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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천마-62화 (6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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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라명왕(1)

동굴 출구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내려갈 길이 막막한 끝이 보이지 않는 천장절벽이었지만, 나는 오히려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앞서 올라왔던 저 아래 동굴만 막아버리면 이제 아무도 이곳을 발견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위를 올려다보았다. 두루미의 꼬리처럼 생긴 바위가 아래로 늘어져 있었다.

이제 이곳의 출입은 저쪽을 통할 것이다.

훌쩍 몸을 날려서 위로 날아올랐다. 위쪽 바위 끝을 가볍게 붙잡으며 다시 한 차례 더 도약했다.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꼬리 쪽 바위에 내려섰다. 바위가 아래로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었지만 나는 균형을 잃지 않았다.

든든한 내공이 주는 자신감이 있었다.

실제 이 절벽에서 떨어져도 지금이라면 죽지 않을 것이다. 떨어지는 중간에 검으로 절벽을 긁으면서 속도를 줄였다가, 다시 떨어졌다가를 반복하면 된다.

그것이 가능할 충분한 내공이 있었고 천조검이란 보검까지 있었으니까.

실제로 한창 때 수련했던 방법이었다. 이렇게까지 높은 절벽은 아니었지만 굉장한 높이의 절벽에서 뛰어내렸다.

그땐 정말 심장이 쫄깃해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경험하게 되는데, 집중력을 높이는 데는 그만한 훈련이 없다.

바위 중앙으로 걸어가서 품에 있던 비급을 꺼냈다. 비동에서 가져온 선학비술이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그곳에서 비급을 외우기 시작했다.

이미 인형을 통해 다섯 초식의 동작을 알고 있었기에 더 쉽게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선학비술은 온 몸을 사용해서 적을 상대하는 무공이다. 일종의 체술(體術)이자 박투술(搏鬪術). 물론 주먹과 발이 중심이다.

하지만 중요한 공격은 주먹질과 발길질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오히려 상대를 현혹시키는 허초로 사용되거나 수비에 이용되고, 실제 상대를 격살시키는 것은 어깨나 무릎, 팔꿈치 공격이었다.

주먹을 날릴 것이라 예상하는 순간에 팔꿈치를 날린다거나, 발길질을 예상했는데 어깨로 상대의 몸을 강타하는 것이다.

그게 얼마나 강하겠는가 싶겠지만, 체중과 내력이 실린 그 한방에 전신의 뼈가 박살나는 것이다.

비급에 따라 진기를 움직이며 초식을 발출했다.

팡! 파팡! 팡!

한 수 한 수에 내공이 실리니 동작이 살아났다.

다섯 초식을 연속해서 펼치고 나니 이것이 보통 무공이 아님을 느꼈다. 예전 권왕의 비급에서 배웠던 광세풍신권보다 한 단계 위의 무공이었다.

비록 다섯 초식에 불과하지만 공방의 균형이 잘 맞춰진 무공이었고 같은 동작이라도 익히면 익힐수록 더 강한 위력을 내는 극상승의 무공이었다.

물론 무공이란 것이 누가 익히느냐에 따라, 또한 얼마나 제대로 익혔느냐에 따라 그 위력은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분명 객관적인 급이 존재한다.

선학비술은 가히 내가 익힌 추혼수라검술과 견줄만한 무공이었다. 무공의 일대종사가 말년의 깨달음을 고스란히 이 다섯 초식에 담았음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대체 어떤 고인이 남긴 무공일까?

다시 한 번 궁금함이 들었다.

일전에 마차에서 칠호로 인해 깨달은 바가 있었다. 이후 검법과 어울리지 않는 무공을 익힐 필요성을 느끼고 있던 차에 정말 딱 맞는 무공을 얻게 된 것이다.

몇 차례 반복해서 외운 후, 비급은 불태워버렸다. 절세비급은 언제나 화를 부르는 법이고, 누군가에게 다시 물려줘야 할 때가 되면 내가 다시 작성하면 될 것이다.

