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천마-30화 (3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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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작은(1)

소식은 사실이었다.

새 맹주는 그 마봉기였다. 내가 아는 그 색정에 찌든 늙은이.

나는 잠시 수련에 들어간다고 전한 후 곧장 말을 타고 무림맹 본단이 있는 호북성 무한(武漢)으로 내달렸다.

무작정 무림맹 본단으로 간다고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잘 알았다. 아직 내 무공은 무림맹의 대사를 바꿀 만큼 성장하지 않았으니까.

또 어차피 벽리단으로 다시 태어났는데, 누가 맹주가 된 들 무슨 상관이냐는 마음도 들었다. 그냥 조용히 새 삶을 살아가면 그만인 것을.

그럼에도 무한으로 달려가는 것은 갈사량에게 어떤 변고가 생겼을까봐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마봉기가 맹주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이미 맹주가 발표가 났다는 것은 이미 그의 생사도 결정이 났을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앉아서 다른 소식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무한에 도착한 후 가장 먼저 간 곳은 무림맹 본단이었다.

저 멀리 웅장한 무림맹의 건물이 보였다.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이곳은 하나의 독립된 도시라 해도 좋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상주하고 있었다.

높은 담 마다 경계 무인들이 번을 서고 있었고 정문을 지키는 무인들의 숫자만 삼십 명에 달했다.

나는 멀리 떨어진 곳에 서서 그 웅장한 건물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막상 이곳에 와서 무림맹 건물을 바라보니 오는 내내 들끓었던 마음이 차분해졌다.

수 없는 위기를 넘겨온 내 위기본능이 속삭이는 것이다.

이제는 침착해야 할 때라고.

이렇게 외부에서 무림맹 건물을 바라본 것이 얼마만인가 싶었다.

문득 처음 맹주가 되어서 이곳에 들어가던 그날이 떠올랐다.

천하제일인의 자리에 올랐음에도 무림맹주가 된다는 사실은 큰 결심을 요하는 일이었다.

겉으로 표는 내지 않았지만 잘 해 낼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었다. 처음 한두 달은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고.

그날이 엊그제 같은 데,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났다.

덕분에 무림맹에 대해서는 내 몸처럼 잘 알고 있었다. 길이며 건물이며, 어디에 누가 있고 누가 지키고 있는지까지. 당장에라도 몸을 훌쩍 날려 내원에 있는 갈사량의 집무실까지 단숨에 달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아직 내 실력은 무림맹의 내전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을 실력이 아니었다. 외원이라면 어떻게 잠입할 수 있겠지만, 내전은 무리였다. 그곳의 경계가 얼마나 엄중한지는 내가 잘 알고 있었다. 잠입은 무리였다.

일단 본단에서 가까운 객잔에 방을 하나 잡았다.

하나 남은 방이라며 운이 좋다며 주인장이 호들갑을 떨었다. 새 맹주가 발표되고 이곳 무한에 수많은 강호인들이 모여들고 있다고 했다. 내달 초에 있을 취임식에 참석하려는 사람들이 미리 모여들고 있는 모양이었다.

역대 최고 규모로 취임식이 열린다는 소문이 벌써부터 돌고 있었다. 무한은 그야말로 새 맹주 취임과 관련해 열풍에 휩싸여 있었다.

일층에 내려와 술을 한 병 시켜두고 사람들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곳에서 한 시진 있으면서 느낀 것은 많은 사람들이 마봉기가 맹주가 된 일에 별다른 위기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중원오세의 주인 중 한 명이었으니 당연한 결과라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사람들은 의외로 마봉기에 대해 잘 알고 있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근거 없는 소문들이 떠돌고 있었다.

“흑도십삼맹의 수장 중에서 암영궁주(暗影宮主)를 마문주가 죽였다는 말 들었나?”

“나도 들었네. 마문주가 죽인 것을 전대 맹주가 공을 차지했다고 하더군.”

“맙소사! 천하진이 다 없앤 것이 아니었구먼.”

듣고 있던 나는 정말이지 탁자를 내리쳐서 부숴버리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았다. 암영궁주를 죽이기 위해 내가 얼마나 악전고투(惡戰苦鬪)를 펼쳤는지 생각이 나서였다.

아직도 기억난다.

암영궁주를 죽였던 그날을. 뒤늦게 잔당들 몇을 처리하고 나타난 마봉기의 모습을. 위험한 싸움은 어떻게든 피해가던 그 얄미운 모습이.

사마외도와의 전쟁에서 중원오세는 억지로 무림맹을 도왔다. 어떻게든 자신의 가문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애썼다.

물론 이해는 했다. 나라도 같은 처지면 가문을 지키려 했을 테니까.

하지만 그 중에서도 천도문은 유난히도 몸을 사렸다.

그때 내 눈에 찍힌 이후, 숨도 못 쉬고 살아왔는데. 맹주라니?

