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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천마-12화 (1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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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검이 향하는 곳은(1)

그날 밤, 우린 동평을 한나절 거리에 둔 객잔에 묵었다. 목적지가 멀지 않았기에 빌렸던 마차는 돌려보냈다.

광두가 큰 방 하나, 작은 방 하나 그렇게 두 개를 얻기에 내가 끼어들었다.

“방은 하나만 주시오.”

흠칫하더니 광두가 재빨리 말했다.

“하하, 저는 저기 탁자에서 자도 됩니다. 그럴 줄 알고 두툼한 솜옷을 준비해 왔습니다.”

“평소에는 온갖 장난 잘 받아주면서, 왜 이런 일에는 이렇게 경직 돼?”

“네?”

“이 미친 대가리 놈아! 이 추운 날에 널 밖에 재우려고 방을 하나만 얻겠어?”

“그럼 설마?”

“한 방에서 자자는 말이지. 침상 두 개 있는 방 있잖아? 돈 아깝게 왜 두 개나 잡아. 왜? 코 많이 골아?”

“그건 아닙니다만, 그래도 어떻게 도련님과 한 방에서 잡니까?”

광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왜? 쓰레기랑 자기 싫어?”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불경스러워서 그렇죠.”

“됐고. 여기 방 하나만 주시오. 침상 두 개 짜리로.”

그렇게 방을 하나만 얻은 후 객방이 있는 이층으로 올라가지 않고 한 옆에 있는 탁자에 앉았다.

“술 한 잔 마시고 올라가자.”

“저하고요?”

광두가 멍하니 나를 쳐다보았다.

“그럼 여기 누가 있어?”

광두의 목소리가 진동하는 눈동자만큼이나 떨린다.

“처음이거든요. 이렇게 도련님과 한자리에 앉아서 술 마시는 것이요. 한 방에서 자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지금껏 몇 번이나 반복했던 말이지만 이번만큼은 다시 안 할 수가 없다.

정말이지 벽리단은 멍청한 놈이다.

술과 안주를 시키고 광두와 마주 앉았다. 그는 방을 얻을 때만큼이나 경직되어 있었다. 평소 온갖 농담을 다 주고 받는 사이니 훨씬 더 미안해진다.

물론 나와는 무관한 일의 결과지만. 이제는 내가 벽리단이니, 내가 미안해야겠지.

“자 술이나 한 잔 받아라.”

녀석에게 술을 따라 주려하자 광두가 기겁했다.

“이리 주십시오, 제가 먼저 드리겠습니다.”

“됐다. 먼저 받아라.”

“도련님!”

“나이도 나보다 많잖아. 그러니 먼저 받아.”

사실 진짜 나이야 녀석보다 내가 몇 배는 더 많지만 말이다.

“사해는 동도라며? 받아.”

“그거 헛소리라면서요? 안됩니다.”

그렇게 몇 번이나 사양한 끝에 광두가 못이기는 듯 술을 받았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종놈 버릇 나빠져요. 좋습니다. 이번 한 번만 딱 받겠습니다. 기념으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감격스러운 얼굴로 자신의 잔을 바라보던 광두가 뭔가를 알아차린 표정을 지었다.

“그렇군요. 이제 알겠습니다. 데려가서 저 죽이려는 거죠? 그래서 잘해주시는 거죠? 소도 잡기 전날에는 맛있는 것 준다던데. 맞죠?”

너스레를 시작으로 경직된 분위기가 풀리기 시작했다.

녀석은 곧잘 술을 마셨다. 제 말로는 한 때는 혼자서 열 병도 더 마셨다는데, 그건 허풍처럼 보였고.

나 같은 경우는 정확한 주량을 알지 못했다.

제대로 취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보통 암살이나 독살을 시도할 때 주로 술자리를 노린다. 술에 취하면 아무래도 몸도 마음도 흐트러지기 마련이니까.

그래도 꼭 마셔야 되는 술자리에서는 천무호심결을 이용해서 주기(酒氣)를 몸 밖으로 배출해 버리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편하게 술을 마셨다. 알딸딸하게 취기가 오른다. 취하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이렇게 편한 마음으로 술을 마셔본 것이 대체 얼마만인가? 아, 처음인가?

