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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천마-34화 (34/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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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속으로(1)

실전훈련과 관련해서 공수찬은 한 가지 일을 제안했다.

“마침 표행 건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강소성의 태주상단(泰州商團)이 이곳에 왔다가 거래하던 태안표국(泰安?局)과 일이 틀어진 모양입니다. 급히 다른 표국을 찾았는데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한 듯 합니다.”

“주위에 다른 표국이 있지 않소?”

“표국들은 평소에는 원수처럼 싸우다가도 힘을 합쳐야 할 때는 형제처럼 굴지요.”

“그들이 태안표국의 편을 든다?”

“네, 그런 모양입니다. 아무튼 시간을 지체할 수 없게 되어서 이번 호송이 아주 비싸게 나왔습니다.”

“얼마요?”

“이천 냥입니다.”

표물의 가치가 상당한 모양이었다.

“따라서 조금 위험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만약 검대원들만 보낸다면 이번 일은 거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첫 번째 실전 임무인만큼 내가 따라갈 작정이다.

“좋소, 이 일로 하겠소.”

나는 그길로 철방에 가서 암기용으로 사용되는 비수를 스무 자루 샀다. 나는 비도술에도 제법 조예가 있었는데, 급할 때 비수만한 것이 없다.

겉으로 표는 내지 않았지만 그만큼 나도 긴장하고 있었다.

* * *

다음 날 우린 태주상단의 짐을 인수하였다.

마차 세 대에 실어야 할 짐이었다.

따로 쟁자수는 고용하지 않았다. 그리 짐이 많지 않은데다가 검대원 중에 표국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었던 이가 있어서 우리가 해결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한참 출발준비를 하고 있는데 태주상단 쪽 상인이 내게로 왔다.

“벽씨검문의 정식 검대가 아니라 소검대라고 들었소.”

사전에 우린 미리 벽씨검문의 소검대임을 명백히 밝혔다.

“그렇습니다.”

“귀한 물건이오. 부디 잘 신경 써 주시오.”

시간이 급해서 어쩔 수 없이 우릴 선택했지만 아무래도 미덥지 못한 모양이다.

“걱정 마십시오. 물건은 잘 도착할 겁니다.”

“그럼 부탁드리겠소.”

어디 그의 걱정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걱정에 비할까. 정말이지 두 분은 걱정이 태산이셨다.

나는 차분히 두 분을 설득했다. 언제나 잘 통하는 두 가지, 우물 안 개구리로 살기 싫고, 온실 속의 화초로 키우면 안 된다로 밀어붙였다.

사실 그 마음은 검대에 대한 내 마음이기도 했다.

언제까지 온실 속의 화초로 키울 수는 없다. 혼자서 백 날 수련하는 것보다 한 번의 실전이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온실 밖의 비바람을 견뎌내야 한다.

우리의 목적지는 강소성 서주(徐州). 그곳에서 태주 상단 사람들에게 물건을 인도하면 되는 것이다. 예상 소요 시간은 십 일이었다.

우린 순조롭게 출발했다.

세 대의 마차에 다섯 명씩 배치했고, 나머지 다섯 명은 앞뒤를 경계했다.

물론 광두도 데려갔다. 아직 말을 탈줄 모르는 광두를 위해 첫 번째 마차를 내가 직접 몰았다. 광두를 내 옆에 앉혔다.

“저도 따라 가도 되는 겁니까?”

광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무래도 검대원들과 함께 가는 것이 눈치가 보이는 모양이었다.

“당연히. 넌 내 오른팔이지 않느냐?”

“그렇죠?”

오른팔이란 말에 경직된 표정을 풀었다. 요즘 광두가 신경 쓰는 사람은 바로 관휘였다.

관휘는 절도 있게 검대원들을 지휘했다. 검대원들의 기강은 제대로 잡혀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광두가 속삭였다.

“쟤는 형 같아요. 두 살이나 어린데.”

“내가 봐도 그래.”

“아니, 도련님까지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저야 도련님의 즐거움을 위해 어른스러움을 버린 것이고요.”

“하하.”

그래, 그건 인정해야지. 너로 인해 내가 즐겁다는 것은.

