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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천마-94화 (94/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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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너머에는(1)

사내 하나가 좁은 방에서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다.

그가 벽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쿵! 터엉!

깊은 쇳소리를 내며 벽이 움푹 들어갔다.

쿠웅! 텅! 쿵! 터어엉!

연속해서 주먹을 날렸지만 두꺼운 강철벽은 움푹움푹 파이기만 할 뿐 뚫리거나 무너지진 않았다.

벽을 치는 사내의 온 몸에는 굵은 지렁이가 기어가듯 핏줄이 튀어나와 있었고 숨소리는 만 리를 달려온 듯 더없이 거칠었다.

한쪽 벽을 두들겨대던 사내가 홱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반대쪽 벽에 어른 손바닥만 한 구멍이 나 있었고, 누군가 방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먹잇감을 본 맹수처럼 사내가 그쪽 벽을 향해 몸을 날렸다.

쿵! 쿠우웅!

벽을 몇 차례 두들겨도 소용없자 사내가 구멍을 들여다보았다. 구멍 너머에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크으으으.”

당장에 벽을 부수고 나가서 두 사람을 죽이고 싶은 살기가 내뿜어졌다.

반면 밖에서 사내를 지켜보고 있는 두 사람은 담담했다. 그들은 바로 마령인과 추도치였다.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나직이 으르렁대는 사내를 마주보며 추도치가 살짝 상기되어 말했다.

“아직까지 팔팔한 것이 이번에는 예감이 좋습니다.”

추도치의 희망에 마령인이 현실을 상기시켰다.

“이제부터가 중요하겠지.”

추도치가 벽에 달려있는 등잔으로 들고 있던 향에 불을 붙였다. 연기를 내며 향이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향이 다 탈 때까지만 버티면 성공입니다.”

추도치의 눈빛에 긴장이 감돌았다. 지난 몇 년간 시험은 계속 실패하고 있었고, 그에 따라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소모되었다. 무엇보다 계속되는 실패에 마음이 피폐해졌다.

‘부디 이번만큼은! 빨리 다 타버려라!’

그의 간절함과는 달리 향은 천천히 타들어갔다.

잠시 방안을 서성대던 사내가 갑자기 멈춰 섰다.

“으으으으윽!”

그가 두 눈을 부릅떴다. 눈의 흰자위가 시뻘겋게 변했다. 온통 붉어진 두 눈은 마치 귀신을 보는 것만 같았다.

“안 돼! 견뎌!”

추도치가 애타게 소리쳤다. 반면 옆에 서 있던 마령인은 무덤덤하게 지켜볼 뿐이었다.

방 안의 사내가 다시 발작하기 시작했다. 앞서보다 훨씬 더 심한 발작이었다.

쿵! 쿠웅! 쿠우웅!

두꺼운 강철 벽이 움푹움푹 들어갔지만 사내의 손은 전혀 다치지 않았다.

“조금만, 조금만 더 견뎌라.”

추도치의 응원에 사내가 구멍으로 얼굴을 가져다댔다. 마치 살려달라는 듯 끅끅 거리며 괴로워했다.

“참아! 이 새끼야! 견디라고!”

“끄으으으윽!”

사내는 괴로움에 온몸을 경련하더니, 이내 동작을 멈췄다.

촤아아아악.

사내가 얼굴의 칠공에서 피를 흘리며 그 자리에 허물어지듯 쓰러졌다. 날뛰던 방 안에는 침묵만 흘렀다.

추도치가 한숨을 내쉬며 자신이 들고 있던 향을 내려다보았다. 향은 절반 이상이 남아 있었다.

“젠장!”

추도치가 옆에 있던 마령인의 눈치를 살폈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그는 분노하고 있었다.

추도치가 재빨리 남은 향을 들어 보이며 마령인에게 말했다.

“그래도 오늘은 조금 더 버텼습니다.”

하지만 그 말은 전혀 위안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어떤 신호가 되었는지 마령인이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가 마주보는 두 개의 방 중에 묘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방 앞에 섰다.

