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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천마-5화 (5/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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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제일미(2)

다음날 새벽부터 본격적인 수련에 돌입했다.

우선은 체력단련부터.

오 리쯤 달리자 숨이 넘어갈 것만 같았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저질체력도 이런 저질이 없다.

내공을 사용하고 싶은 욕구를 참아내며 억지로 달렸다. 이 힘든 고비를 넘길 때 비로소 체력이 길러지는 법이니까.

달리다가, 빠르게 걷다가, 다시 달리다가. 그렇게 십 리를 더 가서야 쓰러졌다.

“헉헉헉헉!”

바닥에 대자로 누워 숨을 헐떡였다. 등에서 느껴지는 땅바닥의 차가운 기운이 이 형편없는 육체의 현실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굳이 기분을 절망감으로 몰고 가진 않았다. 오히려 거칠게 내뱉는 숨결 속에 이 몸이 어떻게 변해갈지에 대한 기대감을 실었다.

숨을 고른 후 다시 일어나서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몸을 혹사시키고 난 후, 지친 몸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집 앞에 생각지 못한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송화린이었다. 멀리서 봐도 그녀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는데 사람에게서 빛이 난다는 말을 새삼 실감했다.

그녀는 어제와 다른 무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것만으로도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 보였다. 과연 얼굴과 몸매가 예쁘니, 뭘 입어도 잘 어울린다.

만약 무복이 아니라 몸매를 드러낼 수 있는 연회복(宴會服)을 입는다면 그야말로 세상 모든 여자를 압살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오고 싶어서 온 것 아니니까 오해는 하지 마. 아버지가 사과하라고 보낸 것일 뿐이니까.”

아마도 아버지 어머니께 사과를 하고 난 후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오해 안 해.”

그녀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네까짓 게 뭔데 이렇게 당당해?’

한바탕 그런 말을 내뱉고 싶은 심정을 억지로 참는 표정이었다.

“그날 술 취해서 그랬지? 그 반반한 얼굴이 언제까지 가는지 보자고. 늙으면 쭈글쭈글해질 것이라고. 그러니까 잘난 척 하지 말라고.”

벽리단아, 벽리단아. 너도 참 못났다, 못났어. 어쨌든 내가 기억할 수 없는 날의 일이다.

“다시 한 번 그날 일은 사과하지.”

“아냐. 네 말이 맞아. 지금은 다들 내 외모를 칭찬하지만 세월이 지나면 아무도 쳐다보지도 않겠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

그녀는 차분했고 또한 정확히 현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지금 예쁘다는 말을 많이 들을수록 나중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거야. 그래서 난 외모가 아니라 실력으로 이름을 떨치고 싶어. 얼굴값 한다는 소리보단 실력값 한다는 소릴 듣고 싶다는 말이야. 그러려면 노력을 많이 해야겠지. 그래, 솔직히 말할게. 파혼 이야기를 꺼낸 것은 네가 싫어서야. 좋은 가문에 태어나서 사고나 치는 철부지 따윈 밥맛이니까. 하지만 네가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거야. 난 지금 남자를 만날 생각이 전혀 없으니까.”

그녀는 당당했다. 나는 이 당당함이 진심에서 나오는 힘임을 알 수 있었다. 진짜 그녀는 자신의 능력으로 성공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냥 얼굴만 예쁜 어린애 인줄 알았는데, 제법 생각이 있는 녀석이구나.

“네 생각은 잘 알겠다.”

내가 순순히 물러설 뜻을 밝히자 그녀는 그게 의외란 생각이 든 모양이다.

“너에 대한 소문 들었어.”

“무슨 소문?”

“그날 이후에 뭔가 바뀌었다면서?”

“맞아. 네게 맞고 나서 철 좀 들었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던데.”

공감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말이 맞다. 사람은 정말 지독하게 바뀌지 않는다. 전생에 많이 경험해 봤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정반대의 경험도 많이 했다.

“하지만 사람만큼 쉽게 바뀌는 존재도 없지.”

말 한 마디에, 작은 계기 하나에 송두리째 인생을 바꾸는 것 또한 사람이다.

“이 모든 것이 혹시…… 자존심이 상해서야?”

“마음대로 생각해.”

그래, 이런 것이 스무 살 때 오가는 감정들이지.

자존심에 만나고 헤어지고. 울고 웃고.

그러고 보니, 지난 삶에서 내 스무 살은 너무나 살벌했다.

실전수련을 위해 검 한 자루 들고 중원의 악인들을 죽이러 다니던 시절, 그녀처럼 이렇게 빛나는 푸른빛이 아니라 회색빛과 핏빛만이 가득하던 내 청춘.

“앞으로 네 인생에 방해되는 일은 없을 거야.”

결별하듯 말을 던지고는 나는 안으로 들어왔다.

꽝!

