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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261화 (260/293)

261화. 유인 ― 함정이군 (1)

십천야의 비밀 거점.

그곳에 못 보던 얼굴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모두 이번 백아린 제거 작전에 나설 무리를 이끄는 수장들이었다.

적풍대(赤風隊) 대주 추풍량.

뇌룡검대(雷龍劍隊) 대주 여명.

그리고 마지막으로 혈기군단(血旗軍團) 단주 야율인까지.

세 사람이 한자리에 모인 방 내부엔 적막만이 감돌았다. 이 자리에 모인 이 세 사람. 놀랍게도 이들 중 추풍량과 여명, 두 명은 무림을 대표하는 우내이십일성들이었다.

우내이십일성으로 불릴 정도로 무림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이들을 휘하로 두다니, 십천야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말해 주는 듯싶었다.

하지만 정작 그 둘은 가장 안쪽에 자리하고 있는 한 사내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혈기군단 단주 야율인.

육십 대의 노인인 둘과는 달리 중년의 사내인 야율인이다. 사십 대 후반의 나이에 외모 또한 그리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평범했다.

적당한 키에 몸집.

그리고 어디서나 볼법한 친근한 외모까지.

겉으로 보기엔 그리 빼어나 보이지 않는 야율인이다. 그런데 우내이십일성이자 연배 또한 높은 두 사람이 그의 눈치를 살피는 이유는 역시나 하나였다.

그를 인정하니까.

무림에서 그리 알아주는 무인은 아니었지만 그건 세상이 야율인의 진짜 모습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는 우내이십일성인 추풍량과 여명보다 훨씬 강한 인물이었다. 순수한 무력만으로 치자면 십천야 중에서도 반조와 매유검을 제외하고는 적수가 없을 정도다.

화산파를 대표하는 고수이자 십천야의 한 명인 자운조차도 싸움을 꺼리는 상대가 바로 야율인이었다.

예전부터 자운과 야율인을 두고 누가 더 강한지 의견이 분분했지만…….

이런 소문을 자운이 모르지는 않았을 터.

자운은 무척이나 자존심이 강한 사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치 이런 소문에 대해 전혀 듣지 못한 것처럼 행동했다.

야율인과의 대결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자존심을 세우겠다고 그와 싸웠다가 혹시라도 패하게 된다면 십천야라는 자신의 위치가 흔들릴지도 몰랐다.

십천야 중에서도 손꼽히는 고수인 자운조차 피할 정도의 실력자. 게다가 야율인이 가진 힘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그가 이끄는 혈기군단은 십천야의 주축을 이루는 무력 단체 중 하나였다.

실질적으로 십천야에 속한 부대들 중 첫 번째나 두 번째로 꼽힐 정도의 세력. 그런 그들이 야율인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다.

그 또한 야율인이라는 사내가 십천야 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데 한몫하는 건 분명했다.

그렇게 조용했던 공간의 문이 열리며 반조가 모습을 드러냈다.

반조는 안에 자리한 세 사람을 향해 가볍게 인사를 던졌다.

“다들 오랜만입니다.”

반조의 등장에 야율인이 가장 먼저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뒤이어 추풍량과 여명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을 취했다.

여명이 반조를 향해 입을 열 때였다.

“그간 잘 지내셨습…….”

인사를 하던 여명이 순간 멈칫했다. 반조의 뒤편에서 모습을 드러낸 상대 때문이었다. 장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상대가 누구인지 모를 리가 없었다.

십천야의 일원인 매유검.

그리고 많은 이들이 가장 껄끄러워하는 십천야이기도 한 그가 나타난 것이다.

매유검의 등장에 방 안의 분위기가 순간 가라앉았다. 그런 분위기를 눈치채서일까?

안으로 들어선 매유검이 비웃듯 말했다.

“뭐야. 갑자기 싸한 이 분위기는. 내가 어지간히도 반가운 모양이네.”

모두가 불편해하는 사이 가장 안쪽으로 걸어간 매유검은 상석에 있는 자리로 다가갔다. 그러던 그가 이내 걸음을 멈췄다.

