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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천마-20화 (2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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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약의 주인은 따로 있다(3)

그길로 나는 말을 한 마리 빌려서 제남으로 내달렸다.

명령 한 마디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삶을 살다가 이렇게 직접 움직이니 뭔가 새로운 활력이 솟구친다. 확실히 변화가 사람에게 주는 힘이 있다. 또한 변화는 희망과도 닿아 있음을 새삼 느낀다.

도착하자마자 도방부터 돌았다.

하지만 그곳에서 곽도수를 찾을 수는 없었다. 물론 놈이 나처럼 면구를 착용했거나 변장을 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고려했다.

놈을 얼굴로 찾을 필요는 없다. 노름꾼들 중에서 무공실력이 있는 놈 위주로 살펴보면 되었으니까.

하지만 도방에는 시시한 노름꾼들만이 가득했다. 우선 판돈이 그리 크지 않았다. 공종의 말처럼 곽도수가 도박에 미친놈이라면 이런 작은 판에 만족할 리 없다.

‘공종이 나를 속였나?’

나를 이곳으로 보낸 후, 곽도수에게 달아나라고 연락을 했다면?

하나 그럴 가능성은 희박했다. 내가 본 공종은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부류가 아니었다. 곽도수를 살리겠다고 평생 천도문에게 쫓기는 삶을 선택할 사람이 아니란 뜻이다.

‘그렇다면 이곳 어딘가에 있다는 말인데.’

워낙 큰 현상금이 걸려 있었기에 몸을 사리고 있을 것이다.

그때 퍼뜩 머릿속을 스치는 한 가지 생각.

‘설마? 이곳에 그것이 존재하나?’

매일 갈사량이 업무보고를 하는데, 정말이지 중원 곳곳에서 일어나는 별의별 내용이 다 있다. 그 중에 도박과 관련해서 생각나는 한 가지.

비밀도방.

말 그대로 허가되지 않은 도방으로 흔히 비방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허가받은 도방들은 무림맹에서 철저히 관리를 한다. 막대한 세금을 부과할뿐더러, 도박에 미쳐서 패가망신하는 것을 막기 위해 여러 제약들을 두었다. 판돈의 한도도 그 중 하나다.

그 결과로 생겨난 것들이 비방들이다.

매년 단속을 강화했지만 완전히 뿌리 뽑지 못한 곳이기도 했다.

‘확인해 봐야겠군.’

확인을 위해 내가 찾아간 곳은 이곳에서 가장 큰 객잔이었다.

강호에서 가장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부류가 있다.

전문적으로 정보를 사고파는 정보상부터 중원 곳곳을 떠도는 장사치들, 표사들, 낭인들, 그리고 우리가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또 한 사람, 바로 점소이다.

그들은 객잔에서 떠들어대는 온갖 이야기들을 듣는다. 강호에 떠도는 모든 소문의 원천은 객잔이었으니까.

객잔에 자리를 잡고 주문을 받으러 온 어린 점소이에게 이곳에서 가장 오래 일한 점소이가 누구냐고 물었다. 그러자 어린 점소이가 한 사내를 지목했다.

나는 그를 불렀다. 과연 그는 제법 나이가 들어 보였고 산전수전 다 겪은 노회한 눈빛을 지니고 있었다.

이들의 입을 여는 가장 쉬운 방법은 돈이다.

내가 손바닥에 열 냥을 올렸다.

그것을 본 점소이가 깜짝 놀랐다. 손님들이 수고했다고 점소이에게 던져주는 돈이 보통 한두 푼이다. 그것도 주는 손님보다는 주지 않는 손님이 훨씬 더 많다.

“내가 묻는 말에 하나만 대답해주면 이 돈은 네 것이다.”

열 냥, 몇 년에 한 번 올까 말까한 행운에 녀석의 눈빛이 흔들렸다.

“뭐든 물어보십쇼.”

“내가 패를 좀 만지고 싶은데.”

“도방이라면 여러 군데 있습니다만.”

“난 조용한 곳을 좋아해서 말이지.”

순간 녀석의 눈빛이 반짝였다. 눈치 빠른 녀석인지라 단번에 내 말뜻을 알아들은 눈치다.

