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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274화 (273/293)

274화. 금제 ― 아직은 아닌 모양입니다 (2)

대홍련의 무인들과 혈기군단이 맞붙는 그때.

단엽이 성큼 나서며 반조를 향해 말을 걸었다.

“그쪽은 내가 상대해 주지.”

혈기군단의 수장인 야율인은 이미 한천에게 당해 거의 숨이 끊어지기 직전인 상태였기에 단엽이 상대해야 하는 건 반조 하나뿐이었다.

단엽에 대홍련까지…… 갑작스레 돌변한 상황에 반조가 표정을 굳히고 있는 그때였다.

한천이 단엽의 어깨를 잡으며 나섰다.

“저놈은 내가 맡을 테니까 넌 수하들을 도와서 저놈들을 처리해 줘.”

그런 그의 말에 단엽이 곧장 답했다.

“말했잖아. 여기는 우리가 맡는다고. 그러니까 넌 빠져 있어. 지금 상태에서 괜히 더 무리하지 말고.”

“난 멀쩡한데?”

자신은 아무렇지 않다고 주장하는 한천의 모습에 단엽이 고개를 저으며 말을 받았다.

“그러니까 빠지라는 거야. 지금 자기 상태가 어떤지도 모르면서 뭘 더 싸우려고.”

말을 내뱉은 단엽의 시선이 한천을 위아래로 훑었다. 곳곳에 큰 부상을 입은 한천은 피투성이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무렇지 않게 움직이고 있는 이 모습이 다소 기괴하다 느껴질 정도다.

그랬기에 단엽은 알 수 있었다.

지금 한천이 무리를 하고 있다는 걸.

그걸 알기에 단엽이 보다 확실하게 말했다.

“네가 왜 무리하려는지 대충 알고 있어. 아마 백아린도 위험해서겠지. 하지만 백아린에 대해서는 나보다 네가 더 잘 알잖아. 절대 쉽게 당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그러니까…… 그냥 그녀를 믿어.”

단엽은 한천이 무리하는 이유를 정확하게 눈치챈 상태였다.

백아린이 연관되지 않았다면, 그가 이토록 무리를 할 리 없다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은 정확하게 맞아 들었다.

단엽의 말에 한천은 잠시 멈칫했다.

말대로 자신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버틸 만했지만 이대로 더 무리하다가는 더욱 큰 고통이 곧이어 찾아올 거라는 것도.

결국 한천은 단엽의 말을 받아들였다.

“……그럼 잠깐만 쉬고 있지.”

“좋아, 그럼 내가 서둘러 끝낼 테니, 같이 백아린을 도우러 가자고.”

“부탁해.”

그 말을 끝으로 한천은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고통은 느끼지 못했지만, 자리에 앉자 이상할 정도로 피곤함이 몰려들었다.

그렇게 한천이 잠시 숨을 돌리는 사이 단엽이 반조를 향해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최상의 상태는 아닌 듯싶지만…… 원망은 말라고. 많은 머릿수로 내 친구를 괴롭힌 대가니까.”

최대한 싸움에서 빠져 있긴 했지만, 한천과의 싸움으로 반조 또한 적잖은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거기다가 내력 소모도 상당한 상황이긴 했지만…….

반조는 픽 웃었다.

“그렇게 여유 부릴 때는 아닌 것 같은데. 네가 날 이기지 못한다면 결국 여기 온 건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이 될 테니까.”

강한 척 말을 내뱉었지만 사실 반조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최악이군.’

한천과의 대결에서 이 대 일로 싸웠음에도 불구하고 반조는 꽤나 깊은 타격을 입었다. 그러던 도중에 나타난 것이 하필이면 우내이십일성 중 하나인 혈우일패도 나환위를 꺾었던 단엽이라니…….

혈기군단은 뛰어난 무인들이지만 그건 대홍련 또한 다르지 않았다.

단엽이 데리고 온 대홍련 무인들 역시 정예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그 숫자는 두 배에 육박했다.

혈기군단이 밀리는 건 당연했다.

그랬기에 지금으로써는 반조가 단엽을 꺾고 그들을 돕지 않는다면 혈기군단은 괴멸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허나 결국 중요한 건 그들의 대결이 아니었다.

단엽과 자신의 싸움.

