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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하다(3)
내가 환생한 청년의 이름은 벽리단(碧理端).
이곳은 중원의 변방이라 할 수 있는 산동성의 곡부(曲阜)라는 곳이다.
우리 가문은 벽씨검문(碧氏劍門)으로 산동의 전통명가라고 했다.
아버지는 벽도준(碧導俊). 어머니는 임예화(林藝華).
활달한 기질을 지닌 임예화와는 달리 아버지인 벽도준은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을 지닌 사람이었다.
자식은 외동으로 나 하나다. 짐작해 보건데 이 벽리단이 형편없는 놈으로 자란 이유는 외아들이라 금이야 옥이야 키우다가 망쳐버린 것이리라.
나는 내가 처한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처음 며칠은 잠에서 깨어나면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가졌다.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사실 이 청년으로 환생한 것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무림맹주란 자리를 내주고 내가 얻은 것은 ‘젊음’이었다. 돈과 권력으로도 살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게다가 죽을 당시 내 나이는 칠십, 살만큼 산 나이다.
물론 새로 얻은 이 젊음이 제대로 된 것이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말이다.
벽리단 이놈은 인간관계는 물론이고, 무공과 관련된 것들도 형편없었다. 무가의 자손이란 놈이 스무 살이나 되었는데 단전에 든 내공은 고작 오 년에 불과했다. 그조차도 정순하지 않은 쓰레기 같은 것이었다. 게다가 단련되지 않은 약골은 건들면 부서질 것 같았다.
그나마 쓸 만한 것이라곤 이 주둥이 샛노란 광두란 녀석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내 시중을 든 몸종이었다.
“혹시 소문 들은 것 있나?”
“무슨 소문요?”
“전대고수의 장보도가 출현했다거나, 머리 둘 달린 영물이 등장했다거나…… 맹주가 죽었다거나.”
환생한지 며칠이나 지났으니 내가 죽었다는 소문이 들려올 법도 한데, 무서우리만치 조용했다.
물론 이곳 산동은 무림맹 본단에서 워낙 먼 곳이니 소식이 들려오려면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아니라면 아직 내 죽음을 숨기고 있을 수 있고. 무림맹주의 죽음이 알려지면 강호에 큰 파장이 일 테니까.
그렇다고 무한정 숨길 수는 없을 터인데? 뭐, 갈사량이 알아서 잘 처리하겠지만.
“도련님에 관한 소문은 있어요.”
“무슨?”
“송소저에게 얻어터져서 머리가 이상해졌다는 소문이죠.”
피식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오랜만에 웃는 웃음이었다.
전생의 나는 참으로 웃음에 인색했던 사람이었다. 하긴 웃고 싶어도 쉽게 웃을 수 없는 자리였지. 호의가 곧 약점이 되는 곳에서 살았으니까.
“그 송소저가 그렇게 예쁘냐?”
“네, 어려서도 아름다우셨는데. 그날 보니까 정말 숨 막히게 아름다우시더라고요. 소문 듣고선 얼굴이라도 한 번 보려고 인근 놈팡이들이 줄을 선 것 안 보셨어요? 하긴 그것 때문에 도련님이 더 흥분하셔서 아가씨를 뵈려고 했던 것이기도 했지만요. 어쨌든 돌아오신지 얼마 되지도 않으셨는데 아가씨가 산동제일미라는 소문이 자자합니다.”
여자라, 그것도 아름다운 미녀.
전생에 많은 여인을 만나보았다. 정말 잘나가던 시절이었으니, 당연히 여자가 많이 따랐다.
그 중에는 중원사대미녀에 속한 여인도 있었고, 당시 천하제일미였던 여인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들 중 누구와도 진정한 사랑을 나누진 못했다.
너무 젊은 나이에 너무 큰 고수가 된 탓이다. 그녀들은 나를 남자 천하진이 아니라, 천하제일고수 천하진으로 대했다. 겉으론 웃었지만 나를 두려워했다.
나를 두려워하지 않는 여자들은 나를 이용해서 권력을 차지하려고 했다. 그녀들이 아니라면 그 부모가 그랬다. 싹 다 쳐내고 밟아버렸다.
이후 나이가 들어 제대로 여자를 고를 안목이 생겼을 때에는 사마외도와 싸우느라 여자를 사귈 여유가 없었다. 정말이지 먹고 자는 시간 외에는 오직 싸움만 하던 시절이었으니까.
“두들겨 맞았어도 송소저 보고 싶으시죠? 전 도련님 이해해요.”
“됐다.”
“뭐가요?”
“여자는 됐다고.”
“맙소사! 지금 송소저를 여자라고 칭한 겁니까? 그냥 여자가 아니라 송소저라고요. 산동제일미 송화린. 도련님이 보고 싶어서 깽판 치다가 죽을 뻔 한 바로 그 송소저요!”
