 움츠렸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대답을 잘해야 한다. 까닥 잘못했다간 목이 날아갈 것이다. 노인은 아주 무서운 사람이었다.
그래,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이 자리에 서기까지 수하들을 닦달하며 자신도 몇 번이나 했던 생각이었다.
실패는 할 수 있었다. 상대는 무림맹의 정예 천궁단이었으니까.
한데 어떻게 한 명도 죽이지 못한 것일까?
사내가 찾아낸 대답은 이것이었다.
“이번에 따라온 군사가 전대 총군사 갈사량입니다.”
“그래서? 갈사량이 군사를 때려치우고 절세고수라도 되었다던가?”
노인이 차갑게 되묻자 중년사내가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노인이 다시 고개를 돌려 저 멀리 풍경을 쳐다보았다.
“오늘 내로 처리하도록.”
“명을 받듭니다.”
내심 안도하며 중년사내가 몸을 날렸다.
마지막 기회임을 느낀 그가 이를 악물었다.
‘이번에 실패하면 정말 죽는다.’
* * *
쉬이이이익!
그랬기에 중년사내가 내지르는 검은 그야말로 평생의 절기가 담긴 것이었다.
‘죽일 수 있다!’
난전이 벌어졌고, 수십 명의 수하들을 다시 잃었다. 천궁단과의 싸움에 철저히 대비했었다. 궁술을 깨는 여러 방법들을 준비했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그것이 통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갈사량의 존재를 변명처럼 말했는데, 정말 그 놈 때문에 뚫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쨌든 앞서 공격보다 더 많은 수하를 쏟아 부으면서 종천락에게 접근하는데 성공한 그였다.
‘이놈만 죽이면!’
종천락만 죽이면 놈들을 전멸시킬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자신은 살 수 있다. 비록 수하들의 희생이 커서 상은 받지 못하겠지만 오늘의 목적은 이룰 수 있었으니까.
종천락이 검을 뽑아 자신의 검을 막았다.
중년사내의 얼굴에 희열이 스쳤다. 그 강력한 화살을 피하고 쳐내며 종천락의 코앞까지 접근하는데 성공한 자신이었다.
궁술의 고수가 화살로 막지 못한 것을 어찌 검으로 막을 수 있겠는가?
그것을 증명하듯 주위의 천궁단 무인하나가 조심하라고 다급히 소리쳤다.
‘조심한다고 막을 수 있다면 흑수검(黑手劍)이 아니지.’
사내는 바로 흑수검이었다. 한때 가장 잘 나가는 용병고수 중 하나였다. 그가 자신의 신분을 버리고 아까 보았던 노인에게 포섭된 것이 칠 년 전이다.
흑수검의 검이 종천락의 심장에 박히려는 그 순간.
슁! 깡!
어디선가 비수가 날아와서 자신의 검을 쳐냈다.
검의 기세와 거기에 담긴 웅혼한 내력을 생각하면 날아든 것이 튕겨나갔어야 한다. 멀리서 날아든 비수 따위가 자신의 공격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손목이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이 밀려들며 검이 옆으로 빗나갔다.
푹!
종천락의 심장을 찌르던 검이 그의 오른 팔을 찔렀다.
비수를 날렸던 자로 추정되는 상대가 빠르게 자신을 향해 쇄도해왔다.
검을 뽑아서 그를 향해 휘둘렀다. 하지만 상대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빨랐다.
쉬이잉! 서걱!
그것이 흑수검이 들었던 마지막 소리였고, 무엇인가 기분 나쁜 것이 목을 가른다는 느낌이 마지막 감각이었다. 전혀 아프지 않았다.
쿵.
사내의 목을 벤 내가 종천락을 향해 소리쳤다.
“괜찮으십니까?”
“나는 괜찮네.”
종천락이 팔을 지혈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를 더 살필 겨를이 없었다. 옆의 다른 천궁단 무인이 위험했던 것이다.
다시 그를 향해 몸을 날렸다.
쉬이이익!
푸아아악!
천궁단 무인을 베려던 사내의 가슴이 내 검에 갈라지며 쓰러졌다.
위기에서 벗어난 천궁단 무인이 다시 화살을 날렸다.
핑! 핑!
저 앞에서 달려들던 사내들이 화살을 맞고 쓰러졌다.
내 손에서 비수도 연속해서 날았다.
쉭쉭쉭!
갈사량에게 접근하던 사내가 몸을 뒤집으며 쓰러졌다.
