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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천마-23화 (23/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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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전하는 말(1)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산에서 수련을 마치고 돌아온 것으로 되어 있었지만 광두만은 내가 곽도수를 잡으러 갔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도련님 때문에 제 명에 못살겠습니다.”

과연 녀석의 두 눈이 퀭했다. 또 내 걱정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잔 모양이다.

“이놈아, 나는 걱정하지 마라.”

“어떻게 걱정이 안 돼요? 정말 내가 앓느니 죽지. 그래서 어떻게 된 거죠? 정말…… 그 놈 잡았어요?”

단호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절대 빚지고는 못사는 사람이다.”

“죽였어요?”

“당연히.”

광두가 입을 틀어막고 부들부들 떨었다. 이놈아, 충격과 공포는 나중에 곡부지부장 공종이 실종됐다는 소식까지 듣고 와서 펼쳐라.

“그나저나 심법수련은 열심히 했지? 한 번 해 봐.”

“누구 걱정하느라…….”

자신 없는 얼굴로 광두가 자리에 앉아서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한 줄기 내력을 넣어서 녀석이 제대로 운기를 하는지를 살폈다. 엄살에 비해 가르쳐 준대로 정확하게 잘 하고 있었다.

“됐다. 이 정도면 훌륭하다.”

“정말입니까?”

광두가 크게 기뻐했다. 정말이지 칭찬 한 마디라도 더했다간 눈물을 떨굴 것 같았다.

“왜 이렇게 좋아해?”

“무공을 배운 이후에 처음 도련님께 듣는 칭찬이니까요.”

“쓸데없이 자꾸 의미부여 하지 마.”

“아뇨! 제겐 잊을 수 없는 순간입니다.”

문득 호위책임자였던 백표가 생각났다. 첫눈을 보며 기뻐하던 그도 참으로 감상적인 사람이었다. 그러고 보니 공교롭게도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은 이렇게 감상적인 면이 있다.

“자, 이제부터 초식을 가르쳐주마.”

“아!”

광두가 다시 감격했다. 녀석이 샀던 싸구려 도를 가져오게 했다. 조만간에 괜찮은 도를 하나 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남해칠식의 일곱 초식 중 세 개의 초식을 먼저 전수했다.

딱히 이유가 있어서라기 보단 한 초식만 반복하면 지겨울 것이고, 네 개 이상을 가르치면 헷갈릴 것이라 생각해서였다.

“이 세 초식이 익숙해지면 나머지 초식들을 가르쳐주마.”

“감사합니다, 도련님.”

“잠도 자지 말고 수련해. 불시에 시험 친다.”

“그러다 과로로 죽으면요?”

“게으름뱅이는 절대 과로로 죽지 않는다.”

“주화입마에 빠지면요!”

“그것도 똑똑한 사람이나 빠지는 거야.”

광두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하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광두가 얼마나 기뻐하고 있는지를. 아마 녀석은 정말 밤잠을 아껴가며 수련할 것이다.

정말 과로로 죽을까 걱정되지 않느냐고?

천만에. 광두는 똑똑한 녀석이다. 전에 정보를 캐올 때 느꼈다. 녀석은 위험을 감지하고 피할 줄 아는 본능이 있다. 수련 강도도 알아서 잘 조절할 것이다.

세 초식을 전수해준 후 돌아서 가려는데 광두가 말했다.

“그런데 도련님 뭔가 달라졌어요.”

역시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힌 녀석이다. 부모님도 알아보지 못한 변화를 알아차리다니.

“뭐가?”

“뭔지 모르지만…… 어딘지 모르게 차분해지셨어요.”

요리조리 내 얼굴을 살피더니 이내 광두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헉! 설마? 이번에 갔다가 여자 생겼어요? 그렇죠? 잤어요? 잤죠!”

이놈아, 여잔 구경도 못했다.

계속 궁금하라고 어깨를 한 번 으쓱해준 후 걸어 나왔다. 뒤에서 광두가 소리쳤다.

“송소저 배신하면 안 돼요!”

이놈아, 서로 간에 믿음이 있어야 배신이란 말도 할 수 있는 거다.

“수련이나 열심히 해! 그래서 너 자신이나 배신하지 마!”

* * *

다음 날, 드디어 기다렸던 소식이 날아들었다.

광두가 허겁지겁 달려오며 소리쳤다.

“도련님! 큰일 났어요! 무림맹주님이 돌아가셨어요!”

내 죽음을 다른 사람을 통해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내가 죽은 지 한 달하고도 반이나 지난 상황. 이제야 발표를 했다는 것은 차기 맹주 선출을 두고 고민이 많았다는 뜻이겠지.

연일 회의가 열렸을 것이고, 각 조직의 수장들은 엄청나게 눈치 싸움을 했을 것이다. 누가 맹주가 되느냐에 따라 자신들의 자리가 위태로워질 수도 있었으니까.

그나마 내 마음이 편한 것은 강호가 평화로웠기 때문이다. 당장 무림맹을 차지하려는 내부인사나 외부세력은 없을 것이다.

“그래?”

“무슨 반응이 이래요?”

“어떤 반응을 기대했는데? 눈물이라도 흘려?”

“최소한 놀라기라도 해야죠.”

“놀랐어.”

넌 모른다.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내가 그렇게 죽어버릴 줄은 정말 몰랐으니까.

“지금 강호가 발칵 뒤집어졌어요. 무림인들은 물론이고 지금 입 달린 사람들은 전부 맹주님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다들 객잔에 모여서 난리도 아니라고요. 우리도 가 봐요.”

광두가 내 팔을 잡아당겼다.

못이기는 척 따라 나섰지만, 사실 내가 더 궁금했다. 다들 내 죽음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를 하는지.