이 싸움의 승자가 되는 쪽이…… 결과를 결정짓게 될 테니까.

츠츠츠츠!

반조의 손에 들린 검이 검기에 휩싸였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단엽 또한 권갑을 낀 자신의 주먹을 앞으로 내뻗었다.

그러고는 슬쩍 뒤편에 위치한 한천을 확인하더니 이내 반조를 향해 달려들었다.

콰콰콰콰쾅!

그저 발을 내디디며 내달리는 것만으로도 땅이 옆으로 갈라져 나갔다. 그만큼 내력을 실어서 몸을 앞으로 움직인다는 의미였다.

단엽의 손이 빠르게 반조를 향해 움직였다.

쾅!

반조가 검을 휘둘렀고 그걸 단엽은 한쪽 손등으로 받아 냈다. 검과 권갑이 충돌하며 마치 폭탄이 터지는 듯한 충돌음이 터져 나왔고, 이내 단엽은 힘으로 상대를 밀어붙였다.

쿠쿠쿠쿵.

반조의 몸이 회오리에 휩쓸린 듯 뒤로 밀려 나갔다.

둘의 몸이 순식간에 방금 전에 위치했던 곳에서 멀어져 있었다.

단엽이 이런 움직임을 선택한 이유는 역시나 한천 때문이었다. 혹시라도 두 사람의 대결로 인한 여파가 그에게 영향을 미칠까 염려한 단엽이 서둘러 힘으로 반조를 다른 곳으로 끄집어낸 것이었다.

빠르게 한천에게서 거리를 벌린 단엽은 곧바로 자신의 내력을 사정없이 뿜어냈다.

콰콰쾅!

그의 주먹이 움직였고, 덩달아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땅바닥이 솟구쳐 올랐다.

“큿!”

뒤편으로 서둘러 빠져나가던 반조였지만, 그 힘의 여파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 탓인지 허벅지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애초 한천과의 대결에서 입은 부상 탓에 그의 움직임은 평소보다 다소 둔해져 있었다.

허나 그 와중에서도 반조는 물러나지 않고 곧장 반격을 가했다. 휘둘러진 검에서 뻗어져 나온 강기가 단엽이 있던 공간을 뒤덮었다.

퍼엉!

폭음과 함께 먼지가 치솟아 오르는 공간 속에서 단엽의 모습이 귀신처럼 밀려들어 왔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반조는 그런 단엽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파파팟.

두 사람의 신형이 서로 얽혀 들었다.

찰나의 순간.

그렇지만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두 사람에게 그 짧은 순간은 서로의 목숨을 수십 차례 노리고도 남을 정도로 긴 시간이었다.

서로를 향해 연달아 공격을 퍼붓던 두 사람이 각자 반대편으로 밀려 나갔다.

주르르륵.

뒷걸음질 치며 간신히 몸을 지탱한 단엽과 반조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입에서 피를 뿜어냈다.

푸웃.

허공으로 피를 토해 내면서도 둘은 서로를 향해 재빠르게 다음 공격을 이어 갔다.

부웅! 쾅!

둘의 공격이 충돌하며 주변으로 충격파가 퍼져 나갔다. 땅이 흔들리며 근처에 있던 나무들이 뿌리째 뽑혀 날아갔다.

단엽의 주먹이 반조의 가슴을 후려쳤고, 동시에 휘둘러진 반조의 검이 단엽의 팔을 베고 지나갔다. 그렇지만 단엽은 아랑곳하지 않고 곧장 손바닥으로 상대의 이어지는 공격을 후려쳤다.

캉!

검이 밀쳐지는 순간 단엽이 빠르게 거리를 좁혀 들어갔다.

주먹으로 싸우는 단엽이었기에 거리를 좁히는 쪽이 훨씬 유리했기 때문이다.

빠르게 유리한 간격으로 들어선 단엽의 주먹이 연달아 움직였다.

파파파파팟!

환영처럼 밀려드는 주먹을 보며 반조가 황급히 검을 움직여 방어에 나섰지만 완벽하게 막아 내기에는 단엽의 공격이 너무도 날카로웠다.

퍼억! 퍽!

연달아 박혀 드는 공격에 결국 반조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사정없이 바닥을 구르던 반조였지만 그는 서둘러 정신을 차렸다.

부웅!

