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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전하는 말(3)
다음날에도 객잔에 들렀다.
혹시라도 새로운 소식이 들려올까 궁금해서였다.
맹주 자리에 미련이 남아서냐고? 물론 아니다.
나는 이 새로운 삶에 적응했고 만족하고 있었다. 오히려 맹주로 살았을 때보다 더 큰 기쁨과 활기를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이대로 벽씨검문을 일으켜 세우면서 내 무공을 발전시켜 나가자, 나는 이렇게 살아가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다만 무림맹을 생각하면 아직도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다. 갈사량과 백표를 비롯해서 충성으로 따르던 나의 수하들.
적어도 믿을만한 사람이 차기맹주에 오를 때까지는 신경이 쓰일 것 같았다.
오늘도 객잔에는 내 이야기가 주된 화제였다.
정치적인 이유로 나를 욕하는 이들은 있었다. 하지만 무인인 나를 욕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무공에 있어서 천하진이란 무인은 언제나 미화되는 쪽이었다.
“맹주로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무인으로서의 천하진은 존경받아 마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네.”
모두의 시선이 말을 꺼낸 노인을 향했다.
“나는 맹주의 싸움을 직접 본 사람이네.”
그 말에 모두들 노인들에게 몰려들었다. 나조차 노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자네들 천맹주와 투마(鬪魔)와의 싸움, 알고 있지?”
“알지요. 이후에 여러 이야기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하지만 대부분 다 엉터리들이라네.”
“어찌 아십니까?”
“그야 그 자리에 나도 있었으니까.”
나는 내심 피식 웃고 말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 노인의 말은 허풍이다.
그날 싸움에는 살아남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 투마는 물론이고 그의 수하들까지 모두 죽었다. 우리 쪽 무인들은 내 명령에 따라 멀리서 대기하고 있었고.
노인이 멀리서 지켜볼 수도 있지 않았느냐고? 당시의 나는 정말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던 시절이었다. 싸움을 지켜볼 수 있는 거리라면 내 기감에 포착되지 않았을 리 없다.
“투마는 무시무시하게 생겼지. 키는 구척에 주먹이 어른 머리통만 했다네. 그는 싸움을 위해 태어난 자였지. 정말 미치도록 강한 자였네.”
투마의 키가 구척에 주먹이 머리통만하다고?
나는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투마를 처음 봤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그는 오척 단신에 아주 왜소한 체구를 지니고 있었다. 생긴 것도 곱상해서 전혀 싸움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투마라고 해서 주먹을 마구 휘둘러 댈 것 같겠지만, 투마는 한 자루의 단도(短刀)를 사용하는 자였다.
하지만 노인의 말이 다 허풍은 아니었다.
바로 그가 미친 듯이 강했다는 점 만큼은 사실이었다. 그와 싸웠던 시점을 기준으로, 그는 내가 만난 적들 중에서 가장 강한 적이었다.
물론 이후에 그보다 강한 자들을 만났지만, 그는 내가 상대한 적들 중에 다섯 손가락에 드는 인물이었다.
그 짧은 단도에 내가 몇 번이나 죽을 뻔 했는지 모른다. 실제 몇 군데 찔리기도 했다. 그는 투마라는 이름을 달 자격이 있는 자였다.
“천맹주는 그야말로 신기에 가까운 실력을 보여줬다네. 아직도 눈을 감으면 그 싸움이 훤히 떠오른다네. 특히 마지막 순간은 정말이지 잊을 수가 없지. 놈의 주먹에서 뿜어져 나온 강기를 피하면서 맹주께선 하늘로 날아오르셨지. 청룡처럼 날아오르신 후 수십 가닥의 검강을 비처럼 뿌리는 그 장엄한 광경이란!”
생생한 노인의 묘사에 모두들 감격했다.
“부럽습니다. 전 직접 그 싸움을 봤다면 죽어도 소원이 없겠습니다.”
“그 눈을 사고 싶습니다!”
“아! 검신이시여!”
투마와 흙바닥을 뒹굴다 간신히 놈의 심장에 검을 박아 넣은 그날을 생각하면 심히 부끄러운 말이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저런 이야기를 듣는 것이 그리 싫지만은 않았다.
그때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내 중 하나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검신이면 뭐합니까?”
“자넨 뭐가 불만인가?”
“소문 못 들으셨소?”
“무슨 소문?”
“천하진이 엄청난 부정축재를 저질렀다는 소문 말이오.”
“그게 정말인가?”
모두들 깜짝 놀랐다.
물론 나만큼 놀랐겠는가?
나는 정말이지 벌떡 일어나서 ‘개소리 집어치워라!’라고 소리를 내지를 뻔 했다. 단 한 푼도 사적으로 착복하지 않았다.
“그렇게 무공이 강했는데, 안했겠소?”
말하는 투로 볼 때, 소문이 아니라 제 놈 생각이었다.
그러지 않겠느냐는.
젠장. 누군가 저 무책임한 말을 꾸짖어 주면 좋겠건만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그 생각에 동조했다.