사실 관휘도 광두를 의식하고 있었다. 광두가 의식하는 것에 자연스럽게 그도 반응한 것이리라. 또 내 신임을 얻고 싶은 욕심도 있을 테고.

아마도 광두가 있어서 관휘는 더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발전적인 경쟁은 내가 원하는 바였다.

며칠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

우린 주로 숲에서 야영을 했다.

밤에는 네 명씩 돌아가며 불침번을 섰다. 순서를 정하고 시간을 정했다.

이 모든 과정이 하나의 검대가 성장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 믿는다.

내공은 영약으로 한꺼번에 늘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경험은 결코 한 번에 이룰 수 없는 것들이었다. 말로 듣는 것과 직접 경험하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하다못해 모닥불을 피우는 것 까지, 직접 경험해 보았을 때만이 진짜 자기 것이 된다.

여행의 긴장이 풀릴 즈음 우리 앞을 막아서는 자들이 나타났다.

복면을 착용한 삼십 여명의 무인들이었다.

수장으로 보이는 자가 차갑게 말했다.

“물건을 내놓고 꺼지면 목숨은 살려주겠다.”

가히 놈들의 기세는 상당했다. 마구잡이로 모인 도적놈들이 아니었다.

그 자신감이 밤에 기습을 하지 않고, 대낮에 버젓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우리에겐 다행한 일이었다.

“훈련받은 대로 진형을 갖춰라!”

내 명령에 검대원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검대의 훈련에는 여러 유형의 적들을 상대하는 방식이 있었다. 이와 같이 전면에 모두 나타났을 경우에는 사람인(人)자 대형을 선다. 가장 강한 이가 앞쪽으로 꼭대기 쪽에 서고, 두

번째 세 번째 강한 사람이 좌우로, 그리고 무공 순서대로 배치된다.

복면사내가 두말없이 공격명령을 내렸다.

“쳐라!”

복면인들이 달려들었다.

원래라면 그냥 맡겨두었겠지만 이번에는 상대의 숫자도 많았고, 실력도 우리 검대원 못지않았다.

쉭쉭쉭쉭쉭!

내가 기습적으로 던진 비수에 복면인 다섯이 몸을 뒤집으며 쓰러졌다.

숫자를 줄이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기세를 꺾기 위해서였다.

과연 뒤따르던 복면인들이 흠칫했다.

그때 내가 소리쳤다.

“쳐라!”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우리 쪽 사기가 높아졌다.

“관조장은 왼쪽으로, 광두는 오른쪽을 맡아라! 배운 대로 하면 된다!”

그리고 나는 가운데 적의 수장을 상대했다.

추혼수라검법은 사용하지 않았다. 내 가문의 무공인 백월검법으로 놈을 상대했다.

쉬이익!

날아드는 검을 피하며 내 검을 비스듬히 쳐올렸다. 속전속결로 처리할 작정이었다.

생각보다 빠른 속도에 사내가 당황하며 몸을 비틀었다.

내 예상대로의 움직임이었기에 두 번째 내 공격은 치명적인 한 수가 되었다.

쉬이익!

서걱!

사내의 옆구리가 크게 베이며 피가 튀었다.

놈이 옆으로 쓰러지면서 암기를 날렸다.

창!

암기를 쳐내며 그대로 쇄도했다.

푸욱!

내 검이 그대로 사내의 심장을 관통했다. 그는 자신이 이렇게 무기력하게 당했다는 것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절명했다.

검을 뽑으며 곧장 돌아섰다.

장내의 싸움이 순식간에 내 눈에 들어왔다. 평생을 싸움터에서 보낸 나다. 온갖 난전을 다 겪은 나였다.

누가 가장 위험한 상황인지 순식간에 눈에 들어왔다.

쉭!

내 손에서 비수가 날았다.

푹!

우리 검대원의 배를 찔러가던 놈의 등에 비수가 박혔다.

나는 두 번째로 급한 쪽을 향해 몸을 날렸다.

검대원을 몰아붙이던 두 녀석 중 하나가 나를 향해 돌아섰다.