문을 열려고 당겼지만 잠겨 있었다.

마령인이 나직이 말했다.

“문 열어라.”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지켜보던 추도치가 내심 긴장했다. 마령인이 평소보다 훨씬 화가 났음을 느낀 것이다.

“열라고 했다!”

마령인이 언성을 높이자 복도 끝에서 이호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성큼성큼 걸어와서 문 앞을 막아섰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비켜.”

“죄송하지만 안 됩니다. 안에서 열지 않는다면 억지로 열지 않기로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이호는 차분히 설명하면서 한 발짝도 비켜서지 않았다.

마령인의 분노가 이호에게로 옮겨졌다.

“비키라고 했다.”

“자꾸 이러시면 상부에 보고할 수밖에 없습니다.”

“상부? 그럼 난? 난 하부인가? 네 발바닥이냐고!”

버럭 살기를 내뿜었지만 이호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바로 그때였다.

탁.

건너편 방에서 소리가 들렸다. 다른 소리가 아니라 그저 문을 한 번 두드리는 소리였다. 조용히 하라는 경고였다.

이호가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마령인의 살기에도 겁먹지 않던 그가 겁을 먹은 것이다.

마령인이 빠르게 물었다.

“대체 저 방에는 누가 있는 거지?”

놀랍게도 강력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그 방에 누가 있는지 마령인도 모르고 있었다.

감시자의 역할을 하는 이호만이 그 방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 새끼들아! 믿지 못할 거면 애초에 포섭하지도 말았어야지. 포섭했으면 끝까지 믿던지!”

지켜보고 있던 추도치가 내심 놀랐다. 이호도 이호지만, 마령인 역시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수 없이 시험에 실패했어도, 이렇게 화를 낸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만 돌아가십시오.”

이호의 축객령에 마령인이 차갑게 말했다.

“건방진 새끼. 넌 반드시 후회하게 될 거다.”

돌아서 걸어가던 마령인은 문득 무명객의 말을 떠올렸다.

-정말 그대의 취향은 건방진 사람을 좋아하시나보오.

“빌어먹을!”

자신의 방으로 걸어가던 마령인이 다시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다.

지켜보던 추도치는 느낄 수 있었다.

마령인이 변하고 있음을. 아직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 * *

정주 거리가 붐비기 시작했다.

아직 황금대연이 열리려면 십여 일이나 남았지만, 미리부터 중원 곳곳에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상인들을 위한 축제이니만큼 각지에서 수많은 상인들이 모여들었다.

평소에 보지 못한 물건들이 저잣거리에 선을 보였고, 그것을 사러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나 역시 인파에 떠밀리며 물건들을 구경했다.

정말이지 갖가지 물건들이 많았다.

그곳을 돌며 몇 가지 물건을 샀다. 사야할 물건도 있었고, 그냥 충동적으로 산 물건도 있었다. 그 중에는 언젠가 한 번은 사용할 것 같은 추종향도 있었다.

어쨌든 강호의 기물에 대한 내 식견은 유감없이 발휘되었고, 덕분에 바가지를 쓰거나 가짜에 속는 일은 없었다.

나는 호완사와 낚싯대를 사고 수중에 남은 칠천 냥을 거의 다 써버렸다. 낭비했다는 기분보다는 왠지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객잔으로 돌아왔을 때, 일층에 마령인이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나를 찾아온 것이오?”

“그렇다네.”

온지 꽤 되었는지 벌써 빈 술 병이 서너 병이나 되었다.

내가 그의 앞에 앉으며 새로 술과 요리를 더 시켰다.

“미리 기별이라도 주지 그랬소?”

“나는 혼자서도 술을 잘 마신다네.”

“잘 왔소. 마침 나도 한 잔 생각이 나던 참이었는데.”

마령인이 따라준 술을 단숨에 비웠다. 몸이 젊어져서일까? 아니면 마음이 달라져서일까? 맹주시절보다 술이 더 잘 들어가고 맛있었다.

