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천마-90화 (9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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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의 꼬리에는(2)

언제나처럼 일호는 벽에 붙은 그림을 보고 있었다.

뒤에서 보고를 하는 사람은 칠호였다.

“무명대협이란 자가 도살자를 격살했습니다.”

돌아선 채로 일호가 말했다.

“싸움을 직접 봤나?”

“네.”

“어땠나?”

“지금까지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무공이었습니다.”

“자네와 비교하면?”

“이길 자신이 없습니다.”

칠호의 솔직한 대답에 일호가 다시 물었다.

“괴망량은 어떨 것 같은가?”

사실 살수를 두고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자신보다 강한 적을 여러 수단을 사용해서 죽일 수 있는 것이 살수들이었으니까. 더구나 괴망량과 같은 실력 좋은 살수라면 상대의 실력을 논하는 것이 무

의미했다.

그럼에도 칠호의 전망은 부정적이었다.

“괴망량도 쉽지 않을 것이라 판단됩니다.”

그림을 보고 있던 일호가 비로소 그녀에게로 돌아섰다.

“그 정도로 강한 자란 말이지?”

“네.”

“대체 누구지?”

“아직 밝혀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생뚱맞은 놈이 하늘에서 뚝 떨어져서 도살자를 죽이고 사라졌다?”

“네.”

“우리와는 별개로 우연히 벌어진 일인가?”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저와 괴망량의 움직임은 어디에도 포착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그랬겠지.”

일호가 자신의 자리에 앉아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책상을 가볍게 두드렸다. 뭔가에 집중할 때 그의 버릇이다.

“그동안 강호가 너무 조용했지. 주머니를 뚫는 송곳이 나올 때도 되었지. 칠호.”

“네.”

“무명대협이란 놈은 네가 맡도록. 누군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 놈인지 확실히 알아내도록. 주머니에 송곳이 튀어나온 옷을 입고 다닐 수는 없지 않나?”

“네, 알겠습니다.”

그때 사내 하나가 그곳으로 들어와서 보고했다.

“무명대협의 위치가 확인되었습니다.”

“뭣이?”

일호도, 칠호도 모두 깜짝 놀랐다.

“어디에 있나?”

“정주에 있습니다.”

“정주라면?”

“마령인이 있는 곳입니다. 이호가 연락을 보내왔습니다. 무명대협이란 자가 마령인과 접촉했다고.”

조직에서 마철군에게는 삼호가, 마령인에게는 이호가 내려가 있는 것이다.

“알았다.”

보고를 마친 사내가 곧바로 물러났다.

“네 일에 끼어들었다가, 이번에는 이호와 엮였다? 우연일 리는 없고. 이 놈, 심상치 않군.”

일호의 눈빛이 예리하게 빛났다. 탁자를 두드리는 그의 손가락이 더욱 빨라졌다. 잠시 후 두드림이 멈췄다.

“칠호, 네가 가서 상황을 파악하도록.”

“제가 끼어들면 이호가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겠지.”

일호가 칠호를 쳐다보았다. 그렇다고 내 명령을 거역할 셈이냐는 질책의 눈길에 칠호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곧바로 출발하겠습니다.”

“괴망량과 취랑(醉郞)을 함께 데려가도록.”

취랑은 조직내에서 괴망량과 더불어 가장 강한 네 명의 살수 중 하나였다.

“취랑까지나요?”

“강한 놈이라면서? 없애야 한다고 생각되면 곧장 없애버려. 이호의 의견은 무시해. 네 판단을 믿겠다.”

“알겠습니다.”

칠호가 돌아서 나갔다.

일호는 문이 닫힐 때까지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비로소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그가 벽에 붙은 그림을 바라보았다. 그가 혼잣말처럼 뇌까렸다.

“죽지 마라. 죽어봤자…… 죽은 사람만 불쌍한 거다.”

이미 떠나버린 칠호에게 하는 말인지, 그림을 보고 하는 말인지, 아니면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 * *

저녁은 마령인과 함께 먹었다.

아주 근사한 만찬이었다. 대체 이런 지하의 밀실에서 어떻게 이런 요리를 먹을 수 있을지 의아한 생각이 들 정도로.

