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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천마-19화 (19/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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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약의 주인은 따로 있다(2)

그날 오후 무림맹 곡부지부에 도착했다.

보통 작은 규모의 지부는 오십 명 정도 되는 규모로 유지되는데, 이곳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값비싼 옷을 사 입고 얼굴에는 인피면구를 착용했다. 인피면구는 여러 잡다한 도구들을 파는 무림잡화점에서 구입했다.

인피(人皮)라고 사람 피부로 만든 것은 아니다. 오래전에는 실제로 사람의 피부를 사용했다지만, 당대에 와서는 그만큼 정교하게 만든다는 의미라 생각하면 된다.

이 강호에서 나만큼 인피면구에 관해 잘 알고 있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사마외도와 전쟁 중일 때, 맹주인 내 안전을 위해 거의 매일 면구를 착용하다시피 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상대진영에서 살수를 보내던 시절이었다.

일반적으로 인피면구는 보통 하급, 중급, 상급, 최상급이 있는데, 하급은 인피면구를 쓴 것이 표가 났고, 중급은 눈썰미가 아주 좋은 사람만이 구별할 수 있었다. 상급은 면구전문가가 아닌 이상 구분을 할 수 없었고 최상급은 면구전문가조차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잘 만들어진 면구였다. 주로 내가 썼던 것이다.

나는 돈을 좀 들여서 상급면구를 하나 샀다.

면구 하나에 천 냥이나 한다면 깜짝 놀라겠지만, 면구는 원래부터 아주 비싼 물건이었다.

강호에서 얼굴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은 여러 의미가 있다. 재미있는 노리개라 치부하면 몇 냥의 의미에 불과하겠지만, 얼굴을 바꿔서 목숨을 구할 수 있다면 그것은 값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가치가 된다.

상급면구에 옷까지 갖춰 입고 목소리까지 바꾸자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놈을 속이기 위해서다.

마음 같아선 끌어다놓고 이실직고할 때까지 패버리고 싶었지만 그보단 더 현명하고 확실한 해결방법이 있었다.

“누굴 찾아오셨습니까?”

문지기 무인들에게 본신의 기도를 감추지 않았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상당한 고수로 내비칠 것이다.

“지부장을 찾아왔네.”

무인이 내 눈치를 봤다. 내 행동이 너무 당당한 탓이다.

“어디서 오셨다고 전해드릴까요?”

“천도문(天刀門)에서 나왔다고 전하게.”

천도문이란 말에 문지기 무인이 깜짝 놀랐다. 천도문은 중원오세(中原五勢) 중 하나였다. 중원오세는 당대 강호에서 가장 힘 있는 다섯 세력을 의미했다.

내가 아니었다면 중원쟁패를 위해 날뛰었을지 모를 다섯 가문들. 그만큼 그들은 막강한 힘을 갖춘 가문이고 문파들이었다.

나는 그들을 온전히 내 무력으로 눌러두었다. 송곳처럼 튀어나오는 순간 내 손에 박살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들은 함부로 움직이지 않았다.

“천도문 누구시라고 전할까요?”

“말해주면 아는가? 당장 지부장에게 안내하도록.”

“잠,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문지기 중 하나가 허겁지겁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나는 중원오세의 속사정을 속속들이 잘 아는 사람이다.

그 중 내가 가장 잘 알고, 위장하기 좋은 가문이 천도문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천도문주 마봉기(麻奉基)는 여자 문제가 복잡한 사람이었다. 열 명이 넘는 여인을 두고 그 자손만 수십 명이었다. 누가 누군지 천도문주조차 헷갈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으니. 핏줄은 못 속인다고 마봉기의 형제들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그야말로 복잡한 집안이었다.

하지만 그런 속사정을 알건 모르건, 천도문은 확실히 먹히는 이름이다. 이 문지기 무인들의 행동이 빠릿빠릿해진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말이다.

잠시 후 지부장의 집무실로 안내되었다.

‘정말 기강이 엉망진창이군.’

비싼 옷을 입고 와서 천도문에서 나왔다는 한마디에 내가 누군지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았다. 만약 내가 지부장을 죽이기 위한 살수였다면 그는 영락없이 죽은 목숨이다.

아무리 본단에서 멀리 떨어진 곳의 작은 지부라지만, 이건 맹령에 따라 엄벌을 받아야 할 일이었다.

지부장의 이름은 공종(孔從). 앞서 광두가 공대협이라 불렀던 바로 그 자다. 인물과 풍채가 좋아서 제법 대협이란 말에 어울리는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천도문에서 나오셨다고요?”

“그렇소.”

“귀하신 분의 존성대명이 어찌 되시는지요?”

“마영충(麻英沖)이오. 현 문주님이 소생의 숙부되시오.”

공종의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존성대명은 익히 들었습니다. 이렇게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으레 인사치레겠지만 알고 보면 웃기는 소리다.