하긴 그때는 제대로 술을 즐길 시간도 없었다. 술먹고 실수를 할까봐, 술이 들어가는 족족 내공으로 주기를 배출했으니까.

당시에는 온통 맹주일과 강호의 평화만 생각했다. 그렇게 일에 치이다 그나마 시간이 남으면 무공수련에 몰두했다.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내가 왜 심검지경에 이르지 못했는지. 그것은 간절함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내 삶의 방식이 잘못되어서다. 갑갑하게 얽매인 삶과 욕심이 가득한 의무적인 수련에서 어찌 심검지경을

이룰 수 있었겠는가?

여유롭게 술도 한 잔 마시고, 가끔 여행도 좀 다니고 했으면.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궁금한 것이 있소.”

“뭔가?”

“강호에 전해오길 호기심이 많은 자는 빨리 뒈진다지만, 젠장. 궁금해서 도저히 못 참겠소. 어쩌다가 이런 일에 빠져들게 된 거요?”

“이런 일이라니?”

“지하에서 봤던 일들 말이오. 피를 흘리며 죽었던 사내며, 그 이상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방이며, 그게 정상적인 일은 아니지 않소?”

“그 자가 악인이었을 수도 있지 않나? 무림맹에서 배후를 밝히려고 고문하다가 그렇게 되었을 수도 있고.”

내가 피식 웃었다.

“내가 그렇게 순진해 보이오? 그럼 추가장에서 내 손에 죽은 자들은? 그 자들도 무림맹 무인들이오?”

마령인이 함께 웃었다.

“역시 똑똑하군.”

“내가 똑똑하면 이런 질문을 하고 있겠소? 사실 더 궁금한 것이 있소.”

“뭔가?”

“지금 하는 일은 마공자가 독자적으로 하는 일이오, 아니면 맹주께서 하는 일이오?”

“어떨 것 같나?”

“내 생각에는 공자께서 독자적으로 벌인 일 같소.”

“왜 그렇게 생각하지?”

마령인이 흥미로운 눈빛을 발했다.

“아무리 그래도 무림맹주가 이런 음침한 일에 개입되어 있진 않을 것 아니오?”

그러자 마령인이 다시 웃었다.

“왜 웃소?”

“자네만 해도 겉과 속이 다르지 않나? 세상에 알려진 자네는 강호의 영웅인데, 실제의 자네는…….”

“돈 욕심이나 내는 소인에 불과하지요. 그럼 맹주께서도 이 일을 아신다?”

내가 흥미로운 눈빛을 발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

“결국 말해주지 않겠다는 것이구려.”

“자네가 말하지 않았나? 비밀을 많이 알면 빨리 죽는다고. 우리 인연을 헛된 호기심으로 끝장내지는 말자고.”

나를 이용한 후 죽이려는 자가 눈빛 하나 변하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저런 말을 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존경스러울 정도다.

“참, 이것 받으시오.”

내가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아까 저잣거리에서 사온 것 중 하나다.

“선물이오.”

그것은 가지고 다니면서 검을 갈 수 있는 휴대용 숫돌이었다. 휴대용 중에서는 비싸고 좋은 것을 골랐기에 아주 가볍고 효과도 좋았다.

“당신이 내게 준 호의에 비할 수는 없지만, 나도 뭔가 보답하고 싶었소. 거창한 것을 사주면 좋겠지만, 뭘 사야할지 모르겠더이다.”

“이제 나를 믿는 것인가?”

내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여전히 당신의 호의는 덫 같이 느껴지오. 하지만 사람이 살다보면 알면서도 당할 때가 있는 법 아니겠소? 오늘은 피곤해서 먼저 가서 쉬겠소. 마시다가 가시오.”

나는 도망치듯 이층으로 올라와 버렸다.

객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힐끗 내려다보니, 그는 여전히 자리에 앉아서 숫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번에는 내 전술적 호의가 전해지는 순간이었다.

* * *

이틀 후, 마령인이 나를 장원으로 불렀다.

내 호의가 효과를 발휘한 것인지, 아니면 우연의 일치인지는 알 수 없었다.

