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천마-109화 (109/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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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의 향기 속으로(2)

종천락은 본래 원칙을 중시여기는 사람이었다. 때론 고지식하다는 말을 듣는 사람다운 대답이 흘러나왔다.

“죄송하지만 말씀드릴 수 없소.”

“저를 믿지 못하는 것입니까?”

“믿소. 하지만 아시잖소? 극비작전을 누설하는 죄는 중죄라는 것을.”

“긴급한 상황에서는 밝혀도 된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누구보다 맹칙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갈사량이었다. 하지만 그런 말에도 종천락은 요지부동이었다.

“죄송하지만 불가하오.”

갈사량도 더는 강요하지 않았다.

“단주님의 뜻이 그러하시다면 알겠습니다. 대신 곧장 출발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또한 원래의 경로를 바꾸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좋소. 그렇게 하지요.”

종천락이 무인들에게 걸어와서 큰소리로 말했다.

“앞서 적의 출현을 소리쳐서 알린 이가 누군가?”

내가 앞으로 나섰다.

“접니다.”

종천락이 깜짝 놀랐다. 당연히 경계를 서던 이들 중 하나라 생각하고 그를 치하해 주려고 하던 참이었다.

“어떻게 알았나?”

“새벽에 목이 말라서 잠에서 깼습니다. 물을 마시려고 일어서려는데 저 멀리서 뭔가 움직이는 것을 봤습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종천락이 기쁜 얼굴로 다가와서 내 어깨를 두드렸다.

“자네가 아니었다면 큰 낭패를 당할 뻔 했네. 고맙네.”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종천락이 수하들을 보며 말했다.

“자, 곧장 출발한다.”

천궁단 무인들이 출발준비를 서둘렀다. 특히 첫날 함께 술을 마셨던 무인들이 나를 보며 고마움의 눈빛을 보냈다. 실전 경험이 풍부한 이들이었기에, 내 경고가 얼마나 중요한 일이었는지 모두들 알고 있었다.

갈사량이 내게 물었다.

“정말 우연히 알아차린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제가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이렇게 질문을 하는 이유는 면접을 볼 때, 내가 보여준 한 수 때문일 것이다.

굳이 그에게 의심을 남길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에게만 들리게 나직이 말했다.

“제 무공이 저들보다는 뛰어납니다. 일이 터지면 저를 믿어주십시오.”

잠시 나를 응시하던 갈사량이 돌아섰다.

“가세.”

“네.”

우린 다시 중경을 향해 출발했다.

이 극비작전의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작전은 우리 모두를 죽이기 위한 함정이란 것을.

* * *

맹주전의 분위기는 냉랭했다.

태사의에 앉은 마봉기는 못마땅한 눈빛으로 광월단주 주철룡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주철룡은 평소와 다름없는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자네들이 원하는 대로 다해주었네. 그런데도 배후를 만나게 해주지 않겠다는 것인가?”

맹주가 된 지 이 년이 지났음에도 마봉기는 여전히 배후를 만나지 못했다. 저들은 오직 주철룡을 통해 자신들의 뜻을 전해왔다.

‘정말이지 조심성이 대단한 놈이다.’

누군가를 꼭두각시로 내세웠으면 그 앞에서 힘을 과시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 아니겠는가?

하지만 놈은 주철룡을 내세워놓고 꽁꽁 숨어 있었다.

‘대체 뒤에서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 것이냐?’

은밀히 주철룡을 조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 것도 밝혀내지 못했다. 주철룡이 왜 그들의 편에 섰는지는 물론이고, 그들과 어떻게 연락을 주고받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혹시 저 새끼가 배후가 아닌가?’

정말이지 주철룡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주철룡은 배후가 아니었다. 그는 광월단주 이상의 의미를 가질만한 인물이 되지 못했다. 비록 여자나 밝히는 색정광이라 불렸지만, 그 역시 사람을 보는 눈만큼은 자신할 수 있었다.

“그대들의 뜻대로 천궁단주를 내보내지 않았나?”

