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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260화 (259/293)

260화. 은혜 ― 그 녀석 덕분입니다 (2)

모두가 각자의 이유로 바쁜 시간을 보내는 나날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천무진은 천룡비공의 비기를 완성시켜 가고 있었고, 백아린은 적화신루와 함께 겉으로는 십천야를 돕는 척하며 뒤편으로는 계속해서 다른 일을 준비했다.

의선은 천무진의 몸 안에 있는 자모충을 제거할 방법을 연구했고, 생존한 천운백은 모습을 감춘 채로 회복에 전념하고 있었다.

물론 바쁜 건 천무진 일행만이 아니었다.

천지광을 따르는 이들 역시 각자의 사정과 이유로 뭔가를 바삐 이뤄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서 유독 겉도는 인물이 있었으니 그건 다름 아닌 주란이었다.

자신의 거처에 박혀 있는 그녀는 잔뜩 지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답답해 죽겠네.”

중얼거리는 주란의 목소리는 불만으로 가득했다.

원래 주기적으로 십천야의 거점에서 지내기도 했고, 일이 생기면 꽤나 오랫동안 돌아가지 못했던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아예 이곳에 눌어붙어서 지낸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예전의 주란은 무척이나 바빴다.

상무기를 통해 넘어오는 정보를 천지광에게 보고하기도 하고, 중간에서 이런저런 작전들을 구상하기도 했다.

주 정보 단체였던 귀문곡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홍화루라는 독자적인 세력을 이끌며 나름의 정보력을 자랑하기도 했던 그녀다.

그렇지만 최근 그 모든 역할을 빼앗긴 주란은 십천야 내에서도 붕 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움직이던 작은 정보 세력도 적화신루가 나타나며 의미가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지금 그녀는 이곳에서 딱히 하는 일도 없는 상황이다.

어디 그뿐인가?

무력으로는 다른 십천야인 천무진과 반조, 매유검이나 자운에게 미치지 못하는 그녀다.

남은 이들 중에서는 무력도 최하위에, 할 수 있는 일도 없게 된 주란은 이곳에 있는 것이 무척이나 불편해졌다.

그렇지만 현재 모든 십천야들은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천지광을 보필해야만 했다.

주란으로선 최근 들어 보여 주는 천지광의 선택과 행보들을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대체 무슨 생각이신 거지.’

예전의 천지광은 욕심이 있었다.

모든 걸 얻으려 했고, 또 많은 걸 알려고 했다.

그렇지만 최근은 아니었다.

그는 마치 세상 모든 일에 관심이 없는 듯 천무진의 상황에만 열중했다.

천운백도 죽은 상황에서 대체 왜…….

자신들의 앞길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천운백이 죽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모든 십천야 휘하의 세력을 집결시키고 무림을 집어삼킬 일전을 준비해야 옳았다.

분명 곧 그렇게 될 거라 생각했는데 우습게도 상황은 전혀 달랐다.

천지광은 아무런 것도 하지 않았고, 천운백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림은 조용했다.

흘러가는 이 모든 상황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고,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자신은 아무런 것도 하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 간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싫었다.

초조하게 방 안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때, 갑작스럽게 수하 중 하나가 찾아왔다.

“루주님을 뵙습니다.”

상대는 주란이 이끄는 홍화루에서도 가장 높은 등급인 흑접 중 하나였다. 그녀의 등장에 주란이 의외라는 듯 말했다.

“뭐야, 연락도 없이.”

“급히 보고드려야 할 일이 있어서요.”

“보고?”

“네, 중요한 정보입니다.”

정보라는 말에 주란은 픽 웃었다.

어차피 정보 단체로서의 역할은 적화신루 쪽에서 도맡은 지금 굳이 나서서 그들을 도와야 할지가 의문이었으니까.

그랬기에 주란은 자조적인 미소를 띤 채로 답했다.

“잘나신 적화신루가 있는데 우리가 뭐 하러 고생을 해. 우리한테 피해 오는 거 아니면 그냥 내버려 둬. 적화신루의 그 사 총관이라는 계집이 알아서 하겠지.”

백아린에게 된통 당한 기억 때문에 그녀에게 안 좋은 감정이 가득한 주란이다.

그렇게 대충 상황을 넘기려는 그때 흑접이 말했다.

“들으셔야 할 것 같아요. 그 사 총관에 대한 정보거든요.”

백아린에 대한 정보라는 말에 주란의 눈동자가 갑자기 번뜩였다.

주란은 빠르게 걷고 있었다.

그녀가 향하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수장인 천지광의 거처였다.

약속도 없이 찾아간 주란이 천지광의 거처 앞에 이르러 안쪽에 뵙고자 하는 요청을 올렸다.

“어르신! 급히 보고를 드릴 일이 생겼는데 들어가도 될까요?”

