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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의 나날(4)
갈사량은 사마천과 함께 바쁘게 걸어가고 있었다. 두 사람이 향하는 곳은 바로 맹주전이었다.
맹주전 건물을 보자 갈사량은 감개무량했다. 정말 오랜만에 맹주전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천하진이 있던 시절에는 매일 드나들던 곳이었는데.
“대체 무슨 일입니까?”
“가보면 아네.”
사마천은 자신을 데리고 맹주전으로 가는 이유를 알려주지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이 엄중한 경계를 몇 차례나 지나서 맹주전으로 들어갔다.
맹주전의 분위기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태사의에 앉아 있는 마봉기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것을 들어서는 순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맹주님을 뵙습니다.”
한 번 힐끗 봤을 뿐, 갈사량의 인사는 아예 받아주지도 않았다.
사마천과 갈사량이 한 옆에 나란히 섰다.
맹주전에는 마봉기 이외에도 광월단주 주철룡도 함께 있었다.
주철룡과 시선이 마주치자 갈사량이 먼저 시선을 피했다. 근래 자신의 소식에 대해 듣고 있었을 것이다. 주눅 든 모습이 오히려 어울리리라 생각했다.
갈사량은 자신의 비선망을 동원해서 모두의 뒷조사를 하고 있었다.
주철룡에 관해서도 중요한 사실을 알아냈다. 엄청난 액수의 돈을 차명으로 중원전장에 보관한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만약 배신의 이유가 돈 때문이라면?’
복수의 강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주철룡은 갈사량의 복수 대상에서 상당히 윗줄에 위치해 있었다. 배후가 누구냐를 떠나, 마봉기가 맹주가 된 직접적인 원인이 바로 주철룡이었으니까. 천하진이 만들어준 자리를 이용해서 그의 뜻을 배신한 것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물론 지금 이 자리에서는 그런 감정은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그저 일에 지친 나약한 군사만이 있을 뿐이다.
그곳으로 두 사람이 들어섰다. 그들을 확인한 갈사량은 깜짝 놀랐다.
마철군과 마령인이 그곳으로 들어온 것이다.
놀랍게도 마령인은 죄인처럼 손에 족쇄가 묶여 있었다. 마철군이 일부러 자신의 의지를 표한 것이다. 그는 죄인이라고.
두 사람이 마봉기 앞에 나란히 섰다.
태사의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이 마뜩찮았다.
“보기 흉하구나.”
그러자 마철군이 말했다.
“핏줄을 죽이려 한 행동은 흉함을 넘어 인간이 저질러서는 안 될 일이지요.”
마봉기가 흉하다고 한 것이 묶여있는 모습을 보고 한 말임을 알고 있었지만, 마철군은 모른 척 마령인의 행동을 두고 말한 것처럼 대답한 것이다.
마봉기의 얼굴에 스치는 짜증을 보며 마령인이 빠르게 말했다.
“소자는 억울합니다.”
“소상히 고해보라.”
“형은 무명대협이란 자와 짜고 저를 제거하려 하고 있습니다.”
“헛소리 말아라!”
“형이 이번에 자백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저를 싫어했다고.”
마령인이 일부러 자백이란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했다.
“그건!”
분명 자신이 한 말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누명을 씌워서 동생을 죽일 정도는 아니었다. 마령인이 억울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저는 완벽하게 함정에 빠졌습니다!”
마봉기가 손을 들어 그를 제지시킨 후 이번에는 마철군에게 물었다.
“너를 죽이려 했다는 증거가 있느냐?”
“네.”
마철군이 품에서 밀서를 한 장 꺼내 마봉기에게 전했다.
내용을 읽은 마봉기가 말했다.
“증거는 이것뿐이더냐?”
“그렇습니다.”
“이것만으로 증거로 부족하지 않느냐?”
“령인이는 전날 보내온 그 밀서에 나온 대로 행동했습니다. 사전에 저를 죽이려는 모의가 없었다면 무명대협이란 자가 어찌 알고 미리 이 밀서를 전했겠습니까?”
