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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격필살(1)
맹주전으로 들어서는 사람은 염화였다.
그는 도살자라는 별호답게 한 마리의 거대하고 난폭한 야수처럼 생겼다. 덩치는 거대했고, 근육은 돌덩이처럼 단단했다.
쭉 찢어진 눈에 튀어나온 광대며,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하관까지. 그야말로 꿈에 볼까 두려운 흉흉한 생김새는 마주보는 것조차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그의 가슴에 아직 흉터가 되지 않은 상처가 남아 있었다. 호연남의 기습에 의한 것으로 그는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는 것이 부끄럽다며 그대로 두었다.
하지만 상처 곪는 악취를 풀풀 풍기는 야수같은 그도 마봉기 앞에선 잘 훈련된 사냥개처럼 굴었다.
“이대로 넘어가면 강호인들이 우리 천도문을 우습게 볼 겁니다.”
“이미 호연남은 자네가 죽이지 않았나?”
“그것으로 부족합니다.”
“하면?”
“그날 있었던 자들을 모두 죽여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는 본문을 우습게 여기지 못할 겁니다.”
그 말에 옆에서 듣고 있던 총군사 사마천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염화가 그를 노려보았다. 사마천이 지지 않고 그 눈빛을 받았다. 원래라면 무림맹의 총군사에게 이렇게 행동해선 안 되었지만, 염화는 본래 무서울 것이 없는 자였다.
마봉기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쪽 제자가 자결했다고, 오히려 자넬 벌줘야 한다고 난리인데?”
“약해빠진 놈은 죽어 마땅합니다.”
“하하하.”
마봉기가 크게 웃었다.
“일단 물러가 있게.”
“알겠습니다.”
염화가 당당하게 걸어서 맹주전을 나가자 사마천은 본격적으로 불만을 토했다.
“저자는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벌을 받아도 시원찮을 판에, 오히려 저런 무례한 행동이라니요?”
“딴에는 성질이 난 모양이니. 며칠 달래면 괜찮아 질 걸세.”
“대체 저자를 이렇게 신임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실력 좋고, 생각 없고.”
“네?”
“이 강호에 그런 사람은 드물지. 실력이 오르면 머리 굴리는 속도도 그만큼 빨라지니까.”
사마천을 향한 마봉기의 눈빛이 예리해졌다.
“반면 자넨 생각이 아주 많지. 자네라면 자네 같은 수하가 좋겠나, 저렇게 생각 없이 뭐든 시키는 대로 하는 수하가 좋겠나?”
순간 사마천은 말문이 막혔다. 억지에 가까운 비교였지만 자신이라면 정말 자신 같은 수하는 두지 않겠다는 생각이 스쳤기 때문이었다.
“저야 당연히 저 같은 수하를 좋아하겠지요. 시키는 대로 하는 수하는 널리고 널렸으니까요.”
이내 마봉기가 크게 웃었다.
“그렇지. 머리를 굴려봐야 자네 손바닥 위지. 나도 자네를 선택할 것이네. 하하하.”
정말 그런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웃음이었다.
“강호의 여론이 좋지 않습니다. 이번 일은 덮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네.”
사마천이 맹주전을 나섰다. 마봉기는 맹주가 되기 전과 달라졌다. 단순하기만 했던 마봉기가 이젠 단순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 * *
정보조직은 빠르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진과 수는 뛰어난 세작답게 일처리가 빨랐다.
“믿을만한 이들로 인원이 확충되고 있습니다.”
“비용이 허락하는 한 최고 실력의 세작들로 뽑고, 최고의 대우를 해주도록 하게.”
“걱정하지 마십시오.”
나는 이미 두 사람을 그렇게 대우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맡긴 일도 충실히 해내고 있었다.
“염화가 맹주를 만나고 나왔습니다.”
진과 수는 정보조직을 만들면서 동시에 무림맹의 동태를 감시하고 있었다.
“그는 현재 천도사우와 함께 무한제일객잔에 묵고 있습니다.”
무한제일객잔은 일전에 광두와 술을 마셨던 바로 그 객잔이다. 무림맹 본단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손님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왜 조용한 장원을 빌리지 않고?”
