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천마-85화 (85/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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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격필살(3)

나는 염화와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아서 술을 시켰다.

“여기 술과 안주를 주시오.”

주인장이 어떻게 할지 눈치를 살폈다. 염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하자 주방으로 달려갔다.

내가 아는 염화는 성질이 급하고 제멋대로인 자였다. 그런 자가 이런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두 가지일 것이다. 가지고 놀다가 잔인하게 죽이려 들거나, 아니면 본능적인 위기감을 느꼈거나.

염화가 나를 보며 물었다.

“자넨 누군가?”

“지나가던 사람이오. 배가 고파서 객잔에 들른 것뿐이오.”

내 대답에 염화가 비웃었다.

“객잔이 여기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굳이 이곳에 들어온 이유가 있나?”

“그러는 당신의 이유는 뭐요? 이렇게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술을 마시는 이유가? 나 같으면 음식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도 않을 것 같은데.”

염화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는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내가 보통 사람이 아니란 것을. 그래서 툭하면 먼저 날리던 주먹보다 말로 나를 상대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뭐, 이해하오. 어떻게든 잘난 척하고 싶은 족속도 있는 법이니까.”

옆에 서있던 이우가 달려들어 내 멱살을 와락 움켜쥐었다.

“이 놈! 죽고 싶으냐?”

그때 마침 술과 요리를 내오던 주인장이 화들짝 놀랐다.

“놔줘라.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지 않느냐?”

염화의 말에 이우가 멱살을 놓고 뒤로 물러났다.

내가 나른한 어조로 이우에게 말했다.

“내 몸에 한 번만 더 손대면 넌 죽어.”

“이 새끼가! 그래도!”

확 달려들려는 것을 염화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나는 주인장이 두고 간 술과 요리를 먹었다.

“맛있군. 왜 당신이 이곳을 독차지 하려는지 알겠군.”

“내게 하고 싶은 말이 뭔가?”

“왜 당신에게 할 말이 있다고 생각하시오?”

“그냥 밥 먹으면서 자결하려는 놈치곤 너무 멀쩡해 보여서 말이지.”

내가 한 옆에 있던 매랑과 호연숙정을 보며 말했다.

“나보다 더 용감한 사람들도 있는 것 같소.”

매랑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우리 아녀자들은 끌려온 것이라오.”

그러자 옆에 있던 삼우가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닥쳐라! 이 늙은 갈보 년아!”

그의 악담에 지켜보던 이들이 인상을 굳혔다. 은자를 뿌려서 좋은 것과는 별개로, 나이든 노파에게 폭언을 하는 것은 눈살이 찌푸려지는 일이었다.

내가 그들의 마음을 대신했다.

“호로자식이로다.”

“뭐?”

“그냥 혼잣말이오.”

발끈한 삼우가 나를 향해 달려들려 하자 이번 역시 염화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호연세가에서 나왔느냐?”

“그 소식은 나도 들었지. 당신은 그날 있었던 제자들을 모두 죽여 버려야 한다고 했다지?”

그 말에 지켜보던 이들이 웅성거렸다. 아직 일반 사람들 사이에는 흘러나오지 않았던 정보였다.

염화는 그 사실을 감추지 않았다. 오히려 모두가 듣게끔 큰소리로 말했다.

“그렇다! 쓸모없는 놈들은 다 없어져 버리는 것이 낫다.”

“헛소리!”

매랑이 버럭 소리치며 나서려는 것을 호연숙정이 말렸다.

내가 염화에게 물었다.

“이미 다 끝난 일인데, 왜지? 너의 그 쓸모없는 자존심 때문인가?”

“뭐?”

“네 자존심이 그 많은 젊은이들의 목숨을 빼앗을 정도로 대단한 것인가?”

“당연히. 어디 하찮은 것들과 나를 비교하려 드는 것이냐?”

그가 천도문의 도살자란 이름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억울하게 죽었을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어제 일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단지 자신의 일에 끼어들었다고, 죽이려고 따라왔다.

이들은 분노를 조절할 줄 모르는 것이 아니다. 분노를 조절하지 않는 것이다. 조절하지 않아도 되니까.

“내가 보기에는 당신이 더 하찮아 보이는데.”

염화가 불쾌한 표정을 짓기도 전에 옆에 있던 이우가 다시 내 멱살을 잡았다.