“근데 도련님, 그때는 경황이 없어서 못 여쭤봤는데……  무공 말이에요. 어떻게 된 건가요? 어떻게 그렇게 쉽게 그 놈을 이겼어요?”

“요즘 수련하고 있잖아?”

“고작 열흘 하고요?”

“그깟 쓰레기를 처리하는데 열흘이면 충분하지.”

광두가 내 얼굴부터 탁자아래 발까지 이리저리 훑어보았다.

“아무리 봐도 우리 도련님이 맞는데. 어떻게 이렇게 달라지셨지?”

“대기만성형인가보지.”

“큰 그릇은 바라지도 않아요. 안 깨질 그릇 맞죠?”

광두 역시 살짝 취기가 올라 있었다.

“안 깨져.”

“약속해요. 어느 날 갑자기 옛날처럼 돌아가지 않겠다고. 약속해요!”

“입으로 하는 약속이 뭐가 중요해서?”

“내겐 중요해요. 전 들어야겠어요.”

“그래, 약속한다.”

그제야 광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우린 하던 이야기를 이어갔다.

“무공을 숨기고 있었어.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

어차피 진실을 말해줄 수 없으니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낫겠지.

“왜요?”

“강호에서 오래 살아남으려면 삼 할의 실력은 숨겨야 하니까.”

“그럼 혹시 일부러 파락호처럼 굴었던 건가요?”

“그건 아니고. 송소저에게 맞는 순간에 이렇게 살아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거짓말처럼 철이 들었지.”

믿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때부터 내가 변했으니까. 세상에서 벌어지는 여러 이상한 일 중에 여자한테 얻어터지고 새롭게 태어나는 정도는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을 테니까.

“송소저가 은인이군요.”

“그렇다고 볼 수 있지.”

“말 나온 김에 송소저 놓치지 마세요. 파혼은 무슨 파혼입니까?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늘어져야지요.”

“너는 송소저 어디가 그렇게 좋냐?”

“예쁘잖아요? 더 필요한 것이 있나요? 남녀문제는 단순한 겁니다. 그걸 복잡하게 꼬니까 문제가 생기는 거죠.”

피식 웃으며 녀석의 잔을 채워주려 하자 재빨리 술병을 빼앗았다.

“아랫것에게 너무 잘해주면 버릇 나빠진다니까요.”

“좀 나빠져도 된다. 너는.”

취기에 달아오른 광두의 볼이 더욱 붉어졌다.

“술 네가 살 거지?”

“이 감동적인 순간에 그게 할 소립니까?”

“돈 없어?”

“벼룩의 간을 빼 드세요.”

하지만 말과는 달리 광두가 앞에 놓인 술잔을 단숨에 비우며 호기롭게 말했다.

“좋습니다. 오늘은 제가 삽니다! 꽁꽁 숨겨둔 쌈짓돈 풀죠.”

“여기 한 병 더요!”

“그러지 마요!”

광두와 나는 늦도록 술을 마셨다.

이토록 기분 좋게 취해본 것은 내 인생에서 처음이었다.

* * *

다음 날 우린 양소방이 있는 동평(東平)에 도착했다.

먼저 한 일은 마을에서 가장 큰 객잔을 찾는 일이었다.

“눈에 안 띄려면 작은 객잔으로 들어가는 것이 낫지 않나요?”

“그럼 더 눈에 띄겠지.”

“그런가요?”

“아예 먹구름 속으로 숨을 수 없다면, 태양 아래에 있는 것이 낫겠지.”

동평에서 가장 큰 객잔으로 들어선 후에야 광두가 감탄하며 말했다.

“도련님 말씀이 맞습니다.”

거대한 대청에는 손님과 점소이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탁자 숫자만 수십 개, 손님들은 족히 백 명은 되는 것 같았다.

“저기 구석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르지.”

“무서워요, 강호라는 것은.”

광두가 또 강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나는 광두의 마음에 변화가 있음을 눈치 채고 있었다.

