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천마-58화 (58/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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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연은 어디에서 오는가?(1)

칠호가 복도를 걸어갔다.

미로처럼 복잡한 복도였다. 좌로, 우로, 다시 좌로. 아무리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도 결코 한 번에 길을 찾을 수 없는 그런 복도였다.

한참을 돌고 돌아 미로를 빠져나오자 기다란 복도가 기다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양쪽 벽이 열리며 뭔가가 튀어나올 것 같은 회색빛 복도 끝에 방이 하나 있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사내 하나가 등을 돌린 채 서 있었다. 지하였는지 방에는 창이 없었다. 사내는 창문이 있을 자리에 걸린 그림을 보고 있었다.

파도가 바닷가 바위에 부딪치며 물거품을 만들어내는 역동적인 그림이었다. 이 답답한 방과는 정말 대조적인 그림이었다.

“마정수가 죽었습니다.”

마치 밖에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이런 말을 전할 때처럼 담담한 어조였다.

사내의 반응 역시 비슷했다.

“어떻게?”

마정수가 죽은 소식을 전하는데, 마봉기에게 전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 사내는 무림맹의 인사도 아니었다.

“산동지역 야상과 얽혀 죽었습니다.”

“직접 확인했나?”

“네, 제 눈으로 직접 확인했습니다. 여기 상세보고서입니다.”

그녀가 들고 온 보고서를 탁자 위에 올렸다.

사내는 여전히 그림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이 그림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어. 과연 화공은 이 바다를 보고 그린 것일까, 아니면 상상해서 그린 것일까? 자네 생각은 어떤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제야 사내가 돌아섰다. 삼십대의 사내였는데, 그림을 보며 감상에 빠졌던 것과는 달리 굉장히 차가운 느낌을 주고 있었다.

사내는 바로 이 조직의 수장인 일호였다. 이 조직에 모두 몇 호까지 있는지, 누구의 명령을 받는지 아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했다.

일호가 보고서를 천천히 읽었다.

“함께 갔던 화선노대와 시곤이 실종되었고. 다른 후계자가 개입한 정황이 보인다?”

“네, 그렇습니다.”

일호가 여전히 보고서에 시선을 둔 채 말했다.

“다음 명령이 있을 때까지 대기하도록.”

“네.”

그녀가 돌아서서 문을 열고 나가려고 할 때 일호가 그녀를 불렀다.

“칠호.”

“네.”

일호의 어조가 조금 부드러워졌다.

“수고했다.”

하지만 칠호는 여전히 경직된 어조였다.

“감사합니다.”

그녀가 나가고 일호는 보고서를 다 읽었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난 그의 시선이 다시 등 뒤의 그림을 향했다.

* * *

그로부터 세 시진이 지난 후에 보고서의 내용이 비로소 무림맹주 마봉기에게 전해졌다.

보고하는 사람은 광월단주 주철룡이었다.

“불행하게도 아드님이신 마정수 소협이 죽었습니다.”

자식의 죽음을 전해 들으면서 마봉기는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누가 죽였나?”

“후계자들 중 한 사람으로 보입니다.”

주철룡은 야상이나 산동상회에 관한 내용은 전하지 않았다.

자의적으로 편집한 것인지, 아니면 그 역시도 관련된 내용을 받지 못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일호의 손에서 그에게 전달될 때까지 몇 사람의 손을 거쳤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조사관을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맹 차원에서 보낼 수는 없고, 천도문에서 보내시지요.”

마봉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알아서 하지. 자, 다음 보고는?”

그것으로 마정수의 죽음에 관한 대화는 끝이었다. 죽은 마정수가 지옥에서 이 대화를 봤다면, 땅을 치며 분노했을 것이다.

“이번 일로 강호의 여론이 좋지 않습니다. 외부로 내보낸 후계자들을 불러들이시지요.”

“그럴 수 없네.”

마봉기가 일언지하 거절했다.

“그 아이들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자네 사람들을 붙여서 보냈네. 따라서 그곳의 모든 일들은 나보다 자네가 더 잘 알고 있지. 이렇게까지 양보했는데 그들을 불러들이라는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지.”

