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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천마-73화 (73/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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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의 가지 끝에(1)

풍주점에 백표와 마주앉았다.

아직 주점 문을 열기 전이었고, 지금 이 순간은 주인과 손님이 아닌, 주군과 신하로 마주한 것이다.

새로 수하를 거두면 나이에 맞춰서 상대를 대우해주었다. 정여나 공수찬만 해도 하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백표만큼은 예전의 백표처럼 대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에게 편하게 대할 것이라고 미리 이야기를 했다. 물론 백표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주점은 어떻게 하게 되었나?”

이제 못 다한 질문도 마음껏 할 수 있었다. 사실은 그를 보고만 있어도 좋았다.

“전대 맹주님을 모시고 이곳에 자주 왔었습니다. 맹주님이 이곳을 좋아하셨죠. 따라서 자주 오다보니 이곳이 점점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맹주님이 돌아가시자, 더 이상 맹에 남아 있을 수 없었습니다. 맹

주님이 돌아가신 것이 꼭 제 탓처럼 느껴졌었습니다.”

백표가 고개를 푹 숙였다.

저렇게나 나를 생각해 주었구나 싶어 내 마음이 짠했다.

하지만 백표는 아차 싶었는지 재빨리 덧붙였다.

“죄송합니다. 전대 맹주님 이야기는 되도록 삼가야 하는데.”

이전 주인을 언급하는 것이 내 기분을 언짢게 할까 걱정한 것이겠지만, 이 사람아 그 이야기도 내 이야기라네.

“괜찮네. 현재 우리 적은 무림맹주가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전대 맹주 이야기가 안 나오는 것이 이상하지. 앞으로도 편하게 언급해도 되네. 더구나 자네가 좋아하던 분 아닌가?”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맹주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나는 마봉기의 배후에 다른 자가 있다고 생각하네. 그는 스스로 맹주가 될 능력이 없는 자지.”

백표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맹호단주는 가장 가까이서 맹주를 모시는 직책이었다. 맹주가 보고 듣는 것을 함께해온 그였으니,  자연 무림맹과 강호의 일에 밝았다.

그런 그가 어찌 마봉기가 맹주가 된 일에 의구심이 없겠는가? 다만 맹호단은 호위를 위한 조직, 가장 비정치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기에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만약 더 큰 적이 존재한다면 우리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게 누군가?”

“전직 총군사 갈사량입니다.”

모른 척 물었지만 나는 갈사량이란 대답이 나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백표가 갈사량에 대해 이것저것 이야기해 주었다. 물론 내가 다 아는 내용이었는데, 결론은 굉장한 능력을 지니고 있으니 우리가 영입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만약 제가 이곳을 떠나야 한다면, 그 전에 갈군사를 만나야 합니다.”

나를 새로 모시게 된 것과 수라명왕검을 내게 바친 일을 알려야 하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리지 않고 떠나버리면 갈사량은 크게 걱정할 것이다. 더구나 백표가 수라명왕검을 가지고 있었기에 더욱 큰 문제였다.

“하지만 이제는 쉽게 만날 수 없습니다. 모르긴 해도 갈군사는 사마천의 감시를 받고 있을 겁니다.”

“천천히 때가 되면 알리세. 급하게 움직이면 우리뿐만 아니라 갈군사도 위험에 처할 테니까.”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나마 사마천은 내가 수라명왕검을 없앤 것으로 알고 있었기에 검 때문에 갈사량을 괴롭히지는 않을 것이다.

“절대 잊으시면 안 됩니다. 큰 뜻을 이루려면 반드시 갈군사를 얻어야 합니다.”

하지만 갈사량을 얻는 일은 백표를 얻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이번에 백표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광두가 일을 저지르고 수라명왕검이 울어줬기에 가능했다. 그야말로 천운이 닿았던 것이다.

갈사량 역시 큰 운이 따라줘야 할 것이다. 그나마 백표가 내 편이 되었으니, 백표가 그를 설득한다면 조금은 쉬울 것이다.

하지만 당분간 그를 그대로 둘 생각이다.

나는 갈사량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안다. 그가 무림맹에 남았다면 반드시 그곳에서 해야할 일이 있다는 뜻이다.

운명이 나를 백표에게 이끌었다면, 언젠가 갈사량에게도 이끌 것이다. 나는 그때를 기다릴 것이다.

이번에는 내가 우리 벽씨검문에 관해 자세히 말해주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검대와 소검대, 그리고 양소방주 정여가 내게 충성을 맹세한 것까지.

“내 첫 번째 목표는 산동을 완전히 장악하는 것이네.”

