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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대연(3)
산속 버려진 폐가에 한 여인이 있었다.
부서진 지붕 사이로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그녀는 바로 칠호였다.
그곳으로 한 사람이 들어오며 말했다.
“하늘을 보고 싶으면 나와서 보지, 뭘 그 작은 구멍으로 보고 있나?”
아이 같은 외모를 한 그는 바로 살수 괴망량이었다.
언젠가부터 칠호는 하늘을 잘 올려다보지 않았다. 부서진 지붕 사이에 조금 보이는 하늘 정도가 자신에게 주어진 하늘의 전부란 생각이 들었다.
“취랑은요?”
“곧 오겠지. 그놈이 제 시간에 오는 것 봤어?”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한 마디.
“내가 또 언제 그렇게 늦었다고 뒷담화신가?”
사내 하나가 들어왔다. 말끔한 외모에 깨끗한 무복을 입은 사내였다. 머리는 단정히 정리가 되어 있었고 무복 역시 새 옷처럼 깨끗했다.
취할 취에, 사내 랑자를 써서 술을 아주 좋아하는 사내라고 생각되지만 실제로 취랑은 술을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다.
왜 취랑이란 이름을 붙였냐고 물으면 술을 못 마시는 것을 숨기고 싶어서라고 대답했다. 취랑은 확실히 엉뚱한 면이 있었다.
“그 놈, 확실히 묘한 구석이 있더군.”
취랑의 말에 괴망량이 동감했다.
“그렇지? 평범한 놈은 아니야.”
무명대협에게는 살수들만이 느낄 수 있는 뭔가가 있었다.
괴망량이 칠호에게 물었다.
“결론은? 죽여야 할 놈인가?”
칠호는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그녀는 아직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녀가 대답을 망설이자 취랑이 대신 입을 열었다.
“애매할 때는 그냥 죽여! 그게 실수가 적다.”
이것이 바로 살수들의 기본 정서였다. 괴망량도 같은 생각이었다.
“보통은 죽여서 후회하기 보단 살려줘서 후회하는 경우가 많지.”
두 사람은 죽이자는 의견이었다.
“그는 마공자의 일을 돕고 있어요. 그 전에 죽이면 문제가 될 거예요.”
“한데 마공자를 돕는 것 확실한가? 만약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이라면, 마공자가 위험할 수도 있네.”
“마공자는 남에게 쉽게 속을 사람이 아니에요.”
“하지만 확신할 수는 없지?”
취랑의 물음에 칠호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처음 취랑이 말한 말처럼 애매했다. 아닌 것 같은데, 아니라고 확신할 수 없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아니니까 죽여 버리란 말이 망설여졌다. 지금까지 이렇게 판단이 망설여진 적이 없었는데.
아, 한 번 있었다. 마정수를 감시할 때 만났던 갈표라는 사내. 그때도 평소와 다른 마음이었다. 왜 그렇게 감상적이 되었는지 이유를 몰랐는데, 이번에도 비슷했다.
어쨌든 이번 임무의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하는 사람은 자신이다.
“일단 판단을 유보하겠어요.”
괴망량과 취랑이 서로를 마주보았다. 조금은 심각한 눈짓이 교환되었다. 칠호와 몇 차례 일을 해봤지만, 이전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으니까.
“알았다. 결정되면 곧장 알려줘.”
“그러지요.”
괴망량에 이어 취랑도 한 마디 던졌다.
“잘 판단해. 그것에 누군가 죽고 살 테니까.”
“네.”
두 사람이 먼저 그곳을 떠났다.
혼자 남은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오랜만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힐끗힐끗, 혹은 앞서처럼 부서진 지붕 사이에서만 보다가 이렇게 열린 하늘은 정말 오랜만에 쳐다보는 것이었다.
이렇게 밤하늘이 아름다웠나?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하늘은 고민의 답을 주진 않았다.
* * *
같은 시각, 같은 사람을 두고 고민에 빠진 또 다른 여인이 있었다.
“약을 복용시킬 준비는 되었소?”
마령인의 물음에 임연정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책을 보고 있었다.
그녀가 일부러 못들은 척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마령인은 차분히 다시 물었다.
“약을 복용시킬 준비가 되었소?”
임연정이 보던 책을 덮었다. 다시 못 들은 척 하면 한 마디도 다르지 않게 저 말을 또 할 것이다. 그가 그럴 때면 소름이 끼쳤다.
“그래요, 준비는 되어 있어요.”
“내일 복용시키시오.”
약의 효과는 만 하루가 지났을 때부터 나기 시작했다. 효과가 나고 다시 한 시진이 지나면 칠공에서 피를 흘리며 죽게 될 것이다. 물론 그 한 시진 동안 엄청난 괴력을 발휘할 것이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요?’
이 말이 그녀의 목구멍에서 맴돌았다. 하지만 차마 말을 뱉지는 못했다.
어차피 소용없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호랑이가 사람을 잡아먹고 있을 때, 옆에 가서 그 말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니까. 마령인은 한 번 문 것은 결코 놓치지 않는다.