추도치가 와서 눈을 가린 채 마차에 태워 그곳으로 데려갔다.

“우리 사이쯤 되면 눈 안 가려도 되지 않소?”

“우리 사이? 우리에게 사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었나?”

신경질적인 그의 반응에서 알 수 있었다. 일전에 받은 이만 냥 때문에 화가 나 있음을.

적들의 감정이 요동치고 곤두서는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이럴 때일수록 내 마음은 고요하게 다스려야 한다.

마차에서 내려 장원으로 들어갔다. 나는 정신을 집중했다. 정확히 몇 걸음을 걸었을 때, 방향을 트는지, 어느 쪽 장치를  건드려서 지하로 내려가는 비밀문을 여는지.

덕분에 추도치가 벽에 붙은 등잔을 조절해서 지하로 내려가는 기관의 문을 여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문이 열리고 그와 내가 탄 기관이 지하로 내려갔다.

우우우웅.

다시 일전의 그 복도를 걸었다. 네 개의 기관에서 여전한 살기가 느껴졌다.

복도를 지나서 모퉁이를 돌자 새로운 복도가 나왔다.

여덟 명의 호위가 있는 방을 지났다. 이들이 있다는 것은 마령인이 이곳에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음에 마주 본 두 개의 방이 나왔다.

신묘한 기운이 드러나는 방과 강력한 기운을 드러내는 방을 지나갔다.

나는 일전에 그와 식사를 했던 마지막 방으로 안내되었다.

눈가리개를 풀었을 때, 마령인은 다른 사람과 함께 앉아 있었다. 바로 방에 들어가지 못하게 만류했던 그 사내였다.

“서로들 인사하지.”

내가 먼저 그에게 인사했다.

“아시는지 모르겠소만 내 이름은 없소이다. 그냥 무명이라 불러주시면 되오.”

그러자 사내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나 역시 이름은 없소.”

그때 마령인이 말했다.

“대신 자네를 지칭하는 말은 있지 않나?”

순간 사내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가 이내 덤덤하게 말했다.

“이호로 불리고 있소.”

이호. 내 예상이 맞았다. 그녀와 같은 조직이 확실했다.

“이호라면, 실력이 좋은가 보오. 일호 다음이잖소?”

농담처럼 던졌지만 내심 궁금한 것이기도 했다. 정말 저 조직은 실력대로 숫자가 정해졌는지, 아니라면 편의상 붙여진 숫자인지.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예전에 봤던 칠호와 비슷한 느낌을 주었지만, 이 사내는 그녀와는 확실히 다른 사람이다.

칠호에게선 어떤 쓸쓸함과 허무 같은 것이 느껴졌다. 자신의 일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갈망을 느꼈었다.

하지만 이 사내는 그렇지 않았다. 자신의 일에 만족하고 충실하려는 자였다. 일을 더 잘해 내려는 자다. 이용하기에 쉽지만 동시에 아주 위험한 자이기도 하다.

“이제 이 사람도 한식구가 되었는데 자네가 방을 안내하지.”

이호의 표정이 살짝 더 굳어졌다.

두 사람 사이에서 기싸움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원한 상황이었다.

만약 상대가 마정수였다면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기뻐하는 대신 더 조심해야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분명 근래 나와의 관계가 이 자리를 만든 것은 확실했다. 하지만 나와의 관계가 ‘계기’는 될지언정 ‘결과’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나와 친해졌다고 나를 살려줄 사람이 아니란 뜻이다. 이런 관계조차 어떻게든 이용

하려 들 것이다.

마령인은 아래가 보이지 않는 깊고 어두운 우물과 같은 사내다.

어쩌면 오늘의 이 자리는 그날 그들이 말했던  ‘그것’을 실행하기 위한 자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심해야 한다.

이호가 가만히 나와 마령인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길게 시간을 끌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따라오시지요.”

떨리는 마음으로 마령인과 함께 그를 따라 나섰다.

그렇게 우린 신묘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방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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