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천마-105화 (105/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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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찾아서(1)

진의 보고는 놀라운 것이었다.

“무림맹에서 혈천마교가 부활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나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진은 내가 꽝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라고 여기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이미 불회마령인의 치명적인 제약을 풀려는 시도를 경험한 나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혈천마교의 부활이 아니라, 혈천마교의 이름을 이용한 새로운 세력의 음모이리라.

혈천마교는 부활할 수 없다. 모두 다 내 손에 죽었으니까.

내가 잠시 생각에 잠긴 것은 혈천마교에 대한 수많은 과거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들과의 오랜 싸움이, 마교주와의 그 힘겨웠던 마지막 혈투가.

“그래서 돌아오는 삼월에 무림맹의 각 조직에서 새로운 무인들을 대거 뽑는다고 합니다. 며칠 후면 전 중원에 이 소식이 전해질 겁니다.”

삼월이라면 지금부터 두 달 후다.

이번 일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것이 마봉기의 뜻일까? 혹은 배후의 뜻일까?

무림맹 깊숙이 세작이 있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내용이었다. 아직 무림맹에 세작을 투입하진 않고 있었다. 진과 수는 자신 있다고 했지만, 아직 시기상조라고 여겼다.

여전히 정보에 목말랐고, 나는 그 해결책을 알고 있었다.

* * *

오랜만에 백표를 찾아갔다.

그는 눈밭을 함께 구르며 흑표대와 지옥훈련 중이었다. 이들의 수련에 비하면 소검대의 수련은 가벼운 몸풀기라 해도 좋을 정도로, 흑표대의 수련은 지독하고 위험했다.

전에 왔을 때와는 그들의 눈빛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이제 고양이는 벗어났나?”

내 질문에 그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전에 나를 상대했던 사내를 다시 불러냈다.

이젠 두 말 없이 검을 뽑아들고 달려들었다.

쉬이익.

이전보다 빠르고 정확했다. 수련의 결실이 확실히 느껴질 정도로.

휘리릭.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허공을 빙글 돌아 바닥에 처박히는 순간에도 시선이 내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쿵.

당하는 것은 똑같았지만 이번에는 자신이 당하는 것을 인지한 것이다.

내가 손을 내밀자 그가 손을 맞잡고 일어났다.

그를 보며 내가 웃으며 말했다.

“여전히 고양이군. 하지만 지난 번 보다는 사나운 고양이가 되었군.”

사내가 허탈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다음에는 절대 순순히 당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백표와 함께 돌아서려는데, 사내가 물었다.

“조금 전의 그 수법, 대체 어떤 무공입니까?”

다른 흑표대 무인들 역시 같은 의문을 품고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허리에 찬 검을 툭 건드리며 말했다.

“나는 검술을 사용하는 사람이다.”

사내는 물론이고 모두들 깜짝 놀랐다. 맨손무공이 주무공이고 상대를 현혹하기 위해 검을 차고 다닌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긴, 선학비술의 수준이 워낙 높아서 그럴 만도 했다.

“언젠가는 내게서 검을 뽑을 수 있게 해보도록.”

모두들 놀라고 황당한 표정으로 서로를 돌아보았다.

그들을 뒤로 한 채 백표와 나란히 걸었다.

“어떠시오?”

“아주 좋습니다.”

오히려 백표의 기세가 가장 날이 서 있었다. 저들을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데 엄청난 심력소모가 들어갈 것이다. 동시에 백표 역시 검을 숫돌에 갈 듯 새롭게 태어나고 있었다.

“몸 축나지 않게 조심하시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백표에게 찾아온 용건을 밝혔다.

진이 보고한 사실을 전했다. 혈천마교가 부활하려 하고, 그에 대비해서 무림맹에서 사람을 뽑았다고.

“혈천마교의 부활이라고요? 믿기 어렵습니다.”

나와 함께 한 시간이 많았기에 그는 알고 있었다. 그들이 부활하기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고.

“더구나 그들이 멸망한지 삼십 년도 더 되지 않았습니까?”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오.”

“대체 무슨 꿍꿍이일까요?”

“이번에 보고를 들으면서 나는 한 사람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소.”

“누굽니까?”

“그대가 말한 사람이오.”

백표가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갈군사이군요.”

“그렇소.”

“잘 생각하셨습니다. 우리가 대업을 이루려면 반드시 갈군사가 필요합니다.”

원래는 조금 더 나중에 그를 데려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놈들이 더 큰 일을 벌이기 전에 갈사량을 데려와야 한다고 판단을 내린 것이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제가 설득하면 어쩌면 무림맹을 떠나 주군께 올지도 모릅니다.”

“그렇겠지요.”

갈사량이 백표에게 수라명왕검을 맡긴 것만 봐도 그 신뢰가 깊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될 이유가 있었다.

“그대는 해야 할 일이 있지 않소?”

흑표대를 키우는 일은 갈사량을 데려오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일이었다. 이 수련의 맥을 끊고 싶지 않다.