매유검이 슬쩍 시선을 돌려 바로 옆에 자리한 야율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

“어이, 야율인.”

“……무슨 일입니까?”

“무슨 일은.”

말과 함께 채 누가 반응도 하기 전에 매유검이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이내 손등으로 야율인의 볼을 툭툭 건드렸다.

매유검의 행동에 함께 자리하고 있던 추풍량과 여명이 사색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주변 반응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장포 아래로 드러난 매유검의 입이 비틀렸다.

“나를 봤으면 인사를 해야지.”

매유검이 재차 얼굴을 두드리려는 순간 거칠게 고개를 튼 야율인이 말했다.

“난 당신을 따르는 게 아닙니다. 이런 무례한 행동은 자제하시죠.”

“하여튼 기어오르는 건 여전하네.”

말과 함께 장포 안쪽에 있는 매유검의 입꼬리가 씩 올라가는 바로 그때였다.

막 매유검이 움직이려는 찰나 반조가 소리쳤다.

“그만!”

“…….”

매유검이 움찔하며 휘두르려던 손을 멈췄다. 그러고는 이내 움직이던 손을 아래로 내리며 야율인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렇게 고개 뻣뻣이 들고 다니지 말라고. 부숴 버리고 싶으니까.”

살기 어린 경고를 마주한 상태에서도 야율인은 일말의 표정 변화 없이 방금 전 그가 건드린 어깨를 가볍게 털어 냈다.

그런 야율인의 행동에 매유검이 다시 한번 꿈틀했지만, 이번에도 반조가 나서서 그를 막았다.

“매유검, 넌 동료한테까지 무슨 짓이야?”

“동료? 누가? 우리가?”

비웃듯 말하는 매유검의 말투에 반조는 입을 닫았다.

알고 있다.

매유검이 다른 이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도는.

천지광의 휘하에 모여 함께 같은 목표로 나아가고 있지만, 매유검은 이들과 동료라는 의식은 전혀 없었다.

반조가 경고하듯 말했다.

“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그것까지 바꿀 생각은 없다, 매유검. 그렇지만 중요한 일을 앞두고 소란을 일으키는 건 용서 못 해.”

천지광은 이번 작전을 중대한 임무라 판단하고 두 명의 십천야와 세 개의 부대를 투입하기로 정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그들이 모두 모인 지금, 이제는 서둘러 일을 매듭짓는 것만이 남았다.

반조의 경고에 매유검이 상석에 털썩 주저앉으며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그런 그를 잠시 고깝게 바라보던 반조가 이내 이곳에 미리 자리하고 있던 세 사람에게 시선을 돌렸다.

“부대원들의 준비는 끝났습니까?”

“뇌룡검대 준비 완료되었습니다.”

“적풍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든 명령만 내리시죠.”

뇌령검대와 적풍대의 준비가 끝났다는 말을 전해 들은 반조의 시선이 아직까지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야율인에게로 향했다.

그의 시선을 눈치챈 야율인이 빠르게 답했다.

“혈기군단 전원 대기 중입니다.”

세 사람의 대답을 모두 들은 반조가 고개를 끄덕이며 곧바로 말을 받았다.

“이번 임무는 절대 실패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우리의 표적은 둘입니다. 적화신루 소속의 총관과 부총관으로 현재 이곳에서 멀지 않은 마을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전해 듣는 세 사람의 얼굴에 동시에 당혹감이 서렸다.

당연한 일이다.

십천야 둘과 자신들. 거기다가 세 개의 부대까지 투입되는 작전이다. 이 정도라면 구파일방 중 하나라 할지언정 반나절 안에 산산조각 내 버릴 정도의 전력이다.

그런데 그럼 엄청난 전력이 투입되는 작전의 제거 대상이 고작 둘이란다. 하물며 그 표적이 무림의 유명 인사가 아닌 적화신루 소속의 인물들이라니 더더욱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세 사람의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의 이유를 알면서도 반조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우선 우리 쪽 인원들을 나눌 생각입니다. 먼저 표적인 두 사람을 떨어트려 놓고 각자 제거를 하는 방향으로 갈 건데…….”