“물론 그렇긴 하다만, 이 증거는 확실하지 않다.”
“무엇 때문입니까?”
“령인이가 행동한 이후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순간 마철군이 흠칫 놀랐다.
“그 말씀은 제가 조작했다는 말씀입니까?”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그럴 가능성에 대해서 이야기했을 뿐이다.”
“아버지!”
“공적인 자리다!”
“맹주님!”
이번에는 마철군이 억울한 심정으로 마봉기를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끓어오르는 그의 태도와는 달리 그의 마음은 더 없이 차분했다. 둘을 이곳에 불렀을 때, 이미 일이 이렇게 되리란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마봉기의 시선이 비로소 사마천을 향했다.
“대체 그 무명대협이란 자는 누군가?”
그러자 사마천이 나서서 말했다.
“천도문의 절삭검 염화를 암습해서 살해한 놈으로 본 각에서 조사하던 자입니다. 여기 갈군사가 그 일의 책임자입니다.”
갈사량은 왜 이곳에 자신을 데려왔는지 알 수 있었다.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그 책임을 자신에게 뒤집어씌우려는 속셈인 것이다.
‘하긴. 네 놈이 그렇지.’
갈사량이 한걸음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무명이란 자는 무명객, 혹은 무명대협이란 이름으로 알려진 자입니다. 여러 방면으로 놈의 정체에 대해 알아보려고 하고는 있지만, 권법을 사용하는 자라는 점과 이십대에서 삼십대의 나이란 것 이외에는 알아낸
것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다?”
원래라면 불호령이 떨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오히려 마봉기는 이 상황을 원한 듯 보였다.
“다시 말해 어떤 자인지도 모를 자의 밀서로군.”
“그러하옵니다.”
마봉기의 시선이 마철군을 향했다.
“동생을 그만 풀어 주거라.”
마철군이 가만히 마봉기를 응시하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마철군이 직접 족쇄를 풀어주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자신이 족쇄를 풀어주었음을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채워왔다.
마령인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형, 오해는 그만 풀어. 아무리 내가 밉더라도 말이야.”
마철군이 코웃음으로 답한 후, 마봉기에게 인사를 한 후 그곳을 걸어 나갔다.
마령인이 마봉기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역시 냉철하시고 지혜로우신 아버지이십니다.”
진심인 듯, 진심이 아닌 듯 마봉기를 향한 마령인의 표정은 묘했다.
오늘 벌어진 일을 지켜보면서 갈사량은 알 수 있었다.
마령인이 배후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음을. 마봉기와 마령인 사이에 어떤 미묘한 갈등과 거리감이 존재하고 있음을.
사마천의 이기심 때문에 알아낸 정말 귀중한 정보였다.
‘과연 무명객이란 자는 이 모든 일들을 알고 있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무명객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자기편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 * *
강물처럼 시간이 흘렀다.
벽리단으로 다시 태어나서 두 번째 여름을 맞았다.
지난 번 황금대연의 사건을 통해 놈들의 세력이 엄청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임연정이 살아남았다면 연구는 다시 재개될 것이다. 물론 다시 연구가 원래대로 복구되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그 연구가 한 곳에서만 진행된다는 보장도 없었고, 또 다른 연구가 진행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었다.
마봉기 따위가 상대할 수 있는 자들이 아니었다. 게다가 마봉기의 자식인 마령인까지 그들에게 세뇌당한 상태였다.
다른 자식은 포섭당하지 않았을까?
섣부르게 싸워선 안 될 상대다. 나는 그들의 일에 관여하지 않은 채 오직 내 힘과 가문의 힘만 키웠다.
나는 아침부터 밤까지 수련에 매진했다.
심법수련을 중심으로 추혼수라검술과 선학비술을 반씩 수련했고, 가전 무공인 백월검술도 열심히 익혔다.
밥 먹고 자는 시간만 빼고 정말 수련만 했다.
덕분에 여름이 끝나기 전에 백월검술은 대성을 이뤘다.
