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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는 길목에서(3)
다음날 송화린이 다시 찾아왔다.
“벽가주님께 말씀드렸어?”
그녀의 마음이 급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송우경이 오늘내일 사이에 결정을 내릴 분위기인 모양이다.
“안 드렸어.”
그녀의 얼굴에 번져가는 실망감.
“그래, 어쩔 수 없지. 괜한 부탁을 해서 미안해.”
그녀가 곧바로 돌아서 나가려고 했다.
“방법이 틀렸다고 생각해.”
“뭐?”
“말리면 더 하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다. 그래, 네 말대로 우리 아버지가 간곡히 말리면 그만두실수도 있겠지. 하지만 두고두고 이번 일에 미련이 남지 않을까?”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는 듯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아버지와 네 아버지의 우정에도 금이 갈 수도 있겠지. 네가 바라는 것이 그건 아니겠지?”
“물론이야. 나도 이번 일로 두 분의 사이가 변하는 것을 원치 않아.”
“그래서 이번 일을 그만두더라도 스스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혹은 확실히 거절해야하는 이유를 찾아내거나.”
“확실히 거절해야 하는 이유?”
그녀는 주관이 뚜렷했지만, 쓸데없는 고집을 피우는 유형은 아니었다.
“네 말이 맞아. 하지만…… 대체 어떻게 그 이유를 찾는다는 거지?”
“찾아봤어?”
“뭐?”
“찾아봤느냐고. 네가 말한 그 억눌린 욕망 말고, 말려야 하는 구체적인 이유를 찾아봤느냐고.”
정곡을 찔린 것처럼 그녀가 움찔했다. 이내 그녀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찾아봤다. 그래서 우리 종총관님을 통해서 한 가지 확인해볼만한 일을 알아냈지.”
“그게 뭐지?”
“몇 달 전에 산동상회가 큰 사업을 벌이려고 했다는 내용이야. 한데 어느 순간 그에 관한 이야기가 사라졌다고 해.”
“무슨 사업인데?”
“나도 몰라. 그것이 이번 일과 관련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지. 하지만 대체 왜 그 사업이 중단되었는지 알아볼 필요성은 느껴. 무림문파를 대하는 그들의 자세와 마음을 알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우리에겐 시간이 없어. 아버지는 곧 그들에게 대답을 하실 거야.”
“오늘 내로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 있어.”
“어떻게?”
“정보상인에게 돈을 주고 그들에 관한 정보를 사는 거야.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지.”
“정보상인?”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하긴 아직 한 번도 정보상인을 이용해 보지 못했을 것이다.
“돈이 필요해.”
“얼마나?”
“천 냥? 이천 냥? 정확히 모르겠어. 아마 많을수록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있겠지.”
“미쳤어? 이천 냥은 엄청나게 큰돈이야.”
내 경험상 이런 경우 가장 효과적인 한 마디는 이것이었다.
“선택은 네가 해.”
두 시진 후, 그녀는 돈을 장만해서 다시 찾아왔다. 어디서 어떻게 구했는지는 묻지 않았다. 송가장의 후계자쯤 되면 이천 냥 정도는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상당한 무리를 했겠지. 이천 냥은 스무 살 여자에겐 꽤나 큰 돈이었으니까.
그녀와 함께 정보상을 찾아갔다. 가는 길에 방갓도 두 개 사서 눌러썼다. 그녀는 이 모든 과정이 두렵고도 떨리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정보상에 대한 인상이 좋지 못했다. 어둡고 거친 곳이라는 막연한 두려움과 돈만 받고 속여 먹을 것이라는 불신도 있었다.
정보상을 이용해보지 못한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동행자 역시 그녀 입장에서는 믿을만한 사람이 아닐 테니까.
강호에는 여러 정보상이 있었다. 개인이 운영하는 소규모부터 강호 전역에 지부를 가지고 있는 대규모 정보상까지.
나야 그들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갈사량이 수장으로 있는 정의각은 기본적으로 정보를 다루는 조직이었다.
따라서 자체적인 정보망을 갖췄을 뿐만 아니라 강호의 여러 정보단체들과도 교류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그 중에서 하늘의 그물이란 뜻을 지닌 천망회(天網會)와 교류가 깊었다.
천망회는 귀안곡(鬼眼谷), 만통회(萬通會)와 더불어 강호삼대정보단체 중 한곳이다.