“이 새끼가! 뚫린 주둥이라고 함부로 입을 놀려? 넌 뒈졌어.”

“내가 말했지? 다시 내 몸에 손대면 죽는다고.”

멱살을 쥔 이우의 팔목을 잡으며 가볍게 놈의 발을 옆에서 찼다.

휘리릭.

놈이 균형을 잃으며 내가 돌리는 대로 허공을 한 바퀴 돌았다.

쿵.

그는 마치 묘기를 부리듯 공중돌기를 한 후에 바닥에 나가 떨어졌다. 그냥 봐선 아이들 장난 같은 수법이었다.

“하하하하.”

밖에서 지켜보던 이들이 웃음을 터뜨릴 정도였으니까. 이내 웃음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바닥에 쓰러진 이우가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삼우가 달려가서 그를 살폈다.

그가 경악하며 소리쳤다.

“죽, 죽었습니다.”

다음 순간, 내 손이 빠르게 허공을 갈랐다. 뱀이 먹잇감을 향해 달려들 때처럼 빨랐다.

쉬익.

내 손날이 정확히 삼우의 목을 강타했다.

빠각!

목뼈를 박살낸 내 손이 순식간에 원래자리로 돌아왔다. 그 동작이 너무 빨라서 지켜보던 이들에게는 소리만 들렸다.

덜커덕, 덜컥.

목뼈가 박살난 그의 머리통이 이리저리 흔들리더니 이내 앞으로 툭 고개를 떨어뜨렸다.

쿵.

그가 바닥에 쓰러졌다.

삼우 역시 한 수에 절명한 것이다.

“이 놈!”

사우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나를 향해 몸을 날렸다.

쉬이이이잉!

파악!

날아들던 그가 그대로 나를 지나쳐 객잔 밖으로 나가 떨어졌다.

“으아악!”

밖에서 지켜보던 이들이 비명을 질렀다.

시체가 되어 바닥을 나뒹군 사우의 이마에 어느새 한 자루의 비수가 박혀 있었다.

사우가 피하지도 못할 정도로 빠르게 던진 것도 대단했지만, 비수를 단단한 강호인의 이마에 박아 넣는 것 역시 대단한 내공이 필요한 수법이었다.

숨 한 번 제대로 내쉴 시간에 삼우가 싸늘한 시체가 되었다.

염화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눈빛에 경악과 호승심이 뒤엉켰다.

“너!”

내가 선 채로 마시던 술잔을 마저 비우며 물었다.

“그 주먹은 여자들을 끌고 와서 겁줄 때만 사용하는 것인가?”

내 도발에 염화의 눈빛이 강렬해졌다.

“물론 아니지.”

“그럼 저들을 인질로 삼아서 추접스럽게 싸울 일은 없겠군.”

내가 한 옆에 앉아 있던 매랑과 호연숙정에게 나가라고 눈짓을 보냈다. 두 사람이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

밖에서 지켜보던 구경꾼들은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이 좋은 구경거리를 두고 떠나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염화가 한 옆으로 손을 내밀었다.

츠츠츠츠츠.

그의 손에서 주기가 배출되었다. 술에 취해 있던 그가 순식간에 멀쩡해졌다. 그는 빠르게 몸속의 주기를 배출할 수 있을 정도의 고수였던 것이다.

그는 맑은 눈빛으로 내게 다가섰다.

“네 목적이 뭐지?”

“목적? 당연히 있지. 없다면 이 백주대낮에 이런  일을 벌이겠나?”

“뭐지?”

“그건 널 죽이고 나서의 일이니, 넌 신경 쓸 필요 없다.”

“이 새끼가!”

염화의 살기가 솟구쳐 올랐다.

나는 살짝 흥분하고 있었다. 염화는 권법을 사용하는 자였다. 선학비술로 처음으로 권법의 고수와 맞붙는 것이다.

부우우웅!

엄청난 바람소리를 일으키며 주먹이 날아들었다. 맨주먹이라고 무시했다간 그대로 끝장날 수 있었다. 염화쯤 되는 고수의 주먹에는 한 방에 커다란 바위도 박살낼 수 있는 위력이 실려 있었으니까.

부우웅! 붕!

