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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천마-4화 (4/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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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제일미(1)

내가 들어서자 대화를 나누던 그곳이 조용해졌다.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 중에 그녀도 있었다.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녀를 향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내 눈길을 그쪽으로 잡아당기는 것만 같았다. 그녀를 보는 순간, 나는 그 힘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아름다움의 힘.

그냥 아름다움이 아니라 절대적인 아름다움이었다.

맑고 깊은 두 눈동자, 완벽한 비율의 이목구비, 티 한 점 없이 깨끗한 피부, 아담한 듯 풍만한 가슴, 잘록한 허리와 곧고 쭉 뻗은 다리.

단지 이런 것이 전부였다면 ‘절대적’이란 수식어를 붙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단아하면서 관능적이었고 청순하면서도 지성미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여러 아름다움이 한 사람에게서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그 아름다움들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기품이었다.

나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왔다.

광두는 틀렸다. 그녀는 산동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중원제일미라 해도 충분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장담해도 좋다. 난 중원제일미라 불리는 여인들을 실제로 봐 왔으니까.

내가 봤던 그 어떤 미녀도 이렇게 폭력적으로 아름답진 않았다. 송화린은 주위의 모든 것을 자신을 위한 배경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녀에게 붙잡혀 있던 내 시선이 함께 서 있는 송우경을 향했다. 딸의 미모를 생각하면 아주 잘 생겼어야 하는데, 오히려 인상이 사납고 무서웠다.

그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그래, 잘 지냈다네.”

그는 무서운 인상에 비해 호감이 담긴 인사를 보내왔다.

인사를 한 후 다시 송화린을 쳐다보았다.

정말 아쉽게도 그녀의 아름다운 두 눈에는 나에 대한 경멸로 가득 차 있었다.

벽리단이 쓰레기 같은 놈일지는 몰라도, 적어도 이번 실수만큼은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저렇게 아름다운 여인이라면, 보고 싶어서 미쳐 날뛸 수도 있었겠지. 줄을 선 경쟁자들 앞에서 당당히 자랑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 여인이 바로 내 약혼자다! 그러니 다 꺼져라!

스무 살의 팔팔한 나이였으니까.

“그날 일은 미안했다.”

내 사과에 송화린이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하지만 그녀의 입가에는 여전히 조소가 지어져 있었다.

그녀의 태도 역시 이해했다.

오 년간의 수련에서 돌아온 후 내 소문에 관해 들었을 것이다.

내가 저질렀던 온갖 사건들이 모두 사실임을 알고 큰 실망을 했겠지. 게다가 술까지 취해서 온갖 주정을 다 부렸으니 만정이 다 떨어졌을 것이다. 어려서 친했다고는 하나, 그것은 말 그대로 어려서의 일이었다.

나는 더 변명하지 않고 돌아섰다.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청아한 목소리, 그녀였다.

“잠깐만.”

잠시 나를 불러 세운 후 그녀가 모두에게 말했다.

“기왕 이렇게 다 모였을 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요.”

“무엇이냐?”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그녀가 차분히 말했다. 담담한 어조와는 달리 말의 내용은 그야말로 폭탄선언이었다.

“우리의 태중혼약을 취소해 주십시오.”

순간 쩌엉 벼락이 내리 꽂히듯 장내를 흐르는 정적.

정적을 깬 것은 그녀의 부친 송우경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무례한 말씀임을 잘 압니다만, 제게는 스스로 남편을  고를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송화린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파혼을 요구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뭐라 말을 하지도 못했다. 아들의 행실을 생각하면 송화린은 충분히 그런 요구를 할 만 했으니까.

송우경이 화난 표정으로 딸을 나무랐다.

“어서 두 분께 사과드려라!”

하지만 그녀의 뜻은 완강했다.

“두 분께는 정말 죄송합니다. 어려서부터 저를 친딸처럼 아껴주신 것도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벽공자와 혼인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그녀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난감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송우경이 얼굴을 붉히며 버럭 소리쳤다.

“이 녀석! 이 무슨 무례한 짓이냐!”

그때 내가 나섰다.

“저도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제 모두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었다.

“저도 파혼했으면 합니다.”

내 말에 모두들 깜짝 놀랐다. 송화린이 파혼을 요구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겠지만, 내 요구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던 것이다.

잠자코 계시던 어머니가 나섰다.

“그게 무슨 말이냐?”

어머니의 당혹감이 느껴졌다. 송화린에게는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들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녀와 혼인시키고 싶은 것이 어머니의 마음이리라.

