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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271화 (270/293)

271화. 원래의 자리 ― 어쩌지? (1)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천무진을 발견한 백아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순간 그녀는 마음이 울컥했다.

다시는 보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사람. 그런 천무진을 보게 되니 너무도 감동스러웠다.

천무진의 등장에 매유검은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침착함을 되찾았다.

사실 백아린 제거 작전은 천무진에게는 비밀로 한 채 진행된 일이다.

이 일이 알려지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에 천지광은 천무진을 제외한 나머지 십천야들만을 불러 모아 임무를 지시했고, 그에게 들통나지 않게 행동하라고 당부하기까지 했다.

그런 상황에서 당사자가 이곳에 나타난 건 분명 난처한 일이긴 했지만…….

‘뭐 오히려 나한텐 더 잘된 일이려나.’

매유검은 오히려 지금 이 상황을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그건 매유검이 천무진의 상태를 알기 때문이다.

자모충에 조종당하는 천무진으로서는 천지광의 명령을 거스를 수 없다.

그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는가?

제아무리 천무진이 백아린을 소중히 여긴다 한들, 결국 천지광이 그녀를 죽이라고 명령을 내린 이상 그걸 막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눈앞에서 보여 줄 것이다.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백아린이라는 존재가 처참하게 죽어 가는 모습을.

그건 천무진에게 열등감을 지니고 있는 매유검으로서는 너무도 즐거운 일이었다.

매유검은 아무렇지 않은 척 입을 열었다.

“네가 왜 여기에 있지?”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천무진이 슬쩍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널브러져 있는 수많은 시체들. 그리고 그 속에 피투성이가 되어 서 있는 백아린까지.

그녀의 다친 모습을 보고 있자니 천무진의 눈이 꿈틀거렸다.

그런 그의 반응에 매유검이 장난치듯 말했다.

“뭐야? 설마 화라도 난 건가?”

“당연한 거 아닌가.”

말과 함께 천무진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천인혼을 끄집어냈다.

스르릉.

검을 뽑은 그가 주변을 둘러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감히 내 사람을 건드렸는데.”

천무진의 살기에 주변을 포위하고 있던 적풍대와 뇌룡검대의 무인들이 놀란 듯 뒷걸음질 쳤다.

뭔가 상황을 설명하려는 듯 뇌룡검대 대주 여명이 나서려고 할 때였다.

빠르게 손을 들어 올려 움직임을 저지시킨 매유검이 웃는 얼굴로 말했다.

“워워, 진정하라고. 아니, 진정해야 할 수밖에 없을 거야. 이 일은…… 어르신의 명이거든.”

어르신의 명이라는 부분에 힘을 주어 말하는 매유검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있었다.

이 말이 나온 이상 천무진이 더는 이처럼 날뛰지 못할 거라 자신했다.

그런데…….

백아린이 있는 방향으로 성큼성큼 나아가던 천무진이 갑자기 손에 들린 천인혼을 휘둘렀다.

동시에 검에서 뿜어져 나온 검기가 앞에 자리하고 있던 뇌룡검대 무인들 일부를 휘감았다.

퍼퍼퍼펑!

예기치 못한 공격에 그곳에 있던 뇌룡검대 무인들이 피를 뿌리며 날아갔다.

하지만 천무진의 공격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의 천인혼이 연신 움직였다.

쒜엑! 쒝!

인근에 있던 다른 이들 또한 그 공격을 받았지만, 그들로서는 대책이 없었다.

천무진은 같은 편이라 어찌할 수도 없었고, 쏟아지는 공격들은 피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빠르고 날카로웠다.

수십여 명의 무인들이 순식간에 속수무책으로 휩쓸린 상황에 매유검이 소리쳤다.

“이, 이게 무슨 짓이냐 천무진! 이건 어르신의 명인데 그걸…….”

“그래서 뭐?”

대수롭지 않다는 듯 되묻는 천무진의 모습에 매유검은 일순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렇지만 이내 빠르게 정신을 수습한 그가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너 지금 미친 거야? 네놈은 지금 어르신의 명을 수행하려는 자들을 죽인 거다! 그 말은 곧 어르신의 명을 거역한 거나 다름없어!”

재차 비슷한 말을 반복하는 매유검의 모습에 천무진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

“그러니까 나한테 어쩌라는 거냐고. 천지광의 명령 따위를 내가 어겼는데 뭐?”

전혀 상관없다는 듯한 말투로 내뱉은 천무진의 말에 매유검은 알 수 있었다.

