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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천마-59화 (59/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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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연은 어디에서 오는가?(2)

바깥에 진열된 병장기들은 같은 종류를 수십여 개씩 한꺼번에 모아 두었다.

검은 검대로, 도는 도대로, 방어구는 방어구대로. 호신갑은 아예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그렇다고 결코 이것들이 싸구려란 의미는 아니었다. 일반 철방에서 파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품질이었다.

그 중에 가장 괜찮은 도를 하나 골랐다. 광두에게 주려는 것이다.

“이건 얼마요?”

“오! 보는 눈이 제법이군.”

내가 고른 것이 바깥에 있는 도 중에서 품질이 가장 좋은 것임을 노인도 알고 있었다.

“육천 냥이네. 사실 이 도는 저 안에 넣어도 무방한데.”

“손잡이와 도집에 손상이 있군요.”

“잘 보았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온 놈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족히 만 냥은 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보도까진 아니었고, 일반 도라고 하기에는 아까운 품질이었다. 광두에게 딱이다. 지금 실력으로 이보다 더 좋은 도는 감당할 수 없을 테니까.

“이것으로 사겠소.”

“아주 현명한 판단이네.”

이번에는 관휘에게 줄 검도 한 자루 골랐다. 역시 진열된 검중에서 가장 잘 만들어진 검이었다.

가격은 이천 냥.

노인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자네 혹시 철방 출신인가?”

뭐라 설명하기 귀찮아서 그냥 그렇다고 대답했다.

“역시 그랬군! 병장기를 고르는 안목이 대단하다 했더니.”

그러면서 새삼 다시 한 번 허리에 찬 내 검을 쳐다보았다. 아까 허름한 검이라고 한 것을 후회하고 있는 듯 보였다. 검을 한 번 뽑아주길 바라는 표정이었지만 그것을 확인시켜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검과 도, 두 개만 사고 나오려고 마음먹던 바로 그 순간, 저 멀리 뭔가가 내 눈에 띄었다.

“저것은 무엇이오?”

한구석 진열장에 뭔가가 일렬로 서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니 그것은 검지 크기의 작은 무인 인형이었다. 나무로 만들어졌는데 아주 오래되어서 낡고 허름했다. 군데군데 칠이 벗겨져 보기 흉한 것들이 여

럿이었는데 이상하게 내 시선을 잡아끌었다.

인형들은 각각의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어떤 인형은 주먹을 내지르고 있었고, 또 다른 인형은 발차기를 하고 있었다. 또 어떤 인형은 어깨를 내민다거나, 등으로 뒤를 치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병장기를 든 인형은 없었다. 얼핏 보면 권법처럼 보였는데, 주먹을 주로 쓰는 권법에 비해 이 인형들은 신체의 모든 부위를 다 사용하고 있었다.

묘한 느낌을 주는 인형들이었는데 세어보니 그것들의 개수는 서른세 개였다.

“이것도 파는 물건이오?”

“물론이네. 팔지 못하는 물건은 이 안에 넣어두지 않지.”

“얼마요?”

“낱개로는 팔지 않고, 다 해서 이천 냥이네.”

깜짝 놀라 노인을 돌아보았다.

“이 인형은 오직 세상에 한 벌 밖에 없는 것이라네. 다른 흑시 지점에도 없는 것이지. 평생 흑시에서 장사를 해왔지만 같은 것을 본 적도 없다네.”

“제가 사겠습니다.”

“정말인가?”

노인이 깜짝 놀랐다.

“아직 이천 냥이나 주고 이 인형을 사려고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네.”

보검이니 영약이니 하면서 몇 만 냥씩 거래되지만, 말그대로 영약이고 검이기 때문에 그리 비싼 것이다. 강호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들이었으니까. 사실 이천 냥은 엄청나게 큰돈이었다.

“언제나 시작은 있는 법이지요.”

노인은 물건이 팔렸음에도 왠지 아쉬운 표정이었다. 그가 솔직한 속내를 밝혔다.

“사실 나는 이것을 팔기가 싫었다네. 저 위에 진열된 모습을 보면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졌지. 그래서 아무도 사가지 말라고 아주 비싼 값을 책정해두었다네. 한데 자네가 사가게 되는군. 이천 냥은 내 아쉬움 값이

라 생각하게.”

노인은 착각하고 있었다. 내가 깜짝 놀라 노인을 돌아본 것은 너무 싸다고 생각해서였다.

내가 느낀 가치는 그보다 훨씬 컸던 것이다. 아마 오천 냥, 아니 만 냥이라 할지라도 이 인형들을 샀을지 모를 일이었다. 그만큼 보는 순간 이 인형들이 끌렸던 것이다.

굳이 이유를 들라고 하면 인형들이 취하고 있는 자세들이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라고 할 수 있었다. 그냥 막 만들어진 동작이 아닌 모습. 뭔가 자세히 연구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다.

“자, 팔려면 제대로 팔아야겠지?”