노력과 성장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 사이 소검대의 첫 임무가 있었다. 관휘는 훌륭하게 첫 임무를 마쳤다. 첫 임무니만치 공수찬은 소검대 전원이 모두 동원되는 임무를 찾아냈다.
두 번째부터는 조를 나눠서 임무에 나갔다. 백 명이 모두 할 수 있는 임무는 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임무도 무사히 마쳤다.
하지만 네 번째 임무에서 두 명이 크게 다쳤고, 다섯 번째 임무에서 처음으로 죽는 사람이 생겼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애초에 이십 명과 백 명은 달랐으니까. 백 명이란 인원이 실전의 임무를 맡는다고 생각해 보라.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예기치 못한 사건은 생기기 마련이었다.
동료의 죽음으로 검대는 슬픔에 빠졌다.
수많은 동료들을 잃어 보았기에 동료를 잃는다는 것이 어떤 마음인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마음이 너무나 아팠지만 나는 겉으로 슬픔을 드러내지 않고 담담한 모습을 보였다.
검대원들을 모아두고 그들에게 말했다.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검대에 들어올 것이 아니라 저잣거리에서 장사를 하거나 서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쳐야겠지. 앞으로 우린 많은 동료를 잃게 될 것이다. 그때마다 실의와 슬픔에 빠진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
을뿐더러 더 많은 동료를, 더 빨리 잃게 될 것이다. 그러니 딱 사흘만 애도하도록.”
매정할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이겨내야 할 일이기도 했다.
시간의 강물은 멈추지 않았다.
우리의 노력으로 여름이 다 타버리자 이제 가을이 찾아왔다.
그와 함께 무림맹과 관련한 몇 가지 소식과 소문이 들려왔다.
마령인이 다시 하남성으로 돌아갔고 얼마 후 마철군이 정식으로 천도문의 가주직에 올랐다는 소식이었다.
정식으로 가주가 되면서 마철군이 정식으로 후계자가 되었다는 소문이 돌았고, 정식 후계자와는 관계없는 일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나는 굳이 그들의 일을 파고들어 알아보지 않았다.
온산이 단풍으로 물들었을 때, 팔성이었던 선학비술이 구성에 이르렀다.
이제 십성 대성까지는 단 일성만 남기게 된 것이다. 선학비술의 위력은 더욱 강력해졌고, 몸놀림은 더욱 유연해졌다.
구성에서 대성이 고비였다. 같은 대성이라도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이루느냐에 따라 내 성취가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노력하면서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랄 뿐이다.
좋은 소식은 우리 집안에도 있었다.
벽씨검문의 검대도 규모가 커졌다. 양소방의 빚이 없어진 후, 조금씩 성장해왔었는데, 소검대의 규모가 커지는 것을 계기로 본 검대도 사람을 모으며 규모를 키웠다. 소검대를 제외하고도 산동에서의 서열이 크게
올랐다.
백표는 오직 흑표대를 키우는 일에 열중했다. 나는 일부러 그들을 찾아가지 않았다.
삼안각은 중원 일흔두 곳에 지부를 두었고, 계속 조직을 키워나갔다.
태성상단은 가을에 첫 수입을 거뒀다. 물건을 팔아 삼천오백 냥을 벌어들인 것이다. 언젠가 태성상단은 중원을 횡단하며 수만, 수십만 냥을 벌어들이는 상단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언젠가 내가 관휘에게 했던 말을 실천하고 있었다.
때론 세월에 노력을 묻어야 하는 시기도 있어야 한다는 것을.
우린 정말 세월에 노력을 묻고 있었다.
어느덧 찬바람이 불었고, 가을이 다 갔다는 아쉬운 말들이 사람들의 입을 오갔다. 첫눈이 내렸고, 추위가 찾아왔다.
큰 눈이 내린 날 아침, 나는 눈 덮인 산 정상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세상에 둘도 없는 지극한 심법인 천무호심결은 올 한 해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쉬지 않고 내공을 다스렸고, 이제 드디어 목표한 순간에 도달하고 있었다.