“예로부터 염화는 조용한 것을 싫어했습니다. 사람 많은 곳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을 좋아했지요.”
“수고했다. 앞으로도 세작활동에 각별히 조심하도록.”
“네, 명심하겠습니다.”
“잊지 마. 내게 중요한 것은 자네들이지 정보가 아니라는 것을.”
“네!”
이런 말 한마디가 그들에게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조직은 그냥 굴러가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길로 곧장 무한제일객잔으로 갔다.
객잔 앞에 많은 사람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손님이 아니라 구경꾼들이었다.
“저 사람이 도살자 염화라는군.”
“오! 저 덩치 봐.”
“한 주먹에 호연남을 때려죽였다더군!”
다들 그를 칭송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눈앞에 있는데 감히 욕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염화는 객잔의 정 가운데 자리에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탁자에 가득 요리가 올라와 있었고, 이미 여러 병의 술을 마신 후였다.
객잔 안은 비어 있었다. 그가 들어오자 모두들 놀라서 밖으로 나온 것이다.
덕분에 그는 객잔을 통째로 빌린 듯, 으스대며 술을 마실 수 있었다.
천도사우는 그를 중심으로 대각선 사방으로 한 명씩 앉아 있었다. 그들이 객잔을 독차지한 것이다.
쓰레기들.
내 첫 느낌이었다. 무공의 고수가 될수록 일반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평소 나의 지론이었으니까.
과연 내 예감이 정확했음을 말해주는 행동이 이어졌다.
염화가 눈짓으로 신호를 주자 천도사우 중 앞쪽에 있던 일우가 사방으로 은자를 뿌렸다.
“염대협께서 여러분들께 주는 선물이오!”
“와아아아아!”
사람들이 땅에 떨어진 돈을 줍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도살자 염화는 마치 왕이라도 된 듯한 표정이었다.
역겨운 놈!
그 북새통 속에서, 나는 보았다.
나와 마찬가지로 돈 보다는 염화를 지켜보고 있는 한 여인을.
놀랍게도 그녀는 칠호였다.
정말이지 이곳에서 만나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내 시선을 느낀 그녀가 내 쪽을 쳐다보았다.
칠호와 눈빛이 마주쳤다. 그녀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당시에는 내가 인피면구를 쓰고 있었기에 이 얼굴이 아니었다.
칠호가 다시 몸을 돌려서 그곳을 떠나가려고 할 그때였다.
어디선가 화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이놈! 하늘이 두렵지 않느냐?”
모두의 시선이 그곳을 향했다.
노성을 내지른 사람은 백발이 성성한 노파였다. 먼 길을 왔는지 행색이 몹시도 지쳐보였다. 하지만 눈빛에는 방금 전의 노기에 어울리는 독기가 서려있었다.
그녀 옆에 젊은 여인이 함께 있었다. 두 사람은 한눈에도 혈육지간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꼭 닮아 있었다.
젊은 여인을 보는데, 나는 어디선가 본듯한 느낌을 받았다. 분명 어디서 본 여인이었는데,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도 알 수 없었다.
돈을 뿌렸던 일우가 앞으로 나섰다.
“그대는 누구기에 이런 막말을 하는 것이오?”
“나는 매랑(梅娘)이다. 네놈 때문에 죽은 호연탁이 내 손자다.”
놀랍게도 그녀는 호연탁의 할머니였다. 그녀의 등장에 그곳에 있던 모두가 깜짝 놀랐다.
가장 놀란 사람은 바로 나였다. 매랑이란 이름을 듣자 한 여인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녀는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함께 온 젊은 여인이 낯이 익었던 이유는, 매랑의 젊은 시절과 똑 닮았기 때문이었다.
매랑과는 어려서 한 마을에 살았는데 그녀는 나를 오라버니로 따르며 좋아했다. 크면 내게 시집오겠다고 했다.
물론 나는 정신없이 강호를 쏘다녔고 내게 그녀는 마을의 철부지 동생일 뿐이었다.
이후 집에 올 때마다 그녀를 봤는데, 볼 때마다 아름다워졌다. 하지만 그때의 난 무공에 미쳐 있어서 여인은 안중에도 없었다.
매랑 역시 사춘기가 지나고 나에 대한 관심을 끊었다.
