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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천마-27화 (27/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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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는 길목에서(2)

아버지의 방에는 어머니도 함께 기다리고 계셨다.

“부르셨습니까?”

“그래, 말해줄 일이 있어서 불렀다.”

아버지는 송우경이 다녀간 일을 전해주었다. 산동상회에서 송가장을 지지하고 싶다는 제안을 했고, 나아가 산동연합을 만들기를 원한다는 것, 그래서 송우경이 그 일을 의논하기 위해 아버지를 찾아왔다는 말까지 모두 다 해주었다.

“송가장의 일이니 너도 알고 있어야겠지.”

부모님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나를 벽씨검문의 어엿한 후계자로 인정하는 것이다.

“산동무림에 변화가 시작되었구나.”

아버지는 산동무림에 국한해서 말했지만, 중원 전체가 변하고 있었다.

나는 내 죽음이 알려지고 이렇게 빠르게 강호가 움직이는 것에 솔직히 놀라고 있었다.

그만큼 내 죽음이 미치는 영향력이 큰 탓이다.

어쨌든 이 부분에 대해서 나는 뭐라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산동에서 연합체 구성을 한다고 그에 대해 화를 낼 필요도 없다. 어차피 그것을 금지한 것은 과거의 나일뿐이니까.

다만 송우경이 그런 연합의 수장에 적합할지는 의문이었다. 연합체가 구성되면 그 순간부터는 모든 것이 정치다. 하나의 문파를 다스리는 것과 여러 문파들을 조율하고 하나로 뭉치게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으니까.

또한 산동상회가 왜 이런 제안을 했는지 다시 한 번 살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사꾼들은 반드시 이득이 생길 때만 움직인다. 특히 그들이 무림문파와 손을 잡는 것은 아주 신중한 결정이다.

일단 알아봐야겠군.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돌아서 나가려는데 어머니가 물었다.

“송문주가 잠시 들렀다 갔다고?”

“네. 파혼은 안 된다고 다시 한 번 말씀하시고 가셨습니다.”

아버지가 난감한 듯 말했다.

“그 사람도 참.”

그래도 그리 싫지 않은 표정이다.

어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 역시 송문주와 같은 뜻이다.”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했기에 다른 말은 하지 않고 그냥 나왔다.

두 분과의 관계가 점점 깊어짐을 느낀다.

처음에는 의식적으로 두 사람을 부모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젠 그런 의식보다 자연스럽게 감정이 앞선다. 두 분이 진짜 내 부모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진심으로 대하고 싶다.

솔직히 나는 기뻤다.

이런 좋은 부모를 가지게 된 것을.

돌아가신 어머니도 이해하시리라 생각한다. 당신께 못한 효도를 이분들에게 하더라도.

* * *

오후에 뜻밖의 사람이 나를 찾아왔다.

바로 송화린이 나를 찾아온 것이다. 그녀의 방문은 예상치 못한 것이어서 당황스러움이 고스란히 얼굴에 드러났다.

“놀랐나 보네.”

“네가 나를 찾아올 줄은 몰랐어.”

“부탁이 있어서 왔어.”

그녀의 부탁은 생각지 못한 것이었다.

“벽문주님을 설득해서 우리 아버지가 산동상회의 제안을 거절하게 해 줘.”

“우리 아버지가 말린다고 생각을 바꾸실까?”

“모르지. 하지만 결정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확실하다고 생각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두 분의 우정은 특별한 것이었으니까. 가난이 집안에 들어오면 거짓 우정은 창문으로 나간다는 말이 있다. 두 분은 여전히 같은 방에 있다.

“그 일을 막으려는 이유를 들어볼 수 있을까?”

“산동연합을 만드는 일은 아버지하고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아버지를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니고?”

“과대평가를 했다가 생기는 문제보단 낫다고 생각해.”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나 역시 송우경이 연합체를 구성하는 것에 마음에 걸리는 바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긍정적인 부분도 있었다.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긴 그렇지만.

“전대 맹주가 무림을 안정시켜뒀잖아? 이런 평화기에 연합체의 수장이 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은데? 송가장의 힘도 크게 키울 수 있고.”

“나는 오히려 그것을 걱정하고 있어.”

“뭐?”

“전대 맹주는 너무 오랫동안, 막강한 무위로 무림맹을 운영해왔어. 적어도 그가 강호의 평화를 지킨 것은 사실이겠지만 반대로 어둠속에서 키운 것도 있지.”

“어둠속에서 키운 것? 그게 뭐지?”

“억눌린 욕망.”

생각지도 못한 말에 나는 흠칫했다.

“강호인은 상대를 이기고 위로 올라가고 싶은 본능을 지닌 사람들이야. 태생적으로 폭력적인 야만성을 지녔지. 우린 늑대나 호랑이지, 토끼나 사슴은 아니잖아?”

“그런데?”

“한데 맹주의 강력함에 모두들 그 본성을 감추고 살았어. 감히 드러냈다가는 박살이 날 테니 말이야.”

거칠고 극단적인 표현이었지만 와 닿는 부분이 있는 말이었다.

“그들은 오랜 세월을 오직 맹주가 죽기만을 바랐을 거야.”

이어진 그녀의 말에 난 꽝하고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으니까. 지금까지 들어왔던 그 어떤 말보다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모두가 내가 죽기만을 바랐다고?

그녀가 또박또박하게 말했다.

“난 무서워. 참고 참았던 욕망이 용암처럼 폭발하는 곳으로 아버지가 뛰어드는 것이.”

이제야 그녀가 왜 그토록 반대하는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단지 추잡하고 더러운 정치판에 뛰어들지 말라는 것 이상의 명확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죽은 맹주를 싫어한다고 말한 이유가 이것이었나?”