“그래, 그 산동제일미 송소저는 됐고. 가서 검이나 한 자루 가져와라.”
“갑자기 검은 왜요?”
검이야 말로 내 평생의 유일한 연인이니까.
“왜라니? 무인이 검을 찾는데 이유가 있나?”
“무인, 검. 도무지 도련님과 어울리지 않는 말들이군요.”
“명령불복종, 징벌, 실수로 수하를 죽임. 어때? 이런 말들은 나와 어울리나?”
“넵! 당장 가져오겠습니다.”
광두가 머리를 싸매고 후다닥 달려갔다.
광두가 검을 가져온 것은 한참이 지나서였다.
“한참을 찾았습니다. 창고에 쳐 박아 두셨더군요.”
검을 손에 들자 마음이 차분해졌다.
나는 전생에 무신이라 불리던 사람이었다. 거의 모든 무공을 다 사용했지만 한 가지를 꼽으라면 역시 검술이었다.
말년에 검으로 이룬 경지는 이기어검술의 경지였다. 손가락만 까닥하면 내 검은 빛처럼 빠르게 날아가 상대방의 심장을 꿰뚫었다.
하지만 내가 이루고자 했던 경지는 그 너머에 있었다.
심검지경(心劍之境).
물리적인 검이 필요 없는 경지다.
심검지경에 이른 사람은 마음이 만들어 낸 보이지 않는 검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
전해 내려오기로는 심검은 세상에 자르지 못하는 것이 없다고 알려져 있다. 마음이 굳건하면 굳건할수록 더욱 강력한 심검을 발휘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내 마음의 검이 어떤 것인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끝내 심검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태어났다. 전생에선 가보지 못한 길을 이번에는 가보고 싶다는 열망이 생긴다.
하지만 무공에 최적화된 완벽한 육체를 타고 났었던 천하진으로도 이루지 못한 일인데, 과연 이 벽리단으로 이룰 수 있을까?
스르릉.
내가 천천히 검을 뽑았다.
“원래는 좋은 검이었군.”
제대로 손질하지 않고 오랫동안 방치한 탓에 지금은 많이 훼손되어 있었다.
“그럼요, 도련님 십오 세 생일에 가주님께서 직접 내려주신 검인걸요.”
“이 좋은 검을 이렇게 썩히다니. 정말 멍청한 놈이군.”
“아시니 다행입니다만.”
녀석에게 검을 겨누니 기겁을 하고 달아났다.
“멍청까지만 하시라고요! 미친은 사양입니다!”
“하하.”
녀석아, 걱정 마라. 다시 태어난 이래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정신이 맑은 상태니까.
검을 들자 기분 좋게 심장이 뛰었다.
‘그러고 보니 마지막으로 검을 뽑아본 것이 언제였지?’
사마외도를 쳐부수고, 무림맹 내부의 반역세력들까지 다 뿌리를 뽑고 나서부터는 수련을 할 때나 검을 뽑았다. 심검지경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말년에는 검 자체를 아예 들지 않았다.
번뜩이는 검날을 바라보며 나는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졌다.
‘이번 생애만큼은!’
반드시 심검지경을 이루고 말리라.
어떤 경지에 이르는 것에는 여러 요소가 작용한다.
천부적인 재능, 피나는 노력, 생각지 못한 깨달음, 놀랄만한 기연까지.
전생의 나는 그 모든 것을 다 경험했다.
재능도 있었고, 노력도 했으며, 기연과 깨달음도 얻었다.
그 결과 천하제일인의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심검지경에 이르기 위해선 하나가 더 필요했다.
바로 천운(天運)이었다.
앞서 말한 저 여러 요소들을 시기적절한 때 합쳐줘서 결과에 이르게 해주는 행운, 즉 하늘의 허락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번 삶에서 다시 도전해 보리라.
과연 그 운이 이번 삶에서도 없을지는 두고 보면 알게 되겠지.
“가서 숫돌을 가져와라.”
“숫돌요? 설마 그걸로 제 머리통을 깨려는 것이 아니지요?”
“검을 손질할 거다.”
“대체 누굴 죽이시려고요?”
내가 슬쩍 광두를 노려보듯 쳐다보자, 녀석이 소스라치며 뒤로 물러났다.
“장난치지 마요.”
“왜 장난이라고 생각해? 원래 미친놈들은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죽이잖아?”
“그걸 어떻게 알아요?”
어떻게 알긴? 내 평생에 가장 많이 봐왔던 자들이니까. 광기에 미쳐 가족에게 살육을 저지르는 놈들을 숱하게 봐왔다.
“그런데 지금 나보고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고 했어요?”
“내가 그랬나?”
광두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이번 경우엔 물리적 거리가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 해두지.”
광두가 귀밑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건 더 이상해요.”