한 가지 잊지 않아야 할 것이 있었다. 이 모든 기연은 후인을 위해 아낌없이 자신의 욕심을 버린 고인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고인이시여, 그대가 무엇을 바랐는지는 모르겠소. 하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그대가 바라는 일과 그리 거리가 먼 일은 아닐 것이라 생각하오. 부디 앞으로 지켜봐 주시오.

정상에서 내려오다 앞서 발견했던 작은 동굴 앞에 섰다.

천천히 검을 뽑아들었다.

단전에서 이갑자에 육박하는 내공이 꿈틀거렸다.

우우웅.

내력을 주입하자 천조검이 진동했다.

검이 허공을 가르자 부드러운 바람소리를 내며 한 줄기 검기가 발출되었다.

슈우우우우욱!

다음 순간!

날아가던 검기가 갑자기 분열했다. 마치 떨어지던 혜성이 조각나면서 분열하듯, 검기가 갈라졌다.

촤아아악!

갈라진 검기가 빠르게 다시 분열했다.

촤아아악! 촤아아악!

두 개가 다시 네 개로, 네 개가 다시 여덟 개로, 여덟 개가 열여섯 개로.

순식간에 열여섯 가닥으로 갈라진 검기가 동굴 입구 주변에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파파파파파파파파파파파팍!

꽈르르릉!

동굴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검기가 분열한다고 위력이 감소되는 것은 아니었다. 원래 위력 그대로 열여섯 가닥의 검기가 한꺼번에 날아드는 것이다.

게다가 일정한 곳으로만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정한 방향으로 날릴 수 있다.

생각해 보라. 한꺼번에 자신의 요혈을 향해 날아드는 열여섯 가닥의 강기를 대체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제사초식 탈혼겁이다.

내가 일 갑자에 이르고자 그렇게 노력했던 이유였다.

제사초식의 유일한 약점은 하나였다.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무공이기에 내 무공임을 알아볼 수 있다는 것.

먼지가 가라앉은 그곳은 마치 산사태가 나서 산이 무너진 것처럼 보였다.

이제 우연히도 신비동굴로 향하는 길을 찾아내지는 못한다. 그곳에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선학봉 꼬리 아래로 뛰어내려서 들어가야 한다.

정상에 오른 사람 중에 그런 짓을 할 사람은 없을 테니 비동은 영원히 나만 아는 공간이 되었다.

설령 들어가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고 해도, 천장절벽에서  뛰어내려 입구로 날아들 수 있는 경신술을 가진 사람은 세상에 많지 않을 것이다.

산을 내려와 객잔 주인과 이별을 고했다.

“너무나 뛰어난 경치였소.”

“만족하셨다니 다행입니다.”

“덕분에 잘 쉬다가 가오.”

“자주 놀러 오십시오.”

“그러지요.”

객잔주인이야 으레 손님을 보내면서 한 말이었지만, 아마 나는 자주 오게 될 것이다. 물론 이 객잔에 묵을 일은 없겠지만.

그렇게 객잔을 나선 내가 향한 곳은 집이 아니라 무림맹 본단이 있는 무한이었다.

* * *

무림맹 총군사 사마천의 집무실로 사내 하나가 들어섰다.

사내의 이름은 조벽(曺碧). 사마천의 오른팔로 일전에 은밀히 천하진의 수라명왕검을 찾아내란 명령을 받았던 바로 그 사내였다.

“어떻게 되었나?”

사마천의 질문에 조벽이 대답했다.

“갈사량의 주변을 은밀히 뒤졌지만 수라명왕검은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사마천이 인상을 찌푸렸다.

“정말 단단히 숨긴 모양이군.”

“그런 것 같습니다.”

사마천은 분명 갈사량이 검을 빼돌렸다고 여기고 있었다. 다른 검이라면 모를까, 수라명왕검은 어떻게든 찾을만한 가치가 있는 검이었다.

마봉기와는 오랜 인연이 있었다. 천도문을 위해 여러 일들을 해왔다.

하지만 그런 과거가 총군사의 자리를 보장해주진 않는다. 자신을 총군사로 뽑아줬으니, 뭔가 그에게 능력을 보여줘야 했다.