그의 공격을 비유하자면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거대한 쇠뭉치가 연속해서 날아든다고 보면 되었다.

그의 주먹에 스치는 모든 것이 가루가 되었다.

계속 피하던 내가 주먹에 내공을 실었다.

날아드는 주먹을 피하지 않고 주먹을 날렸다.

꽝!

내 주먹과 그의 주먹이 정통으로 충돌했다.

휘청하며 주르륵 뒤로 밀렸다. 염화 역시 뒤로 밀려났다.

선학비술은 이런 정면공격이 주가 되는 비술이 아니었다. 내 내공에 상대의 힘을 역이용해서 더욱 큰 충격을 가하는 무공이었다.

하지만 한 번 정면으로 승부해보고 싶었다.

선학비술이 지닌 파괴력은 어떤 것인지. 염화같은 상대와 싸우는 것도 쉽지 않은 기회였으니까.

꽈아앙!

주위를 진동시키며 그의 주먹과 내 주먹이 허공에서 격돌했다.

팔에 충격이 전해져왔다. 염화의 권법은 극강을 추구하는 권법이었기에 그 위력이 대단했다.

물론 염화라고 여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그 역시 고통을 참는 얼굴로 주먹을 날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내 내공이 그를 압도하고 있어서 쌍벽의 위력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놈과 격돌하면 격돌할수록 선학비술에 어떤 파괴적인 부분이 숨겨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알 수 있었다. 그 파괴성은 선학비술에 담긴 것이 아니라, 선학비술을 만든 사람의 기질이 무공에 스며든 것임을.

아마도 선학비술을 만든 사람은 누구보다 패도적인 무공을 사용한 이였을 것이다. 한데 말년에 새로 깨달음을 얻으며, 패도적인 무공이 아닌 유려한 선학비술을 만들어내었다. 완벽하게 다른 무공을 창시하는데

성공했지만, 그 과정에서 무인의 기질이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이다.

아, 이럴 수도 있구나!

내 무학이 경지에 이르지 않았다면 결코 알아차릴 수 없는 깨달음이었다.

몇 번의 격돌 후 우린 잠시 떨어졌다.

염화가 씩씩대며 나를 노려보았다. 그는 진심으로 놀라고 있었다.

이렇게 무식하리만치 정통으로 승부를 겨룬 적도 오랜만일 것이고, 내가 주먹을 버텨낸 것도 놀라울 것이다.

사실 지금 팔이 떨어져 나갈 듯 아팠다. 그러니 무식한 시험은 여기까지.

“자,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

내 말에 염화가 흠칫 놀랐다.

그의 입장에서는 내 말이 상대를 흔들려는 허세였으면 좋았겠지만, 내 싸움의 방식은 완전히 달라졌다.

쇄애애애앵!

엄청난 내력을 담아 날아드는 주먹을 피하며 놈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내 움직임은 더 빨라지고 정교해졌다.

퍽!

내 어깨가 놈의 가슴에 적중했다. 내 움직임이 워낙 빠르기도 했지만, 피할 수 없었던 더 큰 이유는 전혀 생각지 못한 움직임이었기 때문이다.

보통의 고수였다면 가슴이 작살났을 텐데, 놈은 휘청거렸을 뿐 멀쩡했다.

“어림없다!”

두 번 연속으로 주먹이 날아들었고, 세 번째로 놈의 팔꿈치가 내 미간을 노리며 날아들었다.

쉬이익.

공격이 내 이마를 스치고 지나갔다.

큰 공격이 빗나갔기에 지불해야 하는 대가를 나는 놓치지 않고 챙겼다.

퍽! 내 팔꿈치는 정확히 놈의 겨드랑이에 박혔다.

휘청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시 놈의 팔을 걷어찼다. 정확히는 팔꿈치 관절이었다. 꽈득!

“으윽!”

처음으로 놈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퍽! 퍼억!

내 주먹이 놈의 요혈에 연속해서 적중했다.

염화는 상처 입은 야수처럼 맹렬히 달려들었다. 내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염화의 눈에서 불길이 일었다.

하지만 분노가 실력이 되어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중수들까지의 싸움에서다.

휘리리리릭.

내가 놈의 팔을 휘감으며 한 바퀴 회전했다.

우드드드.

팔에서 뼈소리가 났지만 완전히 꺾이지 않았다.