잠시 후, 광두가 가져온 숫돌로 검을 갈기 시작했다.
슥슥슥슥.
능숙한 내 손놀림을 지켜보던 광두가 고개를 갸웃했다.
“잘 하신다. 검 손질하는 것은 언제 배우셨어요?”
평생을 검과 함께 살아온 나였으니 당연히 검을 손질하는 솜씨만큼은 어지간한 철방의 장인보다 뛰어났다.
“이렇게 잘하시면서 지금까진 왜 안하셨어요?”
“뭐든 다 때가 있는 법이니까.”
가만히 나를 보던 광두가 다시 물었다.
“정말 괜찮은 거죠?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내 손길이 잠시 멈췄다. 내가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나를 걱정하는 눈빛이 가득했다. 나는 이런 눈빛을 근래에 본 적이 있다.
내가 죽던 날, 백표가 보냈던 눈빛이다. 진짜 상대를 걱정할 때 나오는 진심이 담긴.
“괜찮다.”
삭삭삭삭.
다시 검을 갈기 시작했다.
전생의 나였다면 어떤 검을 들던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땅바닥에 떨어진 막대기나, 보검이나 어차피 마찬가지의 결과를 만들어 낼 테니까.
아니, 검이 없어도 상관없겠지. 맨 손으로도 죽일 것이고, 검이 꼭 필요하다면 상대방 것을 빼앗아서 사용할 테니까.
하지만 지금은 좋은 검이 필요한 시기다. 지금 내 몸은 딱 개죽음 당하기 쉬운 상태였으니까.
광두가 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 이 검으로 송소저에게 복수하시려는 것은 아니죠? 절대 그러면 안 돼요.”
그때였다. 뒤쪽에서 누군가 광두의 말을 이어받았다.
“정말 그런 이유더냐?”
돌아보니 어머니, 임예화가 서 있었다.
광두가 벌떡 일어나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대부인, 어서 오십시오.”
광두가 한 옆으로 물러났고 어머니가 다가왔다.
“묻지 않느냐? 정말 화린이를 해치려는 것이냐?”
“그런 이유가 아닙니다.”
“한데 왜 검을 손질하는 것이냐?”
아마도 어머니는 아들이 검을 손질하는 것을 처음 봤을 것이다. 광두와 같은 걱정을 하는 것은 당연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무공수련을 하려고 합니다.”
“네가? 무공수련을?”
어머니가 깜짝 놀랐다. 옆에 있던 광두도 입을 쩍 벌렸다.
“광두야, 방금 쟤 뭐래냐?”
“무공수련을 한답니다.”
“미친 거지?”
“넵! 의원이든 귀신을 쫓을 도사든, 뭐든 불러야 할 것 같습니다.”
평소에 얼마나 무공수련을 안했으면 저런 반응이겠는가?
어머니는 결국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화린이에게 복수를 하려는 것이구나.”
어머니의 두 눈에는 여장부다운 강단이 깃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 위에 서린 것은 그 무엇으로도 감출 수 없는 모정이었다.
나는 전생에 자식을 두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한 이유도 있었고, 혈육이 권력싸움에 휘말리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서였다.
자식이 없었으니 그녀의 마음을 어찌 다 알겠냐마는, 어디 칠십 평생 얻은 것이 내공과 주름살뿐이겠는가?
아들을 위하는 그녀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여인은 자식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칠 수 있을 것이다.
“이 검을 한 번 봐주시겠습니까?”
내가 그녀에게 이제 막 손질을 마친 검을 내밀었다. 검을 살펴본 그녀가 깜짝 놀랐다. 손질이 너무 잘 되었기 때문이었다.
“제가 앞으로 이 검으로 무엇을 할지는 모릅니다.”
그녀의 시선이 검에서 내게로 옮겨졌다.
“하지만 적어도 이 검은 태중혼약을 맺은 여자를 찌르는 일에는 사용되지 않을 겁니다. 저보다 약한 사람을 핍박하는데 사용되지도 않을 겁니다. 아들로서 약속드립니다.”
나를 향한 그녀의 눈빛에 이채가 서렸다. 단 한 번도 아들에게 들어보지 못한 말일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녀에게 미안했다.
나는 그녀의 아들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녀를 속이고 있다는 미안함에 진실을 말해줄 수는 없다.
진실이 언제나 좋은 결과를 낳지는 않을 테니까.
진실을 알게 되면 그녀는 불행해질 것이다. 아들이 껍데기만 남기고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에.
나는 그녀에게 그 비정한 진실을 말해주지 않을 생각이다. 내가 당신의 아들이 되면서 시작된 이 이야기의 마지막이 어떻게 끝나더라도 결코.
그때까지 나는 그녀의 아들로 살아갈 생각이다.
그녀에게 줬던 검을 다시 받아들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니.”