온몸을 일주천한 내력이 단전으로 모여들었다.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또 다시 내 육체에, 내 무공 역사에 변화의 획을 긋는 순간이었다.
드디어 내공이 이갑자에 도달한 것이다. 이 순간을 위해 올 한 해 정말 열심히 수련해온 나였다.
“하하하하.”
참을 수 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노력의 대가를 얻는 순간은 언제나 즐겁다.
이제 그토록 바라던 추혼수라검술의 제오초식 회륜겁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
오초식 회륜겁.
마지막 육초식 대멸겁은 그야말로 궁극의 초식이다. 그 엄청난 위력도 위력이지만, 내력을 다스리는 것 또한 아주 어려워서 정말 마지막 순간에 사용할 공격이다.
따라서 오초식 회륜겁이 실질적인 최종초식이라 볼 수 있었다.
휘이이이이잉!
검에서 바람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검을 내지르는 순간, 저 멀리 있던 바위가 강기의 바람에 휩쓸려 가루가 되었다.
후우우우우웅!
검이 향하는 곳마다 강기가 회오리치기 시작했다.
절벽 위 허공에 만들어지는 강기의 회오리들.
위력은 엄청난 것이었다. 바위는 순식간에 가루가 될 것이고, 설령 쇳덩이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과일을 깎여나가듯 찢어발겨질 것이다.
하나, 둘, 셋, 넷…… 아홉, 열, 열하나……
이런 엄청난 위력의 회오리가 끝없이 생겨났다.
후우우우우우웅!
주위에 온통 강기의 회오리가 휘몰아쳤다. 무서운 자연재해에 마치 세상이 뒤집히는 것만 같았다.
그야말로 세상의 종말이 찾아온 것 같았다. 이것이 바로 제 오초식 회륜겁이었다.
내공이 거의 소진될 때까지 오초식을 발출했다.
약간의 내공만 남긴 내가 검을 거두었다. 여전히 주위에는 강기의 회오리들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나는 절벽 끝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끝도 보이지 않는 그곳을 망설이지 않고 훌쩍 뛰어내렸다.
휘이이이이익.
무서운 속도로 아래로 추락했다. 한창 때 집중력을 키우기 위해 내가 하던 수련이었다. 잠시라도 정신을 놓치면 죽게 되는 극한의 수련이었다. 하지만 그 위험성만큼이나 효과는 확실했다.
끝없이 추락하던 내가 몸을 비틀며 허공에 장력을 내뿜었다.
파파파파팡!
장력이 발출되면서 떨어지던 속도가 줄어들었다.
다시 수라명왕검을 절벽에 박았다.
촤아아아아아앙.
검이 벽을 가르면서 속도가 더욱 줄어들었다.
휘리리릭.
마지막 순간 허공에서 몇 바퀴 회전하면서 더욱 속도를 줄였다.
이윽고 바닥에 착지했다. 내공이 완전히 소진된 상태였다. 정말이지 심장이 쫄깃해진 순간이기도 했다.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던 진과 수가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들은 긴급히 나를 만나자고 연락을 해왔다. 나는 약속장소를 이 절벽 아래로 잡았다.
“설마 꼭대기에서 뛰어내리신 겁니까?”
“약속에 늦지 않으려니 어쩔 수 없었지.”
내 농담에 그들은 황당함과 놀람이 뒤섞인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보았다.
“이게 가능한 일입니까?”
“한 번 시험해보든지.”
“어이쿠. 그런 말씀 마십시오.”
두 사람이 손사래를 쳤다.
이내 진이 진지한 표정을 되찾았다.
“보고드릴 일이 있습니다.”
그들의 표정으로 미루어 강호에 뭔가 일이 벌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긴장하지 않았다. 내공을 다 소진해서 이곳에 딱 떨어질 수 있을 정도로, 피나는 수련을 해왔으니까. 지금의 나는 최상의 상태다.
다시 그들과 맞설 준비가 끝났음을 느끼며 차분히 물었다.
“무슨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