이후 마을에 들른 호연세가의 후손과 사랑에 빠져 그와 혼인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마도 호연탁이 그녀의 손자인 모양이다.
정말이지 인연이란 이렇게도 이어지는구나 싶었다.
매랑은 먼 길을 왔는지 지치고 힘들어 보였다.
일우가 비웃으며 말했다.
“사부를 지키지 못해 자결했다던 그 약해빠진 놈의 할미시구려.”
“네 이놈! 우리 탁이는 자결할 아이가 아니다!”
화가 난 매랑이 일우에게 지팡이를 휘둘렀다. 하지만 일우는 가볍게 피했다. 공격이 아니라 늙은이의 지팡이질에 불과했는데, 일우가 사정없이 매랑을 밀어버렸다.
매랑이 뒤로 넘어지기 전에 내가 나서서 그녀를 막아주었다. 덕분에 바닥에 부딪치지 않았다. 만약 내가 막아주지 않았다면, 연로한 몸이었기에 크게 다쳤을 것이다.
매랑이 나를 돌아보았다.
“고맙네, 젊은이.”
가까이서 보니 얼굴에 어린 시절이 남아있었다. 참으로 철부지였었는데, 이제 이렇게나 늙어버렸구나.
“그만하시지요.”
매랑에게 한 말이었는데 일우가 차갑게 말했다.
“넌 뭐하는 종자냐?”
아마도 자신의 일에 끼어든 것이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그냥 구경하던 사람이었소.”
“그럼 구경이나 계속할 일이지 왜 버릇없이 어르신의 일에 끼어드느냐?”
“그쪽도 어르신에게 막 대하는 것은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
그 말에 몇 몇 사람들이 픽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죽일 듯이 쳐다보는 일우의 기세에 모두들 고개를 숙였다.
일우가 내게 다가서려던 그 때, 뒤쪽 자리에서 술을 마시던 염화가 꽝하고 탁자를 내리쳤다. 그 바람에 술과 요리가 바닥에 쏟아졌다.
“요즘 정말 내 일진이 더러울 정도로 사납구나.”
그가 인상을 구긴 채 자리에서 일어나 이층으로 올라갔다.
일우가 내게 가까이 다가와서 나직이 경고했다.
“후회할 거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천도사우가 염화를 따라 이층으로 올라가자 그곳을 가득 메웠던 구경꾼들도 하나둘씩 흩어졌다. 언제 사라졌는지 칠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젊은 여인이 내게 와서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저는 호연숙정(呼延淑正)이에요.”
“벽리단이오.”
“오늘 벽소협의 도움을 잊지 않겠어요.”
“별말씀을.”
“고맙네, 젊은이.”
“살펴 가십시오.”
두 사람이 무림맹 본단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무슨 일로 왔는지 물어보려다가 말았다.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앞서의 말로 미루어 볼 때, 호연탁의 죽음이 자결이 아님을 밝히기 위해 무림맹을 찾아온 것 같았다.
과연 마봉기가 맹주로 있는 이곳에서 그것이 가능할까?
조금 걱정스럽게 두 사람을 지켜보던 내가 발걸음을 돌렸다.
* * *
나는 곧장 거처로 돌아오지 않고 외진 길로 빠졌다. 누군가의 미행을 알아차린 것이다.
한참을 걸어 인적이 끊어진 곳에 멈춰 섰다. 인적은 없고 주위가 뚫려 있어 감시자가 있는지를 알아보기 좋은 곳이었다.
뒤따르던 이가 어쩔 수 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바로 조금 전에 마찰을 빚었던 천도사우 중 일우였다.
“설마 나를 미행한 것이오?”
내가 모른 척 묻자 일우가 차갑게 말했다.
“내가 말했지? 후회하게 될 거라고?”
“정말 성질도 급하시군. 그렇다고 곧장 따라오다니.”
“난 사람 죽이는 일은 미뤄본 적이 없다.”
“나를 죽인다고? 왜 나를 죽이려는 것이오?”
짐짓 놀란 척 묻자 그가 대답했다.
“넌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조롱했다. 나는 나를 모욕한 자를 결단코 살려준 적이 없다.”
“대체 무슨 모욕을 줬다는 거요?”