노인이 상자를 가져와서 그것들을 담아주었다. 보니까 아예 인형들을 담기 위한 전용상자가 있었다.

인형의 개수만큼 상자 역시 서른 세 칸으로 나눠져 있었다.

노인이 상자에 인형들을 챙겨 넣었다.

상자를 건네받고 노인에게 돈을 지불했다. 검과 도가 팔천 냥, 그리고 인형이 이천 냥. 총 만 냥을 지불하고 흑시를 나섰다.

“다음에 또 오시게.”

“그러지요.”

“그 인형 팔고 싶으면 다시 가져오게. 같은 값으로 사주겠네.”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비록 사려는 영약은 사지 못했지만, 왠지 마음이 뿌듯했다. 광두와 관휘의 검도 샀고, 특히 인형은 잘 샀다는 기분이 들었다.

남은 돈을 가지고 전장을 돌았다.

중원삼대전장이라 불리는 대륙전장, 중원전장, 풍운전장에 분산해서 돈을 넣었다.

자그마치 십구만 냥이나 되는 돈이었다.

다시 흑시에 영약이 나오면 영약을 사고, 가문과 검대에 투자도 할 것이다.

돈에 연연하는 성격이 아니었음에도 기분이 좋았다.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것 같다는 말, 이제는 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렇게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이 좋은 기분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했다.

광두와 관휘를 한 곳으로 불렀다.

수련을 마치고 달려온 관휘는 무슨 일인가 싶어 잔뜩 긴장했다.

두 사람에게 각각 도와 검을 건네주었다.

검을 받아든 관휘가 물었다.

“이게 무슨 검입니까?”

“이제부터 네 검이다.”

“네?”

관휘가 눈을 크게 떴다. 자신이 말을 잘못 들은 것이 아닌지 하는 놀람에 내가 감동을 더했다.

“그동안 열심히 해줘서 고맙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대주님!”

“대단한 검이 아니니 부담 갖지 말고 쓰도록 해라.”

“한 번 뽑아 봐도 되겠습니까?”

관휘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당연히.”

관휘가 감격한 표정으로 검을 뽑았다.

스르릉!

뽑혀 나오는 소리부터 달랐다.

“아아아아!”

그의 얼굴에 희열이 번져갔다.

“저는 이토록 훌륭한 검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럴 것이다. 보통 무인이 가지는 검들은 몇 십 냥짜리가 보통이었다. 정말 괜찮은 검이라고 해봤자 몇 백 냥 정도.

한데 이천 냥짜리 검이었으니, 얼마나 좋게 느껴질 것이며 그 감격이 얼마나 크겠는가?

“정말 감사합니다, 대주님!”

다른 선물이었다면 이렇게까지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관휘는 강해지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는 중이었다. 무공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연무장으로 뛰어나가는 요즘이었다.

평소 무뚝뚝한 성격이었기에 기뻐하는 것이 더 표가 났다.

관휘가 물러가고, 한 옆에 서 있던 광두에게 물었다.

“너는 별로 안 기뻐하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관조장이 너무 좋아하니까, 그냥 가만히 있었던 거죠. 분하게도 선수를 빼앗겼습니다.”

그럴 리가 있겠나. 함께 기뻐할 줄 몰라서 안 한 것이 아닐 것이다.

광두는 관휘에게 양보를 해준 것이다. 실컷 기뻐하고, 그 기쁨을 내게 표하라고. 만약 자신이 정말 기뻐하는 모습을 함께 보였다면 관휘의 저 기쁨은 퇴색되었을 테니까.

광두는 이런 녀석이다. 이것이 내가 광두를 좋아하는 이유고.

이제야 광두가 도를 뽑아서 들었다.

“그럭저럭 괜찮아 보이네요.”

돌아서 있었지만 광두의 얼굴이 도의 날에 비쳤다. 그는 심드렁한 말과는 달리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난번에 받았던 도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도였다.

“별로인 것 같은데. 그럼 이리 가져 와. 소검대에 도를 쓰는 애들이 여럿 있으니까.”

가까이 가서 도를 뺏으려 하자 광두가 기겁을 하며 달아났다.

“농담도 못해요? 최곱니다. 아, 정말 끝내주는 도입니다.”

광두는 정말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제법 무공을 배웠다고, 도를 들고 서 있는 모습이 어울렸다.

“전에 내가 준 도가 최고라면서?”

“이게 더 비싼 거죠?”

“훨씬.”

“그럼 이게 최고죠.”

“하하하.”

장난기를 거두고 광두가 나를 쳐다보았다. 눈빛에 담긴 무한한 존경은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도련님이 전생에 강호를 구할 때, 저도 거들었나 봅니다.”

“그랬나보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전생에 강호를 구해서 너를 만났나 보다.

광두가 히죽 웃으며 자신있게 물었다.

“그래도…… 제 것이 관조장꺼보다는 더 좋은 거죠?”

“글쎄.”

“말해주세요. 얼마나 더 비싼 거죠? 오십 냥? 백 냥?”