단엽이 날아드는 소리가 귓가에 들어왔고, 반조는 곧장 바닥을 박차며 몸을 회전시켰다. 그리고 그 순간 반조가 쓰러져 있던 자리에 단엽의 무릎이 틀어박혔다.

쩌엉!

소리와 함께 땅바닥이 거미줄처럼 갈라졌다.

회전하며 허공을 날고 있던 반조의 검이 번개처럼 아래로 쏟아졌다.

슈슈슛!

날카로운 검기가 단엽을 베고 지나갔지만, 그것 모두가 가볍게 스친 정도일 뿐 치명타가 될 만한 공격은 하나도 없었다.

빠르게 옆으로 움직인 단엽의 주먹이 아직까지도 허공에 자리하고 있던 반조의 옆구리를 노리고 밀려들었다.

서둘러 몸을 말며 검으로 방어해 내긴 했지만…….

퍼엉!

폭발과 함께 반조는 다시 한번 바닥을 굴러야만 했다.

“끄응.”

고통에 찬 신음 소리와 함께 막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 순간.

반조의 시선에 뭔가가 물밀듯 밀려들고 있었다.

그건 단엽의 권강이었다.

콰콰쾅!

주변이 휩쓸리며 그곳에 자리하고 있던 반조는 서둘러 검을 움직여 호신강기로 그 공격을 받아 냈다.

이내 모습을 드러낸 반조의 상태는 아까보다 더욱 좋지 않아 보였다.

옷은 넝마가 되어 있었고, 머리카락 또한 어지럽게 흐트러져 있었다.

하지만 반조가 그냥 당하고만 있을 사내는 아니었다.

권강을 받아 내며 반조는 이를 갈고 있었다.

애초에 좋지 않은 상태로 단엽과의 싸움이 시작됐다. 이대로 싸움이 길어졌다가는 결국 자신이 패할 거라는 걸 직감했다.

그랬기에 반조는 승부수를 내걸었다.

우우웅.

울기 시작한 검에서 새하얀 강기가 벼락처럼 터져 나왔다. 야율인과 합공을 할 때 펼쳤던 음살마혼강기가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콰콰콰쾃!

땅을 가르며 밀려드는 강기의 가닥을 본 단엽의 두 눈동자가 희열로 번뜩였다.

처음 손을 맞댔을 때부터 느꼈다.

강하다고.

그랬기에 단엽은 자신의 실력을 처음부터 모두 뽑아내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밀려드는 이 강기에서는 절로 전신의 털을 곤두서게 만들 정도의 박력이 느껴졌다.

그가 씩 웃었다.

‘좋아, 이 정도는 돼야 할 만하지.’

두근거리는 심장, 미칠 듯 요동치는 감각들이 단엽을 즐겁게 만들어 줬다.

단엽의 권갑에 순간적으로 권강이 피어올랐다.

그러고는 이내 단엽은 망설임 없이 앞으로 내달렸다.

후우우욱!

순식간에 주변의 공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몸 주변에 타오르기 시작한 불꽃이 짧은 순간 사그라졌다가 피어오르는 걸 반복하더니 이내 그 힘이 폭발하듯 증가했다.

물론 제대로 힘을 끌어모을 시간이 모자라 최상의 상태까지 끌어올리지는 못했지만…… 이거면 충분했다.

열화신공 오 초식 열화신류구천아(熱火神流九川牙).

뿜어져 나온 아홉 개의 불기둥들이 밀려드는 반조의 강기를 뒤집어 삼켰다.

곧 폭발과 함께 주변으로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의 열기가 뿜어져 나갔다.

콰아앙!

그 파괴력이 얼마나 컸는지 멀리 떨어져 싸우고 있던 대홍련과 혈기군단의 무인들조차도 균형을 잡지 못하고 마구 나가떨어질 정도의 충격이 주변을 뒤덮었다.

그리고 그 싸움을 보고만 있던 한천으로서는 그저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아, 저 괴물 같은 녀석.’

열화신류구천아의 파괴력을 한천은 잘 알고 있었다.

일행들을 떠나기 전 단엽은 한천과 싸워 보고 싶다 말했고, 그걸 받아 줬던 그다.

그리고 당시 단엽은 이 초식을 펼쳤었다.