마영충은 실제 존재했지만 가문 내에서 칩거하는 인물이라 외부에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다. 존성대명을 듣기는 뭘 들어?

“자, 이리로 앉으시지요.”

공종이 상석으로 나를 안내했다.

당연한 듯 걸어가서 앉았지만 내심 한심하다는 생각뿐이었다.

아무리 상대의 위세가 높다 하더라도, 그는 엄연히 무림맹의 지부장의 신분이다. 게다가 마영충은 정통 후계자도 아닌데 저런 반응이면, 천도문의 직계가 왔으면 절이라도 했을 것 같았다.

애초에 곽도수와 한편일지도 모른다는 선입견이 있어서였을까? 여러모로 눈에 거슬리는 모습들이 보였다.

하지만 애써 불편한 마음을 없앴다. 공연한 선입견을 가지면 냉정한 판단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몇 가지 이야기들이 오갔다.

나는 내가 무림맹주이기에 알 수 있었던 천도문의 속사정을 슬쩍슬쩍 흘렸다.

그가 봤을 때는 마영충이기에 알 수 있는 내용으로 보일 것이다.

공종이 천도문에 관해 주워들었던 이야기 중 몇 가지를 물어왔다. 물론 그 중에 내가 모르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잘못 알려진 것들을 새로이 알려주자 그제야 나를 믿는 눈치였다.

이윽고 내가 본론을 꺼냈다.

“내 이곳에 들른 이유는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말씀하시지요.”

“본 가에서 한 사람을 추격하고 있었소.”

“그게 누굽니까?”

“곽도수란 자요.”

곽도수란 말을 듣는 순간 공종의 눈빛이 살짝 동요하는 것을 보았다. 그냥 뜻밖의 인물이라서 놀란 것과는 분명히 달랐다.

“곽도수는 왜 찾으시는 겁니까?”

“곽도수가 누군지 아시오?”

“아, 물론입니다. 온갖 악행을 저질러 큰 현상금이 걸린 악적입니다.”

“맞소. 바로 그 자요. 내 따로 조사를 해보니 이곳에서 인질극을 벌였다는 정보를 입수했소. 그대가 중재를 했다고 하던데.”

“일전에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대체 어떤 멍청이요?”

“네?”

“놈에게 인질로 잡혔다는 놈 말이오.”

“아, 벽씨검문의 후계자입니다. 벽리단이라고.”

“머저리 같은 놈이겠군.”

공종이 공감의 미소를 지어보였다. 자신의 입으로는 차마 그렇게까지 말할 수는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이다.

“정보에 의하면 같이 어울렸다고 들었소만?”

그러자 그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살다보면 때론 머저리와 술을 마셔야 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하하하.”

자신의 농담이 통했다고 생각했는지 공종도 따라 웃었다.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한데 마대협께서는 왜 곽도수를 찾으시는 겁니까?”

대협이란 말에 나는 자연스럽게 하대를 하면서 놈을 낚기 위한 미끼를 던졌다.

“놈이 본문에 큰 죄를 지었네. 지금 본문의 무인들이 모두 나서서 놈을 추적하고 있지.”

그때 두 번째 반응이 있었다. 공종의 얼굴이 살짝 굳어지며 눈동자가 떨렸던 것이다. 당황스러움을 억지로 감추려는 것이 확실했다.

이 반응으로 내 추측이 맞았음을 알 수 있었다.

공종과 곽도수가 모종의 관계가 있음을.

만약 곽도수와 모의를 하고 벽리단을 끌어들인 것이라면 공종은 참형을 당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무림맹의 지부장이 극악범과 교류를 가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죽음을 면치 못할 죄인 것이다.

“놈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내부 사정이니 그건 말해줄 수 없네. 다만 이번 일은 본가의 어르신들까지 주목하는 매우 중요한 사건이네. 내가 수행도 없이 다급하게 이곳에 온 것만 봐도 알 수 있겠지?”

수행 없이 온 사실을 의심할까봐 미리 선수를 친 것이다.

“물론입니다.”

“본문이 나선 이상 놈이 잡히는 것은 시간문제네. 내 공지부장에게 솔직히 말하지. 본가의 다른 사람이 잡기 전에 내가 먼저 놈을 잡고 싶다네. 그래서 다른 후계자들보다 내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네.”

공종이 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 온갖 생각이 다 들고 있으리라.

바로 이때가 가장 강력한 미끼를 던져야 할 때다.

“그대도 중앙으로 진출해야지 않겠나?”

중앙이란 말에 공종이 눈을 번쩍 떴다. 나는 알고 있다. 많은 무림맹의 지방 관리자들이 무림맹 본단에 진출하는 것을 꿈으로 삼고 있음을.

중앙진출.

게다가 천도문이란 배경까지 생긴다면?

“이번에 곽도수의 행방을 찾아내 주면 그대를 본단으로 보내주겠네.”