불회마령단을 세 개나 먹였다지만, 그래봤자 믿을 수 없는 일년살이 칼잡이에 불과한 나다. 이런 나와 만찬을 즐긴다는 것은 한 가지를 의미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일이 있음을.

대체 무슨 일을 시키려는 것일까?

“정말 그 불회마령단인지 뭔지의 제약을 풀어줄 수 있는 것이오?”

내가 안달을 내자 마령인이 들고 있던 젓가락을 세게 내려놓았다.

탁.

“내가 말했지? 풀어줄 방법이 있다고. 나는 사내놈이 징징대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네.”

“죄송하오.”

내가 움찔하며 의기소침해지자 그가 나를 달랬다.

“조급증 내지 말게. 때가 되면 다 해결해 줄 테니까.”

이렇게 한 번 제대로 화를 내놓으면 다시 그에 대해 묻기 어렵다. 마령인은 처세술을 부릴 줄 아는 자다.

“한데 궁금한 것이 하나 있소.”

“말해 보게.”

“어제 보았던 그 사내는 왜 죽은 거요? 무슨 시험을 하는 것 같던데.”

마령인이 말없이 나를 쳐다보았다.

“궁금하라고 보여준 것 아니오? 아니라면 그딴 것을 왜 보여줬소?”

굳어 있던 마령인이 피식 웃었다. 듣고 보니 그렇다는 생각이 든 모양이다.

“내가 왜 자네를 곧장 내보내지 않고 함께 저녁을 함께 먹는지 아나?”

“그 이유를 내가 어찌 알겠소?”

“바로 이거네.”

“알아듣기 쉽게 하시오.”

“이거라고. 자넨 묘하게 건방지단 말이지.”

“별일이구려. 건방져서 좋다니. 강호인들이 모두 그대와 같다면 나는 무림맹주가 될 수도 있겠소.”

“하하.”

내가 다시 젓가락질을 시작했다. 놓여 있는 요리를 가리지 않았다. 만독불침이 좋은 것이 이런 점이다. 뭐든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점.

가만히 나를 응시하던 마령인이 불쑥 말했다.

“난 재료를 구하고 있네.”

내 젓가락질이 잠시 멈췄다.

“무슨 재료요?”

마령인이 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떤 것인지 가서 볼 텐가?”

“좋소. 대신 밥은 마저 먹고 갑시다.”

내가 다시 젓가락질을 했다. 놈의 비밀을 알고 싶어서 너무 안달인 모습을 보일 필요는 없다.

보여줄 마음이 있으면 어떻게든 보여줄 것이고, 보여줄 생각이 없으면 애걸해도 안 보여 줄 테니까.

마령인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매일 먹는 밥이 그리 맛있나?”

내가 입 안 한 가득 우물거리며 말했다.

“이 매일 먹는 밥 때문에 그 난리법석들이 벌어지는 것 아니겠소?”

“하하하.”

식사를 마치자 마령인이 나를 데리고 방을 나섰다.

그의 뒤를 따라 복도를 걸었다. 표를 내지 않았지만 나는 온 정신을 집중해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내가 방금 나온 방은 놈을 처음 만났던 방에서 십여 보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이 방과 그 방 사이에는 아무런 기관장치도 없다. 적어도 내 기감에는 느껴지지 않는다.

처음 만났던 방을 지나서 모퉁이를 돌면 추도치와 걸어왔던 복도가 나온다. 저 복도가 바로 기관 다음으로 사람의 기척을 느꼈던 두 번째 복도다.

여전히 여덟 고수들의 기운이 느껴진다.

그 앞쪽으로 마주보고 있는 두 개의 방.

하나의 방에서는 강력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다른 방에서는 뭔지 모를 묘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령인이 나를 데리고 묘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곳으로 들어가려던 그 순간.

덜컥.

뒤쪽 방이 열렸다. 어제 시험이 있었던 바로 그 방이었다.

“외부인은 안 됩니다.”

돌아서니 사내 하나가 열린 문 뒤에 서 있었다.

나는 사내를 보는 순간, 그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특유의 무심한 눈빛.

