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3화. 금제 ― 아직은 아닌 모양입니다 (1)
붉은 보석을 갈아서 만든 가루가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순간부터 천무진은 마치 용암을 삼킨 것처럼 극심한 고통에 휩싸였다.
신체를 이루는 오장육부가 모두 녹아내리는 듯했고, 전신에 흐르는 피 한 방울, 한 방울이 날카로운 비수처럼 천무진의 몸 곳곳을 난도질하는 느낌이었다.
수많은 고통을 겪어 봤다 자부하는 천무진조차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원래대로라면 가루를 먹자마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내공으로 몸 내부를 보호할 계획이었다. 그렇지만 그건 그저 바람에 불과하게 되어 버렸다.
고개를 꺾은 채로 괴로워하던 천무진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쿵.
바닥에 드러누운 천무진은 그곳에서 붉어진 얼굴로 온몸을 비틀어 댔다.
“으억! 억!”
입에서는 연신 비명이 터져 나왔고, 몸 안으로 들어온 보석 가루의 영향으로 피부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목에서부터 시작된 변색은 곧바로 얼굴과 가슴으로 뻗어져 나갔다.
새카맣게 변해 가는 피부색은 지금 천무진의 상태가 얼마나 좋지 않은지를 말해 주고 있었다.
급속도로 변해 가는 천무진의 모습을 보며 의선과 남윤의 안색이 굳어졌다.
의선이 어쩔 줄 몰라 하며 말했다.
“이, 이걸 어찌…….”
검게 변해 가는 피부색이 의미하는 것은 바로 죽음이었다. 천무진의 신체가 순식간에 죽음의 문턱을 넘어가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죽어 가는 환자를 보고 단 한 번도 머뭇거려 본 적이 없던 의선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이 상태를 치료할 방도를 알 수가 없었으니까.
그렇게 두 사람이 그저 바라보기만 할 수밖에 없는 그 순간에도 천무진은 지독한 고통과 계속해서 싸우고 있었다.
‘……온몸이 타 버릴 것 같아.’
천무진 또한 알고 있었다.
지금 자신이 죽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몸 일부에서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고, 그 외 부분에서는 반대로 엄청난 고통이 밀려온다. 숨을 쉬는 것이 힘들 정도로 아팠고, 머리는 혼미해져 점점 지금 이 모든 게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무너져 내리는 신체.
더불어 흐릿해져 가는 정신까지.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나려는 바로 그때.
꽈악.
천무진은 모든 힘을 다해 자신의 입술을 깨물었다. 입술에서 터져 나온 많은 양의 피가 목구멍을 타고 흘러내렸다.
비릿한 피 맛이 느껴졌고, 덩달아 입술에서 느껴지는 미미한 고통 덕분인지 멍해졌던 머리가 조금이나마 제정신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천무진은 그 조그마한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이대로…… 죽을 순 없어.’
정말 말도 못 할 정도로 비참한 삶을 살았었다.
그러던 중 얻게 된 새로운 삶. 이번 삶은 무척이나 행복했다.
새롭게 알게 된 이들.
그렇게 자신을 위해 함께 싸워 주는 동료가 생겼다.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까지도.
그 모든 것이 저번 생에는 없었던 것들이다. 그런데 소중한 그것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바로 자신 때문에.
백아린과 한천은 천지광이 보낸 이들과 맞닥뜨리게 될 테고, 그로 인해 생을 다하게 될 것이다. 그런 그들이 죽는 꼴을 이대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천무진은 온몸이 부서지는 고통 속에서도 억지로 내공을 끌어올렸다.
천룡무극심법을 통해 끌어올린 내력이 지독한 고통을 밀어내기 위해 꿈틀거렸다. 하지만 천룡무극심법조차도 밀려드는 고통을 막아 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신체가 죽어 나가는 속도는 꽤나 빠르게 줄어들었지만, 그것이 한계였다.
천무진의 몸은 계속해서 그렇게 죽어 가고 있었다.
점점 상황이 나빠지고 있다는 사실을 그 모든 걸 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천무진이 모를 리가 없었다.
‘이대론 무리야.’
이건 마치 둑에 구멍이 뚫린 것과도 같았다.
그걸 막기 위해 손으로 억지로 누르고 있지만, 그 구멍은 점점 벌어졌고 이제는 손가락 사이로 물줄기가 빠져나오는 양상이었다.
점점 거세지는 힘이 천무진의 몸을 잠식해 들어갔고, 고통이 옅어질수록 그의 숨소리 또한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태까지 천무진이 버틸 수 있었던 건 그만큼 그의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다.
당장이라도 정신을 놔 버리고 싶게 만드는 고통 속에서도 천무진은 계속해서 버텼다. 그 모든 건 자신이 아닌 동료들을 생각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꽉 깨문 입술은 이제 피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창백해져 있었다.
그렇게 무려 일각이라는 시간이 지났을 때.
쿵!
천무진의 상체가 가볍게 흔들리며 다시 한번 지독한 고통이 밀려들었다. 억지로 버티고 있던 기운이 결국 밀려나기 시작하면서 그만큼 몰려 있던 큰 기운이 몸 곳곳으로 퍼져 나간 탓이다.