“끙!”

내가 온힘을 가했다.

“우드드드드득.”

염화의 팔이 꺾였다.

“으아아아아악!”

그대로 날아오르며 놈의 목을 휘감아 한 바퀴 돌았다.

염화의 육중한 몸이 한 바퀴 회전하며 앞으로 처박혔다. 이우는 이 한수에 절명했지만, 놈은 죽지 않았다.

그가 벌떡 일어나 밖으로 튀어 나갔다.

구경하던 이들이 비명을 질렀다.

놈이 찾은 것은 매랑과 호연숙정이었다. 분노와 두려움이 뒤섞이면서 그의 본능이 말했다. 저들을 인질로 삼아야 자신이 살 수 있다고.

염화가 두 사람을 향해 몸을 날리려던 그 순간, 그가 움직임을 멈췄다.

그의 양쪽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그림자처럼 따라붙은 내가 그의 다리에 있는 마혈을 제압한 것이다.

“내가 말했지? 네가 더 하찮아 보인다고. 지금 네가 하려는 짓을 봐라. 이게 바로 너다!”

군웅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경멸의 눈빛들.

그들이 보내는 선망의 시선을 즐기며 살아왔던 그에게 최악의 순간이었다.

“으아아아악!”

그가 괴성을 내질렀다.

다음 순간, 내가 훌쩍 뛰어올라 두 발로 그의 목을 휘감으며 바람개비처럼 회전했다. 거대한 몸뚱이가 나와 함께 허공을 휘돌았다.

우드드드드드득.

끔찍한 소리가 끝나는 순간.

쿠웅!

그가 바닥에 처박혔다. 목은 완전히 비틀려 돌아가 있었고, 두 눈을 부릅뜬 채 절명해 있었다.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모두들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내공을 실은 나직한 목소리로 모두에게 말했다.

“맹주를 배출한 천도문은 중원 각지로 후계자들을 보내 세력을 쌓고 지역의 이권을 강탈하고 있소! 그들에게 분명히 경고하는 바요. 강호를 우습게보다가는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오.”

나는 지켜보는 이들의 환희를 느낄 수 있었다. 비록 이목을 의식해서 모두들 조용히 있었지만 그들은 기뻐하고 있었다.

만약 이곳이 무림맹의 본단이 있고 천도문이 득세하는 무한이 아니었다면 그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박수를 쳤을 것이다.

내가 매랑을 보며 말했다.

“저 분은 호연세가의 제자였던 손자의 죽음에 대해 알아보러 이곳에 왔습니다. 하지만 맹주는 만나지도 못했습니다. 대체 누구를 위한 맹주입니까? 천도문입니까? 호연세가입니까? 오늘 이 사람이 나선 것은 무

림맹과 천도문에게 이 강호에 정의가 살아있음을 전하기 위해서였소. 단지 그것뿐이오.”

그길로 돌아서려는데 호연숙정이 내게 물었다.

“은공의 존성대명을 알려주세요.”

나는 그녀에게 옅은 미소를 지은 후 그 자리에서 훌쩍 몸을 날렸다.

허공으로 날아오른 나는 근처 지붕을 연속해서 도약하며 순식간에 그곳에서 사라졌다.

오늘 내가 나선 이유는 비단 매랑과 호연숙정을 구하기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이 시간 이후부터 이름 모를 무인이 온 강호에 화제가 될 것이다.

염화를 은밀히 제거하지 않고 백주대낮에 모든 사람들이 보고 있는 앞에서 제거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이제 영웅을 만들 필요성을 느꼈다.

벽리단은 조용히 힘을 키우고, 활개 칠 일이 있으면 이 무명객(無名客)이 나설 것이다. 무명객이 나서면 나설수록 벽리단은 적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막강한 힘을 키울 수 있으리라.

나중에 무명객이 벽리단임이 밝혀질 때, 강호는 다시 한 번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앞으로 배후세력도, 무림맹도, 천도문도 오늘 이 무명객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나설 터, 나는 그것을 역이용할 작정이다.

이제 나는 빛과 그림자가 되어 저들과 싸울 것이다. 때론 빛으로 어둠을 몰아내고, 때론 더 큰 어둠으로 어둠을 덮어버릴 것이다.

누군지 모를 적들을 향해, 이렇게 나는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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