사실 산동제일방인 양소방이 내 밑에 있었고, 두 번째라고 볼 수 있는 송가장은 우리와 절대적인 우호관계에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벽씨검문을 산동제일문으로 키워낼 수 있다면, 산동을 반 이상 장악했다고 볼 수 있겠지. 자네가 앞으로 나를 도와서 해야 할 일이네.”

백표가 눈빛을 반짝이며 내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까지 호위무인으로 뒤에서 살아왔다면 이제부터는 맨 앞에서 싸우는 사람이 되어주게.”

“알겠습니다.”

한 가지 다행한 일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호위무인이었기에 백표를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었다. 무림맹 단주급 인사 중에서도 백표를 알지 못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래서 산동에 가더라도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설령 누군가 알아본다 하더라도 이상할 것은 없다. 은퇴한 무림맹의 고수들이 일반 문파에 들어가는 일은 흔한 일이었으니까.

“현재 무한에서 진행하시는 일은 무엇입니까?”

“작은 상단을 하나 만들고 있네.”

“그럼 제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자네가 할 일을 말하기 전에 긴히 의논할 일이 있네.”

“무엇입니까?”

“우리가 무한에서의 일처리를 마치고 산동으로 돌아가려면 적어도 한두 달 정도 걸릴 것 같네. 그 사이 자네 가족은 우리 집에 가 있는 것이 어떻겠나?”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는지 백표가 깜짝 놀랐다.

쉽게 꺼낸 이야기는 아니었다. 부부간에 떨어져 있어야 하고, 어린 아들과도 헤어져 있어야 했으니까.

“이번 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 우리 가족과 함께 살았으면 싶네. 한 가족으로 말일세.”

그게 여러모로 안전할 것이다. 게다가 앞으로 이런저런 일들을 하려면 백표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부모님이 돌본다면 두 사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 생각되네.”

“그러면 저야 감사합니다만, 괜히 폐를 끼치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아마도 백표가 가장 마음에 걸렸던 것이 가족이었을 것이다.

“이 사람아, 폐라니? 자네 가족은 내 가족과 마찬가지일세.”

나를 바라보는 백표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그의 감동은 당연했다. 나는 진실을 말하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하겠나?”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공자님.”

“히하하. 좋아. 아주 잘 생각했네.”

나는 너무 기분이 좋았다. 나 역시 백표 가족이 안전하기를 누구보다 바라는 사람이었으니까.

“당분간 풍주점은 유지하게. 이곳의 처분은 우리가 산동으로 돌아가기 직전에 하는 것으로 하고.”

“네, 알겠습니다.”

무한에서의 일도 남았고, 특히 갈사량과의 문제도 있었으니, 당분간은 주점을 운영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며칠 후에 집에 잠시 다녀올 생각이네. 그때 자네 가족을 데리고 갈 테니, 그 사이 가족과 좋은 시간 보내도록.”

“네. 알겠습니다.”

잔을 들어 백표와 건배했다.

그리 술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오늘의 이 술은 너무 맛있었다. 이래서 술들을 마시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백무인.”

내가 부드럽고 친근하게 그를 불렀다.

“네.”

“강호의 평화를 위해 싸울 필요 없네. 자네 가족을 위해 싸우시게. 나도 그러고 있으니까.”

때때로 그것이 그 어떤 대의보다 더 강한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백표 역시 내 말에 어떤 의미가 담겼는지 잘 알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공자님.”

그날 아주 늦게까지 백표와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신 이후 가장 많이 취한 날이었다.

* * *

이틀 후.

이번에는 백표와 광두가 풍주점에 마주앉았다.

백표가 광두를 부른 것이다.

“그때 찾아와줘서 고마웠네. 자네가 아니었다면 공자님과 인연을 맺지 못했을 것이네.”

“감사합니다.”

광두가 기분 좋게 웃었다. 사실 그날 찾아가기까지 광두는 많은 고민을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자신이 뒷전으로 밀려날까봐 겁이 났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진정 위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행복을 위해 나의 이기심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이제와 생각하니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가 좋으니까 마음도 뿌듯했고.

“한 잔 하세.”

“네.”

사실 광두는 백표가 마음에 들었다. 왠지 모를 든든한 안정감이 들었다. 뭐라고 할까? 큰형님 같은 느낌.

하긴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그날 찾아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광두가 높이 든 잔에 백표가 자신의 잔을 힘차게 부딪쳤다.

“나야말로 잘 부탁하네.”

* * *

다음 날, 나는 정영과 명이를 데리고 산동으로 향했다.

일곱 살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이었기에 크고 좋은 마차를 빌렸다.

명이가 조금이라도 피곤한 기색이 있으면 자주자주 쉬었고, 오후만 되면 반드시 객잔에 묵는 느긋한 일정을 잡았다.

객잔에 가서는 좋은 방과 맛있는 요리를 대접했다.

이렇듯 최대한 노력을 기울이니 정영은 부담스러워하면서도 크게 감격했다.