이번 양기강의 행패 때문인지, 아니면 내 변화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분명 광두는 강호에 대한 동경이 생겨났다.

문득 송화린과 나눴던 대화가 떠오른다.

사람이 쉽게 바뀌느냐고?

사람만큼 쉽게 바뀌는 존재도 없다.

역시 이곳에서도 방을 하나만 얻은 후, 일층에 내려와서 식사를 했다.

식사를 하면서 양소방에 관한 소식이 있는지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양기강이 다쳤다는 사실조차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보통 이런 일은 어떤 식으로든 소문이 나기 마련이었다. 그날 양소방 무인만 스무 명이나 있었다. 한데 일체의 소문도 없다는 것은 양기철이 단단히 입단속을 했다는 뜻.

“이제 어쩌실 작정이십니까?”

“놈이 어떤 계획을 꾸미고 있는지 알아봐야겠지?”

“어떻게요?”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으니, 내부인을 통해서 알아봐야지.”

그러자 광두가 뜻밖의 말을 꺼냈다.

“그 일 제게 한 번 맡겨주시겠습니까?”

망설이지 않고 불쑥 나온 말이지만, 나는 그것이 충동적으로 한 말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마차에서부터 녀석은 결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왜 그런 생각을 했냐?”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한 번 해보고 싶습니다.”

“위험할 수도 있어. 붙잡히면 고문을 당할 수도 있고. 두들겨 패고 인두로 지지고. 톱으로 손가락을 썰지도 모르지.”

“괜찮아요. 고문당하기 전에 도련님 여기 계시다고 다 불거니까요. 다 시켰다고.”

“꼭 불어야 해. 그게 진짜 현명한 충성심이야.”

“농담이었는데. 한데 현명한 충성심도 있습니까?”

“있다.”

가장 높은 가치의 충성심에 붙는 수식어는 ‘죽음도 불사하는’ 이다.

하지만 내가 광두에게 바라는 것은 그런 충성심이 아니다.

“배신 아닌가요?”

“적어도 지금은 현명한 충성심이다.”

“어렵네요. 암튼 저 후회는 안합니다. 맡겨주세요.”

광두의 운명이 꿈틀거리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기에 내 고민은 길지 않았다.

“좋다. 네가 알아 와라.”

허락이 떨어지자 광두가 크게 심호흡을 했다. 아마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모험을 하는 순간이리라.

“이제부터 네 역할은 아주 중요하다.”

“제 역할은 도련님이 깨어나시던 그 순간부터 중요했던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하하. 인정한다. 만약 광두란 존재가 없었다면 내가 이렇게 쉽게 벽리단이란 인물에 적응할 수 있었을까?

“목숨 바치죠. 바칩니다. 어차피 모아둔 비상금도 술값으로 다 썼는데. 그 비싼 술을 다섯 병이나 마시다니!”

“마지막 두 병은 네가 시켰어.”

“말리셨어야죠!”

“지금도 말릴까?”

그러자 광두가 진지하게 대답했다.

“아뇨.”

“그때도 이렇게 단호했어.”

“하하.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녀석에게 필요할 때 쓰라고 얼마간의 돈을 주었다. 일종의 군자금이었다.

몇 걸음 걸어가던 광두가 다시 돌아오더니 속삭이듯 말했다.

“저 보내놓고 조용히 따라와서 지켜주실 거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켜주실 거죠? 그렇죠?”

“그래서 네 마음이 편하다면 그렇게 생각해라.”

나는 정말 이번 일을 철저히 광두에게 맡길 생각이다. 죽든 말든. 광두는 내 눈빛에서 그런 의지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과연 녀석의 입이 삐죽 나왔다.

“갈 때는 도련님이 술 사요!”

광두가 객잔을 나섰다.

위험할지도 모를 일인데 왜 허락했느냐고?

광두를 처음 보던 순간이 생각난다. 환생한 나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와서 옆에 앉던 그 순간이.

나는 믿는다. 나와 광두의 인연이 고작 이런 일을 하다가 끊어질 정도는 아닐 것이라고.

그래야만 광두와 강호와의 인연도 이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꼭 해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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