그녀가 어깨를 으쓱한 후 대답했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지만…… 그래, 당장 이 일만 해도 싫어.”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또 있다고?

그녀가 간곡한 어조로 말했다.

“부탁해. 네게 처음으로 하는 부탁이니까 들어줬으면 해.”

* * *

아주 오랜만에 꿈을 꿨다.

과거로 돌아가 무림맹의 회의를 하는 꿈이었다.

갈사량을 비롯한 각 조직의 수장들이 기다란 탁자에 쭉 앉아 있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들. 경직된 행동과 실수를 허용치 않는 사무적인 어조들.

마치 표정 없는 하얀 가면이라도 쓰고 있는 것만 같다.

그래, 저 얼굴이 유난히 더 굳어 보이는 것은 억눌린 욕망이란 말을 들어서였을 것이다. 모두가 내가 죽기만을 바란다는 말을 들어서리라.

정말 내가 죽기만을 바랐던 것일까?

갑자기 내 생각이 그곳에 울려 퍼졌다.

그러자 앉아 있던 이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눈빛이 차갑다.

한 동안 잊고 있었던 의구심이 치솟았다.

나는 암살당한 것일까?

다음 순간 잠에서 깨어났다.

“후우.”

이게 다 그녀의 말을 들어서다.

권력에 대한 욕심은 기생충처럼 사람 몸에 깃드는 법이다. 그래서 내 몸에 그런 것이 살고 있는지 알 수조차 없다. 하지만 그것이 한 번 미쳐 날뛰기 시작하면 어떤 무서운 일들이 벌어지는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내 무공으로 꽉 눌렀다. 아예 권력 욕심을 내지 못하도록 철권통치를 했다.

내가 죽고 난 이후는 전혀 생각지 않았다.

억눌린 욕망.

정말 그것이 분출되어 나올 것인가?

아니, 어쩌면 이미 분출된 것인가?

* * *

그날 오후 종총관을 찾아갔다.

“산동상회에 대해 알려주십시오.”

“네가 왜 그것을 묻느냐?”

“송가장과 관련해서 여쭙고 싶은 것이 있어서입니다.”

송가장주에 대한 이야기를 대충 해주었다.

꼬장꼬장한 종총관이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살폈다. 또 무슨 엉뚱한 짓을 저지르려는 것이냐고 의심했지만, 담담한 내 얼굴에서 그런 의도를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너는 나를 싫어하지 않느냐?”

“오해십니다. 저는 총관님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흥! 거짓말하지 마라.”

괜히 핀잔을 주었지만, 내가 자신을 찾아와서 뭔가를 묻는다는 사실이 싫지만은 않은 기색이었다.

종총관이 산동상계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과연 그는  나이를 그냥 먹은 것이 아니었다.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산동상회는 물론이고 다른 상회들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나는 산동상회에 대해 여러 가지를 물었지만 특별한 점은 찾지 못했다.

“근래 특별한 일은 없었습니까?”

“별 것 없었다네.”

“알겠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돌아서려는데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 말했다.

“아, 이게 도움이 되려는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 생각나는 일이 있네.”

“뭡니까?”

“몇 달 전에 그쪽 총관과 술을 한잔 할 기회가 있었지. 그때 얼핏 듣기로 무림방파와 손을 잡고 사업을 벌일 것 같다고 말하더군. 어디 인지는 말해주지 않았고.”

“이후 소식은 들으셨습니까?”

“듣지 못했네.”

“정말 감사합니다.”

나와 이런 대화를 나눈 것이 괜히 민망했는지 종총관은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퉁명스럽게 던졌다.

“이런다고 내게 점수 땄다고 착각하지 말게.”

“네. 총관님께서는 여전히 저를 못미더워하고 계십니다! 명심하고 있겠습니다.”

“고얀지고.”

내가 돌아서려다 하나를 더 물었다.

“혹시 후계자로 생각하고 있는 젊은 애 없습니까?”

“그건 왜 묻나?”

“있으면 제 개인총관으로 둘까 하고요.”

“에끼! 그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

진심이라 해봤자 믿지 않을 것이기에 그냥 웃으며 그곳을 떠났다.

뒤에서 따라붙는 총관의 시선이 느껴졌다. 예전보다 아주 조금은 부드러워졌음을 느낀다.

* * *

종총관을 만난 후에 아버지를 찾아갔다.

“어쩐 일이냐?”

“그냥 아버지와 차 한 잔 마시고 싶어서 왔습니다.”

“녀석.”

시비가 타오겠다는 것을 물린 후에 아버지가 손수 차를 타주었다.

아버지가 끓여주시는 차는 처음으로 마셔본다.

“수련은 잘 되어 가느냐?”

“네.”

진짜 작정하고 백월검법을 펼치면 아버지보다 더 절묘하게 펼쳐낼 것이다. 보여줄 일이 있으면 그 반에 반 정도만 보여줘야겠지.

“네 엄마가 너에 대한 기대가 크다. 결코 잊지 말거라.”

어머니를 앞세워 말했지만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네,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아버지를 찾아온 이유는 송화린의 부탁 때문이었다.

과연 그녀의 부탁을 들어줘야 하나? 그녀 말이 맞다. 아버지가 강하게 설득하면 송우경은 그 제안을 거절할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이 과연 옳을까?

계속 드는 의구심이 이미 답을 말해주고 있었다.

송가장과 관련된 말은 꺼내지 않았다.

“차 맛이 아주 좋습니다, 아버지.”

그녀에게 제시할 다른 방법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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