사실 그녀는 모르겠지만 두 사람이 혼례를 올릴 때, 축사를 낭독해준 사람이 바로 나였다. 그게 벌써 구 년 전의 일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과 점점 친해졌는데, 어느 날 정영이 이런 말을 해주었다.

“남편이 계속 악몽을 꿨었습니다. 한데 신기하게도 공자님을 만난 이후 잠을 잘 자고 있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처음 보는 순간부터 나에 대한 호감이 컸던 이유기도 했다.

“다행한 일입니다.”

“앞으로 우리 남편 잘 부탁드려요.”

“제가 드릴 말씀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십여 일이 넘는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 어머니. 저 돌아왔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반갑게 우릴 맞아주셨다. 나는 출발 전에 인편을 보내 정영모자와 함께 온다고 기별을 했었다.

두 분이 정영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잘 오셨소. 정부인.”

“잘 오셨어요.”

정영이 두 분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정영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명아, 두 분 어르신들께 인사드려야지.”

명이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명이라고 합니다.”

일곱 살 녀석이 어찌나 또박또박 말도 잘하는지.

어머니가 옆의 명이 앞에 앉아서 아이와 눈을 맞추었다.

“네가 명이로구나. 누굴 닮아 이렇게 잘 생겼느냐?”

“엄마요.”

그러면서 정영을 돌아보았다.

어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처세술을 보니 앞으로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하하.”

어머니의 농담에 모두들 웃었다.

“앞으로 잘 지내보자.”

그러면서 어머니가 명이를 꼭 안아주었다. 아들을 진심으로 아껴주는 모습에 정영이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가 정영에게 말했다.

“앞으로 내 집이다 생각하고 편히 지내시오.”

“감사합니다.”

아버지가 내게 물었다.

“호북에서의 일은 어떠했느냐?”

“아주 좋았습니다. 계획했던 일을 모두 이뤘고, 특히 백표라는 아주 훌륭한 무인을 만났습니다. 본문의 앞날에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잘 되었구나.”

아버지가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항시 모든 일을 결정할 때는 상대의 입장을 헤아려서 하도록 해라.”

“명심하겠습니다.”

어머니가 정영의 손을 잡았다.

“무가가 되다보니 사내들만 북적댄답니다. 만날 싸움박질하는 이야기들뿐이고요. 그래서 참 적적했었는데, 이제 말벗이 생겨서 기쁘네요. 우리 앞으로 잘 지내봐요.”

어머니의 환대에 정영이 내심 당황했다. 이렇게까지 격 없이 반겨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엄밀히 따지면 남편이 섬기기로 한 사람의 부모들이었다. 아주 어려운 관계였다. 한데 이들은 자신을 아주 편하면서도 귀하게 대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자, 방을 치워뒀으니 함께 가 봐요.”

어머니가 소개한 방은 아버지와 어머니 침소에서 멀지 않은 한 건물에 있는 방이었다. 객방 중에서는 가장 크고 좋은 방이었다.

내부는 잘 꾸며져 있었고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앞으로 이곳에서 지내면 되요.”

명이가 신이 나서 한 옆에 있는 작은 침상에 올라갔다.

“와! 제 침상이 따로 있어요.”

정영과 명이를 위한 침상에는 깨끗한 침구가 준비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었다. 어머니는 새로 정착하는 정영을 위해 새 옷가지며 여인이나 아이에게 필요한 여러 물품들까지, 꼼꼼하게 준비해 두었다.

정영은 너무 당황했다.

“이렇게 좋은 방은 필요 없어요.”

아마도 그녀는 어디 별채의 구석방 하나를 얻고 집안일을 거들며 살 것이라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방이 마음에 들지 않으신가요?”

“아뇨. 그래서가 아니라…….”

“이 방이 제일 안 좋은 방인데, 어쩌죠? 더 좋은 방을 원하신다면…….”

“아뇨. 아닙니다. 이 방을 쓰겠습니다.”

그렇게 말하자 정영은 더는 거절할 수 없었다.

물론 지내보면 알겠지만 이 방은 가장 좋은 방이었다.

집에 기별을 보낼 때, 어머니에게 따로 부탁했다. 소중한 사람의 가족이니 특별히 신경 써 달라고. 내가 생각한 것 이상이었다.

나를 보는 어머니의 표정에는 ‘어떠냐? 네 어미가 이 정도는 된다’라는 자부심이 드러나 있었다.

내가 정영이 보지 않을 때 엄지를 척 들어보였다.

어머니, 최고십니다.

어설프게 강하면 가족은 짐이 되고 약점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진짜 강한 사람에게 가족은 진정한 힘이 된다는 것을.

오늘 내 가족이 늘었고, 내 힘도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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