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천마-53화 (53/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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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가까이(2)

야상의 본거지는 발칵 뒤집어졌다.

뒤늦게 구철이 죽인 사내의 신분패가 발견되면서 그가 천도문의 시곤임이 밝혀진 것이다.

“이 미친놈아! 그렇다고 놈을 죽여 버리면 어떻게 해?”

야천의 호통에 구철이 억울함을 호소했다.

“저도 죽일 생각은 없었습니다. 한데 놈이 눈깔을 뒤집고 달려드는 것을 어떻게 합니까? 애들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래도 이 새끼가!”

싸대기라도 맞을까봐 구철이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야천이 한숨을 내쉬며 걱정했다.

“하필 천도문이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무도 목격한 사람이 없습니다. 게다가 놈의 시체는 완벽하게 없애버리지 않았습니까?”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자가 있다.”

“네? 대체 누가 봤답니까?”

“그 자의 행방을 알려준 놈!”

“아!”

야천이 심각한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누군가 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점. 그것은 시곤을 죽인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였다.

“우린 놈에게 제대로 약점을 잡힌 거다.”

“죄송합니다.”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구철이 고개를 푹 숙였다.

야천은 더 이상 그를 야단치지 않았다. 이번 일은 구철의 책임이 아니었다. 애초에 보내지 말아야 할 곳에 보낸 자신의 책임이다.

시곤의 행방을 알려준 자는 자신의 손을 빌려서 그를 제거했다.

‘대체 왜?’

시곤의 품에서 전표뭉치가 나왔다는 것은 애초에 전표를 훔친 놈이 연락을 해온 바로 그 놈이란 뜻.

‘산동상회의 돈을 가로채고, 이런 함정을 만들 정도의 놈이라면?’

굳이 자신의 손을 빌리지 않아도 시곤을 제거할 수 있지 않을까? 한데 왜?

구철이 퍼뜩 생각이 났다는 듯 빠르게 물었다.

“혹시 우릴 노린 것 아닐까요?”

“새끼, 일찍도 생각해 낸다. 당연히 그렇겠지.”

“어떤 놈인지 제가 작살내겠습니다.”

“그러려면 누군가부터 밝혀야지. 마정수와 관련해서 뭔가 문제가 발생한 것이 틀림없다. 은밀히 마정수에 대해 캐도록.”

“한데 놈들을 건드려도 되겠습니까?”

“이렇게 된 이상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냥 있다간 병신처럼 누구에게 당했는지도 모르고 당하고 말 거다. 암튼 마정수부터 알아 봐.”

“네, 맡겨 두십시오.”

구철이 밖으로 나갔다.

야천이 창가로 걸어갔다. 뭔가 자신이 모르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오랜만에 심장이 뛰고 살이 떨렸다.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위험한 일을 해결했을 때에는 언제나 큰 보상이 따르는 법이었으니까.

* * *

마정수가 정신없이 방안을 오가고 있었다.

다음날이 되어도 시곤은 돌아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에게 화가 났다.

그깟 일로 집을 나가다니? 이 얼마나 유치한 반항이란 말이던가? 정말 한심하기까지 했다.

오후가 되어서도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부터는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어디 가서 쉽게 당할 사람이 아니라며 애써 불안감을 털어냈다. 그 과정에서 애꿎은 책상만 또 부서졌다. 벌써 몇 번째 부서지는 것인지 모를 정도다.

저녁이 되도록 시곤이 돌아오지 않자, 마정수는 시곤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는 화가 난다고 말도 없이 떠나버릴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마정수는 온 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 들었다.

“멱을 따버릴 새끼들! 네깟 놈들이 아무리 그래도 난 물러서지 않는다.”

분노의 대상은 자신의 형제들이었다. 그들 중 하나가 저지른 짓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동기도, 능력도, 그들 외에는 생각할 수 없었으니까.

어려서부터 그놈들에게 지기 싫었다. 자신의 모친이 시비란 이유로 어려서부터 엄청나게 괴롭혀온 형제들이었다. 아니, 형제가 아니라 개새끼들이었다.

“내가 어떻게 복수할지 두고 봐.”

그때 반쯤 열린 문 앞에서 누군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바로 그 신비 여인이었다.

“이 봐!”

화난 마정수의 호통에도 여인이 평소처럼 무표정했다.

“다 보고해. 하나도 빠지지 않고 다 보고해. 내가 혼자서 어떻게 이 상황을 역전하는지. 알겠나?”

여인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버럭 소리쳤다.