나는 산동에 있는 여러 정보상인들에 대해 미리 알아본 바가 있었다.
벽리검문을 크게 키우는데 있어 두 가지 가장 절실한 것이 있다.
바로 돈과 정보.
이 두 가지를 장악하지 못하면 절대 강한 문파로 성장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곳 산동에 어떤 정보상들이 존재하는지 알아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곳 곡부에 천망회의 지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데리고 그곳을 찾아갔다.
입구에서 그녀가 들어가기를 망설였다.
“나 처음이라 긴장 돼.”
“그럼 바가지 쓴다.”
“뭐?”
“처음 온 표 내지 말라고.”
“알았어.”
그녀가 심호흡을 반복해서 했다. 자신의 볼을 찰싹 때리며 침착하려고 노력했다.
염소수염을 한 중년사내가 우리를 맞았다. 사소한 것 하나 놓칠 것 같지 않은 꼼꼼하고 세심한 인상이었는데, 호감가는 인상은 아니었어도 정보상인이란 직업에는 잘 어울리는 외모였다.
“어떤 정보를 원하시는지요.”
“산동상회에 대해 알고 싶소.”
모든 정보에는 가격이 정해져 있다. 물론 정보는 그 어떤 상품보다 그 가격이 빠르게 변했다. 어제 열 냥이던 정보가 오늘 천 냥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천오백 냥입니다. 원래 이백 냥이었는데, 근래 값이 올랐지요.”
뜻하는 바가 있는 말이었다. 근래 정보의 가치가 오를 일이 있었다는 뜻.
내가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망설이고 있었다.
내가 정보상인에게 말했다.
“잠시 시간을 주시오.”
“그러지요.”
흔한 일이라는 듯 정보상이 흔쾌히 자리를 비워주었다.
나와 그녀가 방갓을 벗었다. 그녀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과연 천오백 냥이나 되는 정보일까?”
“알 수 없지.”
상인이 입을 열기 전에는 절대 알 수 없는 일이다.
“너라면 어쩔 거야?”
“나라면 사.”
망설이지 않는 대답에 그녀가 물었다.
“왜?”
“아버지 일이니까. 만에 하나의 가능성도 남겨두고 싶지 않을 테니까.”
이번에는 그녀가 망설이지 않았다. 다시 방갓을 눌러쓰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보상인이 돌아왔을 때 그녀가 천오백 냥을 내놓았다.
“사겠어요.”
“좋습니다. 알려드리지요.”
내가 그들이 강호문파와 손잡았던 일에 대해 물었다. 그가 그 부분에 관한 정보를 말해주었다.
“몇 달 전, 산동상회는 양소방과 손잡고 하북으로 진출했소.”
“양소방!”
그녀와 나는 다른 의미에서 깜짝 놀랐다. 생각지도 못한 이름이 나온 것이다.
몇 달 전이라면 양기철이 방주로 있던 시절의 일이었다.
“아시겠지만 상단이 다른 지역으로 진출하는 것은 무림문파가 진출하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오. 기존의 상회가 그냥 있지 않기 때문이지요.”
“양소방의 힘을 믿고 밀어붙인 것이군요.”
“맞습니다. 그 과정에서 하북상회를 지원하는 석가장과 충돌이 있었소. 국지적인 싸움이 벌어졌고, 큰 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었지요.”
외부에는 밝혀지지 않은 놀랄만한 일이었다.
“한데 이번에 양소방주가 죽으면서 산동상회는 낭패를 당하게 되었소. 새로 방주가 된 정여가 산동상회와의 관계를 끊어버렸기 때문이지요. 현재 산동상회는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되었소.”
“하북상회와 석가장의 반응은 어떻소?”
“당연히 복수를 위해 벼르고 있소. 들리기로 이번 기회에 하북상회가 역으로 산동진출을 모색한다는 소문까지 있지요. 자, 산동상회와 관련된 정보는 여기까지요.”
만약 이 내용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내용이라면 천오백 냥은 터무니없는 가격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가격에 대해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정보상을 나오자마자 산동상회에게 화를 터뜨렸다.
“산동연합은 다 헛소리였어. 그들은 하북상회와 석가장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릴 끌어들이려고 한 거였어.”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했다.
“정확히 봤어.”
거기에 한 가지 더.