정중히 인사를 한 후에 돌아서 나왔다. 아들의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에 찬 시선이 마지막까지 따라붙는 것이 느껴졌다.
* * *
다시 이틀이 지났다.
여전히 내 죽음에 관한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고 나는 점차 벽리단에 적응하고 있었다.
광두를 통해 가문의 사람들에 대해서 하나둘씩 알게 되었다.
누가 누군지, 어떤 성격인지 설명을 들었다.
기억력이 놀라울 정도로 좋아진 덕분에 한 번만 들어도 모두를 기억할 수 있었다.
정작 적응이 되지 않는 것은 오히려 나 자신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 몸.
천하제일고수로 살다가 벽리단으로 사는 일은 너무나 힘들었다. 천리마를 타고 광야를 질주하던 장수에서, 거북이 등에 올라탄 나무늘보가 된 것만 같았다.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에 집 근처에 있는 인근 산으로 들어갔다.
눈이 쌓여서 인적이 끊어진 산길을 걸어 올라갔다. 털가죽 옷을 입고 왔음에도 추위에 몸이 덜덜 떨렸고 오르면서 몇 번이나 미끄러질 뻔 했다. 정말이지 전생의 나였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앞으로 얼마나 이 말을 자주 하게 될 런지 생각하기도 싫다.
정상 부근에서 어른 두 셋이 들어가 앉을 수 있을 작은 동굴을 하나 발견했다.
그곳에 들어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단전에 있는 내공은 오 년. 그마저 혼탁하기 그지없는 쓰레기 내공이었다.
다행히 내가 익힌 심법인 천무호심결은 극상승의 심법으로 당대 강호에서 가장 뛰어난 심법이었다. 다른 사람의 몸이라면 모르겠지만, 내 단전에 있는 내공은 충분히 정순하게 바꿔낼 수 있었다.
천무호심결의 구결에 따라 진기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진기를 운용해보니 뜻밖에 벽리단의 혈맥은 생각보다 튼튼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우우우웅.
천무호심결이라는 거대한 바다가 구정물처럼 고인 벽리단의 더러운 내력을 깨끗이 정화하기 시작했다.
진기를 일주천, 이주천, 삼주천…… 이윽고 칠주천을 했을 때, 오 년 내공은 정순한 내공으로 바뀌었다.
결과적으론 짧은 시간에 이뤄냈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고지순한 심법인 천무호심결에 천하진이라는 천하제일인의 심득이 더해진 결과였다.
이제 나는 정순한 오 년의 내공을 가지게 되었다.
전생의 내공은 사 갑자였다. 이백 사십 년의 내공을 사용하다가 고작 오 년의 내공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그래도 내공이 정순해지면서 미약하나마 진기를 운용할 수 있었다.
이제부터의 과제는 내공을 늘리는 일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전생의 내가 천무호심결의 대성을 이뤘다는 점이다.
그 결과 나는 의식이 깨어 있는 한 언제든지 운기조식을 할 수 있었다. 걸어 다니면서도, 심지어 밥을 먹으면서도 할 수 있다.
또한 같은 시간을 투자했을 때 만들어지는 내공의 양이 일반 심법과는 비교할 수 없이 많았다. 최소 세 배 이상의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임독양맥(任督兩脈)을 타통한다면 다섯 배, 나아가 환골탈태(換骨奪胎)를 한다면 열 배 이상의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내가 할 일은 쉬지 않고 내공을 늘리는 일이다.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계속 천무호심결을 운용할 생각이다.
다음으로 할 일은 본격적으로 기초체력을 키우는 일이었다.
무공의 기본은 내공이지만 그 이전에 기본 체력이 가장 중요하다. 튼튼한 체력이 바탕이 되면 내공과 외공이 더욱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니까.
산에서 내려와 집으로 돌아왔을 때, 광두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큰일 났습니다.”
나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죽음에 관한 소식이리라.
하지만 예상과는 다른 뜻밖의 소식이었다.
“송문주께서 오셨습니다.”
“누군데?”
“송소저의 부친이신 송우경(宋虞經) 대협 말씀입니다.”
“왔으면 온 거지 왜 이리 호들갑이야?”
“송소저도 함께 왔으니까요!”
송화린, 태중혼약을 한 사이, 산동제일미, 나를 두들겨 팬 여인.
광두가 호들갑을 떨 만한 여인이지만, 내 마음은 담담했다.
“두 분이서 아까부터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대체 어딜 가셨던 겁니까?”
“나는 왜 찾는데?”
“왜라니요? 가서 송소저께 사과하셔야지요.”
“두들겨 팬 쪽은 그쪽인데? 사과는 그쪽에서 해야지.”
“애초에 시비를 건 쪽은 이쪽이니까요. 이럴 때가 아니에요, 어서 가요.”
광두에게 떠밀리다시피 객청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