“알겠느냐고!”

끝내 여인은 아무 대답도 없이 그곳을 떠났다.

“건방진 년! 감정도 없는 목석같은 년. 내가 후계자가 되면 네 년 모가지부터 비틀어 버릴 테다.”

그 말은 열린 문을 통해 복도를 걸어가던 여인의 귀에 모두 다 들렸다.

적어도 그녀가 감정이 없는 목석이란 말은 틀렸다.

그 말을 들은 여인의 무표정에 싸늘함이 더해졌으니까.

* * *

다음 날, 눈을 뜨자마자 마정수는 정여를 찾아갔다.

시곤마저 당한 마당에 그대로 있을 수는 없었다.

“어인 일이십니까?”

“내 정방주에게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아왔소.”

갑작스러운 그의 방문에 정여는 내심 긴장했지만 최대한 태연히 그를 맞았다.

“말씀하시지요.”

“이미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오. 이번에 산동상회와의 연합이 무산되게 되었소.”

“여러 악재들이 겹쳤지요. 하지만 마공자께서는 잘 극복해 내시리라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정방주가 나를 좀 도와줘야겠소.”

“어떻게 말씀입니까?”

“무관설립 계획을 이렇게 중단할 수는 없소. 정방주께서 도와주시오.”

정여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도와달라는 말이 무슨 뜻이겠는가? 우선 돈을 달라는 말일 테고, 아울러 양소방의 힘을 빌려달라는 말이었다.

“마대협의 대업에 보잘 것 없는 본방이 나섰다가 폐만 끼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좋게 거절했지만 마정수는 물러서지 않았다.

“양소방은 명실공히 산동제일방파가 아니오? 이번에 정방주가 나서준다면 나는 영원히 이번 도움을 잊지 못할 것이오.”

마정수는 어떻게든 무관을 설립해서 산동에 천도문의 기반을 세워야 할 처지였다. 이것을 해내지 못하면 후계자 시험에서 보기 좋게 탈락하게 될 테니까.

이 고비만 넘기면 된다.

무관설립 계약이 파기되었지만 돈만 마련하면 다시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파산했다는 소문 때문에 파기된 것이니, 돈만 있으면 아무 문제없다.

처음에 양소방을 건들지 않은 것은 그럴 필요가 없어서였다. 양소방에 머물고 있으면서 그들에게 손을 벌리면, 외부에서 보기에 좋지 못하다는 화선노대의 충고 때문이기도 했고.

하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양소방이 도와서 고비를 넘긴다면 첫 번째 시험은 통과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시험이 주어졌을 때, 더 멋지게 해낼 것이다. 새로운 수하들을 끌어 모을 것이다. 이번에 자신이 맞았으니, 다음에는 자신이 경쟁자들의 뒤통수를 날릴 것이다. 그냥 휘청대는 것이 아니라 한방에 머리통

이 날아갈 정도의 통수를.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제게 생각할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좋소. 하지만 나를 너무 기다리게는 하지 마시오.”

“곧 찾아뵙겠습니다.”

방을 나서던 마정수가 내심 코웃음을 쳤다.

‘흥! 어떻게든 발을 빼고 싶겠지만 쉽지 않을 거다.’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다 이용할 생각이었다. 단물이 다 빠지면 껍데기까지 질겅질겅 씹다가 버릴 작정이다.

‘두고 봐, 난 그냥 죽지 않아.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 * *

마정수를 돌려보낸 후 정여가 내 방으로 찾아왔다.

그리고는 마정수가 했던 요구를 전한 후 걱정스럽게 말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확실히 걱정스러운 일이었다. 저 탐욕스러운 놈은 한 번 돕기 시작하면, 솜이 물을 빨아 들이 듯 양소방의 재산을 탕진할 것이다.

“제 욕심을 위해 양소방을 희생시킬 작정이군.”

“그런 것 같습니다.”

정여는 한바탕 욕을 내뱉고 싶은 표정이었다. 그래서 대신 해주었다.

“더럽고 치사한 새끼, 싸대기를 쳐올린 후 작살내버리고 싶으시지요?”

“자근자근 밟아버리고 싶습니다.”

그제야 화가 풀리는 표정이었다.

“걱정 마시오, 놈의 최후가 멀지 않았소.”

이미 난 야상과 엮어서 없애버릴 큰 계획을 세워두었다. 다만 세부적인 몇 가지 문제가 남아 있을 뿐이다. 그 중 하나가 신비 여인이었고.

“차라리 잘 되었소.”

“어떻게 하시려고요?”