갈사량이 놀라 나를 쳐다보았지만, 그 고마워하는 시선을 받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내가 내공을 실어 소리쳤다.
“적들의 수장이 죽었다! 수장이 죽었다.”
그 외침은 효과가 있었다. 달려들던 사내들의 기세가 죽었고, 내가 달려들어 몇 명을 더 베어 넘기며 소리치자 그들이 일제히 퇴각한 것이다.
일각에 걸친 미친 듯한 공격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부상자들을 챙기십시오!”
안타깝게도 천궁단의 무인 중 두 사람이 죽었다. 싸움이 시작될 때, 기습을 당하는 바람에 죽은 것이어서 내가 지켜줄 수 없었다.
다친 사람이 여덟이었는데 그 중 세 사람은 큰 상처를 입었다.
내가 그들에게 내상약을 먹이고 금창약을 발라주었다. 예전에 보관하고 있던 비싼 약을 아끼지 않고 사용하는 모습에 모두들 크게 감동했다.
“고맙네, 자네가 아니었다면 큰 낭패를 당할 뻔 했네.”
종천락의 치하에 아니라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내가 이리저리 날뛰며 싸움을 조율하지 않았다면, 이곳에서 살아남은 천궁단 무인은 한 명도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놈들의 공격은 집요했고 강력했다. 모두들 그것을 알았기에, 이제 나를 대하는 눈빛과 태도가 아주 정중하고 친근해졌다.
당연히 갈사량은 무사했다. 싸우는 중에도 갈사량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챙겼으니까.
“일단 이곳을 벗어나야 할 것 같습니다.”
종천락이 갈사량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럽시다.”
부상자들을 챙겨서 다시 이동했다.
검향림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원래 종천락의 말대로라면 이곳에 진법이 설치되어 있고, 유시가 되어야 해제될 것이다.
하지만 검향림에 진법은 없었다. 마중 나온 사람도 없었다.
이번 임무가 종천락을 죽이려는 것임이 확실해지는 순간이었다.
갈사량이 피식 웃었다. 사마천이 자신까지 죽이려 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한 것이다. 물론 나중에 이 일을 추궁하면 그는 몰랐다고 잡아떼겠지.
하지만 갈사량은 알았다. 사마천이 무능해도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힌 자다. 이번에 자신도 함께 없애려고 한 것이 틀림없었다.
반면 종천락은 좀 더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우리가 속은 것 같습니다.”
“속았다면?”
그 속에 담긴 무서운 뜻을 어찌 그라고 모르겠는가?
“놈들의 목적은 우릴 죽이는 것입니다.”
“왜 우릴 죽이려 한단 말이오?”
“종단주님은 중요삼단 중 맹주의 뜻에 반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니까요.”
“그런 이유로 맹주가 나를 죽이려 한다는 것을 믿을 수 없소.”
“믿으셔야 합니다.”
“대체 왜?”
“이 자리에 제가 있으니까요.”
종천락이 흠칫 놀랐다.
자신과 전대 총군사 갈사량, 그래. 분명 맹주에게 눈엣가시일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이렇게 제거하려 한다면 그건…… 정말 마봉기가 최악의 악인이란 뜻이 아닌가?
“이곳까지 왔으니 약속장소에 가서 확인해 보십시다.”
종천락은 마지막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갈사량은 순순히 그 제안에 따랐다.
“그러시지요.”
어차피 지금은 부상자들 때문에 곧바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조금 더 나아가나, 조금 더 물러나나 다르지 않았다.
모두들 검향림으로 들어섰다.
검향림은 넓은 숲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길을 잃을 만큼 길이 험한 곳이었다.
우린 조심스럽게 그 중심을 향해 걸어갔다.
그 검향림의 중심에는 혈천신교의 성지인 생사루(生死樓)가 있었다. 생사루에는 혈천신교의 성물이 보관된 곳으로 알려졌는데, 그에 관해 자세히 아는 사람은 나와 갈사량을 제외하곤 거의 없었다.
우린 아주 오래 전에 이곳에 왔었는데, 갈사량은 정확히 길을 기억하고 있었다. 기억력이 좋아진 나도, 이 복잡한 숲길이 헷갈렸는데, 갈사량은 정확히 길을 찾아가고 있었다. 과연 똑똑함이 나와 비할 바가 아니었
다.
우린 부상자들을 부축하고 챙겨서 갈사량을 따라서 걸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저 멀리 칠층 누각의 모습이 보였다.
바로 혈천신교의 삼대성지 중 하나인 생사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