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천마-71화 (7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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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첫눈이 내리면(3)

세작으로 보냈던 진과 수가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다.

“조벽의 기루에 있던 아이들은 모두 무사히 고향으로 보내졌습니다. 또한 그곳에 있던 늙은이들은 모두 뇌옥에 갇혔습니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전에 이용했던 자들까지 모두 체포되었습니다. 모두 수십 년 형량을

받아서 살아서는 나오지 못할 것입니다. 게다가 중죄인들을 가두는 곳이라 뇌옥에서 버티기 쉽지 않을 겁니다.”

만족스런 결과였다. 다행히 내 생각대로 아직 무림맹의 기강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무림맹의 각 조직들은 부패하기 시작할 것이다. 윗물이 구정물인데, 어떻게 아랫물이 맑기를 바라겠는가? 청렴한 인물들은 곧 마봉기의 사람들로 교체되기 시작할 것이다.

“총군사 사마천은 이번 사건에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조벽과의 연관성을 지워버리려고 애쓰고 있을 겁니다.”

역시 예상한 바였다.

“조벽과 사마천의 연관성에 관해 증거를 확보할 수 있겠나?”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가능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사마천을 위해 많은 일들을 처리했다. 분명 어딘가에는 그들이 한 편이었다는, 미처 지우지 못한 증거들이 남아 있을 것이다.

만약 그 증거를 확보할 수 있다면 나중에 사마천을 상대하게 될 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지금 당장은 쓰지 않을 것이다. 나중에 결정적일 때 사용될 증거였다.

“조심히 확보하도록.”

“네.”

“동시에 무림맹의 움직임에도 촉각을 곤두세우도록.”

“알겠습니다.”

“고생들 했다.”

“별 말씀을요.”

두 사람의 일처리가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빨랐고, 어려운 임무를 내리는데도 불만 없이 순순히 명령을 받아들였다.

아직은 좀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일차 시험은 합격이라 볼 수 있었다.

진과 수를 만난 후, 이번에는 공수찬을 찾았다. 그는 자신의 방에서 서류를 살피고 있었다.

“상단 일은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

“네, 순조롭게 진행 중입니다. 중간보고를 드리자면…….”

“아뇨, 그 때문에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이번 일은 전적으로 공총관이 처리해 주십시오.”

“네. 하면 어쩐 일로?”

“혹시 광무인 못 보셨습니까? 어제, 오늘 통 보이질 않는데.”

근래 일 때문에 두 사람이 함께 다니고 있었기에 공수찬에게 물어보러 온 것이다.

“저는 보지 못했습니다.”

대답에 잠깐 머뭇거림이 느껴졌다.

“알겠습니다.”

그렇다고 따져 물을 수는 없는 일, 그냥 돌아서 나오려는데 뒤에서 공수찬이 나를 불렀다.

“공자님.”

“네, 말씀하십시오.”

결국 공수찬이 머뭇거림의 이유를 밝혔다.

“만약 광무인이 사고를 치면 어떻게 됩니까? 대형사고입니까?”

* * *

백표가 주점문을 열려고 나왔을 때, 길 건너편에 누군가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바로 광두였다.

“술 한 잔 생각나서 왔습니다.”

“혼자 오신 겁니까?”

“네.”

“어서 들어오십시오.”

광두가 안으로 들어섰다. 이제 막 문을 열어서 아직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제가 좀 돕겠습니다.”

광두가 나서서 도우려고 하자, 백표가 다급히 그를 말렸다.

“이러시면 제가 불편합니다. 잠시만 앉아서 기다리시지요.”

“네, 알겠습니다.”

광두가 지난 번에 와서 벽리단과 앉았던 자리에 앉았다.

백표가 재빨리 내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움직이자 금방 정리가 되었다.

광두는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일이라면 일가견이 있는 그였는데, 백표의 일솜씨도 보통이 아니었다.

“전에 왔을 때 드시던 술로 드릴까요?”

“네, 그걸로 주십시오. 안주도 같은 것으로요. 너무 맛있더군요.”

백표가 술을 가져왔다.

“맛있게 드셨다니 감사합니다.”

“우리 공자님이 주인장에 대해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저를요? 뭐라고 하셨습니까?”

“정말 괜찮은 분을 만났다고요.”

“하하, 좋게 봐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주인장께서는 우리 도련님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벽공자님요? 두말 할 것 없이 저보다 훨씬 좋은 분이시지요.”

광두가 재빨리 맞장구를 쳤다.