천무진의 입이 슬쩍 벌려졌지만, 고통에 찬 신음 소리조차 쏟아 낼 수 없었다.
이미 그럴 힘마저 남아 있지 않았으니까.
덜덜덜!
몸은 미친 듯 떨려 댔고, 잠시 멈췄던 피부의 변화 또한 다시금 가속도가 붙어 진행되기 시작했다.
스스스스.
눈썹 위까지 피부는 검게 물들었고, 손은 이미 끝까지 잠식되어 버렸다.
그리고 배를 기점으로 빠르게 신체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슬쩍 벌려진 천무진의 입에서 연신 피가 쏟아져 나왔다. 소리 없이 터져 나오는 검붉은 피를 보며 의선은 결국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억지로 밀려드는 힘에 저항하고 있던 천무진이다.
그렇지만 결국 쌓여 가던 힘이 터져 나갔고, 이렇게 된 이상 결과는 하나뿐이었으니까.
‘끝이다.’
의선은 그렇게 생각했고, 그건 당사자인 천무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뜩이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눈앞이 새카맣게 변해 간다 느끼던 그때 천무진의 심장 아래쪽에서 자그마한 떨림이 느껴졌다.
두근.
아주 찰나의 감각이었다.
단전을 통해 붉은 보석이 지닌 힘이 빠르게 스며들려는 그 찰나 느껴졌던 그 감각을 죽어 가는 와중에도 읽어 낸 것이다.
그건 삶에 대한 강한 의지, 그리고 정신력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희미해져 가는 정신 속에서 천무진은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이건…… 뭐지?’
단전으로 밀려들어 가던 힘이 아주 잠깐이지만 그쪽에 머무르고 있는 내공으로 인해 멈칫했던 것이다. 물론 그건 찰나였고, 그 힘은 곧바로 다시금 천무진의 전신으로 휘몰아쳐 오긴 했지만…….
순간 천무진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건 바로 천룡비공의 절초.
천추나락을 익히기 위해 최근 자신이 해 온 훈련들이었다.
보통의 내공 움직임으로는 천추나락을 펼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 때문에 천무진은 몇 달 동안 계속해서 혈도의 길을 넓히는 데 열중했다.
그리고 이제는 천추나락이 거의 완성 단계에 다다라 있던 상황.
당연히 기가 흐르는 혈도는 예전보다 훨씬 넓어져 있었다.
그 모든 것의 시작은 바로 단전이었고, 지금 밀려드는 붉은 보석의 힘이 멈칫한 곳 또한 단전이었다.
여태까지의 혈도는 밀려드는 힘을 견뎌 내지 못했다.
그렇지만…… 단전 쪽이라면?
거기다가 단전은 지금 자신을 이렇게 만든 여왕자모가 자리하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그걸 깨닫는 순간 천무진은 결단을 내렸다.
어차피 지금 이 상태로는 오래 버티는 것도 불가능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도박이 될지도 모른다.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면 이 순간이 자신이 기억하는 마지막이 될 게 분명했다.
하지만…… 해야 했다.
지금 무인의 감각이 외치고 있었으니까.
승부를 봐야 한다고.
다른 선택의 길이 없는 지금 천무진은 자신의 감각에 모든 걸 걸기로 결단을 내렸다.
결정을 내린 그는 어떻게든 버텨 내기 위해 몸 곳곳으로 퍼트려 놓았던 내공을 빠르게 회수했다.
전신에 있는 모든 곳을 지키려 했던 생각을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힘을 단전 하나에 집중시켰다.
쏴아아아.
커다란 힘이 몸 안에서 휘몰아치더니 이내 모든 내력이 단전을 기점으로 하여 빠르게 뭉치기 시작했다.
몸을 집어삼키던 기운들에 저항하지 않고, 오로지 단전 하나.
그곳만을 지키기로 결정한 것이다.
몸을 지키던 내공을 모두 거두어들이자 천무진의 상태는 눈에 띌 정도로 악화됐다.
순식간에 배 아래쪽의 피부들이 검게 물들기 시작하더니, 이내 천무진의 전신은 새카맣게 변해 버렸다.
단 하나.
배꼽 아래에 위치한 단전 근처를 제외하고는.
단전 근처에 주먹만 한 크기의 부분을 제외하고는 천무진의 몸은 아예 썩어 버린 것처럼 까만 상태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사람이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호흡조차도 사라졌다.
천무진은 옷을 입고 있었기에 겉으로만 지켜보고 있던 남윤과 의선으로서는 단전 부분이 멀쩡하다는 사실을 알 수 없었다.
물론 그걸 알았다고 해도 지금 이 모습은 누가 봐도 시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태였지만 말이다.
그래도 혹시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의선이 다급히 다가가 천무진의 맥을 짚었다. 그리고는 이내 작게 고개를 저었다.
순간 남윤이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가 숨조차 멈춰 버린 천무진을 향해 천천히 힘겹게 손을 내뻗었다.
천무진에게 향하는 남윤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곧 남윤은 까맣게 변해 버린 천무진의 손을 움켜쥐었다.