칠호의 눈빛이자, 마철군과 함께 있던 사내의 눈빛이기도 했다.

바로 그 조직에서 나온 자다. 과연 그들은 모든 후계자들에게 한 명씩 배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뭔가 대단한 일을 꾸미고 있는 마령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럼 이 일에 마봉기가 개입된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여러 의문들이 떠올랐다.

마령인과 사내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사내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동시에 다른 사람의 감정 또한 받아들일 것 같지 않았다. 화내 봤자 이쪽 감정만 소모될 느낌.

마령인이 히죽 웃으며 내게 말했다.

“안 된다는군.”

내가 마령인에게 속삭였다.

“저 사람을 본 소감은 묻지 않소?”

“어떤가?”

“당신보다 더 세게 패버리고 싶소.”

“하하하.”

마령인이 기분이 풀린 얼굴로 말했다.

“천천히 보세. 하루에 다 알면 재미없지 않나?”

“그러지요.”

탁.

사내가 문을 닫고 다시 들어갔다.

마령인을 따라 돌아서며 나는 다시 두 개의 방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강력한 기운과 신묘한 기운.

놈들의 계획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은 이 방안에 있었다.

* * *

나는 다시 추도치에게 이끌려 눈을 가린 채 그곳을 나왔다.

마차는 다시 어디론가 이동했다.

이번 역시 모든 감각을 끌어올려서 어디로 가는지를 기억하려 애썼다.

올 때와 같은 장소로 돌아갔으면 이곳의 위치를 추정하기 쉬웠을 텐데, 마차는 방성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정주 저잣거리에 있는 한 객잔이었다.

“이곳에서 명령을 기다리게.”

“객잔에서 말이오?”

“그래.”

“젠장! 사람을 너무 무시하는군. 그럼 별채라도 따로 빌려주시오.”

“전에도 말했지만 자네는 아무 것도 아니야. 마구간에서 자래도 자야지”

“흥! 나는 잊지 않고 있소. 당신이 내게 독약을 세 개나 먹인 것을.”

“계속 그렇게 건방을 떨다가는 그 목을 부지하기 어려울 것이네.”

추도치는 내 내공이 이갑자에 육박하는 것을 확인했음에도 전혀 겁을 먹지 않았다. 앞서 추가장에서 봤던 자들도 이러했다. 상대가 누구든, 어떤 실력이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추도치가 조금 누그러진 어조로 나를 달랬다.

“어쨌든 덕분에 일갑자 반의 내공을 얻지 않았나? 그리고 나는 처음부터 자네를 마대협에게 데려가려고 했다네. 자넬 죽이려던 것이 아니었단 말이지.”

이 놈도 거짓말, 저 놈도 거짓말. 강호에는 거짓말이 넘쳐난다.

“진심이오?”

“맹세코.”

저렇게까지 속이려 든다면 속아주는 척이라도 해줘야지.

내가 풀어진 얼굴로 말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오?”

“우리가 명령을 내릴 때까지.”

“좋소. 대신 객잔에 붙어있지 않을 거요. 난 답답한 것은 절대 못 참으니까. 그러니 명령은 아침 일찍 내려주시오.”

“가능하면 그러지.”

돌아서려는 그에게 덧붙여 말했다.

“날 감시하지 마시오. 감시하는 놈이 있으면 망설이지 않고 베어버릴 거요. 난 분명히 경고했소.”

그러자 추도치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여전히 자신이 대단한 존재라고 착각하는군. 자넨 그 정도로 중요한 존재가 아니네. 떠나고 싶으면 당장 떠나게. 그 내공으로 일 년은 멋지게 살 수 있겠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추도치가 객잔을 나갔다.

나는 그가 잡아준 객방으로 올라갔다. 올라가면서 점소이에게 말했다.

“잘 테니 깨우지 말도록.”

“네, 알겠습니다.”

이층 방으로 들어가는 순간, 나는 기감을 끌어올려 혹시라도 주위에 감시자가 있는지를 살폈다.

나를 무시하는 것인지 자신들을 과신하는 것인지,  감시자는 없었다.

아무튼 나로서는 고마운 일이다.

