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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천마-102화 (10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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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의 나날(2)

두꺼운 철문이 열리며 마철군이 들어왔다. 서너 평 남짓 좁은 방에 있던 사람은 마령인이었다. 그는 무공을 사용할 수 없도록 혈도가 제압당한 채 이곳에 갇혀 있었다.

“식사를 걸렀던데?”

“음식이 형편없어서. 숙수를 갈아치우든지, 내보내 주든지.”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

“이 값싼 동정심은 뭐요? 혹시 내가 참형을 선고받은 죄인처럼 느껴지시오?”

마철군은 그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누가 시켰는지 말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네 뒤에 누가 있는지 말하란 말이다. 순순히 말하면 너는 살려주겠다.”

물론 마철군은 마령인이 단독으로 벌인 일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마령인이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사실에 그 어떤 위화감도 들지 않았다. 그게 바로 마령인이다.

“말 안하면 죽이겠다는 뜻이군.”

“이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군. 너는 천도문의 가주를 죽이려고 했다.”

“임시가주지. 그리고 내가 죽이려 했다는 증거는  그 밀서 한 장 뿐이잖소? 무명대협이란 자가 직접 실토한다면 모를까, 그것만으로 내 죄를 물을 수는 없지.”

마철군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화가 치미는 일이지만 마령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더구나 그를 호위하던 무인을 추궁해서 그들이 묵고 있던 장원을 찾았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그곳은 완전히 다 타버려서 재만 남아 있었다.

“넌 어려서부터 이랬지. 머리를 굴리고 또 굴렸지.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네가 정말 싫었다.”

“알고 있었소.”

“너를 이 자리에서 죽여 버릴 수도 있다.”

“그래보시든지.”

“내가 못할 것 같으냐?”

마철군이 살기를 일으켰다. 정말이지 금방이라도 죽여 버릴 것 같은 살기였지만, 마령인은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래봤자 죽이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처럼 미소까지 지었다.

그때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가주님,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를 부른 사람은 군사역할을 하는 노선생이었다.

마철군이 문을 열고 나가자, 노선생이 그를 이끌고 복도 끝으로 갔다.

노선생은 사뭇 긴장한 기색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시기에?”

“무림맹에서 전서가 날아왔습니다. 곧장 마공자를 데리고 맹으로 들어오라고 하십니다.”

“뭐요?”

마철군은 깜짝 놀랐다.

“저 놈이 갇혀 있는 것을 아버지가 어떻게 알고?”

물론 알 수는 있었다. 이 일이 극비리에 진행된 것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언젠가 알 일이지 이렇게 빨리 알 수는 없었다.

노선생이 심각하게 말했다.

“과연 맹주님이 내린 명령일까요?”

마철군의 표정도 노선생의 그것과 같아졌다.

“배후가 움직였군요.”

* * *

나는 광두와 공수찬과 함께 산동 집으로 돌아왔다.

저 멀리 집이 보이자 기분이 묘했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해지고 안도감이 들었다. 젊어서는 집의 소중함을 모르고 살았다. 오히려 집에서 나가는 것이 마음이 더 편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온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이제는 돌아온다는 것이 어떤 감정인지.

아버지와 어머니는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변함이 없었다.

“잘 다녀왔느냐?”

아버지의 시선에는 처음과는 비교할 수 없는 신뢰가 담겨 있었다.

“네, 걱정해주신 덕분에 잘 다녀왔습니다.”

“갔던 일은?”

“잘 처리했습니다.”

“다행이구나. 항상 잊지 않고 있지?”

“그럼요. 항상 아랫사람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럼 됐다.”

아버지는 평소와 다른 말을 한 마디 더 해주었다.

“이 애비는 그런 기준이 하나둘 모여서 한 사람의 삶을 지탱하는 것이라 믿는다. 나는 비록 하나의 기준밖에 세우지 못했지만, 너는 더 나은 기준들을 많이 만들도록 해라.”

삶의 겸손함이 묻어나는 말이었다. 아버지에게 어찌 그 한 가지 기준만 있겠는가? 다만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이 그것이라 생각해서, 그 점을 강조하는 것이리라.

시간이 지날수록 이 가르침의 깊이를 느낀다.

남을 진심으로 배려할 수 있는 사람은 이미 자신의 마음을 다스린 사람이다. 다시 말해 저 말을 제대로 지키려면 자신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아버지와의 대화가 끝나자 어머니가 내 손을 잡아끌고 밖으로 나왔다.

“아들, 이리와 봐.”

“왜 그러세요?”

“화린이가 무한에 들렀다면서?”

“어찌 아셨어요?”

“오다가 광두를 만났다.”

하하. 광두 녀석, 어찌나 입이 무거우신지. 어머니를 보자마자 다 말했구나. 하긴, 어머니나 광두나 송화린을 적극 지지하고 있었으니까.

“외출했을 때 와서 못 만났습니다.”

“그랬다고 하더라. 아쉬웠겠네?”

그러면서 슬쩍 내 눈치를 살폈다.