반조는 사전에 준비된 계획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상석에 앉은 채로 가만히 듣고만 있던 매유검이 불만 어린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뭘 그렇게 귀찮게 처리해. 그냥 모든 병력 끌고 가서 놈들이 도망 못 치게 포위하고, 안에 있는 그 두 명 모두를 내가 때려죽이면 되는 걸 가지고.”

처음부터 이 일에 이만한 인원을 투입하는 것에 불만을 가졌던 그다.

가뜩이나 둘을 죽이기 위해 수백에 달하는 인원들이 나서는 것도 못마땅한데, 그걸로 모자라 이처럼 치밀한 작전까지 짜야 한다는 것이 못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반조는 매유검의 말에 그를 바라봤다.

어차피 무슨 말을 해도 자신의 말에 동조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 그랬기에 반조는 짧지만, 그에게 통할 굵직한 한마디를 던졌다.

“토 달지 마. 어르신의 명이다.”

“…….”

반조의 예상대로 그 말에 매유검은 곧바로 입을 닫았다.

천지광의 명령이라면 그것이 어떤 것이든 따를 수밖에 없었으니까.

결국 고개를 끄덕인 매유검이 입을 열었다.

“좋아. 그럼 다른 건 됐고 백아린이라는 계집만 내게 넘겨. 그 여자만큼은 내가 직접 죽이고 싶으니까.”

말을 내뱉는 그의 목소리에는 짙은 살기가 담겨 있었다. 얼마 전 천무진에게 당했던 수모가 아직까지 잊히지 않아서다.

천무진은 말했다.

원한다면 그녀와 싸워 보라고.

결코 자신이 이기지 못할 거라며 호언장담했던 그다.

그랬기에 보여 주고 싶었다.

천무진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그리고 천무진에게 있어 소중한 사람인 백아린의 숨통을 직접 끊음으로써 그를 고통받게 할 수 있다는 사실도 마음에 들었기에 백아린만큼은 꼭 자신의 손으로 죽이고 싶었다.

매유검의 말에 반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

가장 원하는 걸 얻은 이상 매유검 또한 더는 불만이 없었다.

그가 팔짱을 낀 채로 입을 열었다.

“그래서 계획이 뭔데?”

매유검과의 대화로 잠시 이야기를 멈췄던 반조다.

그가 자신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는 나머지 사람들을 바라보며 설명을 이어 가기 시작했다.

“우선 우리는 이곳 인근에 있는…….”

* * *

백아린과 한천은 한동안 머물던 형동을 벗어나 어딘가로 움직이고 있었다.

현재 두 사람은 천무진을 도와 십천야의 의뢰를 받아 주고 있던 상황이다. 그리고 이번에 움직이고 있는 이유 또한 그 때문이었다.

일각을 다투는 갑작스러운 의뢰.

그걸 해결하기 위해 두 사람은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움직여야만 했다.

목적지는 형동에서 대략 한 시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산이었다.

급히 움직이는 와중에 한천이 투덜거렸다.

“아니 뭔 놈의 의뢰를 이 밤에 준답니까. 사람 쉬지도 못하게.”

어차피 형식적으로만 돕고 있을 뿐이지, 진짜로 그들과 한 배를 탄 것은 아닌 상황. 마음 같아서는 굳이 지금 움직이고 싶지 않았지만, 내일 아침이면 이곳을 떠날 상대를 만나는 일이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백아린이 불만을 토해 내는 그를 다독였다.

“조금만 참아. 곧 끝이 나겠지.”

그녀 역시 십천야의 일을 돕고 있는 이 일련의 상황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천무진을 위해 이렇게 나섰고, 다행히 아직까지 별다른 문제는 벌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이 목적지 인근에 도착했을 무렵이었다.

산 중턱에 자리한 자그마한 장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곳의 입구에서 한 명의 사내가 기다리고 있었다.