천무진이 뭔가 변했다는 사실을.

그가 당황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너 설마…….”

의미심장한 목소리를 들으며 천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지? 이제 그런 명령 따위 나한테 씨알도 안 먹히는데.”

성큼성큼 걸어간 천무진이 백아린의 옆에 가서 섰다.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참으로 많았다.

다쳐 있는 백아린을 보니 화가 치밀었고, 그녀 혼자 얼마나 힘겹게 싸워 왔을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백아린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주변에 너무도 많은 적들이 자리하고 있었으니까.

그간 머저리처럼 천지광의 명령을 따르기만 해야 했던 자신을 위해 그녀는 홀로 많은 일을 해 줬다.

오로지 자신을 위해서.

수많은 말 대신 천무진은 손을 들어 올려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머리를 어루만지는 천무진의 손길에 백아린은 놀란 듯 고개를 들어 그와 시선을 마주쳤다.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를 향해 천무진이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백아린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이렇게 싸워 온 것처럼 천무진 또한…….

“미안. 많이 늦어서.”

자신의 힘으로 그녀를 지킬 것이다.

* * *

십천야의 거처 내부를 돌아다니던 남윤은 뭔가 이상하게 흐르는 분위기를 감지했다.

비밀 거점 자체가 워낙 은밀하게 감춰져 있는 곳이다 보니 새로운 인물이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뭔가 수상쩍다 여긴 남윤은 십천야의 거점 곳곳을 돌아다녔고, 몇몇 인원들이 얼마 전부터 이곳에 와서 지내고 있음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 대상은 놀랍게도 적풍대(赤風隊) 대주 추풍량, 뇌룡검대(雷龍劍隊) 대주 여명과 혈기군단(血旗軍團)의 수장인 야율인이었다.

이들 셋이 수하 일부를 대동한 채로 이곳 비밀 거점에 나타났다는 걸 알게 된 남윤은 뭔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확신했다.

추풍량과 여명도 문제였지만, 혈기군단을 이끄는 야율인이 나타났다는 건 엄청난 의미였다.

거기다 최근 바삐 움직이고 있는 몇몇 십천야의 수상쩍은 거동까지.

남윤은 곧바로 십천야의 수장인 천지광의 거처로 찾아갔다.

휘장 안 쪽에 자리한 천지광이 다급히 물었다.

“왜? 천무진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게냐?”

천룡혼을 이어받아 과거로 삶을 되돌리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천지광이었기에 남윤의 방문에 흥분한 듯 질문을 던졌다.

그런 그를 향해 남윤이 담담하게 말했다.

“아닙니다. 여쭙고 싶은 게 있어서 왔습니다.”

“……지금 말이냐?”

천무진과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알자 천지광은 급속도로 관심이 사그라졌다.

말투에서 느껴지는 변화를 체감하면서도 남윤이 질문을 던졌다.

“십천야와 외부 세력들이 갑자기 안에서 부산스럽게 움직이던데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아, 그거 말인가. 마침 잘됐군. 혹시 몰라 자네에게 주의시켜야 할 것이 있어 언급해 놓으려 했는데 이리 찾아온 김에 이야기해 두면 되겠군.”

남윤은 천무진을 옆에서 보필하는 자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는 감시자였다.

천지광의 명령대로 천무진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수상한 일을 벌이지 못하게 하는 그런 역할 말이다.

남윤을 향해 천지광이 말했다.

“그대도 곧 알게 되었겠지만, 현재 십천야와 외부 세력들이 움직이는 건 천무진의 동료들을 제거하기 위해서다.”

“……적화신루 쪽 이들 말입니까?”

“그래. 그들이 영 방해가 돼서.”

“그렇다면 주의시켜야 할 것이 있으시다는 건 무슨 말씀이신지…….”

“뻔하지 않으냐.”

휘장 안쪽에 자리하고 있는 천지광의 그림자가 움직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천천히 옆으로 걸어가다 이내 말을 이었다.

“천무진의 귀에 이 일에 대한 이야기가 절대 들어가지 않도록 바깥을 돌아다니지 못하게 해. 이왕이면 연무장에서 모든 생활을 하여 외부와 단절되게 만들어 주면 더 좋고.”

천무진이 이 일에 대해 알게 된다 해도 자신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음을 알지만 천지광은 최대한 빠르고 조용히 천룡혼과 관련된 일을 매듭짓고 싶었다.

천무진과 약조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부인 천운백을 죽였다.

