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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천마-98화 (98/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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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대연(2)

이제 나는 자유롭게 장원을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

마령인은 하나의 제약을 걸었다.

그녀의 방 건너편 방은 절대 가까이 가거나 열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엄청난 기관이 장착되어있어서 여는 순간 죽음을 맞을 것이라고 겁까지 줬다.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지키기 어려운 약속이었다. 그 방은 내가 이곳 지하에서 가장 주목하는 방이었으니까.

“그 방에 황금이 산처럼 쌓여 있어도 관심 없소.”

그리고 곧장 임연정의 연구실로 들어갔다.

“연구는 열흘 후부터 하시고 그전에는 나와 놉시다. 그땐 방해자도 없을 테니까요.”

이미 내 소식을 전해들은 임연정은 고개를 절래 저었다.

“정말 귀찮게 하는군요.”

하지만 말처럼 그렇게까지 귀찮은 표정은 아니었다.

“사내들은 본래 여자를 귀찮게 하는 법이지요.”

“이 봐요, 혹시 그날 그 일 때문에 이러는 거라면 정말 순진하고 멍청한 생각이에요. 그 입맞춤, 아무 의미 없어요.”

나는 섭섭한 기색을 드러내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마치 ‘당신 바보에요?’라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옅게 웃으며 말했다.

“다들 영악하게만 살려는 세상 아니오? 순진하고 멍청하게 사는 사람도 있어야지요.”

“이런 말을 하는 걸 보면 그렇게 멍청한 사람은 아닌데.”

“하하.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소.”

임연정이 자기 자리로 가서 책을 읽었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당신 때문에 도저히 집중이 안 되는군요.”

“아무 의미도 없는 사람인데. 집중이 안 될 리가 있소?”

“옹졸하게 굴건가요?”

“하하, 아니오. 일을 방해할 생각은 없었소. 나가기 전에 하나만 물읍시다.”

“뭐죠?”

“이 연구는 왜 하는 거요?”

“그걸 몰라서 묻나요? 불회마령단의 치명적인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서죠. 당신이 일 년 밖에 못사는 것도 그 부작용 때문이고. 이곳에서 이 연구가 성공하기를 빌어야 하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당신이잖아요?”

“그러니까, 왜 부작용을 없애려고 하냐는 거요? 내가 불회마령단을 먹기 전에도 이 연구는 몇 년간이나 계속되지 않았소?”

그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계속 말을 이었다.

“당연히 내공이 엄청난 무인들을 양성하기 위해서겠지요. 내가 묻고 싶은 것이 이것이오. 그래서 엄청난 내공을 지닌 무인들을 다수 만들어 냈다 칩시다. 그래서요? 그 다음은?”

여전히 그녀는 침묵했다.

내가 그녀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당신들, 이 강호를 차지하려는 거요?”

임연정은 다시 책상 쪽으로 돌아앉으며 차갑게 말했다.

“나가요.”

더는 그녀를 자극하지 않고 연구실을 나왔다.

이 연구의 목적과 결과에 대해 말했을 때, 그녀는 과민반응을 보였다. 자신의 연구에 회의감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건 다시 말해 원해서 하는 연구가 아니란 뜻, 그녀 역시 어떤 덫에 걸린 것일까?

복도를 걸어가는데 맞은편에서 칠호가 걸어왔다.

“저 기억나시죠?”

“물론이오.”

“잠시 이야기 좀 할까요?”

“좋소, 그럽시다.”

그녀와 함께 식사를 하는 방으로 갔다.

이곳 지하밀실의 구조는 이러했다. 바깥에서 들어오면 네 개의 기관이 있는 복도를 지나고, 다음에는 마령인의 호위무인들이 있는 방과 마령인의 침소, 그 다음이 임연정이 연구를 하는 방과 건너편에는 강력한 기

운을 내뿜는 의문의 방, 다시 그곳을 지나면 시험 대상이었던 사내가 죽었던 방이 나오고 다시 복도를 지나면 비로소 식사를 하는 곳과 잠을 잘 수 있는 숙소들이 나온다.

그 방들이 칠팔 개쯤 되는데, 그 중 하나를 이호가 쓰고 있었다. 이제 새로 온 칠호와 나를 위해 방이 하나씩 주어졌다.

그녀와 나는 식사를 하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한 옆에 놓여 있는 차주전자를 가져와서 내게 따라 주었다.

“고맙소.”

“별말씀을요. 대협께서 바로 강호에서 유명한 무명대협이시죠?”

“어쩌다 보니 그렇게 불리게 되었소. 대협이란 말은 과분하오.”

“유명하신 분을 뵙게 되니 영광이군요.”

나는 그녀가 이렇게 말을 잘하는 사람이란 사실에 내심 놀라고 있었다. 마정수와 함께 있을 때 그녀가 보여준 모습은 대부분 연못을 들여다보던 모습뿐이었으니까.