공종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진심이십니까?”

“나 역시 본단에 믿을만한 사람은 필요하니까. 천도문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겠네.”

의심의 여지를 줄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럴 때는 오래 앉아 있으면 안 된다. 뒤로 빠지는 것이 오히려 몰아붙이는 셈.

“연락 기다리겠네. 단 최대한 빨리 알아내야하네. 그대가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네.”

마지막 시험이었다.

그가 ‘최대한 빨리’ 알아낸다면 ‘최대한 빨리’ 자신의 죄를 시인하는 것이 될 것이다.

* * *

결과는 내 예상대로였다. 이틀 후, 내가 기다리고 있는 객잔으로 공종이 찾아온 것이다.

“제 모든 것을 걸고 알아냈습니다.”

단 이틀 만에 놈의 행방을 알아냈다고? 갈사량이 지휘해서 무림맹 전력을 쏟아 부었다면 모를까, 대체 어떻게?

이렇게 알아낼 수 있으면서 그 흉악범을 지금까지 왜 잡지 않고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그는 무슨 대답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놈은 출세에 눈이 어두워 스스로 곽도수와 한편임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 곽도수의 행방은 알고 있었을 테고, 지난 이틀간 내가 진짜인지를 알아보고 있었겠지.

하지만 이틀 만에 내가 가짜 마영충임을 밝혀낼 방법은 없다. 내가 흘린 이야기들 몇 가지를 확인하는데 그쳤을 것이다.

그것만 해도 그는 속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내가 흘린 정보만 해도 가히 맹주급 정보였으니까.

“지금 놈은 어디에 있나?”

“제남에 있습니다.”

제남! 운 좋게도 흑시 제남지부가 있던 바로 그곳이다. 곽도수는 사람이 많은 큰 도시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제남 어디에?”

“정확한 위치는 모릅니다.”

순간 내 인상이 굳어졌다.

“지금 나와 장난치는 것인가? 나보고 제남을 다 뒤지란 말인가?”

그가 다급히 말했다.

“아닙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놈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놈이 미치도록 좋아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뭔가?”

“도박입니다. 도박이라면 제 자식도 팔아먹을 놈입니다. 아마 제남의 도방을 뒤지면 놈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확실한 정보는 아니군.”

“아닙니다. 분명 도방에 있을 겁니다. 앞서 놈이 저지른 모든 살인은 도박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좋네. 그대 말을 믿어보겠네.”

“그리고 이것을 보십시오.”

그가 가져온 것을 꺼내놓았다. 그것은 놈의 용모파기가 그려진 종이였다.

“왼쪽 볼에 독특한 모양의 상처가 있어서 쉽게 알아볼 수 있을 겁니다.”

정말이지 확실한 배신이었다.

“내가 놈을 잡으면, 그대는 무림맹 본단의 부단주로 밀어 넣어 주겠네.”

거기에 현실감 있는 한마디까지 덧붙였다.

“물론 작은 규모의 단이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촌구석 지부장에서 본단의 부단주라면 그야말로 파격적인 승진이었다.

“앞으로 충성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공종이 그 자리에서 절을 했다.

“이번 일은 극비를 유지하도록.”

“물론입니다.”

“그리고 놈에게 걸린 현상금이 얼마지?”

“오천 냥입니다.”

“이만 냥이라? 제법되는군.”

일부러 만오천 냥이나 올려서 말했다.

처음에는 내가 잘못 들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만 냥이 아니라…….”

하지만 굳은 표정의 나를 보며 그가 빠르게 말을 바꿨다.

“맞습니다. 이만 냥입니다.”

뇌물을 많이 받아본 자였기에 내 말 뜻을 곧바로 알아차린 것이다. 중앙진출을 위해서 그 정도는 바쳐야 한다고.

아마도 지금까지 부정축재한 돈이 그 정도는 있을 것이다. 아버지에게 뜯어낸 오천 냥에 이자 만 냥이 붙은 것이다.

“지급은 어떤 방식을 원하십니까? 전장으로 보낼 수도 있고…….”

“추적 불가능한 소액전표로.”

“알겠습니다.”

“그리고 사흘 후 돈을 가지고 제남으로 직접 오게. 그 쓸모없는 놈의 머리통을 넘겨준 후 나는 곧장 본문으로 돌아갈 생각이니까. 한시라도 빨리 일을 진행하는 것이 좋지 않겠나?”

“네, 그러지요.”

흑시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약속장소를 잡았다.

만약 순조롭게 일이 진행된다면 약속한 기일 내에 흑시로 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놈이 당부했다.

“조심하십시오. 아주 악질적인 놈입니다.”

노름에 미쳐 죄 없는 일가족을 몰살시켰다면 악질 중의 악질이다. 그리고 너는 그런 악질적인 놈과 손을 잡고 돈을 번 놈이고. 이 두 악질이 어떻게 되는지는.

“사흘 후에 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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