“그야 혈천마교의 부활이 감지되어서가 아닙니까?”

마봉기의 입꼬리가 차갑게 올라갔다.

“자네들은 나를 정말 멍청이로 여기는 것인가?”

“무슨 말씀이신지요?”

“마교의 부활을 내가 믿을 거라 생각하느냐는 말일세.”

“믿을만한 징후들이 포착되지 않았습니까?”

“그건!”

너희들이 조작한 것이지, 란 말을 하려다 말았다. 어차피 입만 아픈 상대다.

주철룡이 차분히 말했다.

“그리고 이번 일은 맹주님을 위한 일이지요.”

“무슨 말인가?”

“천궁단주는 반맹주파의 중심에 있는 인물입니다.”

주철룡은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를 제거하면 네가 좋지 않겠냐는 뜻이 침묵에 담겨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그는 암시만 할 뿐, 노골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실력이 대단한 사람이니 무사히 돌아올 겁니다.”

오히려 걱정이 깃든 주철룡의 말에 마봉기는 어이가 없었다. 그를 죽음의 임무로 내몰았으면서, 저런 말을 태연하게 하다니.

드러난 것만 따지면 주철룡은 지극히 정상적이었다. 오히려 자신이 음모론에 빠진 늙은 맹주취급을 받게 될 정도다.

“그럼 전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주철룡이 맹주전을 나갔다. 뒷모습을 지켜보던 마봉기가 태사의를 움켜쥐었다.

와직.

태사의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을 텐데, 주철룡은 못들은 척 걸어 나갔다.

잠시 후 그곳으로 사마천이 들어섰다. 그가 부서진 태사의를 보며 모른 척 말했다.

“언짢은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아니네. 무슨 일인가?”

사마천이 다급한 얼굴로 돌변하며 빠르게 말했다.

“임무를 나간 천궁단에서 전서가 날아왔습니다. 암습을 당했다는 보고인데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마봉기가 그 일에 관해서는 언급도 하기 싫었는지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임무는 계속 수행하겠다고 알려왔습니다.”

“종단주가 알아서 잘 처리하겠지.”

“네.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니까요.”

사마천이 마봉기의 눈치를 살피며 넌지시 말했다.

“피곤해 보이시는데, 좀 쉬시지요? 괜찮은 애들이 새로 온 모양입니다.

“그럴까?”

마봉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마천이 그를 안내했다.

함께 지하 밀실로 내려갔다.

술상이 차려졌고 새로 온 여인들이 교태를 부리며 맹주에게 안겨들었다. 어디서 구해왔는지 이전의 여인들보다 더 아름다운 여인들이었다.

마봉기의 얼굴이 언제 어두웠냐는 듯 환하게 밝아졌다.

사마천이 마봉기의 기분을 맞춰주며 껄껄 웃으며 마봉기가 고르고 남은 여인을 옆에 앉혔다.

그는 마봉기의 배후에 누군가 존재하고 있음을 진작 감지했다. 하지만 일부러 그 존재에 대해 모른 척 하고 있었다.

마봉기를 맹주로 만든 정도의 배후라면 지극히 위험한 존재일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이었다.

마봉기에게 빌붙어 여자나 공급하는 타락한 총군사.

비록 쓰레기처럼 보일지는 몰라도 명줄은 질길 것이다. 오래 살아남는 자가 승리자다. 그 삶의 지론을 지켜나가고 있었다.

어쨌든 이번 마교부활건은 맹주의 배후인물의 작품이 틀림없다.

위에서 이번 명령이 내려왔을 때, 그것도 천궁단주를 직접 보내라고 내려왔을 때, 이번 임무가 죽음의 임무임을 직감했다.

그것을 알면서 갈사량을 딸려 보낸 이유는 따로 있었다. 최근에 그를 통해 십만 냥의 뇌물을 받아 챙겼다.