“겁 대가리 없이 나서서 함부로 주둥이질을 하다니!”
“그뿐이오? 고작 그런 이유로 사람을 죽이려 하다니?”
“대체 무슨 이유가 더 필요하냐?”
나는 지금껏 이 자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수 있었다. 딱 이렇게 살아왔을 것이다. 자신의 심기를 조금이라도 거스르는 상대는 가차 없이 죽여가면서. 물론 이렇게 은밀히 해치웠겠지.
만약 죄가 드러난다 하더라도 천도문이라는 배경을 등에 업고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을 것이다.
한 번, 두 번 하다보면 습관이 되고, 그러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이런 괴물이 되는 것이다.
이번에는 그가 나를 조롱했다.
“그깟 늙은 년이 뭐라고 목숨을 바친 것이냐? 다시 태어나면 그냥 구경만 해라. 알았냐? 병신아.”
“나를 죽이러 따라온 것을 당신 주인은 알고 있소?”
“네깟 놈 하나 죽이는 일을 일일이 보고하겠느냐?”
“당신만 왔다는 말이군.”
주위에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몰라 기감을 끌어올려서 주위를 살폈다. 혹시라도 칠호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다행히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나도 본색을 드러냈다.
“그깟 이유로 사람을 죽이는 자라면, 나 역시 너를 죽일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겠지. 자, 인사해라.”
“무슨 헛소리냐?”
“나무든, 풀이든, 새든, 뭐라도 좋으니 인사하라고. 이 세상과 마지막 작별인사는 해야지.”
그제야 내 말뜻을 이해한 일우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미친 새끼! 하하하.”
일우가 크게 웃었다. 나도 함께 웃었다.
웃음이 멈추는 순간, 그가 나를 향해 쇄도했다. 허공에서 검을 뽑으며 날카롭게 찔러왔다.
쉬이익!
정말 빠르고 정확한 한 수였다.
상대가 내가 아니었다면 정말 멋진 한 수가 되었을 텐데.
획, 날아드는 검을 가볍게 피하며 내가 곡예를 넘듯 허공을 돌며 그를 걷어찼다. 아마 자신의 검을 피할 정도의 고수가 이런 수법을 사용하리라곤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꽝!
발길질 한 방에 꽈드드득,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나며 일우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으으윽.”
그의 어깨뼈가 박살나며 몸통이 한쪽으로 뒤틀렸다. 곧바로 팔이 축 늘어지며 흐느적거렸다.
지독한 고통에 인상을 쓰며 일우가 사정했다.
“잠, 잠깐! 으윽!”
이제야 상황파악이 된 모양이다.
난 잠시 공격을 멈추며 물었다.
“왜?”
“제가 잘못했습니다.”
“태세전환이 정말 빠르군. 네 검도 이렇게 빨랐으면 좋았을 텐데.”
“제발 살려주십시오!”
“살려주면? 가서 다 데리고 오려고?”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한 마디 말에 기분이 상해 사람을 죽이려는 새끼가, 어깨가 박살이 났는데 그냥 넘어간다고? 그걸 믿으라는 건 너무하잖아?”
“제발 살려주십시오! 원하시는 것은 뭐든지 다하겠습니다.”
내가 붕 날아서 사정없이 놈의 턱을 걷어찼다.
꽝!
턱이 박살나며 그대로 뒤로 나가 떨어졌다.
발차기를 하며 날아오른 기세 그대로 천근추(千斤墜)로 놈의 얼굴을 내리찍었다.
퍼억!
얼굴이 박살나며 즉사했다.
성큼성큼 걸어서 그곳을 벗어나다가 이십여 걸음 떨어졌을 때, 시체를 향해 돌아섰다.
내 검이 가볍게 허공을 갈랐다.
쉬이이이이이이익!
푸아아아아아아앙!
삼초식 무극인이 발출되면서 놈의 시체가 산산조각 나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핏물이 되어 땅바닥으로 흘러들어가는, 이제는 그라고 부를 수도 없는 그것을 바라보며 내가 차갑게 말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뭐냐고 물었나? 그냥 이 세상을 위해서 영영 사라져라.”
나는 더는 돌아보지 않았고 텅 빈 그곳에는 까마귀 떼조차 몰려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