하지만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 맹주가 되었다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그를 찬양하는 말들이 나돌다니.

소문을 내는 자들을 주의 깊게 보고 있다가 객잔을 나설 때 그들을 미행했다.

설마했는데 내 짐작이 맞았다. 그들은 또 다른 객잔으로 가서 소문을 내고 있었다.

누군가 조직적으로 소문을 내고 있는 것이다.

더 살펴보니 이들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이들 역시 조직적으로 소문을 퍼뜨리고 있었다.

대부분 천도문주의 숨겨진 영웅담이나 미담 등이었는데 과장하거나 아예 지어낸 이야기들이었다.

이 새끼들이 정말!

천도문에서 나온 자들이 틀림없었다.

문득 예전에 갈사량이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천하제일인이 되었다고 중원을 지배할 순 없습니다.”

강호를 지배하는 것은 권력이다. 맹주시절 내 명령을 따르는 수만 명의 수하들이 있기에 이 넓은 중원을 통치할 수 있는 것이다.

천하제일인은 그저 천하에서 가장 싸움을 잘하는 사람일 뿐이다. 물론 천하제일인이기에 맹주도 죽일 수 있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이 강호를 다스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당장 이 일만 해도 그렇다. 중원 곳곳에서 일어나는 이 일을 나는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저기 저 소문을 내고 있는 녀석을 두들겨 팬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심지어 나는 천하제일인도 아닌 상태다.

얼마 후, 나는 무림맹 본단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한 주점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주로 무림맹 무인들이 술을 마시는 곳이었다. 물론 주로 무림맹 무인들이 온다는 말이지 일반 사람이 들어가지 못하는 곳은 아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다. 과연 무림맹 복식을 한 사람들이 반 이상이었다.

한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한참을 있어야 할 터이니 요리와 술을 푸짐하게 시킨 후 주위 대화를 들었다.

임독양맥 타통 후 청각 능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상태였기에, 정신을 집중하면 주점 구석구석의 대화를 다 들을 수 있었다.

화제는 온통 새 맹주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 여자 문제에 관한 이야기, 뜻밖에 대단한 사람이란 이야기, 날조된 이야기, 온갖 검증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었다.

나는 참을성 있게 꾸준히 기다렸다.

자정 무렵, 드디어 나는 내가 듣고자 한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한 옆에서 들려오는 대화가 바로 내가 기다리던 것이었다. 그들은 정의각 소속의 복장을 입고 있었다.

“오늘 갈 군사님 봤어? 안색이 너무 안 좋으시던데.”

“그럴 만도 하지.”

“이제 갈군사님은 어떻게 되는 거지?”

“글쎄. 좌천되지 않을까?”

“그렇겠지?”

“새 맹주가 들어오면 가장 먼저 정의각주부터 갈아치운다는 소문이 있잖아?”

“우린 괜찮겠지?”

“모르지. ”

그들은 이제 다른 화제의 대화를 나눴다.

갈사량이 살아 있음에 나는 안도했다. 잔뜩 긴장하고 경직된 몸과 마음이 일시에 풀어졌다.

그래, 살아 있으면 되었다.

백표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았다.

정치적인 폭풍에서 가장 안전한 곳 중의 하나가 맹호단이다. 맹주 호위가 주임무인 그들은 독자적인 단체로 취급받았기에 권력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적었다. 특히 백표는 일체 정치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자신의 임무만

묵묵히 수행하는 무인이었다.

갈사량의 생사를 확인하자 이제 본격적인 의구심이 솟구쳤다.

왜 막지 못한 것이지? 이렇게까지 발표를 지연하면서까지?

내 직속삼단이 건재 하는 한 갈사량이 제 뜻을 펼치지 못할 이유가 없을 텐데.

설마 그들이 돌아섰단 말인가?

그에 관한 내용은 이곳에 백 날 앉아있어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리라.

곧바로 주점을 나섰다.

* * *

다음날 아침 일찍 객잔을 나섰다.

가장 좋은 것은 갈사량을 통해 사건의 전말을 듣는 것이겠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무림맹의 총군사를 만나는 것도 어렵지만, 설령 만난다 하더라도 나는 천하진이 아니라 벽리단이었다.

내막을 알아내는 것은 정보상인을 통하면 될 것이다. 물론 지금은 살 수 없다.

이 정도의 정보라면 그 값이 만 냥을 넘어설 것이다. 게다가 아직 이 정보가 입수되었는지도 알 수 없는 일.

어쨌든 나중에는 이 모든 내막을 알아낼 방법이 생길 것이다.

단지 지금은 갈사량의 얼굴이라도 한 번 보고 싶었다.

그때 한 사람이 떠올랐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도착한 곳은 불루(不漏)라는 다루였다. 불루란 새지 않는다는 뜻을 지닌 말이었다.

“어서 오세요.”

차분한 분위기의 중년여인이 미소로 맞이했다.

