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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천마-10화 (1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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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소방(4)

“양방주는 옹졸한 사람이에요.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예요.”

임예화의 말에 벽도준이 대답했다.

“하나 이번 일로 대놓고 복수를 획책하진 못할 것이오.”

“그 사람은 대의명분을 따지는 사람이 아니에요. 우선 그들에게 진 빚부터 갚아야 해요. 그렇잖으면 빚을 빌미로 일을 꾸미려 들 테니까요.”

벽도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양기철의 본성에 대해선 모르는 바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당장 이만 냥이라는 거금을 갚을 방법이 없었다.

잘 나갈 때는 간이라도 빼줄 것 같았던 이들은, 이제 그 간을 양기철에게 빼주고 있다. 그들을 원망하진 않는다. 그 야박한 인심은 결국 자식 교육을 잘못한 부덕의 소치에서 비롯된 것일 테니까.

임예화가 작은 보석함을 내밀었다.

“이걸 팔면 얼추 빚을 갚을 수 있을 거예요.”

벽도준이 열어보니 그 안에 작은 청옥(靑玉) 목걸이가 들어 있었다.

“이건?”

깜짝 놀란 벽도준이 세차게 고개를 내저었다.

“안 되오! 이것은 당신 가문에서 대대로 내려오던 것이지 않소? 당신이 가장 소중히 여겼던 것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아요. 그저 보관하고 있던 것일 뿐이에요. 이걸 팔면…….”

“절대 안 되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안 될 일이오.”

“단지 물건일 뿐이에요.”

“이건 단지 물건이 아니라 장인어른의 유품(遺品)이오. 당신이 가장 아끼는 것이고.”

“제가 가장 아끼는 것은 당신과 단이에요.”

순간 벽도준은 말문이 막혔다.

잘 안다. 아내가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는지. 자식을 위해서 얼마나 희생해 왔는지. 또한 희생할 수 있는지. 그래서 안 된다.

임예화가 부드럽게 남편을 설득했다.

“감정적으로 처리할 문제가 아니에요. 물건은 언제든지 살 수 있어요. 나중에 다시 사줘요.”

남편이 여전히 요지부동이자 임예화가 작전을 바꿨다.

“여보, 단이가 정신을 차렸어요.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이런 물건이 아니라 우리 자식이에요.”

자식이 언급되자 과연 벽도준이 반응했다.

“녀석을 믿소?”

벽도준의 물음에 임예화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네, 믿어요.”

“그렇게 속고서도?”

“그래도 우리 아들이니까요.”

아들은 잘못을 저지르고선 앞으로 잘하겠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예전의 그 지키지 못할 약속과는 느낌이 달랐다.

아들은 행동으로 보이고 있었다. 열흘이 넘도록 무공수련에 열중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고, 오늘은 광두를 위해 위험을 무릅썼다고 들었다.

벽도준이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소.”

오늘 사건만 해도 그렇다. 무공수련한다고 설쳐댄 것이 고작 열흘에 불과한데 어떻게 양기강을 때려눕힌 것일까? 어디 위험한 사공(邪功)이라도 익혔는가 싶어 서중에게 물어봤더니, 특별한 무공이 아니라 주먹질로 때려눕혔다고 했다. 어차피 양기강도 파락호 같은 녀석이니 그건 그렇다고 치고.

그것만이 아니다. 언행도 달라졌고, 심지어 눈빛조차 차분해졌다.

“이제 철이 든 거죠.”

임예화의 말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이해하는 것이 맞겠지. 제발 이것이 한 때의 변덕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다른 한편으로 기쁘기도 했다. 아들이 달라졌다는 사실에 힘이 났다. 희망 같은 것이 생겼다. 달라진 아들과 벽씨검문을 다시 잘 키워보고 싶다는 꿈 같은 것.

“어쨌든 당신 뜻은 잘 알았소.”

벽도준이 보석함을 챙겼다.

“이해해 줘서 고마워요.”

벽도준은 이것을 팔 생각이 없었다. 아내에게 맡겨두었다가 혹여 그녀가 팔아버릴까 걱정이 되어 맡은 것뿐이었다.

어떻게든 자신의 힘으로 이번 일을 해결할 생각이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부인.”

임예화가 미소를 지으며 남편의 손을 잡았다.

“저는 걱정하지 않아요. 당신과 살고 난 후에 단 한 번도 걱정 같은 것을 해본 적이 없는 걸요?”

나는 두 분의 대화를 밖에서 듣고 있었다.

엿들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아까 일을 사죄할 겸 두 분을 뵈러 왔다가 우연히 대화를 듣게 된 것 뿐이다.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어머니가 참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겉으로는 그렇게 괄괄하니 대장부처럼 굴어도, 아버지와 둘이 있을 때는 가녀린 여인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처음에는 나를 위해 환생을 했는가 싶었고, 다음에는 벽리단 이놈을 위해선가 싶다가, 오늘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어쩌면 하늘은 이 부부를 위해서 환생시켰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데 나로 되겠소? 평생 가족의 정이라곤 느껴보지 못하고 살아온 나인데. 누군가 해코지라도 하면 열 배로 복수하지 않으면 밤잠을 자지 못할 성질 더러운 나인데.

덜컥.

어머니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다가 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

“단아? 왔으면 들어오지 않고?”

나는 안으로 들어서며 하고 싶은 말의 결론부터 말했다.

“그건 팔지 마세요. 팔아도 소용없으니까.”

“들었느냐?”

“네. 일부러 엿들으려 한 것은 아니니 부디 용서하세요.”

“괜찮다. 한데 팔아도 소용없다는 말은 무슨 뜻이냐?”

“돈을 갚아도 소용없다는 뜻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돈을 갚는다고 그냥 넘어갈 사람이 아니니까요.”