“그렇지요? 정말 좋은 분이십니다.”

“네.”

처음 올 때까지만 해도 광두는 단도직입적으로 다 말하려고 했다.

한데 막상 백표를 보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상대가 무림맹주를 호위하던 맹호단의 단주였다는 사실을 들었기에 내심 겁이 난 이유가 컸다. 왠지 모를 위압감이 들었다. 그 전까지는 정말 성격 좋은 주점 주인이었는데.

광두가 말을 꺼낸 결과를 떠올려보았다.

백표가 버럭 화를 내면서 이럴 수도 있지 않는가?

-이것들이 나를 뭐로 보고! 누구 마음대로 뒤에서 은밀히 도와?

그러면서 두들겨 팬다면? 아니, 그 정도면 다행이지.

-너희들 혹시 나를 노리는 적이냐? 없애버리고 이곳을 떠야겠군.

그러면서 죽이려 든다면? 아무리 자신이 남해칠식을 익혔다지만, 전직 맹호단주를 이길 리 없지 않는가?

광두가 연거푸 술을 마셨다.

자고로 인상 나쁜 도둑놈 없다고, 외모만 봐선 알 수 없는 것이 사람 마음이 아니던가? 저 순박한 얼굴 뒤에 어떤 무서움이 숨겨져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아니야. 무림맹 맹호단주를 했던 사람이 그럴 리가 없지. 어서 말하자. 오히려 이럴 수도 있잖아?’

-맹을 떠난 후 다시 새 주군을 찾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말씀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해버려? 확 말해 버려?’

광두가 머리를 싸맸다.

그때 바로 앞에서 들려오는 말소리.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십니까?”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백표가 요리를 가지고 서 있었다.

“제가 놀라게 해드렸다면 죄송합니다.”

“아, 아닙니다. 잠깐 딴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백표가 미소를 지으며 요리를 앞에 내려다놓았다.

다시 돌아서려는데 광두가 그에게 말했다.

“혹시 시간 되시면 잠시 제 말씀 좀 들어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백표가 광두의 앞자리에 앉았다. 혼자 찾아온 것도 그렇고, 고민 가득한 모습도 그렇고. 뭔가 자신에게 할 말이 있어서 찾아온 것이라 예감하고 있던 차였다.

광두가 그에게 술을 한잔 권했다.

“한 잔 받으시지요.”

“일할 때는 잘 마시지 않지만, 한잔만 하겠습니다.”

두 사람이 술을 마셨다.

광두가 심호흡을 한 후 말을 꺼냈다.

“드리고 싶은 말씀은 우리 도련님과 관련한 일입니다.”

기왕 마음먹은 것, 그에게 다 이야기 하려는 것이다.

“혹시 벽공자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겁니까?”

백표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네, 생겼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바로 주인장 때문입니다.”

“저 때문이라고요?”

백표가 깜짝 놀랐다.

광두는 벽리단에게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해주었다.

사마천의 수하인 조벽이 삼영을 데리고 백표의 가족을 인질로 삼아 협박하려 했다는 사실과, 우연히 그 사실을 알게 되어 벽리단이 그들을 제거했다는 것까지 말해주었다.

광두가 생각하는 이번 일의 핵심이었다. 벽리단이 그를 도왔다는 사실을 알게 하는 것.

생각지도 못한 말에 백표는 깜짝 놀랐다. 하지만 전직 맹호단주답게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에도 차분했다.

“왜 몰래 도와주신 겁니까?”

이미 백표는 일개 주점의 주인장이 아니라 맹호단을 이끌던 단주가 되어 있었다.

“우리 도련님은 원래 그런 분이십니다. 의로운 일을 했다고 그것을 자랑하는 분이 아니시지요.”

“하면 왜 지난 일을 제게 말하는 것입니까?”

“우리 도련님이 주인장을 너무 좋아하시기 때문입니다.”

백표가 다시 놀랐다.

“저를 좋아한다고요?”

“네. 주인장과 뜻을 함께 하시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한데 차마 그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시는 것 같아서 제가 대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앞서 은밀히 주인장을 도와준 일을 말하면 우리 도련님의 선의가 크게 훼

손된다는 것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도련님은 그 일을 절대 말하지 않을 테니, 제가 말씀드리지 않으면 주인장은 영원히 알지 못할 겁니다. 이렇게라도 말씀드려서 부디 주인장께서 우리 도련님과 한 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쏟아내듯 말을 마친 광두가 눈을 질끈 감았다. 심장이 터질 듯 두근거렸다. 백표가 버럭 화를 낼 것 같아서 너무 불안했다.