임무에 따라, 처한 상황에 따라 사람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하긴 나만 봐도 그렇다. 완벽하게 벽리단에 적응했고, 다시 무명대협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었으니까. 꼭 해야 하면 결국 하게 되는 것이 사람인가보다.

“천도문의 도살자를 죽였다고 들었어요. 그는 굉장한 고수라던데 정말 대단하시네요.”

“그 자는 죽어 마땅한 자였소. 천도문을 등에 업고 온갖 나쁜 짓을 다 저질렀으니까.”

“대협이란 말이 어울리는 분이세요.”

그녀가 내게 감탄의 표정을 보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나를 죽이기 위해 내려 왔음을.

나는 원래 그녀의 성격을 잘 안다. 이렇게 나서서 상대방을 칭찬하고 얼굴에 금칠해 주는 사람이 아니다.

다시 말해 나에 대한 명확한 임무를 맡고 내려왔다는 뜻. 이렇게 호의로 접근해서 나를 조사한 후에 생사 여부를 결정지으려 할 것이다.

그녀가 나를 죽이려는 결정을 내리면 곤란하다. 당장은 해야 할 일들이 있고, 그녀를 적으로 삼고 싶지 않았으니까.

“잘못 보신 거요. 나는 그저 속물에 불과하오. 무명대협은 껍데기에 불과하오.”

잠시 나를 응시하던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껍데기도 결국 당신 것이잖아요?”

그녀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뵈어서 영광이었어요. 앞으로도 시간 좀 내주세요.”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밖으로 나갔다.

나는 벽에 붙은 작은 동경을 통해 돌아선 그녀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하는 것을 보았다. 무표정한 원래의 그녀로. 지금의 이 만남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에게는 하나의 임무에 불과했다.

장원 밖으로 나가면서 임연정의 방 건너편 방에 정신을 집중했다. 기감을 끌어올려 안쪽의 기를 느끼려 애썼다.

하지만 여전히 그 기운이 크다는 것 빼고는 정체를 알 수는 없었다.

대체 너 누구냐?

* * *

다시 며칠이 지났다.

황금대연은 잘 진행되고 있었다. 일 년에 한 번씩 열리는 이것은 단지 놀기위한 축제는 아니었다. 평소 왕래가 없던 상인들이 모여서 몰랐던 정보를 나누고 새로운 거래를 하는 기회의 장이기도 했던 것이다.

물론 상인들만 모이는 것이 아니었다. 여러 강호의 명숙들이 모였는데, 그들과 새로운 인연을 맺을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중원의 상인들은 무림인과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였으니까.

특히 무림맹주에게 인사를 할 기회이기도 했다. 매일같이 맹주와의 면담이 이뤄졌다.

마철군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루에도 수십 명의 사람들과 만나느라 바빴다.

나는 마철군을 감시하는 척 행동하면서 다른 한 사람을 찾았다.

그리고 황금대연이 시작된 지 닷새째 되던 날, 나는 목적한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 내가 찾은 사람은 바로 공수찬이었다. 그라면 이번 대연에 참석하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과연 참석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 더 없이 반가운 사람을 볼 수 있었다. 광두가 그를 호위하고 따라왔던 것이다.

나는 두 사람을 보자 정말 반가웠다.

그들이 식사하러 객잔에 들렀을 때, 나는 그들과 멀리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우선 공수찬에게 전음을 보냈다.

-나요. 표내지 말고 식사하며 내 말을 듣기만 하시오.

공수찬은 놀람과 격정을 표내지 않고 묵묵히 식사를 계속했다.

-다들 별 일 없지요? 그렇다면 물을 마시시오.

공수찬이 물을 마셨다.

-그럴 줄 알았소. 정말 다행입니다.

무슨 일이 있다면 이곳에 참가할 여유는 없었을 테니까.

-나는 잘 있소. 그대 앞에 나서지 못하는 것은 이유가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오.

나는 그와 몇 가지 대화를 나눴다. 그가 전음을 보내지 않아도, 그때그때 다른 요리와 물을 선택하는 것으로 충분히 의사표현을 했다.

나는 특히 중요한 한 가지를 전달했다.

-이곳 정주에 새로 만든 상단의 지부와 연락소를 하나 만드시오. 특히 이곳에는 적들이 득실대니 조심해서 움직이시오.

물론 무명대협인 자신과 연결만 되지 않는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워낙 사람이 많은 큰 도시라 작은 상단의 움직임쯤은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테니까.

-이제 편히 식사하시오. 나중에 돌아가서 만납시다. 광무인에게는 내가 전음을 보낸 것을 말하지 마시오.

그가 다시 물을 마셨다.

광두에게도 전음을 보내고 싶었지만, 아마 녀석은 당장 표를 낼 것이다. 감시자가 있을지도 모를 상황이라서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었다.