그녀의 말이 끝나고 잠시 뜸을 들이던 천지광이 답했다.

“들어오거라.”

승낙이 떨어지자 주란은 곧장 방 안으로 들어섰다.

여전히 휘장 안쪽에 자리하고 있는 천지광이 시큰둥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일이냐?”

급한 보고라고는 하지만 사실 천지광은 별반 관심이 없었다. 이미 해야 할 모든 것들을 이루고 과거로 돌아갈 때를 기다리는 상황에서 그 외의 이야기들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그나마 그토록 찾고 있는 구마진갑에 대해 알아 온다면 모를까 그 외 다른 이야기들이 그의 관심을 끌 수 있을 리 만무했다.

휘장으로 가려져 있었지만 주란은 알 수 있었다.

지금 자신의 이야기에 천지광이 별다른 관심이 없다는 것 정도는.

하지만 주란의 표정엔 확신이 있었다.

그녀가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어르신, 일이 벌어진 것 같아요.”

“……그래?”

여전히 대수롭지 않은 반응.

주란이 입을 열었다.

“백아린이 오래전부터 남만에서 자모충을 구해 갔다더군요.”

“뭐야!”

순간 휘장 안쪽에서 여태까지와는 다른 흥분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러고는 이내 휘장으로 가려져 있음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천지광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자모충이라니?

흑마신과 흑마련이 무너지며 자모충이 적들에게 드러났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걸 추가적으로 구해 오고 있었다는 것의 의미는…….

‘천무진의 상태를 알고 있다는 것인가?’

천무진이 자신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자모충 때문이라는 걸 알아차렸다는 뜻이다.

물론 그걸 알았다고 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천무진의 몸 안에 심어져 있는 자모충은 특별한 것이었고, 천지광이 아는 바로는 그걸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이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손 놓고 있을 문제도 아니었다. 자신이 모른다고 해도 뭔가 아는 자가 있을 수도 있었으니까.

천무진의 제안대로 백아린을 놔둔 건 그들을 이용할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녀가 자모충을 건드리고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제아무리 칠신기의 하나인 구마진갑에 욕심이 난다 한들 천무진이 가져다줄 새로운 삶에 비할 수는 없지 않은가.

침묵하고 있던 천지광이 이내 입을 열었다.

“……적화신루가 어디까지 알아낸 거지?”

“그것까지는 파악하지는 못했어요. 다만 계속해서 자모충을 수급해 가는 걸 보면 뭔가 단서를 잡은 게 아닐까요?”

주란이 슬쩍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떨리는 천지광의 목소리와 아까와는 달라진 반응들. 그것들이 적어도 이 일이 지금의 천지광에게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라는 걸 알 수 있게 해 줬다.

뭔가를 해냈다는 생각에 주란은 꽤나 유쾌해졌다.

일전에 자모충과 관련하여 남만 쪽에 사람을 심어 두라는 천지광의 명령에 따라 주란은 그곳에 많은 인원들을 배치했었다.

그런데 그것이 이렇게 뒤늦게나마 자신에게 이득이 되어 돌아오다니…….

주란은 그 자리에 서서 천지광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이내.

“주란.”

“네, 어르신.”

휘장 안쪽에서 들려오는 의미심장한 목소리에 주란이 짧게 대답했을 때다.

천지광의 명령이 떨어졌다.

“천무진을 제외한 십천야 전원 소집이다.”

* * *

천지광의 거처로 십천야들이 비밀리에 모여들었다.

갑작스러운 호출에 모두가 의아해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것도 천무진을 제외하고 그에게 들키지 않도록 주의하며 모이라고 하니 의문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반조의 시선이 반대편에 있는 주란에게로 향했다.

그녀를 바라보던 반조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주란은 뭔가 아는 눈치군.’

이런 상황에서 유일하게 입가에 미소를 건 채로 자신만만하게 서 있는 주란이었다. 그걸 보아하니 그녀는 이 자리에 모두가 모인 이유를 알고 있는 듯했다.

천무진을 제외한 십천야 사인 모두가 자리한 상황에서 휘장 안에 있는 천지광이 입을 열었다.

“다들 모였군.”

“어르신을 뵙습니다.”

네 명이 한목소리로 인사를 건넬 때였다.

천지광이 가볍게 손을 저으며 말을 받았다.

“시간이 없으니 그런 인사는 그만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지. 주란.”

“네.”

“상황 설명해.”

“알겠습니다.”

명을 전달받은 주란이 곧장 앞으로 나서서 자신이 전달받은 정보를 전했다.

백아린이 자모충에 대해 접근하고 있고, 뭔가를 알아낸 듯싶다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전해 들은 직후 자운이 안쪽에 있는 천지광을 향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외람되지만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무엇이냐.”