충분하지 않느냐고? 천만에. 이제 어떻게 정의각을 이용해서 상대방을 조사하고 돈을 뜯어내는지 요령을 충분히 익혔다. 갈사량과 나눠 먹을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또한 자신의 약점을 알고 있는 자를 살려둘 필요도 없고, 그를 괴롭히던 재미도 사라졌다. 그래서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번에 갈사량도 처치해 버리기로.

‘어차피 한 번은 가는 길, 장렬하게 가시게.’

그때 여인의 가슴에 묻혀 있던 마봉기가 사마천에게 말했다.

“뭘 그리 생각하나?”

사마천이 단숨에 술을 비운 후 여인을 끌어안았다.

“아닙니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신나게 즐겨야지요!”

* * *

두 번째 암습은 사흘 후 감행되었다.

이번에는 새벽시간대를 노린 암습이 아니었다. 마치 지난번의 복수라도 하듯, 정면공격을 해온 것이다. 하지만 이번 공격은 암습보다 더 치밀한 준비가 되어 있었다.

우선 주위에 화살을 피할 수 있는 나무들로 둘러싸인 곳에서 공격을 해왔다.

결정적인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가장 선두에 선 사내가 커다란 철방패를 들고 달려든 것이다.

선두에 방패를 든 사내가 서고, 뒤쪽으로 다섯 명의 무인들이 일렬로 붙어서 내달렸다. 그 숫자가 무려 일백 명에 달했다.

화살이 적들에게 쏟아졌다.

슁슁슁슁슁슁슁슁!

텅텅텅텅텅텅텅텅!

화살이 방패를 뚫지 못하고 튕겨나갔다.

방패를 든 무인들의 내공이 보통이 아니었다. 게다가 나무들 사이를 오가며 달려드는 바람에 쉽게 그들을 저지할 수 없었다.

그들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왔다.

쉬이이잉!

꽝!

종천락이 날린 화살은 일반 화살과 달랐다. 내공이 깃든 화살이 방패에 박히는 순간, 방패를 든 사내가 팔이 부러지며 뒤로 튕겨져 날아갔다.

하지만 방패는 뚫리지 않았고 뒤따르던 또 다른 사내가 방패를 들고 달렸다.

쉬이이잉! 꽝! 쉬이이잉! 꽈앙!

종천락이 연이어 내공이 깃든 화살을 날렸지만, 적들의 숫자는 너무 많았다.

내가 검을 뽑아들며 달려 나갔다. 이대로 그냥 뒀다간 근접전이 벌어지면 천궁대 무인들의 피해가 너무 클 것이 자명했다.

“지원을 부탁합니다.”

“안 됩니다!”

양호가 말리며 소리쳤지만 이미 나는 방패를 든 무인을 향해 쇄도하고 있었다.

쉬잉!

서걱!

내가 미끄러지며 방패를 든 사내의 발목을 베었다. 사내가 앞으로 꼬꾸라지던 그 순간, 내가 옆으로 몸을 날리며 소리쳤다.

“지금이오!”

핑핑핑핑핑핑핑!

나를 공격하려던 방패 뒤쪽의 사내들에게 화살이 쏟아졌다. 그들은 충분히 날아드는 화살을 쳐낼만한 실력이 있었지만 그것은 보통의 화살일 경우였다. 천궁단 정예들이 날린 강력하고 정확한 공격이 집중되자,

그들은 막아내지 못했다.

푹푹푹푹푹푹푹푹!

뒤쪽 무인들이 고슴도치가 되어 쓰러졌다.

나는 그 결과를 보지 않고 두 번째 방패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이번 역시 내 목표는 방패를 든 무인이었다. 방패 사내가 쓰러지자 이번에도 화살비가 쏟아졌다.

핑핑핑핑핑핑핑핑!

내가 미끄러지듯 검을 피하며 다시 방패를 든 무인의 다리를 베었다.

세 번째 방패는 앞서 동료가 어떻게 당했는지를 본 모양이었다. 방패로 나를 내리찍으면서 자신의 다리를 보호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다리를 노리지 않았다. 땅을 박차고 도약해 방패를 타고 넘어갔다. 한 바퀴 앞으로 공중제비를 돌며 검을 휘둘렀다.