“여론을 무시해선 안 됩니다.”

“자넨 나부터 무시하지 말게.”

주철룡이 못들은 척 하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강호인들이 무림맹주에게 바라는 품격이 있습니다.”

“알다시피 난 그딴 것은 없는 사람이네.”

“그럼 지금부터 만드시지요.”

두 사람 사이에 팽팽한 기싸움이 펼쳐졌다.

“한 가지만 묻지.”

“네.”

“왜 나를 지지했나?”

중요삼단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광월단의 단주인 주철룡이 아니었다면 마봉기는 결코 무림맹주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평소에 맹주님을 존경했습니다.”

“그런 개소리는 집어치우고 진짜 이유를 말해보게.”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자네 뒤에 대체 누가 있는 것인가?”

“아무도 없습니다.”

마봉기가 코웃음을 치며 태사의에 몸을 기댔다. 정말이지 저렇게 감쪽같이 시치미를 뗄 때면, 어쩌면 정말 자신을 존경한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럴 리는 없었다. 마봉기는 산전수전 다 겪은 능구렁이인데다 누구보다 스스로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었다.

분명 누군가 배후에 있었다.

한데 자신이 맹주가 된지도 반년이 넘었는데도 그는 모습도 드러내지 않고, 아무 것도 요구하는 것이 없다. 차라리 맹주를 만들어 줬으니 돈이든, 자리든 뭐든 달라고 하면 불안하지나 않을 텐데.

“이만 하지.”

“그럼 쉬십시오.”

주철룡이 천천히 그곳을 걸어 나왔다.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마봉기의 눈빛이 번뜩였다.

“너희들이 나를 여자 젖가슴이나 밝히는 늙은이로만 봤다면, 그래서 이용해먹기 좋을 것이라 여겨서 나를 뽑은 것이라면…… 그건 큰 실수야.”

* * *

산동을 시작으로 마정수에 관한 소문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마정수가 산동상회와의 합작을 하려고 했고, 그 과정에서 산동상회에 빌려주는 야상의 돈을 훔쳐서 빼돌리려 했다는 소문이었다.

마정수가 죽었다는 소문은 나지 않았다. 대신 산동을 떠났고, 무관을 세우려던 계획은 무산되었다는 소문이 났다.

물론 내가 흘린 소문이었다.

절대 꼬리가 밟히지 않도록 아주 조심스럽게 흘렸다. 조금만 흘려도 워낙 민감한 사안이라서 금방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이 일이 중원 다른 지역에도 파급을 미쳤다. 천도문 일파가 중원의 일에 깊이 개입하려 한다는 비난의 여론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껏 마봉기의 눈치를 보며 쌓였던 불만이 일제히 터져 나왔다.

들끓던 여론도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기 마련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무림맹은 이와 관련해서 일체의 언급도 하지 않았다.

산동은 다시 평화를 되찾았지만 애타는 두 조직이 있었다. 바로 야상과 산동상회였다. 야상은 마정수와 얽히는 바람에 난리가 났고, 산동상회는 야상과 얽히는 바람에 야단이 난 것이다.

어쨌든 최종승자는 나였다.

내 수중에 들어온 돈은 이십만 냥.

당장에라도 검대원을 수백 명으로 늘릴 수 있는 돈이었다.

하지만 나는 원래 계획대로 내년 봄에 새롭게 검대원을 늘릴 생각이다. 그것도 처음 계획대로 두 개조 사십 명 정도만.

무림맹이나 천도문에서 이번 사건에 대한 조사가 시작될 수도 있는 마당에 이목을 끌 행동을 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검대는 관휘의 지휘에 따라 잘 돌아가고 있었다.

이들 하나하나가 검대의 조장을 맡겨도 충분히 해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들을 내년 봄까지 더 강한 정예로 키울 것이다.

지휘관만 제대로 있으면 숫자를 불리는 것은 순식간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들을 조장으로 하는 이십 개 조를 뽑아버리면 순식간에 사백 명이나 되는 대규모 검대가 만들어지는 것이니까.