사내는 두 사람을 발견하고는 서둘러 다가왔다.

그가 조심스레 말했다.

“저 혹시 오늘 이곳에서 뵙기로 한 분들이신지…….”

백아린은 상대를 향해 미리 건네받은 서찰 한 장을 꺼내어 내밀었다. 서찰에는 별다른 내용은 없었지만, 그 끝에 나비 모양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인장을 확인한 상대가 고개를 끄덕이며 곧바로 말을 이었다.

“확인되셨습니다. 주인 어르신께서는 곧 여기로 오실 테니 안에서 기다리시고 계시면 됩니다. 물건을 인수받으실 분은 절 따라오시고요.”

상대의 말에 한천이 그쪽으로 성큼 나섰다.

십천야의 의뢰는 오늘 이곳에서 누군가와 만나고, 또 그들에게서 중요한 물건을 인수받는 것이었다.

당연히 수장을 만나는 건 백아린의 몫이었고, 한천은 물건을 인수받는 일을 맡았다.

그 순간 한천에게 백아린의 전음이 날아들었다.

『무슨 물건인지 은밀히 확인하고.』

『물론이죠. 대장.』

십천야에게서 오늘 이곳에서 건네받을 물건이 무엇인지는 듣지 못했다. 그랬기에 백아린은 그들 모르게 오늘 받는 물건이 뭔지 따로 확인할 심산이었다.

안내를 하겠다고 나선 사내가 걸음을 옮기자 한천이 백아린을 향해 빠르게 말했다.

“대장 여기서 기다리고 계시죠. 금방 끝내고 올 테니까.”

“그럼 누가 먼저 일을 끝내든 여기서 보자고.”

백아린의 말에 한천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이내 먼저 걸어가기 시작한 상대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렇게 백아린만 그곳에 둔 채로 한천은 자신을 안내하는 사내와 함께 계속해서 다른 곳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따라 움직이던 한천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거리가 너무도 멀었다.

어느덧 이 각 이상을 움직이자 더는 참지 못하겠는지 한천이 입을 열었다.

“지금 맞게 가는 겁니까?”

“물론입니다. 갑자기 왜 그러시는지요?”

“생각보다 너무 멀어서요.”

“거의 다 왔습니다. 바로 이곳만 지나면 금방입니다.”

걱정 말라는 듯 말하는 상대의 모습에 한천은 슬쩍 표정을 구겼다. 그렇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지금으로선 피할 수 없는 의뢰였다.

결국 그렇게 한천은 사내를 따라 계속 움직여야만 했다.

그렇지만 말했던 곳을 지나쳤음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는 건 그저 나무들뿐이었다.

결국 한천이 재차 입을 열었다.

“있긴 뭐가 있다는 겁니까? 근처에는 뭐 아무것도 없는데…….”

불만스럽게 말을 내뱉던 한천의 목소리가 급속도로 작아졌다.

어두운 숲길.

그곳 사이에서 알고 있는 얼굴이 모습을 드러내서다.

십천야의 일원 반조.

그가 갑자기 한천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상대의 모습을 확인하는 순간 한천의 표정이 급속도로 차갑게 식었다.

그런 한천을 향해 반조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여, 생각보다 금방 다시 만났네?”

두 사람은 천무진 일행이 형동에 오자마자 들어간 객잔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당시 둘은 서로를 의식하며 가벼운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었다.

반조가 곧바로 말을 이었다.

“그때 그랬던가? 누가 잔챙이일지 알게 될 날이 곧 올 거라고. 그런데 그때가…… 좀 빨리 온 것 같은데.”

갑작스러운 반조의 등장.

그럼에도 한천은 지금 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이미 알아차린 상태였다. 그랬기에 갑자기 자신 앞에 나타난 반조라는 존재에 대해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대신 싸늘하게 식은 얼굴로 한천이 중얼거렸다.

“……함정이군.”

한천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빠져나오는 사이 반조의 뒤편으로 수많은 그림자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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