“산동연합이란 쟁점을 내놓아 시선을 거기에 집중시킨 것이지. 본질은 전혀 다른 곳에 있으면서.”
당장 송우경도 산동연합에 신경을 쓰는 바람에 그들이 다른 뜻을 품고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산동상회에 제대로 된 책사가 있다는 뜻이다.
“……무섭네.”
“그래, 무섭지.”
그녀는 꽤나 충격을 받았지만 사실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다. 음모가 난무하는 강호에서 이 정도는 잔머리를 굴린 것에 불과하다.
“당장 가서 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겠어.”
저만치 달려가던 그녀가 나를 돌아보았다.
“고마워.”
“네 돈으로 네가 산 정보야. 내게 고마워할 필요 없다.”
잠시 나를 응시하던 그녀가 뒤돌아 달려갔다.
그녀를 위한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부분은 두 분의 우정을 지켜주기 위함이었다.
그것은 분명 지켜줄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으니까.
* * *
송우경은 산동상회의 제안을 거절했다.
물론 그런 내막을 밝혀냈음을 알리지 않고 좋게 거절했다.
그 일로 송우경과 송화린이 다시 우리 집을 찾았다.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송우경이 내게 감사를 표했다.
“자네 덕분에 그 사실을 밝혀냈다고 들었네.”
“그렇지 않습니다. 린이가 밝혀낸 일입니다. 저는 잠시 동행을 했을 뿐입니다.”
“그렇지 않다는 것 아네. 자네가 아니었으면 본장은 아주 골치 아파졌을 뻔 했네.”
송화린은 이번 일이 다 내 덕분이라고 자세히 말을 전한 모양이다.
송우경이 내 손을 잡았다. 크고 거친 손은 뜻밖에 따뜻했다.
“정말 고맙네.”
나를 향한 눈빛에 신뢰가 느껴졌다.
이번 일에 굳이 의미를 붙이자면 아버지와의 깊은 우정에 대한 보답이었다.
“린이 덕분이지요.”
마지막까지 그녀에게 공을 돌렸다.
송화린은 말없이 서 있었다.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송우경이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말했다.
“우리 사위 덕분에 본장이 큰 화를 피할 수 있었네. 정말 고맙네.”
아버지와 어머니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아버지는 송가장이 곤란한 상황에서 벗어난 일에 내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에 크게 기뻐했다. 표정에서 느껴졌다. 그래도 대놓고 자식 자랑 하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린이가 과감하게 돈을 구해 와서 할 수 있었던 일이지.”
내가 아버지를 거들었다.
“정말 좋은 따님을 두셨습니다.”
송우경이 나와 송화린을 번갈아 쳐다보며 큰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보니 천생연분 같군. 하하하.”
어머니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정말 잘 어울려요.”
더 있다가는 당장 내일이라도 날을 잡자는 분위기가 될 것 같아서 송화린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이렇게 송가장은 한 번의 위기를 넘겼다.
모든 것이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웠다. 내가 양소방주를 죽이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맹주인 내가 죽지 않았다면 산동연합이라는 책략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처음으로 내게 사과했다.
“내가 먼저 파혼하자고 해놓고 이런 부탁까지 하고. 염치없이 느껴졌을 거야. 미안해.”
그녀가 살짝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고마워, 정말.”
나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에 대한 악감정은 전혀 없다.
내가 젊은 나이였다면, 그래서 그녀를 좋아하고 저 아름다움을 내 것으로 하고 싶었다면 이 모든 일들에 의미를 두었겠지. 하나하나 다 따지고 들었을 것이다. 이전의 벽리단이 그녀를 찾아가서 행패를 부렸던 것처럼,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으리라.
하지만 나는 칠십 년의 인생을 살아본 사람이다.
벽리단의 행패를 참지 못했던 그녀도, 파혼을 하자고 한 그녀도, 아버지를 위해 부탁을 한 그녀도 충분히 이해한다.
“아까도 말했지만 네가 한 일이야.”
그녀가 돌아섰다. 저만치 걸어가던 그녀가 한 번 나를 한 번 돌아보았다. 내가 손을 흔들어주자 그녀가 어색한 미소를 지은 후 뛰어갔다.
나는 그녀의 스무 살 청춘을 응원한다.
부디 꿈꾸는 바를 잘 이뤄나가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