잠시 후 뒤에서 발로 문을 차는 소리가 들렸다.

* * *

몸을 만들기 시작한지 열흘이 지났다.

그 사이에도 내 죽음에 관한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그에 관해서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굳이 신경 써 봐야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으니까.

내 일에만 집중했다.

하루 종일 고된 수련을 하니 몸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오 리를 뛰면 헐떡대던 것이 이제 이십 리는 어렵지 않게 달릴 수 있게 되었다. 거리도 늘렸고 동시에 속도도 올렸다.

훈련을 해보니 벽리단의 타고난 육체가 나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혈맥이 튼튼했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어려서 제대로 수련해서 다듬었다면 정말 멋진 몸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늦을 만큼 늦었지만, 내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최대한 빨리 이 육체에 켜켜이 쌓인 녹과 먼지를 벗겨 내야 한다.

체력을 키우는 수련과 동시에 검술훈련도 시작했다.

쉬이익.

검이 빠르게 허공을 갈랐다.

비록 형편없는 육체라고 하더라도 나는 나다.

허공을 수놓는 번쩍이는 검광(劍光). 비록 내공이 부족해 희미했지만 검이 만들어내는 선은 검술의 극의(極意)에 닿아 있었다.

간단한 듯 보이지만 결코 간단하지 않는, 그래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감조차 잡을 수 없는. 내 검이 다니는 길은 오직 나만이 다니는 길이고, 결코 모방을 허용하지 않는 절대자의 길이기도 했다.

벽리단을 아는 누군가 봤다면, 손짓 하나 발걸음 하나에도 경악했겠지만, 눈 덮인 깊은 산속에는 인적은커녕 귀 쫑긋 세운 노루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조심하고 경계해야 할 것은 내가 약한 것이 아니다.

강했던 시절을 기억하는 것, 바로 이것이다.

죽일 수 없는 적을 죽일 수 있다고 착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천하진이 아니라 벽리단임을 절대 잊어선 안 된다.

전생에 내가 익힌 검술은 추혼수라검법(追魂修羅劍法)이다.

이 검법으로 나는 천하제일인의 자리에 올랐다. 흑도십삼맹의 열세 수장들의 심장을 모두 꿰뚫었고 혈천신교 교주의 목을 잘랐다.

언젠가 강호의 명숙이자 지혜의 상징인 만통선생(萬通先生) 도경(度京)은 내 무공을 두고 근래 백 년간 나온 무공 중 으뜸이라 평가했다. 무공을 평가하는 일에 있어서는 엄중한 기준이 있던 그였으니, 내 무공에 관한한 가히 자부심을 가질 만할 것이다.

추혼수라검법의 초식은 단지 여섯 개로 이뤄져 있는데, 삼인삼겁(三刃三劫)의 여섯 초식은 다음과 같다.

제일초식 찰나인(刹那刃)

제이초식 진명인(盡命刃)

제삼초식 무극인(無極刃)

제사초식 탈혼겁(奪魂劫)

제오초식 회륜겁(回輪劫)

제육초식 대멸겁(大滅劫)

초반 세 초식은 지금도 사용할 수 있다. 물론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미약한 위력이겠지만.

후반 세 초식은 최소 내공이 일 갑자 이상이 되어야만 사용할 수 있다.

사초식 탈혼겁은 일 갑자, 오초식 회륜겁은 이 갑자, 마지막 대멸겁은 삼 갑자의 내공이 있어야만 사용할 수 있다.

특히 최종초식인 대멸겁은 막대한 내공이 드는데다가 그 운용이 까다롭고 어려워서 작은 실수만 해도 도리어 자신이 죽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나 역시도 자주 사용하지 않았다. 실전에서 대멸겁을 사용한 적은 딱 한 번, 마교 교주를 죽일 때였다.

어쨌든 초반 세 개의 초식은 사용할 수 있다 하더라도 드러내 놓고 사용할 순 없다. 보통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하겠지만, 무림명숙 중 누군가는 내 검술을 알아볼 수도 있었으니까.

내 스스로를 완벽하게 지킬 수 있을 때까진 조심하는 것이 좋다.

수련을 마치고 언덕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불과 오 년의 내공에서 나오는 초식이지만, 오랜만에 펼쳐낸 독문무공에 기분이 좋아졌다. 거기에 하나 더, 젊음이 주는 활력은 수 갑자의 내공도 줄 수 없는 어떤 신선한 느낌이 있었다.

“하아아아압!”

한바탕 기합을 내지르니 기분이 더욱 상쾌해졌다.

“이놈아, 이렇게 건강한 몸을 가지고 그렇게 쓰레기처럼 살아왔더란 말이냐? 아마도 하늘이 네 몸에 들어오게 한 것은 비단 내게만 기회를 준 것이 아니라 네게도 기회를 준 것일지도 모르겠구나. 새 인생을 멋지게 살아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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