내가 그들보다 먼저 객잔을 나왔다. 모두가 잘 있어서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위험 속에 있어도, 이 일이 힘들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난 돌아가야 할 곳이 있다.

* * *

그날 저녁 마령인이 나를 불렀다.

“그때 조사해 달란 것 알아왔네.”

바로 마철군을 감시하고 있는 삼호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호를 통해 알아보니, 삼호는 이번 일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네. 보호가 목적이 아니라 감시가 목적이라는군.”

“이호와는 다르군요.”

“그렇지.”

“이런 것을 물으면 당신이 좋아하지 않을 것 잘 알지만, 아시잖소? 나 궁금한 것 못 참는 것.”

“해보게.”

“당신이 손잡은 사람들은 대체 누구요?”

그냥 말해라, 무심코 툭 말해 버려라.

하지만 아직 우리 사이가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자넨 알 것 없네.”

더는 조르지 않았다. 마령인의 성격을 볼 때, 압박하면 이야기를 들을 가능성은 더 낮아질 테니까. 마지막 순간까지 필요한 것은 그의 마음을 움직일 감동이고 계기다.

악착같이 노력하다보면 이들 중 누군가에게서 분명 단서가 나오게 될 것이다. 마지막 날까지 찾아내지 못하면 결국 저 의문의 문을 열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뭐 그러시다면야. 어쨌든 알아봐줘서 고맙소. 그럼 이만.”

자리에서 일어나서 방을 나섰다.

내가 간 곳은 임연정의 방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그녀는 한창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쉿!”

그녀는 작은 그릇에 든 액체를 중앙 구체와 연결된 통에다 붓고 있었다. 양 조절이 중요했는지 그녀는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중요한 순간임을 직감하고 내가 한 옆으로 물러났다.

내가 선 곳에 상자가 있었다. 막 도착해서 뜯었는지 상자는 열려 있었다. 아마도 어떤 재료가 도착했던 모양이다.

그때 뭔가가 내 눈에 들어왔다. 상자에 찢어진 종이가 붙어 있었던 것이다. 원래 붙어 있던 종이를 뜯어내면서 일부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보는 순간 나는 알 수 있었다.

표행물표(?行物票)!

표국에서 표물에 붙이는 표였다. 행선지는 어디이고, 누구에게 도착해야 하는지가 적힌 표였다.

내가 힐끗 임연정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등을 돌린 채 액체의 배합에 몰두하고 있었다.

내가 재빨리 종이를 살폈다. 남아 있는 종이에 한 글자를 알아볼 수 있었다.

분명 현(炫)자였다.

위치로 봤을 때 뒤가 현으로 끝나는 표국이었다. 이곳 시험에 사용되는 중요한 재료를 일반 표국에 맡겨서 싣고 왔을 리 없다. 다시 말하면, 저 표국은 바로 이 조직에 속한 표국인 것이다.

“도와줄 것 없소?”

내 물음에 그녀가 나직이 말했다.

“없어요. 그러니 얌전히 있어요.”

“갓난아기처럼 있겠소.”

“아기는 귀엽기라도 하지.”

그리고 이런 짓도 하지 않겠지. 난 상자에 붙은 종이를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뚫어져라 보니 앞글자도 희미하게 보였다. 남(南)자였다.

남현표국(南炫?局).

처음 듣는 표국이다.

드디어 새로운 단서가 나오는 순간이었다.

* * *

다음 날 다시 공수찬을 찾아서 전음을 전했다. 이번에는 객잔에서가 아니라 길을 지나치면서 전했다.

-최대한 빨리 진과 수에게 기별해서 남현표국에 대해 알아보라고 하시오. 배후에 무서운 적이 존재하니 조심해서 조사해야 한다는 말도 꼭 전하시오.

그 한 마디를 남기고 지나갔다.

잠시 저잣거리를 구경하고, 다루에서 차를 한 잔 마시고 돌아오는데 누군가 나를 감시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정말이지 내가 아니라면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상대는 은신에 능한 자였다.

이 특유의 느낌이 무엇인지 나는 잘 안다. 내가 가장 잘 아는 바로 그것, 바로 살수의 기척이었다.

아마도 칠호가 데려온 살수일 것이다. 나를 제거하려는 결정이 내려지면 나를 죽일 칼이 있어야 할 테니까.

나는 상대를 정확히 파악해 낼 수 없었다. 감시받는 것은 확실했는데 놈이 어디의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그만큼 상대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말이었다.

게다가 돌아올 무렵에는 다른 살수로 감시가 교체되기까지 했다. 그 역시 누구인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다시 말해 비슷한 실력의 살수란 뜻이다.

엄청난 실력의 살수가 둘.

정말이지 나는 사방에 적들이 북적대는 곳 한 가운데 서 있다.

그리고 이제 축제 마지막 날까지는 불과 사흘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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