조벽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한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습니다.”

“뭔가?”

“이번에 맹주가 바뀌면서 맹호단주도 바뀌었습니다.”

“그랬지.”

“혹시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맹호단주는 맹주의 호위책임자이니 충분히 그런 의심을 할 수 있었다.

사마천도 이미 고려했던 내용이었다.

하지만 맹호단주가 검을 가져갔을 것이라고 여기진 않았다. 백표에 관한 보고서를 읽었을 때, 그는 절대 그런 일을 저지를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천하진에게 아주 충성스러운 사람이었네. 그런 자가 맹주의 물건을 훔쳤을 리가 없지.”

“갈사량이 그에게 검을 맡겼다면요?”

“갈사량이?”

사마천이 고개를 갸웃했다.

“두 사람이 그렇게 친했나?”

“나쁜 관계는 아니었던 것으로 압니다.”

이내 사마천이 고개를 내저었다.

“다른 물건이라면 모를까, 수라명왕검을 다른 사람에게 맡겼을 리는 없다. 어딘가 찾지 못할 곳에 숨겨두었겠지.”

수라명왕검의 가치는 돈으로 따질 수도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귀한 것을 남에게 맡긴다는 것은 사마천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모를 일이지.’

세상에는 자신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별종들이 있었으니까.

“그 자는 지금 어디에 있나?”

* * *

무한에 도착한 나는 풍주점부터 들렀다.

기왕 호북까지 온 김에 갈사량과 백표도 보고 싶었고, 무림맹의 돌아가는 사정도 알아보려 한 것이다.

백표는 나를 알아보았다.

“혹시 지난번에 한 번 오시지 않으셨습니까?”

“맞습니다. 용케 저를 기억하시는군요.”

“잊을 수가 없지요. 제 첫 손님이셨는데요. 저 자리에서 술을 드시지 않으셨습니까?”

처음 왔을 때 나는 맹주 시절 앉았던 자리에서 항상 먹던 술과 안주를 시켰었다. 놀라고 감격하던 백표의 모습이 기억난다.

“네, 맞습니다.”

“하하, 잘 오셨습니다. 앉으시지요.”

이번에도 지난 번 그 자리에 앉았다.

그때 내 눈에 벽에 걸린 나무로 깎은 방패와 도검 장식이 보였다.

“내부가 달라졌습니다.”

“심심풀이로 만들어 봤습니다.”

“아주 멋집니다.”

“좋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백표를 다시 보자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를 산동으로 데려가고 싶다는 욕심이 불쑥 들만큼.

“장사는 잘 되십니까?”

“하하, 입에 풀칠 할 정도는 됩니다.”

“가족은 있으신지요?”

“네. 마누라와 자식 놈이 하나 있습니다.”

“좋으시겠습니다.”

그러자 백표가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

“신중하십시오.”

“뭐가요?”

“혼인하기 전에는 눈을 크게 뜨고, 혼인한 후에는 눈을 감으란 말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 내가 백표가 혼인하기 전에 해줬던 말이다. 이 말을 다시 백표에게 듣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신중하게 배필을 고르시란 말씀입니다.”

백표가 한쪽 눈을 찡긋해 보였다.

내가 웃으며 물었다.

“혹시 혼인하신 것 후회하십니까?”

“그럴 리가요. 저는 아주 행복하답니다. 하하하.”

백표는 내가 아는 무림맹 무인 중에서 가장 가정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아내와 자식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술과 안주는 무엇으로 드릴까요?”

“지난번에 주신 것으로 주십시오. 혹시 기억하십니까?”

“물론입니다.”

백표가 술과 간단한 안주를 가져다 준 후,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했다.

한참 그 모습을 바라보다 내가 불쑥 물었다.

“행복하십니까?”

그러자 백표가 잠시 도마질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았다. 그래, 이런 질문을 하는 손님은 없었을 테니. 조금 놀라고 당황스럽겠지.

백표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행복합니다.”

진짜 행복한지, 그냥 하는 말인지 알 수 없었지만 백표는 행복해 보였다.