그런데 곧바로 또 다른 동료들까지 제거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천무진이 동요할 수도 있다.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천지광에게 그건 결코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그랬기에 천지광은 이 일을 끝까지 천무진이 모르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 일을 도맡아서 해 줘야 하는 건 당연히도 항상 옆에 붙어 있는 남윤이었다.

남윤이 물었다.

“계획은 언제 실행되는 겁니까?”

“이미 움직였을 게야. 오늘 밤 안으로 끝을 내기로 했거든.”

생각보다 급박하게 상황이 돌아가고 있음을 알게 된 남윤이었지만 그는 최대한 동요 없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중 첩자인 남윤이다.

그랬기에 그는 자신의 생각을 얼굴에 드러내서는 안 됐다.

아무런 동요도 없이 자리하고 있는 남윤을 향해 천지광이 물었다.

“할 수 있겠느냐?”

물어 오는 질문.

무표정한 얼굴의 남윤이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예,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 * *

천지광과의 대화가 끝난 그 즉시 남윤은 움직이고 있었다. 그가 향하는 곳은 바로 천무진이 있는 연무장이었다.

연무장에서 천무진은 절초인 천추나락을 완성시키기 위해 수련에 한창이었다.

그러던 도중 갑자기 연무장 문이 벌컥 소리를 내며 열렸고, 이윽고 그곳에서 남윤이 모습을 드러냈다.

곁눈질로 나타난 상대가 남윤이라는 걸 확인했지만 천무진은 아무런 반응조차 하지 않았다.

그를 배신자로 알고 있는 천무진이다.

그랬기에 이곳에서 만난 이후 남윤과는 일절 대화를 나눈 적도 없었다.

그렇게 서로 담을 쌓은 채로 시간을 보내 왔고, 남윤 또한 그런 천무진에게 대화를 시도하지 않았었다.

오랫동안 함께해 온 천무진에게 미움을 받는 일은 남윤에게도 힘든 것이었다. 하지만 천무진을 위해서, 그리고 천운백 때문에라도 남윤은 모든 증오를 받으면서도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배신자로 옆을 지키던 남윤이 다급히 천무진에게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작은 주인님!”

“…….”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잠시 시선을 주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천무진은 관심 없다는 듯 곧장 남윤에게서 시선을 떼고는 천천히 가부좌를 틀었다.

대화를 하기 싫다는 뜻을 몸으로 말하고 있는 듯했다.

평소였다면 굳이 대화를 이어 갈 이유도 없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너무도 잘 알고 있어서다.

천무진에게 백아린이 어떠한 사람인지를.

천무진이 백아린과 사천성에 위치한 천룡성의 비밀 거점에서 함께 지내 온 긴 시간을 남윤 또한 가까이서 함께했으니까.

그곳에서 남윤이 한 것은 식사를 차려 주고, 간단한 집안일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 수 있었다.

백아린이 천무진에게 있어 어떠한 존재인지를.

그녀가 있었기에 천무진은 웃었고, 또 수많은 위기를 극복해 왔다. 그런 백아린이 이대로 죽게 된다면…… 천무진은 결코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랬기에 말해 줘야만 했다.

자신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는 천무진을 향해 남윤이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털썩.

생각지도 못한 남윤의 행동에 천무진이 처음으로 움찔했다.

그가 재차 소리쳤다.

“작은 주인님!”

“대체 이게…….”

눈살을 찌푸리며 천무진이 결국 입을 연 그때였다.

남윤이 말했다.

“백 소저께서 위험하십니다.”

“……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천무진이 놀란 듯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이내 그는 고개를 저었다.

순간 남윤의 말에 놀라긴 했지만…… 곧 지금 자신들의 사이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남윤은 배신자다.

사부를 버렸고, 십천야의 손을 잡은 배신자.

그가 자신에게 백아린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려 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랬기에 천무진이 말했다.

“무슨 꿍꿍이야? 날 시험해 보기라도 하려는 건가?”

“이런 걸로 작은 주인님을 시험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오히려 천지광은 이 일이 작은 주인님께 들어가지 못하도록 제게 특별 관리를 명령했습니다. 작은 주인님이 동요하면 피해를 입는 건 천지광 아니겠습니까.”

“…….”

이어지는 남윤의 말에 천무진은 움찔했다.

사실 남윤의 말이 맞았다.

어차피 모든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천지광이 이런 식으로 자신을 시험할 이유는 없었으니까.