아버지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닙니까? 제가 양방주를 잘못 본 겁니까?”

떠나기 전 양기철의 눈에 담긴 앙심을 보았다. 상대를 반드시 죽여 버리겠다는 살심 가득한 그것은 전생의 내가 악인들을 상대하면서 숱하게 봐온 것이다.

잠시 흐르는 침묵이 이미 대답을 대신하고 있었다.

“이번 일은 이 애비가 해결할 터이니 너는 어머니를 모시고 잠시 외숙에게 가 있어라.”

내가 알기로 어머니의 동생은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안휘(安徽)에 살고 있었다. 어머니와 나를 보호하기 위함이겠지?

돈을 마련해서 갚아도, 놈이 복수를 해올 수 있을 것이라고 아버지 역시 예감하고 있는 것이다.

“놈들과 맞서 싸우실 생각이십니까?”

“너는 알 것 없다.”

“당연히 제가 알아야 할 일입니다.”

지금까지의 벽리단의 행실로 이런 말은 참으로 가증스럽게 들리겠지만.

“우리 집안의 일이지 않습니까?”

내 말에 어머니의 얼굴이 환해졌다. 말 한 마디에 이렇게 기뻐하는 것이 부모일진대, 벽리단 이 녀석은 뭐가 그리 불만이었을까?

“이 애비가 해결한다니까.”

아버지가 강인한 분이시라는 것을 확인했지만 선하고 고지식한 아버지에게 맡기기에는 저쪽 인성이 너무 글러먹었다.

“저도 함께 해결하게 해주십시오.”

“어찌 너만 생각하느냐? 네 엄마의 안위는 중요하지 않단 말이냐?”

“아버지가 잘못되면 어차피 어머니는 불행해지실 겁니다.”

“그 무슨 버릇없는 소리냐!”

아버지는 화를 냈지만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다.

“틀렸다. 그냥 불행해지는 정도가 아니라 가족과 함께 죽는 것보다 백 배, 천 배 더 불행해 질 것이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와 그렇게 오래 살고서도 아직 저를 모르세요?”

아버지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왜 모를까. 아버진 이런 상황에서 어머니가 떠나지 않으려 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을 것이다.

아마도 원래라면 내 목숨을 구해야한다고 어머니를 설득하셨겠지. 한데 내가 생각지도 않게 적극적으로 나서는 바람에 어머니를 설득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소.”

어머니가 소맷자락을 걷어붙였다.

“오랜만에 흥미진진하겠네요.”

나도 모르게 입가에 지어지는 미소. 앞서 대화를 들어보면 지고지순한 아내의 모습이었고, 이럴 때보면 대장부 못지않게 시원시원하시다.

어머니가 나를 돌아보며 말씀하셨다.

“너는 어떠냐?”

“저 역시 흥미진진합니다.”

“그렇지?”

어머니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 어떤 흥미진진한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 전에 내가 이번 일을 해결할 테니까. 두 분이 계시는 이 공간을 그런 쓰레기들이 설쳐대게 할 생각은 전혀 없으니까.

“저는 한 며칠 산에 올라가서 수련하고 오겠습니다. 광두도 데려갈 테니 걱정하진 마시고요.”

“그래, 조심히 다녀오너라.”

아버지와 어머니는 흔쾌히 허락하셨다. 지금 상황에서는 등을 떠밀어서라도 멀리 내보내야 할 상황이었으니까.

방에서 나온 나는 곧장 광두를 찾았다.

“헉!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두 눈을 커다랗게 뜬 광두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왠지 즐겁다.

“나와 같이 양소방으로 가야한다고.”

곧바로 이런 반응이 나오기 때문이다.

“제가 그렇게 밉습니까? 대체 왜 그렇게 위험한 곳을 가시면서 저를 데려가시려는 겁니까?”

“두 가지 대답이 있다. 듣기 좋은 말과 싫은 말. 어느 쪽부터 들을래?”

“매도 먼저 맞죠. 듣기 싫은 말부터 해주세요.”

“너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까.”

광두가 고개를 푹 숙였다. 부정할 수 없는 모양이다.

“이제 듣기 좋은 말을 해주세요.”

“믿을 사람이 너 밖에 없으니까.”

광두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안타깝군요. 도련님의 좁고도 척박한 인간관계가.”

말과는 달리 녀석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믿을 사람이 너 밖이라는 말에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다. 이런 단순한 녀석 같으니라고.

“한데 왜 가시는 건데요? 가주님 심부름? 맞죠? 그냥 서찰 같은 것 전하러 가는 거죠? 그죠?”

“그렇게 해서 네 마음이 안심된다면 그렇게 생각해라.”

“그 말씀은 설마?”

“우리가 저지른 일이니 우리가 해결해야지.”

“맙소사! 대책은 있으십니까?”

“가면서 세워야지.”

“대체 어디를 어떻게 다쳐야 사람이 이렇게 긍정적으로 변한답니까?”

“너도 그렇게 될 수 있어. 그곳에 가면 널 패려는 놈들이 득시글댈 테니.”

몸이 젊어져서일까? 아니면 숨 막히는 격식에 갇혀 살았던 전생에 대한 반발심 때문일까? 예전에는 하지 않던 농담이나 장난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아니라면 이 광두 때문일지도 모르지. 녀석과 대화를 나누고 있으면 기분이 좋았으니까. 어쨌든 내 마음도 젊어졌다.

“어서 준비해. 가자.”

광두를 데려가는 이유가 있다.

이번에 결정을 내릴 작정이다. 녀석을 그냥 마당이나 쓸게 할 것인지, 아니면 내가 투자해서 끝까지 데려갈 것인지.

어느 인생이 그를 위한 길인지는 나도 모른다.

그냥 운명이 이끄는 대로 가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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