“제 혼인은 제가 원하는 여인과 하겠습니다.”

순간 송화린의 표정이 굳어졌다. 마치 그 원하는 여인이 자신은 아니란 뜻으로 들린 탓이다.

어머니는 송화린 부녀가 없었다면 당장에 ‘이 멍청한 놈아! 네가 제 정신이더냐?’로 시작되는 욕설과 함께 주먹을 날리셨겠지만, 지금은 황당하고 어이없는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한심한 자존심을 부리고 있다고 여기시겠지.

이윽고 지켜보고 있던 아버지가 나섰다.

“너희들의 뜻이 그렇다면 그렇게 하자꾸나.”

그러자 송우경이 손사래를 치며 목청을 높였다.

“안 되네. 절대 파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네!”

“화린이 말이 맞네. 우리가 린이의 미래를 결정지을 수는 없는 일이지.”

“그럴 수 없다니까! 오늘은 이만 가겠네. 자, 가자!”

송우경이 딸에게 화난 감정을 감추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안 따라오고 무엇 하느냐?”

송화린이 두 분께 인사를 한 후 자신의 아버지를 따라 걸어 나갔다.

내 옆을 스쳐지나가던 그녀가 발걸음을 멈추고 나직이 물었다.

“왜 마음이 바뀐 거지?”

가까이서 본 그녀의 얼굴은 정말이지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게다가 그녀에게서는 지금껏 맡아보지 못한 좋은 향기가 났다.

“네 주먹이 너무 아파서라고 해두지.”

잠시 나를 응시하던 그녀가 다시 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무튼 고마워.”

늘씬한 그녀의 뒷모습이 문밖으로 사라졌다.

어머니가 나를 보며 나직이 말했다.

“우리도 대화가 필요하겠구나.”

* * *

어머니는 어떻게든 나를 설득하려고 했다.

“나는 네가 화린이와 혼인했으면 좋겠다. 네 아버지는 파혼에 찬성했지만, 진심으로 그 말을 했다고 생각지 않는다.”

과연 그렇다는 듯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놓치기 아까운 아이지.”

“죄송한 말씀이지만 저는 혼인할 생각이 없습니다. 당분간 해야 할 일도 있고요.”

“혼인할 생각이 없으면서 왜 화린이를 찾아가서 행패를 부렸느냐?”

“죄송합니다.”

그에 대해선 내가 뭐라 할 말이 없다. 대신 지금 할 말은 있었다.

“혼인하기 전에는 눈을 크게 뜨고, 혼인한 후에는 눈을 감으란 말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사실 맹주 시절, 백표가 혼인할 무렵에 내가 해줬던 말이다.

“전 지금 어느 때보다 눈을 크게 뜨고 있습니다.”

두 분은 내 결심이 확고하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난감한 표정만 지었다.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어머니가 물었다.

“하면 당분간 하겠다는 일은 무엇이냐?”

“무공수련을 할까 합니다.”

“그게 진심이었더냐?”

“진심입니다.”

잠시 멍하니 나를 쳐다보던 어머니가 성큼성큼 걸어와서 양손으로 내 얼굴을 감싸 쥐었다.

“정말 이상한 짓 하려는 것 아니지?”

따스한 손바닥에서 나에 대한 걱정이 전해져왔다.

“네.”

그때 잠자코 대화를 듣고 있던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말했다.

“그만 갑시다.”

“어딜요?”

“오랜만에 오붓하게 술이나 한잔 합시다.”

그만하면 됐다는 뜻임을 알아차린 어머니가 내 얼굴을 붙잡았던 손을 놓았다.

“나는 아직 허락할 수 없다. 이 일에 대해선 다시 얘기하자꾸나.”

“네.”

두 분이 방을 나갔다.

창밖을 보니 저 멀리 나란히 걸어가는 두 분의 모습이 보였다.

내 마음 한 구석에는 가족이 무인을 약하게 만든다는 두려움이 있다.

가족이 인질이 될까봐? 그런 뜻이 아니다.

사랑이란 감정을 알게 되면 마음이 약해질 것을 걱정해서다. 정말 모질어 져야 할 때, 모질어지지 못할까봐다.

내가 봐온 진짜 사랑들은 모두 그러했었으니까.

어쨌든 나란히 걸어가는 두 분의 뒷모습은 너무나 다정하고 행복해 보였다. 설령 자식걱정이 가득한 무거운 걸음걸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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