그래, 한 지역에서 십여 년 이상 점소이 일을 했다면 모를 리 없겠지. 하지만 함부로 입을 놀렸다가 화를 당할 수도 있는 내용일 테니.

한참을 나와 내 손바닥 위에 놓인 돈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윽고 마음을 먹었는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조용한 곳을 원하시는 분들을 위한 곳이 있긴 합니다만.”

“어디지?”

내가 망설이지 않고 그 돈을 점소이의 손에 쥐어 주었다.

보통 이런 경우에 대답을 들어야 돈을 준다. 하지만 나는 돈을 먼저 주었다.

이 선택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점소이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서쪽으로 십리쯤 가면 풍아장이라고 있습니다.”

“고맙다.”

“한데 그냥은 들어갈 수 없습니다. 확실한 사람의 소개가 있어야 합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것만큼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

* * *

풍아장 대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인상 좋은 늙은이였다.

“무슨 일이시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뭐 하러 왔겠소? 놀러왔지.”

노인이 나를 아래위로 훑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곽대협 소개로 왔소.”

“어느 곽대협?”

내가 손으로 한쪽 볼을 스윽 그었다. 곽도수의 용모파기에 그려진 볼의 상처모양을 흉내낸 것이다. 만약 노인이 내 행동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놈은 이곳에 없거나, 아니면 인피면구를 쓰고 활동하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그땐 다시 이름을 말해서 확인하면 될 것이다.

어쨌든 곽도수가 이곳에 있다면 반드시 그의 이름이 통할 것이라 생각했다.

과연 노인이 피식 웃으며 경계를 풀었다.

“따라오시오.”

그는 나를 건물 뒤쪽 후원으로 안내했다. 가면서 몇 가지 주의를 주었다. 좋게 돌려서 말했지만 한마디로 사고 치면 죽는다는 말이었다.

후원에 제법 큰 건물이 있었다.

사방에 둘러선 담은 굉장히 높았다. 곳곳에 심어진 나무들 사이로 은신하고 있는 무인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내공이 회복된 상태라면 무공수위는 물론이고 지금 하품을 하고 있는지, 쪼그리고 앉았는지 섰는지까지 정확히 다 알아내겠지만, 지금은 대충 위치만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모른 척 노인의 뒤를 따르고 있었지만 나중에 빠져나갈 때의 퇴로를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 놈을 제압하고 어디로 빠져 나가는 것이 가장 빨리 나갈 수 있는지를.

입구에 선 무인은 둘. 제법 실력이 느껴지는 이들이었다. 그 중 하나가 손을 내밀었다.

“무기가 될 만한 것은 모두 내놓으시오.”

내가 그에게 차고 있던 검을 건넸다. 애초에 내 검은 두고 싸구려 철검을 차고 왔기에 아쉬움 없이 검을 맡겼다.

다른 사내가 내 몸을 샅샅이 수색했다. 그러면서 몸을 살펴 무공수위를 확인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대수롭지 않게 확인을 끝냈다.

저 반응이 바로 외부에서 인지하는 내 실력이다. 아직 몸은 다 만들어지지 않았고, 내공은 고작 오 년에 불과했으니까. 오히려 이렇게 편한 점도 있다.

무인이 문을 열어주며 말했다.

“이쪽으로 쭉 걸어가시오.”

음침하고 좁은 복도를 걸어갔다. 만약 이들이 마음을 먹는다면 사람 하나 죽이는 것은 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정쩡한 무공으로, 병장기까지 맡기고 이런 곳을 걷다가 기습이라도 당하면, 그냥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복도 끝에 문이 있었다. 역시 그 앞에 제법 실력이 느껴지는 무인 둘이 지키고 있었다. 아무래도 큰돈이 오가는 곳일 테니, 실력 좋은 이들을 많이 고용하고 있었다.

소개장이나 징표를 이용해서 더 철저하게 출입통제를 하지 않는 것도, 이들의 무력에서 오는 자신감임을 느낄 수 있었다. 한편으로 이곳 무림맹 지부장과도 어떤 결탁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들이 문을 열어주자 안은 커다란 대청이었다.