고개를 푹 수그린 남윤의 주름진 눈가에 방울방울 눈물이 맺혔다.
“작은 주인님…….”
뚝뚝.
눈물이 연신 떨어지며 천무진의 손등을 적셨다.
그는 가슴이 답답한지 나머지 한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소리 나게 치기 시작했다.
퍽퍽퍽.
가슴이 너무도 먹먹했다.
심장이 조여 오는 듯 아팠고, 구역질이 치밀어 오를 정도로 속이 뒤집혔다.
동시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으득.
평소 인자한 미소를 띠고 있는 남윤이지만 지금만큼은 달랐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얼굴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천지과아앙!”
고함과 함께 천무진의 손을 놓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남윤이 서슬 퍼런 눈빛을 한 채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물론 남윤에게 천지광을 이길 실력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렇지만 자신이 어릴 때부터 키워 온 천무진을 죽게 만든 천지광을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것 같은 남윤의 모습에 의선이 서둘러 그의 앞을 막아섰다.
“진정하시오!”
“비키시지요. 이건 제 일입니다.”
남윤이 평소답지 않게 강한 어투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러자 의선이 고개를 저으며 말을 받았다.
“화가 나신 건 알겠소. 그렇지만 이대로 당신까지 죽는다면 천 대협은 어떻게 한단 말이오. 우선은 천 공자의 시신부터 수습을 하고…….”
바로 그 순간.
꿈틀.
시체가 되어 있던 천무진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동시에 온몸이 잠식되어 새카맣던 피부색이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변해 가기 시작했다.
단전 부근에서부터 시작된 변화는 곧장 머리끝과 발끝까지 빠르게 치고 올라갔다.
그리고 막혀 있던 숨이 터져 나왔다.
“파아!”
두 사람이 놀란 눈으로 숨을 쉬기 시작한 천무진에게 시선을 돌린 그때.
천무진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의선은 눈을 크게 치켜뜬 채로 더듬거렸다.
“이, 이게 무슨…….”
분명 맥을 짚었을 때 천무진은 죽어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도 천무진의 신체는 죽어 있었으니까. 오직 단 하나. 단전을 제외하고 말이다.
단전에 모든 힘을 집중시킨 천무진의 내공이 그의 몸을 보호했다. 밀려드는 붉은 보석 가루의 힘이 거세질수록 단전 안에 자리하고 있던 자모충 또한 날뛰었다.
이건 천무진과 자모충의 싸움이었다.
천무진이 먼저 쓰러질지, 아니면 자모충이 견디다 못해 결국 죽어 나갈지.
그리고…… 결국 싸움의 승자가 정해진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단전이 버텨 내지 못하고 무너지는 게 정상이었을 상황.
그렇지만 천추나락을 익히기 위해 단전과 근처의 모든 혈도를 넓혀 둔 덕분에 밀려드는 힘에 저항할 만큼 막대한 내공을 한순간에 쏟아낼 수 있었다.
“작은 주인님!”
남윤이 눈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천무진에게 달려갔다. 그리고는 이내 서서히 눈을 뜨는 그의 팔을 잡은 채로 말을 이었다.
“괜찮으신 겁니까?”
다급해 보이는 남윤의 얼굴에서 그가 느꼈을 걱정이 느껴졌다.
눈을 뜬 천무진이 그런 남윤과 여전히 놀란 얼굴로 서 있는 의선을 번갈아 바라보다 이내 슬며시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천무진은 알고 있었다.
단전에 자리하고 있던 자모충이 완전히 그 힘을 잃었음을.
머리를 옥죄고 있던 금제가 풀려서일까?
천무진의 기분은 이상할 정도로 상쾌했다.
그가 말했다.
“아무래도 아직 제 무덤을 준비할 때는 아닌 모양입니다.”
저승의 문턱까지 갔던 천무진.
그가 돌아왔다.
* * *
자신의 옆에 선 천무진을 바라보는 백아린은 알 수 있었다.
‘……금제를 이겨 냈군요.’
자모충에 휘둘리며 괴로워하던 천무진을 옆에서 보아 왔던 그녀다. 그랬기에 돌아온 천무진의 모습에 이상할 정도로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백아린이 옆에 선 천무진의 손바닥에 자신의 손을 슬그머니 겹쳐 놓았다.
슬쩍 서로를 바라본 두 사람이 깍지를 낀 채로 등을 맞대고 섰다.
백아린이 등 뒤에 있는 천무진을 향해 물었다.
“돌아온 기분이 어때요?”
“상쾌해. 앓던 이가 쑥 빠진 느낌이랄까.”
천무진의 대답에 백아린이 픽 웃었다.
그리고는 이내 그녀가 유쾌한 얼굴로 말을 받았다.
“그럼 이제 다시 한번 함께 싸워 볼까요?”
백아린의 말에 천무진이 기다렸다는 듯 답했다.
“물론이지.”
대답과 함께 깍지를 푼 두 사람이 동시에 적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천무진의 천인혼과, 백아린의 대검이 적들을 향해 폭풍처럼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