쉬이익.

파아악!

사내의 머리통이 베어지며 쓰러졌다.

이번에는 곧장 방패를 타고 넘는 바람에 뒤쪽 무인들과 뒤엉키게 되었다.

핑! 핑! 핑!

다음 순간, 나를 스치며 화살이 날아들었다. 정확히 날아든 화살이 뒤쪽 사내들을 공격했다. 다섯 사내들 중 둘이 쓰러졌다.

저격을 담당하는 천궁단 무인들이 정확히 화살을 날리기 시작한 것이다.

화살을 쳐낸 적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천궁단 무인들의 실력을 믿었다. 적어도 나를 맞히지는 않을 것이다.

창창창창창!

그의 공격은 날카롭고 매서웠지만 백월검법을 대성한 실력을 발휘하는 내게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서걱!

다섯 수 만에 그를 베어 넘겼다.

다음 순간,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

피잉. 푸욱!

나를 베려고 달려들던 또 다른 사내의 목에 화살이 박혔다.

핑핑핑핑!

뒤이어 날아든 화살에 고슴도치가 되어 쓰러졌다. 화살은 백발백중이었다. 천궁단 중에서도 정예가 나왔고, 다시 그들 중에서 저격을 담당하는 무인들의 궁술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이미 놈들이 저 멀리 퇴각하고 있었다.

그때에는 이미 전방의 공격도 막아낸 후였다. 아무리 방패와 지형을 이용했다 해도, 한쪽 공격만으로 종천락을 뚫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내 활약을 듣고는 종천락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네, 무공실력이 상당하군.”

“보시다시피 제가 직접 죽인 적은 한 명 뿐입니다. 다 여기 계신 분들이 해낸 일입니다.”

내가 나를 지원했던 무인들에게 공을 돌리자 그들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방패만 없애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행히 방패를 든 자들의 행동이 자유롭지 못해서 쉽게 없앨 수 있었습니다.”

“급박한 순간에 달려 나가 방패 든 자들을 없앨 생각을 한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

그러면서 종천락이 갈사량을 쳐다보았다. 아마도 갈사량이 알려줬다 생각한 모양이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라리 그렇게 생각해주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천궁단 무인들이 시체를 살폈다. 앞서 공격했던 자들처럼 어떤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 와중에 양호가 나를 보며 말했다.

“또 당신이 우릴 구했군요.”

나를 향한 표정에 어떤 신뢰가 깃들어 있었다.

“운이 좋았습니다.”

“운이 겹칠 때 우린 그 운을 실력이라 부르지요. 아무튼 감사합니다.”

다른 무인들도 비슷한 표정이었다. 아마도 그들은 내가 군사가 아니라 갈사량을 호위하기 위해 정의각에서 나온 특별 무인쯤으로 여기는 듯 했다.

갈사량은 과거 총군사였으니, 근래의 소문과는 별개로 고수가 지켜줄 수도 있을 테니까.

내가 갈사량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난 괜찮네.”

중요한 것은 갈사량의 마음이다. 난 처음 만남부터 지금까지 그의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대체 어떤 임무이기에 이렇게 필사적으로 막으려는 것일까요?”

갈사량이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알 수 없지.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린 아주 큰 위험에 빠졌다는 점이네.”

지금이라도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종천락은 포기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대체 어떤 명령이 내려왔기에 이렇게 위험을 감수하려는 것일까?

마차로 걸어가던 갈사량이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자넬 안 뽑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싶네.”

고맙다는 갈사량식의 인사였다.

며칠 후 중경으로 들어섰고 우린 목적지인 검향림과 불과 한나절 거리까지 도착했다.

다행히 이곳까지 오는 사이 또 다른 공격은 없었다.

하지만 아무도 안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강력한 공격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 모두들 긴장하고 있었다.

갈사량이 나를 데리고 종천락을 향해 걸어갔다. 이제 이번 임무에 대해 들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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