“강호에 그런 괴물 없나요?”
“무슨 괴물 말이오?”
“주위 사람을 잡아먹고 자라는 괴물요.”
마령인이 피식 웃었다. 오히려 이런 악담을 들을 때면 기분이 더 좋아졌다. 뭔가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 같다.
마령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 봅시다.”
* * *
운기조식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열어보니 임연정이었다. 그녀가 손에 들고 있던 술을 흔들었다.
“놀랐어요?”
“당신이 내 방문을 두드릴 줄은 정말 몰랐소. 방문을 두드리는 역할은 언제나 내 역할인 줄 알았는데.”
“알다시피 내가 좀 적극적이지요. 그래서 이대로 세워두실 건가요?”
“아니오, 어서 들어오시오.”
그녀의 방문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한 잔 해요.”
“좋지요.”
잔을 챙기려는데 그녀가 술병 째 마시고는 그냥 건넸다.
나도 술병 째 마셨다. 아주 독한 술이었다. 문득 지난 번 술자리에서 그녀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안주 없이 먹으면 몸 상한다면서요?”
“하루쯤은 괜찮겠죠.”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소?”
“아뇨. 다 마셨으면 주세요.”
술병을 받아든 그녀가 다시 술을 마셨다. 다시 술병을 건네며 그녀가 말했다.
“지금도 늦지 않았어요.”
“뭐가 말이오?”
“달아나요.”
나는 알 수 있었다. 이 말을 해주기 위해서 그녀는 많은 고민을 했을 것임을. 지금 이 순간에도 큰 결심을 했다는 것을.
“달아나서는?”
“남은 일 년이라도 행복하게 살아요. 삶을 정리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에요.”
“싫소. 고작 일 년을 더 살자고 약속을 어기고 달아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소.”
“역시 당신은…….”
내가 그녀의 말을 끊으며 지난번에 그녀가 했던 말을 그대로 했다.
“순진하고 멍청하죠.”
잠시 복잡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녀가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내 인생에서 최고의 멍청이를 위해서 한 잔 마셔야겠군요.”
그녀가 술을 벌컥벌컥 마시는 모습을 보며 내가 물었다.
“내게 왜 이런 말을 해주는 거요?”
그러자 그녀가 물었다.
“당신은 왜 내가 좋다고 했는데요?”
“그야 좋아서요.”
“마찬가지에요. 그냥 해주고 싶어서에요.”
그녀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 임무에 도움이 될 만한 처방과 영약을 드릴게요.”
그녀가 방을 나갔다.
아마 그 부작용을 유발하는 해약일 것이다. 암살에 실패하면 내가 죽어야 할 테니까.
그녀가 남겨두고 간 술을 마셨다. 쓰다. 오랜만에 맛보는 독한 술이었다.
나는 술을 마시며 이 일의 마지막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 깊은 생각에 잠겼다. 술병이 다 비었을 무렵, 나는 결론을 내렸다.
* * *
다음 날, 마령인이 내 방을 찾아왔다.
“드디어 내일이 황금대연의 마지막 날이네.”
“내 인생의 마지막 열흘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소.”
“아쉬운가?”
“아무래도 마지막이니.”
“그런 말 하지 말게. 자넨 꼭 성공할 것이네. 그리고 해약은 반드시 개발될 것이고.”
마령인이 격정에 찬 얼굴로 내 손을 붙잡았다. 그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무공이 강한 악인보다 더 무서운 악인은 부지런한 악인이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악인이라고.
“몸 상태는 어떤가?”
“아주 좋소.”
“놈을 어떻게 죽일지 생각해 봤나?”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 도움은 필요치 않나?”
그때 내 방으로 임연정이 들어왔다.
내가 떠나지 않아서였을까? 그녀 눈빛에 원망과 아쉬움이 스쳤다. 하지만 그 감정은 내가 알아보기가 무섭게 사라졌다.
“잠시 제 방으로 가요.”
그녀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마령인이 뒤따라 들어왔다.
“내력을 좀 더 원활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처방이에요. 내일 임무에 도움이 될 거에요.”
나는 그녀가 시키는 대로 순순히 따랐다. 몇 잔의 약물을 마시고 몇 군데에 침을 맞았다. 마지막에 그녀가 단약을 하나 내밀었다.
“정말 고맙소. 꼭 임무를 성공시키겠소.”
그녀의 손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쳐다보지 못했다.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오. 당신이 베푼 호의만 해도 충분하니까.
그녀가 내민 단약을 꿀꺽 삼켰다.
애초에 불회마령단 자체가 몸속에서 사라졌기에 그것을 해독하는 이 약 역시 내게는 아무런 효과도 미치지 않았다. 앞서 마신 약물이나 침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는 이만 쉬어야겠어요. 나가주세요.”
그녀를 두고 마령인과 나는 밖으로 나갔다. 안에서 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책을 집어던지는 소리 같았다.
마령인도 나도 그 소리를 들었지만, 그것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문 앞에 서서 내가 마령인에게 말했다.