“감히 어딜?”

놈이 모질게 검을 내질렀다.

그에게는 불행한 일이지만 나는 ‘감히 어딜’ 이란 말을 들을 상대가 아니었다.

몸을 살짝 틀며 날아드는 검을 피했다. 검이 내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내 검은 달랐다.

푸아악!

내 검이 단숨에 놈의 심장을 꿰뚫었다.

동시에 내공을 담아서 소리쳤다.

“정신 차려!”

내 말에 공격을 당하던 검대원이 정신을 번쩍 차렸다. 이내 다른 동료를 돕기 위해 몸을 날렸다.

내가 다시 장내를 살폈다.

이미 광두의 손에 세 놈이, 관휘의 손에 두 놈이 쓰러진 상태였다. 나머지는 난전을 벌이고 있었다.

광두와 관휘가 실력을 발휘했기에 우리쪽이 유리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부터 조금 느긋하게 장내를 살피며 적을 베어가기 시작했다.

이길 만한 싸움은 그냥 두고 아슬아슬한 싸움부터 개입했다.

내가 싸움을 조율하기 시작하자 양쪽의 균형은 급속도로 무너졌다.

내가 검을 날릴 때마다 어김없이 한 놈씩 쓰러졌다. 백월검법이 극한의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마지막 놈을 쓰러뜨린 것은 광두였다.

푸욱!

그가 죽인 네 번째 적이었다.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을 터인데, 넷이나 죽인 것이다. 아직 제대로 된 내공이 없었음에도 이런 성과를 거둔 것은 남해칠식의 위력이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도를 든 광두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

었다.

내가 검대원들부터 살폈다.

“다친 사람은?”

몇 몇이 팔과 다리를 베였다. 하지만 다행히 살이 베인 정도였지 치명적인 상처는 아니었다. 내가 빠르게 대처한 탓이었다.

“금창약으로 상처를 치료해라. 몸이 성한 사람은 사방 경계를 하도록!”

내 명령에 모두들 빠르게 움직였다. 다들 제 정신이 아니었다. 이런 대규모 싸움 경험이 있는 이들도 있었지만, 반 이상이 처음이었다. 심지어 광두처럼 처음 사람을 죽여 본 이도 태반이었다. 제대로 실력을 발휘한 관휘 역

시 오늘 처음 사람을 죽여 본 것이다.

부상을 치료한 후에 그들을 불러 모았다.

“모두 괜찮나?”

“네.”

가장 먼저 광두에게 다가갔다.

“처음이지?”

“네.”

광두의 목소리가 떨렸다. 손과 옷에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놀란 상태라 그렇지 보통 사람은 이 피비린내를 견디기도 쉽지 않았다.

“광두야.”

“네.”

“뒤를 돌아봐라.”

광두가 뒤를 돌아보았다.

“네가 그 놈들 넷을 죽이지 않았다면 지금 저 사람들 중 넷이 없을 거다.”

모두들 광두를 새삼스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실없는 농이나 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대단한 실력을 발휘한 것이다. 고마움이 서린 그들의 눈빛에 광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래, 쉽지 않은 일인 줄 안다. 하지만 강호인이 된다는 것은 의로움을 위해, 그리고 동료를 위해 기꺼이 내 손에 피를 묻힐 수 있어야 한다. 아무나 칼만 차면 강호인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이 강호에 진짜 강호인은 그럴

각오를 한 사람들이다. 그 힘든 일을 이겨내는 사람들이다. 광두야. 너는 진짜 강호인이 되고 싶으냐?”

광두가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큰 소리로 말했다.

“네, 저는 진짜 강호인이 되고 싶습니다.”

“오늘 너는 정말 잘 싸웠다. 고맙다.”

“도련님. 감사합니다.”

광두가 어찌 모르겠는가? 혹시라도 살인으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까봐 이렇게 신경을 써주는 것임을.

내가 관휘를 불렀다.

“괜찮으냐?”

“네.”

이미 광두에게 한 말을 들은 후였기에 관휘의 눈빛도 살아 있었다.

“한 번은 겪어야 할 일이고 앞으로 계속 넘어서야 할 일들이다. 자, 모두들 옆 사람을 한 번씩 보도록.”