지금 이 순간은 이 강호에서 오직 몇 사람만이 아는 비밀을 대하는 순간이다.

이 여인이 바로 천망회의 회주였다.

강호삼대 정보단체 중 하나인 바로 그 천망회 말이다.

이곳의 이름이 불루인 것도 천망회의 이름과 관련이 있었다.

천망회회소이불루(天網恢恢疎而不漏).

하늘의 그물은 넓고 성기지만 빠뜨리는 것이 없다는 뜻으로 죄를 지으면 반드시 벌을 받는다는 뜻이 담긴 말이다.

천망회란 이름은 역설적인 의미였다.

넓고 성긴 그물로 어찌 모든 정보를 담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하늘의 그물이 그러하듯, 자신들도 그 어떤 정보도 빠뜨리지 않겠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던 것이다.

“찾으시는 차가 있으신지요?”

“추천해 주시는 것으로 먹겠습니다.”

“잠시 기다려 주세요.”

나는 한 옆 창가 자리에 앉았다.

주방에 백발이 성성한 노파의 모습이 보인다. 회주도 고수지만 진짜 고수는 주방의 저 노파였다. 회주를 지키는 수신호위.

그녀는 언젠가 갈사량과 함께 내게 인사를 온 적이 있었다.

천망회의 회주가 여인이란 점에 놀랐고, 삼십대의 나이치고는 굉장히 젊어 보이는 미녀였다는 점에 또 놀랐던 기억이 난다.

내 기억으로는 갈사량이 그녀에게 호감을 가졌던 것 같았다. 갈사량 역시 평생 군사일을 하느라 혼인을 하지 못했다.

그런 갈사량이 여인에게 호감을 가지는 것을 처음 봤기에 잘 되기를 바랐다. 나중에 그녀에 대해 슬쩍 물어봤을 때, 갈사량은 웃음으로 무마하고 말았다.

이후에 그녀에 대해 잊고 있었는데, 정보를 사야하나 생각을 하니 문득 그녀가 떠오른 것이다.

혹시나 갈사량이 이곳에 들르지 않을까?

“제가 좋아하는 차랍니다. 한 번 드셔보세요.”

냄새를 맡아보니 마음이 차분해지는 향이었다. 맛도 나쁘지 않았다.

“좋네요.”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이네요.”

그녀와 인사를 했을 때가 십여 년 전이었으니, 이제 여인은 사십대에 들어섰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삼십대 초반처럼 보였다.

“저희 집에는 처음이시죠?”

“네, 무한은 처음입니다.”

벽리단은 정말 처음 와봤을 것이다.

“취임식 때문에 오셨나요?”

“아닙니다.”

“그럼?”

“전대 맹주께 향이라도 한 대 피워드리려고 왔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그녀의 얼굴에 진심을 엿볼 수 있는 안타까움이 스쳤다.

“새 맹주에 대해 아십니까?”

“마대협 말씀이시죠?”

아마도 이 강호에서 마봉기에 관한 정보를 가장 많이 가진 사람 중 하나이겠지만, 그녀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잘 몰라요. 중원오세의 하나인 천도문의 문주란 것만 알 뿐이죠.”

“그러시군요.”

묻고 싶었다. 지금 갈사량은 어떻게 되었느냐고. 왜 마봉기가 맹주가 되었느냐고. 그녀는 모든 것을 대답해 줄 수 있을 텐데.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차를 두어 번 더 시키며 오후 늦도록 기다렸지만 갈사량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럼 전 이만.”

여인이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또 오세요.”

인사를 한 후에 다루를 나섰다.

* * *

나는 무한 외곽의 작은 오솔길을 걷고 있었다.

객잔으로 돌아가기 전에 한 군데 더 들러보고 싶은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 앞으로 작은 주점이 보였다.

펄럭이는 깃발에 바람(風)이라 적혀 있었다.

바람이란 이름이 좋아서였을까? 변두리의 이 고즈넉한 분위기가 좋았을까? 맹주시절 가끔 야행을 나올 때면 이곳에 들러서 술을 마시곤 했다.

본단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 위치한데다 서너 명이 앉으면 꽉 차는 아주 작은 주점이었기에 언제나 손님은 한 두 명이 전부였던 곳이었다.

개인적으로 술을 즐기진 않았지만 이곳의 느낌이 너무 좋았다.

이런 날이면 백표만 수행으로 따라왔는데, 백표는 내가 건네던 술을 한사코 거절하곤 했다.

한잔만 마셔도 된다고 해도 그는 절대 마시지 않았다. 내 호위 임무에 있어서만큼은 정말이지 원칙을 절대 깨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만큼 충성스러운 사람이었고, 그만큼 보고 싶은 사람이기도 했다.

“어서 오십쇼!”

주인장의 인사에 나는 발걸음을 딱 멈췄다.

너무 놀라서 ‘앗’하고 외마디 비명을 내지를 뻔 했다.

인사를 건네 온 주인장이 백표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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