“게다가 갈군사는 전대 총군사로 여전히 그들이 주시하고 있을 것이오. 그대가 접촉을 시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소.”

그리고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그대도 알다시피 이 일은 내가 직접 나서야 할 일이오.”

주군과 신하가 맺어지는 일이다. 매파가 나서서 중매를 설 일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를 감복시켜서 나를 따르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하면 어떤 복안이라도 있으십니까?”

“내가 그를 만나러 가려고 하오.”

“네? 공자께서요? 어떻게 말입니까?”

“이번에 무림맹의 전 조직이 새로운 인원을 모으고 있소. 정의각도 마찬가지요.”

“정의각으로 들어가시겠단 말씀이십니까?”

생각지 못한 말이었는지 백표는 깜짝 놀랐다.

“그렇소. 내가 정의각으로 들어가서 그를 내 사람으로 만들 생각이오.”

그를 빼내오든지, 아니면 그를 그대로 두든지는 그때 상황에 따라 판단할 것이다.

“가능하겠습니까?”

“쉽지 않겠지요.”

“아니, 정의각에 들어가는 것 말입니다.”

당연히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어렵소?”

“당연히 어렵지요. 중원 제일의 학사가문의 후예들도 간신히 들어가는 곳입니다.”

내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지금부터 열심히 공부해 보겠소. 아직 두 달이나 남았으니까.”

백표가 고개를 내저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과연 대단하십니다.”

그는 반신반의하고 있겠지만, 나는 진심이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정의각에 들어가서 갈사량을 내 편으로 만들 것이다.

“갈군사를 데려오겠소.”

이제 내 사람을 찾아올 때다.

* * *

“갈군사! 아직도 놈의 행방을 찾아내지 못했나?”

사마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네.”

갈사량이 면목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무명대협은 이 강호에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이 한심한 친구야,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나? 정말 무능하군. 무능해!”

“죄송합니다.”

일부러 찾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갈사량은 최선을 다해 무명대협을 찾았다. 물론 자신의 비선망을 동원해서까지 찾았다.

하지만 행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갈사량은 세 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다. 죽었거나, 완벽하게 잠적했거나, 혹은 다른 사람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아마도 다른 사람으로 활동하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령인을 엿 먹일 정도의 사람이 쉽게 죽었거나 잠적했을 리 없다. 뭔가 또 다른 한방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대신 그 과정에서 한 가지 알아낸 것이 있습니다.”

갈사량이 은밀한 기색으로 서류를 내밀었다.

“오호.”

사마천의 표정이 풀리면서 입가에 웃음기가 지어졌다.

“조사해볼 가치가 있군.”

강호의 인사들 중 부정한 자들의 뒷조사를 해서 보고했다.

여기서 말한 조사란 단순한 조사가 아니었다. 놈을 압박해서 이권과 돈을 뜯어내는 과정을 의미했다. 악인 놈들을 뜯어서 더 큰 악인의 배를 채우는 것이었다.

일 년간 사마천의 주머니로 들어간 돈이 십만 냥에 달했다. 그가 평생 만져보지 못한 돈을 벌게 해준 것이다.

물론 갈사량은 그 중 일부를 자신이 챙기면서 한 배를 탄 사이임을 증명했다. 걸리면 함께 죽는 것이다.

어차피 악인의 돈을 뜯는 것이라 양심의 가책은 없었고, 방법이 잘못되었음을 생각지도 않았다. 갈사량에게 개인의 명예나 나중 일 따윈 생각하지 않았다. 천하진을 죽인 자들을 찾아내 복수하면 영원히 이 강호를

떠날 생각이었으니까.

덕분에 갈사량은 사마천의 감시에서 벗어났다. 물론 자신을 주시하고 있겠지만, 예전의 그런 감시는 없어졌다. 비록 무능하다고 질책을 받지만, 그와 많이 친해졌다. 본래 나쁜 일을 공유하면 급속히 친해지기 마

련이다. 여기까지 오는데 갈사량은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소식 들었지? 봄에 본각도 무인을 새로 받아야 하네. 그 일은 자네가 맡게.”

“알겠습니다.”

돌아서 나가려던 갈사량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한데 혈천신교의 부활이란 황당한 말은 대체 어디서 나온 말입니까?”

정의각에서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실을 무림맹에서 발표한 것이다. 물론 갈사량은 그것이 마봉기의 발표임을 알고 있었다. 한 번 넌지시 떠보는 것이다.

“그야…….”

사마천이 말을 줄이면서 눈을 살짝 위로 치떴다. 맹주전에서 내려온 명령이란 뜻이다.

“마교라면 강호인들이 발작을 하니까. 가장 빨리 힘을 집결시킬 수 있지.”

“맹의 힘은 지금도 충분하지 않습니까?”

“힘이야 강하면 강할수록 좋지. 자넨 더 이상 알 필요 없네.”

“네,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의 대답에서 갈사량은 느낄 수 있었다. 사마천 역시 내막을 자세히 알지 못하고 있음을. 마봉기는 아주 중요한 일에선 철저히 그를 배제하고 있었다.