보통의 초식으로는 받아 낼 자신이 없었던 한천은 오랫동안 봉인해 두었던 대장군부의 무공을 꺼내서 간신히 막아 낼 수 있었다.

그런데…….

시간적 여유가 없어 완벽하지 못했던 초식.

그럼에도 그 파괴력은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헤어진 지 고작 몇 달이라는 시간. 그동안 단엽은 또 한 걸음 성장해 있었던 것이다.

당시 서로 절초를 쏟아 낸 결과 두 사람은 피투성이가 되었었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비슷했다.

엄청난 충격파가 뒤덮은 공간에서 단엽과 반조는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누가 더 상태가 좋은지는 굳이 고민하지 않아도 알 정도로 명확했다.

음살마혼강기를 받아쳐 낸 단엽은 옷도 엉망이었고 입 주변은 피범벅이었다. 거기다가 목과 가슴에 긴 상처가 생겨 있었다.

거기다가 자잘한 상처들도 제법 생긴 것이 지금 반조가 펼친 공격이 얼마나 위협적이었는지를 말해 주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건 상대인 반조에 비해서 무척이나 양호한 편이었다.

비틀.

간신히 버티고 서 있는 반조의 상태는 엉망이었다.

한쪽 눈을 뜨기 어려울 정도로 이마에서는 연신 피가 흘러내렸고, 팔 한쪽은 아예 불에 타 버린 것처럼 다친 상태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가슴과 배, 그리고 다리까지.

보이는 곳곳에 열화신류구천아로 인해 입은 상처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개중에 가장 큰 부상은 역시나 아예 박살이 나 버린 갈비뼈였다. 몇 개의 갈비뼈가 부서졌는지 모르겠지만, 숨을 쉬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비틀거리며 간신히 몸을 지탱한 반조는 고통을 참아 내며 깊게 숨을 내뱉었다.

지금이라면 단엽보다 자신의 내력이 더욱 강할 거라 판단했거늘, 그것이 큰 패착이었다.

한천과 싸우며 생각보다 더욱 많은 내공의 소모가 있었던 모양이다. 거기다가 단엽의 공격은 반조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했다.

그 모든 악재가 겹치며 승부수로 내건 공격이 오히려 화가 되어 돌아왔다.

아직 검을 휘두를 힘은 남아 있었지만…….

슬쩍 뒤편을 확인한 반조가 입술을 깨물었다.

대홍련과의 갑절에 가까운 숫자 차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커져 갔고 혈기군단은 빠르게 무너지고 있었다.

거기다가 자신은 이런 치명상을 입었다.

싸움은 끝이 나지 않았지만, 사실 결과는 나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반조가 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켜들었다.

‘이렇게…… 끝이로구나.’

그에게는 원대한 꿈이 있었다.

이 넓은 무림이라는 곳, 그곳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 싶었다.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무림에 몸담은 이라면 기억할 수밖에 없을 그런 존재가 되고 싶었던 거다.

자신들이 패배한 이유는 무엇일까?

깊게 따지고 보면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결정적인 건 바로 오늘 느낄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끝나 가려는 절체절명의 순간 동료를 위해 나타난 단엽.

바로 이것이었다.

이들에게는 서로를 위하는 끈끈함이 있었다.

그리고 반대로 자신들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다.

그랬기에 십천야 중 누가 죽는다 해도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랬던 무신경함이 쌓이고 쌓여 결국 지금 이런 상황까지 와 버렸다.

일이 이렇게 되니 이제 와서야 깊은 아쉬움이 밀려들었다.

만약에…… 아주 만약에 자신들도 이들처럼 동료가 되어 함께 싸웠다면 조금은 다른 미래를 맞이할 수 있었을까?

물론 뒤늦은 후회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각자의 욕심이나, 절대적인 존재인 천지광의 명령 때문에 모인 이들이다. 아마도 훨씬 더 긴 시간이 있었어도, 자신이 노력했다고 한들 이들처럼 서로를 위해 싸우는 관계가 되지는 못했을 게다.

밀려드는 깊은 후회…….

하지만 지금 반조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었다.

스윽.

죽는 그 순간까지 무인으로 검을 들고 싸우는 것.

그래야 실패한 이 삶이…… 조금이나마 덜 슬플 테니까.

“단여어어업!”

목이 터질 듯한 고함 소리와 함께 반조가 단엽을 향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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