게다가 하루빨리 천룡혼의 힘을 얻길 원하는 천지광으로선 이런 식으로 천무진을 혼란스럽게 할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

이해가 안 가는 상황에 천무진의 머리가 복잡해진 그때였다.

남윤이 빠르게 설명했다.

“천지광은 십천야들과 외부에 있는 세력을 통해 백 소저와 한 소협을 제거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 두 분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병력이 움직일 겁니다. 이대로 있다가는 그 두 분 모두 죽으실 겁니다.”

이어서 쏟아져 나오는 말에 천무진은 숨이 막혀 왔다.

백아린과 한천이 죽는다고?

과연 이 말이 진실일까?

천무진이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물었다.

“나에게 이 모든 걸 이야기해 주는 저의가 뭐지?”

“…….”

천무진의 질문에 무릎을 꿇고 있는 남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어떻게 천무진에게 이 긴 이야기들을 모두 말해 줄 수 있을까. 그리고 과연 자신의 말을 믿어 줄까 하는 의문도 있었다.

사실 이렇게 자신이 비밀을 발설하고, 천무진이 이것에 대해 천지광에게 묻거나 결국 이겨 내지 못하고 이번 일을 말하게 된다면 남윤은 죽을 게다.

허나 이곳에 달려올 때 이미 각오했던 부분이었다.

천운백도 무사히 산 이상, 남윤에게 남은 일은 이곳에서 천무진을 보살피는 것뿐이었다.

그런 천무진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 백아린.

그녀가 살아야 천무진도 살 수 있었다.

무릎을 꿇은 채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천무진을 올려다보던 남윤.

그런데…….

그 눈빛을 마주하고 있던 천무진이 갑자기 눈을 크게 치켜떴다. 익숙한 그 눈동자를 마주하고 있는 그때 뭔가가 번개처럼 떠오른 탓이다.

“처음부터 당신은…… 아니, 영감은…… 설마, 그런 거야?”

자신을 향해 영감이라 부르는 천무진의 말투.

그걸 듣는 순간 남윤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 말투가 너무 그리웠습니다.”

웃으며 말을 내뱉는 남윤의 눈동자를 보며 천무진은 확신했다.

남윤은 배신자가 아니었다고.

어릴 때부터 이십 년 가까이 자신을 키워 준 남윤이다. 그랬기에 눈빛을 마주하는 것만으로 그가 하고 싶은 많은 말을 느낄 수 있었다.

천무진이 서둘러 허리를 굽혀 무릎을 꿇고 있는 남윤을 일으켜 세웠다.

왜 말을 안 한 거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질문을 던지기에 앞서 천무진 스스로 답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자신 때문이다.

천지광의 명령대로 따를 수밖에 없는 자신의 이 한심한 꼴 때문에 말이다.

그런 자신을 위해 남윤은 계속해서 스스로를 희생해 왔다.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천무진은 남윤을 원망하고 미워했다.

그랬기에 실로 미안했다.

“영감, 미안해. 내가 모자라서 영감이…….”

입술을 꽉 깨문 채로 감정을 삼키는 천무진을 향해 남윤은 괜찮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이내 빠르게 입을 열었다.

“지금은 사과를 하실 때가 아닙니다. 서둘러 방법을 강구하셔야 합니다.”

“알고 있어. 하지만…….”

백아린과 한천.

어떻게든 지켜야만 했다.

그렇지만 천지광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는 지금의 천무진에게 과연 어떠한 방법이 있겠는가.

천무진에겐 그저 이대로 두 사람의 죽음을 지켜보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고개를 푹 수그린 천무진의 몸이 작게 떨렸다.

“……웃기지 마.”

지켜보기만 해야 한다고?

말도 안 되는 개소리!

백아린이 없는 세상이라면 이제 천무진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지금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그가 찾아야 할 이는 한 명뿐이었다.

의선.

그렇지만 천무진은 의선이 있는 곳을 알지 못했다.

천무진이 다급히 물었다.

“영감, 일은 언제 벌어지는 거지?”

“저도 방금 들었는데 이미 움직인 듯합니다.”

“망할! 시간이 없어. 의선은 대체 어디에…….”

천무진이 초조한 듯 욕설을 내뱉을 때였다.

남윤이 입을 열었다.

“지금 당장 의선을 만나시면 되는 겁니까?”

생각지도 못한 그 말에 천무진이 움찔하며 남윤을 바라봤다.

천무진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설마 의선이 있는 곳을…… 알고 있어?”

천무진의 질문에 남윤이 대답 대신 연무장의 입구로 다가가더니 이내 말했다.

“모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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