죽은 사람은 여러 가지 의미로 남는다. 누구는 아름답게 미화되고, 누구는 바닥으로 추락하고, 또 누군가는 잊혀지고.

나는 어떨까?

정말 인근 객잔은 물론이고 저잣거리 사람들은 온통 내 이야기만 하고 있었다.

“어떻게 죽었대? 암살이라도 당한 것 아니야?”

“아니래. 그냥 자다가 죽었다던데.”

“복 받았네, 복 받았어.”

“그나저나 누가 차기 맹주가 될까?”

“그러게.”

“걱정이군. 온갖 놈들이 나서서 맹주 자리를 해먹으려고 달려들 텐데.”

“제대로 된 맹주후보가 있긴 한가?”

“없지. 천하진이 너무 오래 해먹었어.”

“하긴. 삼십 년을 넘게 해먹었으니.”

해먹었다는 말에 살짝 상처를 받았다.

나는 한평생을 강호인들을 위해 희생하고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고작 저런 평가를 받는다는 말인가?

더구나 내 죽음에 대한 애도 한 마디도 없었다.

강호를 위해 살았던 내 삶이 송두리째 부정당한 기분이다.

마음 같아선 사정없이 뒤통수를 한 대씩 때려주며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이놈들아, 너희들 걱정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자고 살아온 삶이었다!

한편 그런 생각도 들었다. 원래 맹주 자리야 욕을 듣는 자리가 아닌가? 다들 저렇게 욕을 해가며 현실에서 쌓인 화를 풀어내야지.

‘그래, 욕들 하시게. 그렇게 해서 화가 풀린다면 얼마든지 하시게.’

정말 나쁜 놈은 이런 곳에서 나를 욕하고 있지 않을 테니까. 내게 죽은 양기철이나 공종처럼 어두운 곳에서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골몰하고 있을 테니까.

그때 마주앉아 있던 광두가 불쑥 말했다.

“맹주님은 어떤 분이셨을까요?”

적어도 이 객잔에 있는 사람 중에는 네가 제일 잘 안다. 바로 네 앞에 앉아 있으니까.

“글쎄.”

“많이 아쉬울 것 같아요. 맹주 자리에서 죽는다는 것.”

“왜?”

“그렇잖아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자리에 있다가 죽는 것이니까요. 아! 저라면 억울해서 죽지도 못할 것 같아요!”

행복?

내가 과연 행복했을까?

모두가 나를 두려워하고 어려워했다. 내 명령이라면 목숨을 바치는 충성스러운 수하들이 있었지만, 그들과 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했다. 심지어 총군사인 갈사량과도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아무도 내게 진심을 말하지 않았다.

나 역시 그랬고.

그나마 호위책임자였던 백표가 가장 편했지만, 그래도 맹주와 호위라는 자리가 주는 거리감을 완전히 떨쳐내지는 못했다. 적어도 그는 그랬을 것이다.

만인지상(萬人之上)의 고독.

내가 행복했는지 안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고독한 삶을 산 것은 확실했다.

“그나저나 차기 맹주는 어떻게 뽑는 겁니까?”

광두가 물음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도 모르지.”

말을 못해줄 뿐이지 나는 정확히 알고 있다.

맹주가 후계자를 정한 상태라면 그 후계자가 자리를 이어받는다.

칠십이라는 나이를 생각하면 당연히 후계자를 세워야 한다고 제안했을 법도 했는데, 수하들은 모두 내 눈치를 보았다. 내가 워낙 정정한데다 후계자 문제는 아주 민감한 영역에 속한 내용이었으니까.

어쨌든 내가 죽는다는 것은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워낙 건강했고, 무공 역시 극의에 도달해 있었으니까.

후계자가 없을 시에는 무림맹 내부의 상위 열 개 조직의 수장들이 모여서 후보를 내세우고, 그들이 다시 투표를 해서 맹주를 정한다.

앞서 내가 뽑힌 것도 이 방식이었다. 전대 맹주가 흑도십삼맹에 의해 독살당하지 않았다면 나는 영원히 강호의 자유인으로 살아갔을지 모른다.

어쨌든 뒤에 듣기로 당시 열 개 조직의 수장들은 나를 맹주로 삼는 것에 전원 찬성했다고 했다. 그만큼 내 실력은 강호를 울리고 있었다.

어쨌든 어디까지나 맹칙이 그렇다는 말이고 결국 총군사인 갈사량의 뜻이 많이 반영될 것이다. 열 개 조직들 중에서도 무력이 가장 강한 내 직속 조직들이 그를 지지할 테니까.

문제는 퍼뜩 떠오르는 강력한 맹주 후보가 없다는 점인데.

한 달반이나 지나도록 내 죽음이 알려지지 않는 이유도 어쩌면 그런 이유 때문일지 모른다.

그래도 내가 여유로운 것은 갈사량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그라면 내가 없는 무림맹을 잘 이끌어서 훌륭한 차기맹주를 뽑을 수 있을 것이다.

“도련님, 우리 한 잔해요. 강호의 큰 어르신이 돌아가셨는데. 애도하는 뜻으로 한 잔 해야지요.”

그래, 그래도 너밖에 없구나.

“그래, 제일 비싼 술로 시켜라.”

“돈 있죠?”

“강호인이 된 기념으로 네가 한 잔 사든지.”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살 수 없는데…… 어찌나 약으신지. 좋아요! 제가 한 잔 사죠.”

광두가 주인장을 보며 소리쳤다.

“여기 술 줘요! 싸고 맛있는 것으로!”

광두를 보며 웃었다.

고맙다.

내 죽음에 한 잔 술이라도 뿌려줘서.

천천히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어딘가에 있을 무림맹을 향해서였다.

갈군사, 부디 좋은 맹주를 뽑아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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