“아쉬웠죠.”

단지 어머니를 위한 말만은 아니었다. 분명 그녀가 고맙기도 했고, 아쉽기도 했으니까.

“나중에 만날 거지?”

“소검대 일을 처리하면 만나러 갈 생각중입니다.”

“그래, 네 일부터 해야지. 다만 이것만은 알아둬라. 린이가 널 만나러 거기까지 간 것은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어머니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았기에 미소로 대답했다.

“네, 어머니.”

* * *

오랜만에 나를 본 소검대가 환호성을 질렀다.

평소 무뚝뚝한 성격의 관휘조차 맨 앞에서 고함을 질러댔으니, 이들의 환영이 얼마나 열렬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이 울컥할 정도였다. 이들보다 수백, 수천 배 많은 무인들에게서도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잘들 지냈느냐?”

“네!”

“수련은 열심히 했고?”

다시 우렁찬 대답이 들려왔다. 자신감 가득한 얼굴들이었다.

“무인은 지난 일을 말로 설명하지 않는다! 알지?”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소검대가 좌우로 흩어지며 공간을 만들었다.

검대원들이 돌아가면서 나와 초식을 펼쳤다. 지난번보다 더 발전한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일취월장하고 있었다.

한차례 수련을 지켜본 후에 내가 말했다.

“정말 너희들이 자랑스럽다.”

내 칭찬은 진심이었고, 내 마음이 그들에게 전해졌다.

모두들 기뻐했다. 자신들을 한계까지 몰아붙이며 수련하다가, 비로소 어떤 보상을 받는 기분이 든 것이다.

이제 소검대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새로운 검대원을 뽑을 생각이다.”

모두들 떨리고 기대에 찬 표정을 지었다.

원래는 사십 명만 뽑으려고 했다. 그때는 자금 사정도 여의치 않았고, 무엇보다 눈에 띄지 않기를 바랐으니까.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소검대원들은 비약적으로 실력이 발전했고, 자금사정은 풍족해졌다.

“이번에 팔십 명을 더 뽑을 작정이다.”

결정적으로 적의 세력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강대했다. 천천히 한걸음씩 걸어갈 때가 아니었다. 지금은 성큼성큼 가야할 때다.

물론 넘어지지 않아야지. 한 번에 팔십 명을 모집하면 아무래도 시선을 끌 것이다.

그래서 한 가지 복안을 생각해 냈다.

* * *

“나와 힘을 합쳐서 검대를 만들자고?”

송화린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나를 쳐다보았다. 만나서 재회의 기쁨을 나누기가 무섭게 생각지 못한 제안을 꺼낸 것이다.

내가 생각한 방법은 이것이었다. 나와 송화린이 힘을 합쳐 검대를 만들고 운영하는 것, 실제는 아니지만 그렇게 소문을 내려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이번 일이 송가장의 지원으로 이뤄지는 일이라 여길 것이다. 더구나 우린 언약을 맺은 사이란 명분이 있었다. 갑자기 어디서 저런 돈이 났지란 의심을 피하면서 세력을 키울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번에 검대원을 모집하고 운용하는 것은 전적으로 내 힘으로 할 거야.”

“한 마디로 내 이름만 빌리겠다는 것이네.”

“그런 셈이지.”

“이유는?”

“주목을 피하고 싶어서야.”

“왜?”

보통의 경우에는 문파들이 사람을 뽑을 때 오히려 과장해서 세를 과시한다. 열 명 모은 것을 스무 명 모았다고 하는 것이 보통의 경우다. 무리해서 더 뽑으려고 들지 줄이지는 않는 것이다. 그것이 강호 문파들의 생

리다.

“조용히 힘을 키우고 싶어서.”

그녀가 기분 나쁠 수도 있다. 자신을 이용하려 한다고 여길 수도 있었다. 실제로도 그러했으니까.

뜻밖에 그녀는 흔쾌히 허락했다.

“좋아, 그렇게 해.”

오히려 당황한 쪽은 나였다.

“이렇게 쉽게 결정해?”

“어렵게 결정할 일이 아닌 것 같아서. 이번 일의 핵심은 이거잖아?”

“뭐?”

잠시 나를 응시하던 그녀가 차분히 말했다.

“너를 믿느냐, 마느냐.”

그녀는 이번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보고 있었다.

“믿기로 한 거야?”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힘찬 고갯짓보다 더 확신에 찬 표정이었다.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이제 진짜 나를 믿고 있음을.

“고맙다.”

“고마우면 술 사야지.”

내가 깜짝 놀라자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주사 안 부릴게.”

그녀와 술을 마셨다.

이제 그녀는 술을 마시는데 전혀 거부감이 없었다. 과거의 상처가 다 치유된 것이다.

여러 이야기들이 오갔지만 다른 두 여인의 존재를 말해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녀에게 미안해하진 않았다.

그녀도 나도, 또 다른 그녀도. 우리들의 감정은 흐르고 있었고, 변하고 있었다. 그 관계의 물결이 우릴 어디로 이끌지는 알 수 없었다.