나는 끝까지 말해주지 않았고, 광두는 그날 내내 나를 쫓아다니며 궁금함을 참지 못했다.

네 것이 세 배는 더 비싼 것이다, 말해주면 좋았겠지만 광두를 놀려 먹는 재미가 훨씬 더 좋았으니까.

* * *

그날 밤, 나는 산속 동굴에 와 있었다.

혼자 있고 싶거나 중요한 일을 처리해야 할 때 항상 이곳을 찾아온다. 오늘 이곳을 찾은 이유는 흑시에서 사온 인형 때문이었다.

자그마치 이천 냥짜리 인형이다.

동굴 앞 평평한 바위 위에 인형들을 세워두었다. 달빛 아래 무공을 하는 인형들이 일렬로 서 있으니 왠지 신비스러워 보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인형은 조금 투박하고 거친 감이 있었다. 아마도 전문적으로 인형을 깎는 장인이 만든 것이 아닌 모양이다.

비싼 값과 함께 인형이 팔리지 않은 또 다른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더 흥분되었다.

그렇다면 이 인형은 초식을 아는 무인이 직접 깎아 만든 것일 수도 있었으니까.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주먹이나 발이 내질러진 각도와 방향이 아주 정교했다. 아무렇게나 대충 만든 것이 아니었다.

인형들을 하나씩 쭉 살펴보았다.

분명 어떤 초식을 구현한 것 같은데.

내가 그 중 몇 가지 자세를 똑같이 재현해 보았다.

느낌이 왔다. 무공을 제대로 아는 이가 만든 인형이다!

검술이라면 대번에 어떤 초식인지 꿰뚫어 보았겠지만, 전혀 새로운 무공이라서 쉽게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한 때 권왕의 광세풍신권도 익혔던 나다. 비록 오성까지만 익히다 말았지만, 절세의 권법을 맛보았던 몸이지 않는가?

이리저리 순서를 바꿔보며 동작을 만들어보았다.

이어지는 동작이 있다 하더라도 그냥 봐선 내리치는 동작인지 올려치는 동작인지 알 수 없었다. 비급이 없는 상황에서 인형의 모습만으로 초식을 유추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나는 순서를 바꿔가며 계속 연구했다. 마치 아주 난해한 문제를 푸는 기분이 들었다.

일반적인 권법이 아니었다. 권법을 변형해서 주먹과 발은 물론이고 손등과 팔꿈치, 무릎, 어깨와 등, 그야말로 온몸을 다 사용하는 무공이었다.

그래서 헷갈리는 부분이 많았다. 한 번도 이런 무공을 경험한 적이 없어서였다.

그래도 차분하게 동작을 연구해 보았다. 아무리 처음보는 무공이라 할지라도 전생에 내가 이룬 무학의 성취가 있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계속 반복해서 동작을 펼쳤다.

차분하게, 그리고 끈기 있게.

아침 해가 떠올랐을 때, 나는 포기하지 않은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상을 받았다. 인형들이 펼치는 초식을 알아낸 것이다.

다섯 개의 초식.

이 서른세 개의 인형은 다섯 초식을 연속해서 펼치고 있었다. 초식의 동작은 굉장히 실용적이면서도 훌륭했다. 나야 딱 한 번 자세만 잡아봐도 알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것을 운용하는 심법을 알지 못했기에 얼마나 큰 위력을 지녔는지는 알지 못했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위력이기에 이렇게 인형까지 만들어서 남겼을까?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이 초식을 제대로 발휘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인형을 다시 상자에 넣었다.

기왕이면 제대로 정리하고 싶어서 초식 순서대로 넣었다.

그렇게 차례차례 넣어서 마지막 서른세 번째 인형을 집어넣는 순간.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상자 아랫부분이 열렸다.

정말 표나지 않게 만들어져 있던 얇은 서랍이 튀어나온 것이다.

나는 알 수 있었다. 인형들이 초식의 순서에 맞게 제대로 그 자리에 들어갔을 때, 이 비밀서랍이 나오게끔 만들어 졌다는 것을.

정말이지 놀라운 장치가 설치된 상자였다.

안에 든 것은 한 장의 접혀진 종이였다. 너무 오래되어 금방이라도 바스라질 것만 같았다.

조심스럽게 꺼내서 펼쳐보자 한 줄이 적혀 있었다.

천문산 선학봉(天門山 仙鶴峰).

천문산은 호북성에 있는 산이었다. 무림맹 본단이 있는 무한 역시 천문산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그래서 천문산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가본 적도 있었다. 중원을 떠돌며 비무를 하던 젊은 시절이었다.

천문산은 험하기로 유명한 산이었다. 아마 선학봉이 주봉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대체 왜 이 인형상자에, 그것도 아주 은밀하게 천문산 선학봉의 위치를 적어둔 것일까?

이 무공의 전체를 알 수 있는 비급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뭔가가 있는 것일까? 인형이 내 눈길을 잡아 끈 것도 이 알 수 없는 운명 때문이었을까?

직접 가보지 않는 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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