광두 역시 무공수련에 열중이었다. 특히 내가 준 영초로 팔 년의 내공을 얻고 난 후 광두는 많이 달라졌다. 자신감을 얻은 것이다.

“그나저나 요즘 도련님 얼굴보기가 힘드네요.”

“바빴다.”

“저도 좀 데리고 다니시라고요.”

“정말?”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자 광두가 흠칫 했다.

“……위험한 일이었나요?”

내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미친놈들이 사방에서 칼질을 해대고, 등 뒤에서 암기를 막 쏴대고, 입만 열면 협박이고, 수십만 냥이 오가고, 서로 의심하고, 속고 속이고, 시체를 파묻고…….”

광두가 귀를 틀어막았다.

“그만요! 제발 그만요!”

“다음에는 꼭 같이 가자. 진짜 강호를 보여주마. 이제 때가 된 것 같다.”

“아뇨, 멀었습니다. 저는 향긋한 영초와 좋은 칼을 선물받는 이 다정하고 평화로운 강호에서 살 겁니다! 영원히.”

“후후.”

“그렇게 웃지 마시라고요!”

오랜만에 광두와 이렇게 즐거운 대화를 나누니까 기분이 너무 좋았다. 마정수 때문에 곤두서 있던 긴장감이 다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한데 어디가세요? 짐까지 짊어지시고.”

광두가 내 등의 혁낭을 보며 물었다.

내가 스산한 눈빛으로 말했다.

“같이 갈래?”

“헉! 설마 혁낭 속에…… 시체입니까?”

광두가 후다닥 저 멀리 물러나서 손을 흔들었다.

녀석에게 씩 웃어준 후 집을 나섰다.

혁낭 속에 든 것은 시체는 아니고 그 시체가 내게 준 선물이었다.

* * *

이십만 냥이 담긴 혁낭을 짊어지고 나는 흑시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다시 영약을 살 생각이다.

왜 이렇게 내공에 집착하느냐고?

내가 강해지는 가장 확실하고 빠른 방법이니까.

보통의 경우 여러 영약이 뒤섞이면 내공의 정순함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내공이 많아질수록 영약으로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뚝뚝 떨어지는데다가, 정순함 역시 떨어지니 돈으로 실력을 쌓는 일에는 명확한 한계가 존재한다.

다행히 나는 천무호심결이라는 최상의 심법을 익히고 있었기에 여러 영약이라도 하나의 정순한 내공으로 만들 수 있었다.

내공이 늘어남에 따라 효능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그래도 아직 일갑자 내공 전이니까, 여전히 영약을 사는 일은 효과적인 선택이라 할 수 있었다.

이번에 마정수 일을 겪으면서 느낀 바들이 있었다. 무림맹에서 뭔가 생각지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최대한 빨리 강해져야 한다.

나는 이미 추혼수라검술의 완벽한 초식을 구사할 수 있다. 또한 매일 빠지지 않고 수련을 해서 체력을 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내공이었다.

어서 일갑자를 넘겨서 사초식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정말 앞의 초식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으니까.

그나저나 흑시에 마땅한 영약이 있어야 할 텐데.

예의 그 흑시의 노인이 나를 맞았다. 오늘도 역시 다른 얼굴로 찾아갔다.

영약을 찾는 내게 노인의 안타까운 대답이 돌아왔다.

“아쉽지만 들어온 영약이 없네.”

“그렇군요.”

가장 많은 돈을 가져왔는데 영약이 없는 것이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할 수 없는 일이다. 노인의 말처럼 영약에는 주인이 있는 법이니까.

“산동의 다른 지부에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네. 점차 영약 공급량이 줄어들고 있다네. 아마도 올해는 영약구경을 할 수 없을 듯하네.”

“할 수 없지요.”

“기왕 온 김에 다른 것들을 한 번 구경해 볼 텐가?”

“좋습니다.”

그래, 한 번쯤 어떤 물건들이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노인을 따라 방을 나섰다.