내가 훌쩍 이층 창문을 뛰어내렸다.

저 멀리 가고 있는 추도치를 미행했다. 내가 곧바로 자신을 미행할 줄은 정말 상상도 못할 것이다.

굳이 감시자를 베어버릴 것이란 말을 한 이유가 이것이었다. 정말 감시하는 자가 있었다면 그를 없애버렸을 것이다. 또 붙이면 또 없애고.

그렇게 없애다보면 더는 붙이지 않을 테니까. 모든 일이 마찬가지겠지만 언제나 초반이 중요하다.

그는 앞서의 장원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도착한 곳은 정주무관이었다.

입구에서 문을 열어주는 무인이 공손히 그를 맞았다.

나는 이곳이 놈들의 또 다른 본거지임을 알아차렸다. 문을 열어준 사내는 앞서 추가장에서 봤던 놈이었다.

이 자들의 규모가 만만치 않다.

그길로 나는 마부가 딸린 마차를 한 대 빌렸다.

마차에 타고 방성에서 정주로 들어서는 입구로 왔다.

“자, 이제부터 내가 시키는 대로 가주시오. 오래 전에 왔던 길이라 헤맬 수 있을 테니, 이해해 주시오.”

“천천히 찾으십시오.”

어차피 자정까지의 삯을 다 내었으니 천천히 가면 오히려 마부는 더 편하고 좋을 것이다.

모든 기억과 감을 그때로 되돌렸다.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날 내가 왔던 시간과 지금의 시간대가 달라서 들려오는 소리가 달랐다. 마차가 다르니 내가 기억하던 땅바닥의 느낌도 달랐다.

하지만 내 기억력은 그 어느 때보다 좋았고, 집중력과 감각 역시 최고일 때였다. 기억을 떠올리고 또 떠올렸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나는 결국 내가 끌려갔던 장원을 찾아냈다. 저잣거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작은 장원이었다.

나를 풀어준 직후에 내가 이곳을 찾아내려는 시도를 할 줄은 정말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적과의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전술 중 하나는 이렇게 허를 찌르는 것이다.

장원에는 낡은 현판조차 붙어 있지 않았다. 장원 중에서도 아주 규모가 작고 낡은 곳이었다.

늙은 부부가 화원에 꽃이나 키우며 살면 그만일 것 같은 저 장원의 지하에 무시무시한 것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나는 섣불리 그곳으로 잠입해 들어가지 않았다. 고수들도 고수들이지만, 정작 문제는 기관장치였다. 뚫기도 쉽지 않을 것이고, 은밀히 통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따라서 만약 외부에서 저곳을 잠입하게 된다면, 기회는 단 한 번뿐이다. 다 부수고 들어가서 뒤집어엎을 결심이 섰을 때.

일단 멀리 떨어진 나무에 올라 그곳을 감시했다.

혹시라도 이곳을 찾아오는 이가 있을까 해서였다.

배후를 찾는 일? 가장 간단한 것은 마령인과 접촉하는 사람을 확인하는 것이 제일 빠르지 않겠는가?

감시는 끈기와의 싸움임을 알았기에 느긋한 마음으로 나뭇가지에 앉아 운기조식을 하며 그곳을 감시했다.

자정이 지났을 때, 건물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그는 바로 마령인이었다. 뒤따르는 사람은 모두 여덟.

나는 그들이 복도 양 옆 방에서 느꼈던 여덟 고수들임을 알 수 있었다. 마령인을 호위하는 무인들인 것이다.

그가 마차를 타고 장원을 나섰다. 사내들은 말을 타고 그를 호위했다.

놈이 외출하는 것을 보자 장원 내부로 잠입하고 싶은 욕심이 아주 잠깐 들었다. 그 방에 무엇이 있는지 너무나 궁금했으니까.

하지만 기관을 뚫지 못하거나, 혹은 그 방에서 뭔가를 찾아내지 못하면 배후를 알아내는 일은 허사가 될 것이다. 모두 다 싹 숨어버릴 테니까. 잠입은 아직 시기상조다.

오늘의 내 선택은 마령인이었다.

나는 마차가 달려간 곳을 향해 새처럼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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