칙칙한 복도와는 달리 내부는 밝고 화려했다. 몸매 좋은 여인들이 곳곳에 술을 나르고 있었고, 한 옆에는 악사들이 연주하고 있었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다른 세상으로 들어온 착각이 들 정도였다.

곳곳의 배치된 커다란 탁자들. 그 숫자가 이십 개가 넘었다. 탁자에 다시 적게는 서너 명에서 많게는 이십 여명이 붙어서 노름에 열중하고 있었다.

앞서 살펴보았던 일반 도방과는 열기가 완전히 달랐다.

앞서 일반 도방에 있던 이들보다 비싼 옷에 훨씬 더 부유해 보이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훨씬 더 도박에 중독된 자들이기도 했다. 일반 도방에서는 자극을 얻을 수 없는 자들.

그래서 이곳에서는 일반 도방 판돈의 열 배에서 시작해 무한대로 돈을 걸 수 있다. 단 한 판에 지옥과 극락을 오가는 짜릿함이 존재하는 곳이다.

우선 나는 천천히 그곳을 둘러보았다. 탁자들의 배치와 출입구가 어디에 있으며 뒷간은 어디에 있는지. 그렇게 지형을 숙지한 후에 곽도수를 찾기 시작했다.

나는 한 눈에 곽도수를 알아보았다. 치렁치렁 머리를 기르고 수염을 덥수룩하게 길렀지만, 분명 놈이었다.

겁도 없이 놈은 제 얼굴을 드러낸 채 도박을 하고 있었다. 볼의 특징적인 상처를 감추지 않고 있었다.

‘이놈 봐라? 겁을 완전히 상실했구나.’

하지만 이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대청 내부 곳곳에 비방 무인들이 있었다. 그 숫자가 십여 명쯤 되었는데, 그 중 다섯 명이 곽도수 주변에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그를 감시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조금 더 지켜보니 그를 지켜주고 있었다.

이 자식, 아예 도방을 차린 것인가?

다시 생각해 보니 그것은 아닌 듯 했다. 만약 도방을 차렸다면 공종이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이곳 주인과 어떤 밀착관계가 있는 것이겠지. 이곳 비방을 관리해 주기로 했거나, 아님 사람이라도 대신 죽여준 것이겠지. 그래서 저렇게 제 놈 안방처럼 당당할 수 있는 것이다.

자, 이제 어떻게 한다?

일단 놈을 죽이는 것은 어렵지 않아 보였다. 노름에 한창 빠져 있을 때 기습을 가하면 단칼에 죽일 수 있으리라. 그리고 막아서는 놈들을 베면서 빠져나간다?

못할 것도 없는 방법이지만 생각지도 못한 고수가 튀어나올 변수가 있었다. 게다가 싸움이 크게 벌어지면 시비나 악사들이 다칠 수도 있었다.

일단 이 방법은 최후의 방법으로 남겨두고, 최대한 조용히 해결하고 나가는 방법을 찾기로 마음먹었다.

그때 곽도수가 앉아 있던 탁자에 자리가 하나 났다.

한 사내가 오늘 재수 더럽게 없다며 한탄하며 일어선 것이다.

그를 보며 생각했다.

노름판에서 운이 좋은 사람은 패가 좋은 사람이 아닐 것이다. 언제 자리에서 일어나 이곳을 떠날지를 아는 사람이겠지.

어쨌든 나는 망설이지 않고 그가 일어난 자리에 앉았다.

나는 굳이 내 존재를 감추려 들지 않았다.

오히려 소란스럽고 눈에 띄는 것이 의심을 덜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해서였다.

자리에 앉자마자 곧장 품에서 판돈을 꺼내 탁자 위에 수북이 쌓아올렸다.

“나 목숨 걸었소. 오늘 누구 하나 죽기 전에는 아무도 못 일어납니다.”

말하는 모양새가 딱 돈 잃어주러 온 호구처럼 보였는지라 마주앉은 곽도수가 나를 보며 씩 웃었다. 볼의 상처가 일그러지며 함께 웃었다.

“그러다 자네가 죽으면 어쩌려고?”

같이 앉아 있던 노름꾼들이 피식대며 웃었다.

난 기세에 눌리지 않겠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큰소리로 말했다.

“흥! 누구 일진이 사나울지는 두고 보면 알겠지. 자, 패나 돌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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