“굳이 천무진을 데리고 가시려는 저의를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천운백도 죽었고, 이제 천무진의 이용 가치는 없는 거 아닙니까? 차라리 이 기회에 그놈도 깔끔히 정리하시죠. 위험한 불씨는 아무리 작더라도 끄고 가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자운의 말에 주란 또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또한 비슷한 생각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목적을 가진 천지광으로서는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었다.

솔직히 말해 다른 십천야라면 전원이 죽어도 상관없지만 천무진만큼은 지켜야 하는 입장이 아니던가.

그렇지만 그런 속내를 드러낼 수는 없었기에 천지광은 대충 둘러댔다.

“아직 놈에겐 이용 가치가 남아 있다. 그러니 천무진은 살려 둔다.”

“…….”

확고한 천지광의 대답에 자운은 입을 닫았다.

그가 결정을 내렸다면 따른다.

그것이 십천야의 규율이었다.

천무진에게 향하려는 화살을 막아 낸 천지광이 이내 말했다.

“내가 이 자리에 다들 모이라고 한 건 천무진 때문이 아니다. 바로 그 백아린이라는 존재 때문이지.”

이어지는 천지광의 말에 네 사람 모두가 귀를 세운 채로 이야기에 집중했다.

사실 천지광은 이들이 무슨 불만을 지니고 있는지 잘 알았다.

천운백을 죽이고 모든 준비가 끝이 났는데도 무림을 집어삼키지 않고 조용히 있는 것이 다들 불만이었을 게다.

알았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굳이 그래야 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그리고 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든 상관하지 않았던 것뿐이다.

그렇지만 이왕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이걸 최대한 이용할 생각이다.

천지광이 말을 이었다.

“천무진의 부탁으로 그냥 두려고 했지만 여기까지 들어왔다면 그대로 놔둘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느냐. 무림을 집어삼키는 전쟁을 시작하기에 앞서…… 백아린을 죽인다.”

결국 천지광의 입에서 백아린의 추살령이 떨어졌다.

마치 천운백을 죽이기로 결정한 그날처럼.

무림을 집어삼키는 전쟁이라는 말에 네 사람의 눈동자가 동시에 빛났다.

그토록 기다리던 순간이 찾아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순간적으로 확 하고 들끓는 분위기를 느끼며 천지광이 말했다.

“다들 알다시피 그 계집은 꽤나 실력이 좋은 편이지. 절대 살아나갈 수 없도록 만반의 준비를 취한다. 이 일에는 반조와 매유검, 둘이 나선다.”

호명되는 순간 매유검이 꿈틀했다.

겨우 젊은 여자 하나 죽이는 일이었다. 그런 일에 반조와 함께 나선다는 사실이 못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랬기에 매유검이 말했다.

“어르신 그런 애송이 하나 상대하는 건 저 하나면…….”

“둘만이 아니다. 휘하에 있는 혈기군단(血旗軍團), 적풍대(赤風隊), 뇌룡검대(雷龍劍隊)까지 투입한다.”

이어지는 천지광의 명에 모두가 놀란 듯 눈을 치켜떴다.

고작 백아린 한 명, 아니 옆에 있는 한천까지 둘을 처리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그 일에 있어 십천야 중에서도 손꼽히는 강자인 반조와 매유검이 나서는 걸로 모자라 무려 세 개의 부대가 투입된다.

특히나 혈기군단은 십천야 내에서도 최강의 부대 중 하나였다.

모두가 과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천지광의 생각은 달랐다.

이번 일은 결코 실패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천무진에게는 아주 조그만 변화라도 생기면 안 됐으니까.

그랬기에 엄청난 인원을 투입해서라도 백아린을 제거해야 했다. 게다가 그녀는 매번 자신의 생각보다 뛰어난 활약으로 모든 계획을 망쳐 버린 당사자이기도 했으니.

이번만큼은 결코 실패해서는 안 됐다.

그랬기에 절대 실패할 수 없을 정도의 막대한 인력을 쏟아부었다.

두 명의 십천야.

그리고 세 개의 부대까지.

그 숫자가 무려 오백에 달했고, 그들 개개인 모두가 빼어난 수준에 도달한 무인들이었다.

엄청난 무인들을 투입하기로 결정을 내린 천지광이 물었다.

“준비하는데 시간은 얼마면 되겠느냐?”

외부에 나가 있는 부대원들을 소집하고, 조용히 끝낼 장소를 마련하기까지 준비 시간이 필요했다.

천지광의 물음에 재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주란이 답했다.

“닷새 정도 걸릴 것 같아요.”

“닷새라…….”

나지막이 중얼거리던 천지광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을 정했으니 이제 남은 건 하나.

천지광이 말했다.

“닷새 후에 시작하지.”

눈엣가시와도 같았던 백아린을 제거한다.

그리고 이번만큼은 제아무리 그녀가 뛰어나다 한들…… 절대 살아남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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