그때 풍주점으로 누군가 들어왔다.

차가운 기도를 감추지 않고 들어선 사내는 바로 조벽이었다.

조벽이 힐끗 나를 쳐다보았다. 평소 철저히 기도를 감추고 다녔기에 그의 눈에는 대수롭지 않은 손님으로 보일 것이다.

곧이어 그곳으로 다른 사람이 들어섰다.

누군지 확인한 나는 깜짝 놀랐다. 들어선 사람이 사마천이었으니까.

나는 당연히 사마천의 얼굴을 알고 있었고, 백표 역시 마찬가지였다.

“총군사님!”

“나를 알아보는가?”

“물론입니다. 기억하지 못하시겠지만 예전에 몇 번 뵈었습니다.”

“오, 그랬군.”

“어쩐 일로…… 아, 일단 이리로 앉으십시오.”

사마천이 자리에 앉았다.

“우연히 지나가다 자네가 이곳에서 주점을 열었다는 소리를 듣고 들렀네.

“아, 그러셨군요.”

“여기 술 좀 주게.”

“네.”

당황한 기색으로 백표가 서둘러 술과 안주를 챙겼다.

백표보다 내가 더 긴장하고 있었다.

사마천이 우연히 지나가다 들렀다고? 그가 이미 무림맹을 떠난 사람을 챙긴다고? 웃기는 소리다. 그는 철저히 자신의 이득을 챙기는 사람이다. 무림맹에서 키우는 개를 챙기면 챙겼지, 떠난 사람을 챙기는 자가 아

니다.

그렇다면?

뭔가 목적이 있어서 온 것이다.

대체 뭐 때문이지?

술을 가져온 백표에게 사마천이 넌지시 물었다.

“갈군사와는 만난 적이 있나?”

“한 번 오신 적이 있었습니다.”

“오호. 이곳에 왔다고?”

“네. 개업선물을 주고 가셨습니다.”

“둘이 친했나 보군.”

“네, 친했습니다.”

백표는 속이지 않고 순순히 대답했다.

그렇지, 백표야. 잘하고 있다. 조사하면 밝혀질 내용은 절대 거짓말해선 안 된다.

거짓말은 진실과 진실 사이, 그 미세하게 작은 틈에 살짝 끼워 넣는 것이다.

마치 뼈 사이의 연골처럼.

눈에는 살만 보이고 뼈만 만져지기 때문에, 다들 연골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 까마득히 잊고 지내듯, 거짓말은 그렇게 하는 것이다.

사마천이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왜 이 일을 하고자 했느냐, 하루에 손님은 얼마나 있느냐, 다시 돌아올 생각은 없느냐.

처음 찾은 사람이 한 번쯤 물어볼만한 질문들을 던졌다.

그렇게 일각쯤 대화를 나누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바빠서 이만 가봐야겠네.”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조심히 가십시오.”

사마천이 밖으로 나가려다가 불쑥 물었다.

“참, 갈군사가 자네에게 뭔가를 맡기지 않았나?”

정말이지 기습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갑작스러운 질문이었다.

백표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제겐 아무 것도 맡기지 않았습니다.”

백표를 빤히 쳐다보던 사마천이 미소를 지었다.

“장사 잘 하시게. 술맛이 아주 좋군.”

사마천과 조벽이 풍주점을 떠났다.

어느새 내 마음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조금 전 사마천이 무엇인가를 알아차렸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차피 그건 의미가 없다. 그가 이곳에 왔다는 것은 이미 백표가 사건에 휘말렸다는 뜻이니까.

나는 백표가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란다. 설령 내 사람으로 만들지 못하더라도, 그가 행복하다면 굳이 데려올 생각이 없다.

그런 나였기에 백표가 이 추잡한 자들의 권력싸움에 휘말리는 것은 절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사마천이 무엇을 찾으러 온 것인지는 몰라도, 백표를 위해서 이번 일은 처리하고 떠나야 할 것이다.

마지막 잔을 비운 후에 내가 웃으며 말했다.

“술맛이 너무 좋아서 내일 또 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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