“마철군을 암살하기 위해 당신 도움이 필요하오.”
“어떻게 도우면 되나?”
마령인은 일말의 기대를 하고 있었다. 내가 정말 마철군을 죽여주기를. 그 희박한 확률의 기적이 일어나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뭐든지 돕겠네.”
* * *
드디어 황금대연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하며 처음 개회식을 했던 장소에 모여들었다.
이번 황금대연에서 큰 성과를 거둔 상인도 있었고, 손해를 본 사람도 있었다. 온갖 군상들이 모여 지난 열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의 골목에서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바로 마철군과 마령인이었다.
골목 밖에는 마령인을 호위하는 여덟 무인과 마철군을 호위하는 일곱 무인이 지키고 서 있었다.
“무슨 일이냐?”
마철군이 물었다. 다시 보지 않겠다던 마령인이 잠시 할 이야기가 있다고 자신을 부른 것이다.
“형님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소.”
“무슨 말인데?”
“정보를 하나 수집했소.”
“무슨 정보?”
“무명대협이란 자가 형님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는 정보요.”
“무명대협이?”
마철군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
“그가 왜?”
“내가 그 속을 어떻게 알겠소?”
마철군이 고개를 내저었다.
“전혀 은원이 없는 자이거늘.”
“모를 일이지요. 형님께서 세상 사람들은 모르는 죽을죄라도 지었을지.”
“그건 네 바람일 테고. 왜 내게 이런 중대한 사실을 알려주느냐? 너는 내가 죽기를 바라지 않느냐?”
“그야 그렇지만…… 이름도 없는 자에게 죽게 할 수는 없지요.”
“알려줘서 고맙다.”
마철군이 돌아섰다.
마령인이 지붕 위를 올려다보며 살짝 당황한 기색이 되었다. 원래라면 이렇게 돌아서는 이 순간에 무명대협이 기습을 해왔어야 했다.
“형님.”
마령인의 다급한 부름에 몇 걸음 걸어가던 마철군이 다시 그를 향해 돌아섰다.
“왜 그러느냐?”
“드릴 말씀이 더 있소.”
“무슨 말이냐?”
사람의 말에도 온도가 있다. 차갑거나 따스하거나, 미지근하거나.
그리고 마령인은 아주 미세한 변화까지 잘 파악해 내는 사람이었다.
무슨 말이냐고 묻는 마철군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차가워졌음을 느꼈다. 동시에 불길한 예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잠시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하던 그 때, 마철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왜 무명대협이 기습하지 않는지 궁금하냐?”
이젠 미세한 변화가 아니었다. 그의 말은 봄에서 순식간에 겨울이 되었다.
마령인이 경악하던 그때, 천룡칠검 중 하나가 검을 뽑았다.
쉭!
가까이 있던 호위무인을 베어 넘기고 그 옆의 사내의 목을 겨눴다.
나머지 칠검들 역시 일제히 검을 뽑아서 마령인의 호위들의 목을 겨눴다. 마령인의 호위들보다 한 수 위인데다, 기습적으로 검을 뽑았기에 모두들 순식간에 제압당했다.
“무슨 짓이오?”
마령인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투로 묻자 마철군이 차갑게 대답했다.
“네 강압으로 암살을 하게 되었다지? 약까지 복용시켰다던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마령인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설마 무명대협이 붙잡힌 것인가? 아니면 배신한 것인가? 대체 어떤 상황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말은 누구에게 들었소?”
“어제 한 장의 밀서가 날아들었다.”
“그깟 밀서를 믿고 이런단 말이오?”
“무명대협이 보낸 밀서다.”
“뭐요?”
마철군이 차갑게 조소하며 말했다.
“너는 밀서에 적힌 대로 정확히 행동하더구나. 나를 이곳으로 불러내고, 시간을 끌려 할 것이라는. 무명대협이 점쟁이도 아닌데, 어찌 그 일을 알았겠느냐?”
마령인의 눈에 불길이 일었다.
“누명이오! 그를 이용해서 나를 제거하려는 음모요!”
“조사해 보면 알게 되겠지.”
마철군의 마음은 지극히 차가웠다. 자신을 죽이려 한 것이 밝혀지면 마령인을 결코 용서하지 않을 작정이다. 그는 앞으로도 호시탐탐 자신의 목숨을 노릴 테니까.
“무명대협 이 놈, 지금 어디에 있소?”
다음 순간 마령인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자신이 던진 질문의 답을 알 것 같았던 것이다.
‘설마?’
지하밀실.
이제 그에게 기관도 작동하지 않는다.
지난 일들이 순식간에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자신에게 잘 보이려고 하고, 임연정을 좋아한다고 난리를 치고. 일부러 자신에게 더 툴툴대고.
이 모든 것이 지금 이 순간을 위한 놈의 음모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령인은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놈을 마음대로 조종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농락당한 것은 바로 자신이었다. 분노와 충격으로 온몸이
덜덜 떨렸다.
‘이 새끼, 너 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