내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놈이 스스로 섶을 지겠다면, 불을 붙여줘야겠지요.”

* * *

다음 날, 나는 정여와 함께 마정수를 찾아갔다.

정여가 차분히 준비해간 말을 꺼냈다.

“아시겠지만 제가 방주가 된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부끄럽게도 아직 완벽하게 본방을 장악하지 못했지요. 그래서 본방의 여러 일에서 손을 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 대신 공자님을 옆에서 도와줄 사람을 소개해 드리

겠습니다.”

마정수가 나를 유심히 살폈다.

하지만 인피면구를 쓰고 목소리를 완전히 바꿨기 때문에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것도 최상급 면구로 바꿨다. 면구전문가가 아니라면 절대 알아볼 수 없었다. 값이 매우 비쌌지만 일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절대 소홀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제가 가장 아끼는 무인입니다. 실력도 좋고, 총명하기까지 해서 마대협께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정여의 소개에 내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갈표라고 합니다.”

갈사량의 성과 백표의 이름을 딴 가명이었다.

나는 이번이 그 여인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강호에 이런 말이 있다.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

마정수의 얼굴에 못마땅함이 스치자 정여가 재빨리 말했다.

“물론 본방에서 재정적으로도 적극 지원할 겁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돈을 적극 지원한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마정수의 표정이 풀어졌다.

“좋소. 정방주가 이렇게까지 추천하는 사람이라면 믿을 수 있겠지.”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여가 나를 보며 엄하게 말했다.

“귀한 분이니 잘 모셔야 하네. 절대 실수가 없어야 하네.”

정여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네, 명을 받들겠습니다.”

* * *

나는 화선노대가 묵었던 방에 묵게 되었다.

간단히 짐을 풀고 밖으로 나가는데 복도에서 그 여인을 만났다.

마침 그녀는 복도 끝에서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문 앞에 서서 그녀가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았다.

사뭇 긴장되었지만, 그 긴장을 감추지 않았다.

누군가를 처음 만나는 상황에서 너무 긴장하지 않는 것도 이상할 일이었으니까. 나는 완벽하게 내 몸을 조절하고 있었다. 딱 갈표라는 인물이 보일만한 기도를 내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가까이서 본 그녀의 얼굴은 아기자기하거나 화려하지 않았다. 화장기 하나 없는 차가운 느낌 때문일까? 그녀는 조금 중성적인 느낌을 주고 있었는데, 그것이 오히려 묘한 매력을 발산했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아무런 감정이 깃들지 않은 눈빛.

나는 오래 전에 저런 눈빛을 본 적이 있었다.

사파의 조직들에서, 혹은 마교의 조직에서 키워낸 정예들. 갓난아기 때부터 아무런 감정 없이 오직 임무를 하게끔 키워낸다.

그때 봤던 그 지독한 살인병기들의 눈빛이 저러했다.

설마 이 여인도 그런 부류인가?

마봉기가 이 여인을 키워냈다고? 그렇다면 대체 언제부터 이 일을 꾸몄단 말인가? 여인의 나이로 유추해 볼 때, 적어도 이십 년 전에는 키우기 시작했단 말이다. 마봉기의 지난 모습을 생각하면 선뜻 믿어지지 않았다.

아니면 단지 그런 느낌을 주는 눈빛인가? 눈빛만으로 상대의 모든 것을 알아낼 수는 없었으니까. 우연히 비슷한 느낌의 눈빛일 수도 있었다.

그녀가 코앞까지 다가왔을 때 내가 먼저 인사했다.

“나는 갈표요.”

그녀가 힐끗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것 뿐이었다. 그녀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그냥 말없이 지나쳐 걸어가 버렸다.

“이보시오! 인사를 했으면 인사를 받아야지. 당신 이름이 뭐요?”

여인은 모퉁이를 돌아서 사라져 버렸다.

그녀를 다시 본 것은 그날 밤이었다.

잠이 오지 않아 산책을 나갔는데 그녀가 연못가에 서 있었다.

연못 주위를 푸르게 흘러넘치는 달빛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너무나 하염없이 연못을 내려다보고 있어서일까?

그녀에게서 외로움이 느껴졌다.

내가 느낀 그녀의 외로움은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시려서 보듬어 주고 싶은 그런 온전한 외로움이 아니었다.

텅 빈 외로움.

아무 것도 없어서 위로조차 할 수 없는 공허한 외로움이었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한참동안 지켜보다 안으로 들어왔다. 내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다음날부터 그녀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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