“이 말씀을 제가 드린 것을 알면 전 맞아죽을 겁니다.”

그때 입구 쪽에서 들려오는 한 마디.

“알긴 아는구나.”

광두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도련님!”

“어디 갔나 보이지 않더니, 여기서 사고를 치고 있었구나.”

내가 성큼성큼 객잔 안으로 들어갔다. 광두가 무슨 말을 했을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백표에게 내가 말했다.

“저 놈 말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미리 사마천과 관련한 이야기를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어떻게 그 일을 알게 되신 겁니까?”

내가 천하진이기에, 그래서 너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랬다고 할 수는 없었다.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강호를 주유하며 견문을 넓히는 중입니다. 그러던 중에 강호의 여자 아이들이 납치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뒤를 추적해 오다 보니 이곳 무한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벽이 납치한 아이들로 기루를 운영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조벽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놈이 주인장의 가족을 노리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미 조벽 일당을 다 제거한 후라 굳이 주인장께 말씀드릴 필

요가 없다고 여겼습니다.”

백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믿기도, 그렇다고 믿지 않기에도 애매한 말일 것이다.

음모라 생각하기에는 광두가 와서 이렇게 어수룩하게 이런 이야기를 꺼내진 않았을 테니까.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미 다 끝난 일이니까요.”

“저를 좋게 봐주신 것은 너무 감사한 일이지만…… 저는 강호 일에 나설 생각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실 일이 아닙니다. 전혀 신경 쓰지 마십시오.”

광두가 고개를 숙인 채 힘없이 물었다.

“제가 다 망친 거죠?”

내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니다.”

광두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라고 하시는 것을 보니 맞군요.”

광두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죄송합니다, 도련님. 하지만 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마음을 숨겨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냥 지나가 버린다면, 여기 주인장은 평생 도련님의 마음을 알지 못할 테니까요.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했

습니다. 적어도 선택의 기회는 도련님이 아니라, 여기 주인장께서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도련님.”

내가 다가가서 광두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안다. 네 마음.”

오히려 광두가 이렇게 저질러버리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광두는 아마도 내가 결국 말하지 않았을 것이라 예상했던 모양이다. 가까운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예감이란 것이 있었으니까.

그래, 녀석이 잘 봤다. 아마도 나는 그냥 떠났을 것이다. 누구보다 백표가 행복하기를 바랐으니까.

그때 광두가 깜짝 놀랐다.

“어?”

나와 백표가 광두의 시선을 따라 창밖을 바라보았다.

밖에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광두가 방금 전의 분위기를 잊고,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눈입니다.”

올 겨울 내리는 첫눈이었다.

“첫눈이 내리는 순간을 보면 그해 운이 좋단다.”

내 말에 듣고 있던 백표가 깜짝 놀랐다. 내가 죽던 날, 백표가 내게 했던 말이었던 것이다.

“가자, 광두야.”

“네.”

광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백표에게 정중히 인사하며 말했다.

“오늘이 마지막이 될 것 같습니다. 다음에 인연이 되면 다시 뵙지요.”

여전히 백표는 얼떨떨한 모습이었다.

나를 그냥 보내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미안할 것이고, 그렇다고 함께 하기에는 마음의 준비가 아직 되지 않았을 테니까.

방금 전 그 말은 백표에게 주는 내 마지막 선물이었다. 부디 해마다 첫눈을 보고, 항상 운이 좋기를 바라는 내 마음이다.

내가 돌아서 나오려던 바로 그때였다.

웅―

어디선가 진동소리가 들렸다.

백표는 물론이고 나와 광두도 깜짝 놀랐다.

벽에 장식으로 걸려 있던 나무검이 울었던 것이다.

내가 일부러 검에 기운을 보낸 것이 아니었기에, 사실 내가 가장 놀랐다.

우웅―

정말 수라명왕검이 울고 있었다.

전생의 내가 그렇게 오랫동안 수라명왕검을 사용했지만, 제 스스로 운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우우웅―

진동이 점점 더 심해졌다. 마침내 나무검은 용암이 들끓는 것처럼 흔들리더니.

꽝!

검을 둘러싸고 있던 나무가 폭발했다.

안에 있던 검이 당당한 위용을 드러냈다.

모두가 놀라 지켜보는 가운데 비로소 답답한 껍데기를 벗은 수라명왕검이 굵고 나직하게 울었다.

징―

나를 부르고 있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