과연 저 사마천은 배후세력에 대해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모른 척 하는 것일까?

사마천과의 거리는 많이 좁혔지만, 아직 모르는 것투성이다.

* * *

정의각에 들어가는 시험에 대해 알아보니 과연 만만치 않았다.

곧바로 글공부에 들어갔다.

지금까지 하루의 대부분을 수련했다면 이젠 하루의 대부분을 공부에 투자했다. 내공이 이갑자가 되고 오초식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기에, 이제 무공수련은 가볍게 몸을 푸는 정도로만 했다.

정말이지 얼마만의 공부인가? 아, 전생에 내가 어딘가 들어가기 위해 공부를 해 본 적이 있었던가?

생각해 보니 없었다.

진과 수에게 부탁해서 이전에 어떤 시험을 치렀는지,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지를 알아보았다. 우습게 볼 문제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봐야할 책이 수십 권이었다.

읽고 또 읽었다. 밤잠을 아껴가며 책을 읽었다.

오늘도 새벽부터 글공부에 여념이 없었다.

한참 서책을 읽고 있던 내가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그만 훔쳐보고 들어오너라.”

문틈으로 훔쳐보던 광두가 안으로 들어왔다.

녀석이 가만히 오더니 책상위의 책들이 무공서가 아님을 확인했다.

“역시 소문이 사실이군요.”

“무슨 소문?”

“다시 도련님이 이상해졌다는 소문요.”

“하하.”

하긴, 어제 어머니가 오셔서 내 이마에 손을 대보고 가셨으니까. 하지만 예전과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 이제는 내가 하려는 일을 말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젠 나를 진짜 믿었다.

“대체 왜 이러시는 거죠?”

“배움에도 균형이 있어야지.”

“그래서 균형이 잡혔나요?”

“아직 멀었지.”

이번에 공부를 하면서 느낀 것들이 있었다. 정말 지금껏 너무 무(武)에만 치우친 삶을 살았음을 깨달은 것이다.

물론 수십 년 간 맹주생활을 통해 보고 들은 것이 엄청나게 많았다. 그래서 당연히 정의각 입각 시험 정도는 통과할 수 있겠지라고 여겼고.

하지만 정작 제대로 공부해보니 내 생각과는 달랐다. 대충 듣고 짐작하는 앎과 정식적인 공부는 완전 달랐다.

마치 무공처럼 공부에는 공부만의 세계가 있었다. 절대 우습게 볼 것이 아니었다.

다행히 내 기억력은 비약적으로 발달한 상태였고 머리는 아주 맑았다.

열심히 외우고 또 외웠다. 무공에서도 피나는 반복 수련이 있어야 창의적인 초식이 나올 수 있는 것처럼, 공부 역시 기본적으로 외워야 하는 것들이 있었다. 외울 것은 외우고 이해할 것은 이해했다.

“참, 좋은 소식 들리더라. 도순이와 놀러가기로 했다면서?”

“벌써 소문이 났어요?”

“우리 검대에 비밀이 어딨냐?”

그만큼 검대 분위기도 좋고, 검대원들 사이도 끈끈했다.

“어떻게 된 거야?”

“하루 울컥 마음이 동한 날, 그녀에게 가서 솔직한 제 마음을 전했습니다. 아직도 호감이 있다고. 전에는 내가 너무 미숙해서 멋모르고 들이댔다고. 사실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 떨려서.”

“용기가 결실을 맺었구나.”

“아직 사귀기로 한 것은 아니고요. 그냥 나들이 한 번 가기로 했습니다.”

내가 은자 열 냥을 광두에게 주었다.

“자, 그날 맛있는 것 사 먹어라.”

“아닙니다. 안주셔도 됩니다. 저 돈 많이 있습니다.”

광두가 당황했다. 여전히 이럴 때면 과도하게 경직되는 광두다.

“가서 허세 부리란 말이 아니다. 기왕이면 조금 더 깔끔한 옷 입고, 좀 더 분위기 좋은 곳에서 밥 먹으란 거다. 상대를 위해 많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란 말이다. 만약 남자 뜯어 먹으려는 여자라면 병신헛

짓거리겠지만, 도순이는 그런 애 아니잖아?”

“도련님.”

내 마음에 울컥한 광두다.

“한 번에 다하려고 욕심내지 말고. 하루 재밌게 놀다오자는 기분으로 다녀와. 분위기 잡을 필요 없고, 좋다는 고백은 더 할 필요 없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저 반드시 도순이랑…….”

“반드시란 말, 남녀 관계에 쓰지 말고.”

“네!”

남녀 문제는 알 수 없는 것이니까. 평생을 살아도 알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를 만큼.

광두가 나가고 나는 다시 책을 펼쳤다.

남녀 문제는 몰라도 이것만은 알고 있었다. 지금은 노력해야 할 때라고. 여잔 배신할지 몰라도, 노력은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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