그러자 검대원들이 옆에 선 동료를 돌아보았다.

“잘 싸워주었다. 그대들이 훌륭히 싸워서 옆에 있는 동료들의 목숨을 지켜줄 수 있었다. 서로에게 고생했다는 말 한 마디씩 해주도록.”

검대원들이 서로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내가 말했다.

“아무도 죽지 않고 싸움을 마쳐줘서 정말 고맙다. 나는 너희들이 자랑스럽다.”

내 말에 모두들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내 활약상을 보았다. 그래서 내가 아니었다면 전멸한 쪽은 이쪽이었음을 알고 있었다. 나를 보는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감사합니다, 대주님!”

“소검대 만세!”

우리 첫 번째 싸움이 승리를 거두는 순간이었고, 동시에 나에 대한 존경심이 확고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장내가 정리되자 검대원들이 시체의 복면을 일일이 다 벗겼다. 모두들 나서서 알아볼 만한 얼굴이 있는지 확인했다.

검대원 중 나이든 이 하나가 소리쳤다.

“이 자들은 야수대(野獸隊)입니다.”

“야수대?”

“네, 값비싼 물건만 노리는 도적단입니다. 산동에서는 아주 유명한 자들입니다.”

다른 검대원들이 깜짝 놀랐다.

“설마 우리가 죽인 자들이 야수대란 말이야?”

“맙소사! 믿을 수 없군.”

야수대는 제법 악명이 높은 자들이었다. 그들 때문에 많은 표사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했다.

“아마 무림맹에 현상금이 걸려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얼마나?”

“몇 천 냥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하, 그렇다면 횡재했구나.”

야수대의 습격을 끝으로 더 이상의 공격은 없었다.

무사히 물건을 건네주고 돈을 받았다. 이천 냥이라는 거금을 번 것이다.

가까운 강소성의 무림맹 지부에 그들의 시체를 인계했다.

두목도 있는데다가 서른 명 전원의 시체가 있었기에 확인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들에게 걸린 현상금은 자그마치 칠천 냥이었다. 두목에게 오천 냥, 나머지를 합쳐 이천 냥이었다.

이천 냥을 벌려고 하다가 칠천 냥이 덤으로 따라 온 것이다. 그야말로 호박이 넝쿨째 굴러온 셈이었다.

한 번의 임무를 나가 구천 냥을 벌어온 것이다.

나는 모두에게 공수찬을 통해 받는 임무수당 이외에 삼십 냥씩 특별수당을 더 챙겨주었다. 활약이 컸던 광두와 관휘에게는 오십 냥을 주었다. 모두들 정말 기뻐했다.

돈도 중요하지만, 아직은 사람이 재산이다.

무사히 첫 임무를 끝내고나자 소검대에 대한 위상이 높아졌다. 더구나 우릴 습격했던 이들이 이름난 도적단인 야수대임이 밝혀지자, 오히려 믿지 못하는 이들이 나올 정도였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얼마나 기뻐했는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벌어온 돈에서 몇 백 냥을 제외하고 나머지를 공수찬에게 주었다.

“여기 팔천 냥이오. 이걸 밑천으로 더 불려주시오.”

잠시 말없이 팔천 냥이란 거금을 내려다보던 공수찬이 내게 물었다.

“한데 저를 왜 이렇게까지 믿으십니까? 단지 스승님 때문입니까?”

“처음에는 그랬소. 한데 지금은 아니오.”

“지금 믿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 운명이오. 내 운명에 고작 돈이나 떼먹고 달아나는 총관은 없을 것이란 믿음이오.”

“그러시군요. 알겠습니다, 제가 잘 운영하겠습니다.”

“고맙소.”

저만치 걸어가던 공수찬이 발걸음을 멈췄다.

“다음에 또 여쭐 겁니다. 그땐 믿는 것이…… 저 때문이라는 대답을 듣겠습니다.”

내가 미소를 지어주었다.

돌아서 걸어가는 공수찬의 주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햇살이 뜨거웠다.

환생한 후 맞는 첫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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