“무가에서 검대를 키우려는 이유는 뻔하겠지만, 그래도 물어보고 싶어. 왜 검대를 크게 키우려는 거야?”

단지 힘을 키우기 위해서라는 뻔한 대답을 듣고 싶어서 하는 질문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난 이 강호가 정상적이지 않다고 생각해.”

아직은 그녀에게 무림맹주의 뒤에 있는 배후세력에 관한 이야기는 해주지 않았다. 마봉기와 천도문만 해도 충분히 납득이 가는 말이었으니까.

“앞으로 혼란이 올 것이라 생각해. 그에 대비하는 중이야.”

“어떤 혼란이?”

“아주 큰 혼란. 약한 사람은 강한자의 노예처럼 살아가야 하는 그런 강호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그것이 마봉기가 살아온 방식이었으니까. 그런 마봉기를 이용하려는 자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테니까. 아직은 암중에서 일을 꾸미며 손톱을 감추고 있을 뿐이다.

내가 진심을 말하고 있음을 깨닫고는 그녀가 진지하게 물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이미 나와 힘을 합쳐서 검대를 만들고 있잖아?”

내 말에 그녀가 피식 웃었다.

그날 우린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주로 앞날에 대한 이야기였다. 늦게까지 술을 마셨고, 그녀는 주사를 부리지 않았다.

* * *

세작인 진을 곡부에 새로 만든 연락소에서 만났다.

“가셨던 일은 잘 진행하셨습니까?”

“다행히 잘 처리했네. 자네, 살이 좀 빠진 것 같은데?”

“아닙니다.”

“몸 챙겨 가면서 일하도록.”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이미 그에게 마령인과 관련한 내용을 전했다. 천도문 내에서 이 일이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지를 주시하라고 명령을 내렸고, 추가장과 정주무관에 관해서도 알아보라 명령을 내렸다.

“마령인에 대해서는 아직 알아낸 것이 없습니다. 그들 내부에서 극비로 처리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오히려 지금 정보가 흘러나오면 역으로 의심을 해봐야 할 상황.

“계속 주시하도록.”

“네. 그리고 추가장과 정주무관은 이미 문을 닫았습니다.”

무명대협의 일이 있었으니 그 역시 당연한 일이었다.

“수가 남현표국을 조사중입니다. 신중하게 접근하느라 시간이 걸리고 있지만 조만간에 보고가 올라올 겁니다.”

남현표국은 임연정의 연구소의 상자에서 발견했던 이름이었다. 그들의 배후를 찾아낼, 유일한 단서였다.

“수에게 조심하라고 전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다음으로 진이 이번에는 구성하고 있는 정보조직에 대해 보고했다. 우리는 이 정보조직의 이름을 두 개의 눈 이외에 또 다른 눈이 있다는 뜻에서 삼안각(三眼閣)이라 지었다.

“중원의 큰 도시마다 삼안각의 지부를 만들고 있습니다. 현재 열다섯 곳에 지부가 만들어졌습니다.”

“열다섯 곳이나?”

나는 깜짝 놀랐다. 진과 수가 능력이 넘치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빠르게 일을 처리해 낼줄은 미처 몰랐다.

“지금 당장은 소규모 지부들입니다. 두세 명, 어떤 곳은 단 한 사람만 있는 곳도 있습니다. 점차 숫자를 키워나갈 작정입니다.”

정보조직은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님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진의 설명에 따르면 각 지부의 책임자들은 객잔 주인도 있었고, 포목상의 점원도 있었으며, 무림맹의 하급무인도 있었고, 무관의 무사부도 있었다. 그들은 보통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자신의 삶을 살아가면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다.

흑표대에 이어 삼안각 역시 서서히 모습을 갖춰가고 있었다.

* * *

벽씨검문의 소검대에서 본격적으로 무인을 모집했다.

송화린이 힘을 보탰다고 미리 밝혔다. 파혼한다는 소문에서 이제 다시 혼인을 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나도 송화린도 소문을 신경 쓰지 않았다. 우린 약속이나 한 듯,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내가 신경 쓴 사람은 송화린의 부친인 송우경이었다. 혹시라도 이번 일이 그에게 폐가 되는 것이 아닌지 걱정했는데, 오히려 그는 아주 기뻐했다. 여전히 그는 우리가 혼인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송가장과의 합작설이 나돌면서 엄청나게 많은 무인들이 지원했다.

구름처럼 모여든 무인들을 보며 관휘와 기존의 검대원들이 바짝 얼어붙었다. 자신들이 생각한 숫자보다 훨씬 더 많은 이들이 몰려든 것이다.

그들을 돌아보며 내가 말했다.

“떨지 마라.”

“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긴장하고 있었다.

“쟤들이 더 긴장하고 있다. 너희 들어온 날 기억 안나냐?”

그 말에 몇몇이 웃음을 터뜨렸고 다소 표정들이 풀렸다.

내가 앞장서 걸어가며 말했다.

“자, 쓸 만한 녀석들이 얼마나 왔는지 한 번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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