“하긴. 맹주쯤 되면…….”
“더구나 천맹주는 역대 맹주들 중 가장 무공이 강했잖나?”
“그 돈 다 써보지도 못하고 죽었겠네.”
다른 험담은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부정축재라니?
아니라고, 이놈들아! 내가 마음먹고 해먹었으면 정말이지…… 그러니까 정말 이러지는 말자.
“얼마나 해먹었을까? 천만 냥? 일억 냥?”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나는 강호와 사랑을 나눴다고 생각했는데…… 강호는 내가 좋아한 줄이나 아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절망적인 마음으로 앉아 있던 바로 그때,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증거 있어요?”
내가 아는 목소리였다.
나는 물론이고 모두들 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놀랍게도 객잔 입구에 서 있는 사람은 송화린이었다.
그녀가 특기를 발휘했다.
주위의 모든 것을 압살시키며 오직 자신만 눈에 들어오게 만든 것이다.
그녀의 등장에 모두들 눈을 크게 떴다.
몇 몇 사람들은 그녀를 알아보았는데, 정작 소문을 퍼뜨린 사내는 그녀가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다. 다만 ‘뭐 이리 예쁜 여자가 다 있지?’하는 표정을 지었다.
“맹주가 부정부패를 저질렀다는 증거가 있나요?”
그녀의 물음에 사내가 되물었다.
“혹시 천맹주와 아는 사이신가?”
“아뇨.”
“하면 소저는 뭐가 불만이신가?”
“잘 알지도 못하는 사실을 함부로 말하지 말란 말입니다.”
그녀는 차분하지만 위엄이 있었다.
“다시 묻죠. 당신은 맹주님이 부정축재를 했다는 증거가 있나요?”
“나야…… 소문을 들었을 뿐이네.”
“함부로 소문을 퍼뜨리는 것도 엄연한 범죄행위입니다. 무림맹에 고하면 뇌옥에 갇힐 수도 있어요.”
똑 부러지는 그녀의 말에 사내가 겁을 먹었다. 뇌옥이란 말 나왔을 때, 이미 끝난 일이었다.
“함부로 말한 것 사과하도록 하겠소.”
더 이상 사내를 추궁하지 않고 송화린이 걸음을 옮겨서 한 옆 자리에 앉았다.
“여기 주문 받아요.”
그녀에게 점소이가 달려갔다.
잠시 그녀를 넋을 잃고 바라보던 취객들이 흩어졌다. 괜히 그녀의 눈에 띄었다가 험한 꼴 당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였다.
하지만 나가면서도 어김없이 한 번씩 돌아보았다.
나는 그녀와 등을 돌린 자리에 앉아 있었기에 그녀는 내가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녀가 고마웠다. 너무 억울했었는데 내 심정을 대변해준 것 같아 너무 고마웠다.
잠시 후 그녀에게 요리가 나왔다.
“전 국수만 시켰는데요?”
그녀가 시킨 국수 말고도 고기 요리가 하나 더 나온 것이다.
그러자 객잔 주인장이 웃으며 말했다.
“이건 제가 특별히 덤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왜 제게 호의를 베푸시는 거죠?”
“저 역시 소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돌아가신 맹주님은 훌륭하신 분이십니다. 맹주님 덕분에 강호의 악인들이 많이 사라졌지요. 그래서 우리 같은 사람들이 살기가 좋아졌답니다.”
“아, 그러셨군요. 한데 어쩌죠?”
그녀의 입에서 전혀 생각지 못한 말이 흘러나왔다.
“뭔가 오해를 하셨나본데 전 돌아가신 맹주를 그리 좋아하지 않아요.”
“네?”
주인장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무슨 어이없는 말이란 말인가?
나 역시 황당한 마음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주인장이 다시 물었다.
“한데 왜 조금 전에는?”
“전 함부로 다른 사람의 말을 하는 것을 싫어할 뿐이에요.”
그러고 보니 아까 그녀가 한 말에는 맹주를 좋아한다거나 존경한다는 말은 없었다.
거기에 그녀는 한술 더 떴다.
“오히려 전 죽은 맹주를 아주 싫어해요.”
그 말에 나도 모르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왜?”
그녀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가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에 그녀가 깜짝 놀랐다.
“언제부터 있었지?”
“아까부터.”
“혹시 나를 따라온 거야?”
내 앞에 놓인 빈 술병을 흔들었다.
“네가 여기 온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랬을 수도 있겠지.”
그녀는 내가 먼저 와 있었다는 말임을 알아들었다.
“양소방 일은 들었어.”
“운 좋게도 환란을 피할 수 있었어.”
“다행이야.”
그 대화를 끝으로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나 역시 굳이 대화를 계속할 마음은 없었지만, 이것만큼은 물어야 했다.
“한데 왜 맹주를 싫어하는 거지?”
진심으로 궁금했다.
그녀는 어깨를 한 번 으슥했을 뿐 대답해 주지 않았다.
이 봐, 대체 왜 나를 싫어하는 것이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