장원의 마당을 지나 그와 함께 도착한 곳은 커다란 전시실이었다. 어찌나 큰지 연회를 열었던 양소방의 대청만큼이나 컸다.

그곳에 온갖 물건들이 다 전시되어 있었다.

특이한 것은 그곳의 물건들은 두 종류로 나눠져 있다는 점이었다.

벽을 따라 쇠창살이 둘러세워져 있었다.

그 창살 너머에 있는 물건들이 비싼 물건들이었다. 바깥의 물건들이 상대적으로 싼 물건들이었고.

나는 이 평범해 보이는 쇠창살이 보통의 강철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만년한철만큼의 강도는 아니겠지만, 어지간한 검기와 검강도 막아내는 금속일 것이다.

전성기 시절의 나는 검강을 일으켜 만년한철도 잘라냈다. 사파의 흑룡제(黑龍帝)와 싸울 때였는데, 그는 만년한철 너머 비상통로로 달아나면서 나를 한껏 비웃었다.

내가 검강을 일으키자 그는 더욱 크게 웃었다.

하지만 내 검강이 그것을 잘라내기 시작했을 때, 그의 표정을 봤어야 한다. 그는 결국 비상통로를 다 빠져나가지 못하고 내게 잡혀서 죽었다.

노인이 나를 검이 전시된 곳 앞으로 데려갔다.

“차고 있는 검이 꽤 낡아 보이는데 검 한 자루 사게나.”

하하하.

내심 웃음이 나왔다.

이 평범하게 위장된 검집 안에 어떤 검이 있는지 모르고 하는 소리다. 천조검이 들으면 많이 섭섭할 소리지.

노인이 쇠창살 너머에 걸려 있는 검을 가리켰다.

“저 검은 풍진검(風眞劍)이네. 당시 강북제일검이라 풍진대협이 차던 검이었지.”

나는 풍진을 알고 있었다. 내가 젊은 시절 그와 겨룬 적이 있었다. 이백 오십초 만에 그를 이겼다. 이후 그와 가끔씩 서찰을 주고받았는데 언젠가부터 소식이 끊어졌다.

검이 여기에 나와 있는 것을 보니 아마도 죽은 모양이다.

‘선배, 부디 좋은 곳으로 가셨기를.’

마음속으로 그의 명복을 빌어주었다.

“얼마입니까?”

“구만 냥이네.”

“구만 냥이라고요?”

내가 깜짝 놀라 물었다. 생각보다 훨씬 비쌌던 것이다.

“풍진대협이 차던 검이지 않나?”

“그렇군요.”

풍진검이 구만 냥이나 하면 대체 이 천조검은 얼마나 비싸다는 말인가? 검자체도 훨씬 좋은데다가 무림맹주가 사용하던 검이란 가치까지 붙는다면? 몇 십만 냥은 족히 나갈 것 같았다. 물론 팔 생각도 전혀 없었

고, 개조를 해서 그만큼 비싸진 않겠지만.

만약 수라명왕검을 가져온다면 그야말로 부르는 것이 값이란 생각이 들었다.

풍진검 이외에도 몇 자루의 검이 있었다. 풍진검보다 한 단계 아래의 고만고만한 검들이었다. 그것들만 해도 삼만 냥에서 오만 냥이나 했다.

풍진검은 어렵겠지만 아래 급의 검들은 이 천조검으로 잘라버릴 수 있었다.

검을 구경한 후에 이것저것 다른 것도 구경했다. 도나 창, 권갑, 호신갑 등 온갖 강호의 병장기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저것 한 번 사볼까 싶은 것들은 너무 비쌌다.

가령 예를 들면 심장을 보호하는 호심갑(護心鉀) 같은 경우는 십만 냥이나 했다.

물론 어지간한 검기에도 잘리지 않는 상급의 품질이라 언젠가 목숨을 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 상황에서는 가격과 성능을 생각할 때 효율이 너무 떨어졌다. 쇠창살 너머 비싼 것들을 모두 둘러본 후 시선을 돌렸다.

나는 값이 훨씬 싼 쇠창살 바깥의 물건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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