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왕-255화 (254/293)

255화. 두 사람 ― 보고 싶었어요 (1)

준비된 식사는 무척이나 화려했다.

큰 상 위에는 각양각색의 요리들이 즐비했고, 또 값비싼 술들 또한 줄지어 자리하고 있었다.

누구라도 눈이 휘둥그레질 법한 자리였지만 막상 그곳에 있는 네 사람의 표정은 하나같이 시큰둥했다.

사실 천지광의 명령이 있었기에 이토록 모인 것이지, 그것이 아니라면 굳이 한자리에 함께하고 싶지 않은 이들끼리의 모임이었다.

아직까지 천지광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나머지 네 명은 이미 식사를 시작한 상태였다.

천지광이 늦게 올 거라는 걸 알았고, 그가 먼저 식사를 하고 있으라는 말까지 전했었기 때문이다.

술잔에 담긴 술을 입에 털어 넣은 주란이 이내 불만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언제 오시는 거야, 대체.”

최소한 천지광이 이곳에 얼굴을 내비치고 사라진 이후에나 끝낼 수 있는 자리였기에 주란은 그가 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혼자 중얼거리던 그녀는 이내 한쪽에 비어 있는 자리를 바라봤다.

화산파의 자운이 있어야 할 자리였지만 그는 어떠한 이유로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주란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물었다.

“그런데 자운은 대체 어디 갔기에 요새 코빼기도 안 보이는 거야?”

현재 천운백을 죽이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자운이다. 그렇지만 그 사실을 전해 듣지 못한 주란은 천무진이 있는 이 자리에서 그 이야기를 꺼냈다.

모든 정황을 알고 있는 반조가 슬쩍 천무진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일이 있으니 안 보이는 거겠지.”

“일? 난 아무것도 못 들었는데 무슨 일?”

“어이, 나중에 이야기…….”

반조가 대충 이야기를 돌리려고 하는 바로 그때였다. 구석에 앉아 혼자서 술만 마시고 있던 매유검이 비웃듯 입을 열었다.

“어이, 뭘 그리 쉬쉬하고 그래. 어차피 다 알게 될 일 아닌가.”

말을 마친 매유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이내 다른 쪽에 자리하고 있던 천무진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다가오는 그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로 자리하고 있던 천무진을 향해 매유검이 상체를 기울였다.

쿵.

양손으로 탁자를 짚은 매유검이 비웃듯 말했다.

“이봐, 잘나신 천룡성의 주인. 자운이 어디 갔는지 알아?”

“매유검! 거기까지……!”

반조가 서둘러 상황을 수습하려 했지만 매유검이 손을 뻗어 다가오려는 그를 멈춰 세웠다.

그러고는 이내 천무진을 향해 말을 이었다.

“네 사부. 천운백인지 뭔지 하는 그놈을 죽이러 갔다고.”

충격적인 발언.

그렇지만 그 말을 들은 천무진은 전혀 놀라지 않은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매유검을 바라보며 천무진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뭐?”

“기분 나빠 하기라도 하라는 건가? 그런데 어쩌지. 이미 사부를 죽이기 위해 손을 쓴 건 어르신에게도 전해 들었거든.”

천지광에게 듣기도 전부터 알았던 일.

굳이 놀랄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천운백을 죽이는 일이었으니 실력 좋은 이들 중 누군가 나섰을 거라 판단했고, 화산파의 조수아를 이용하는 일이니 자운이 나설 확률이 높다고도 생각했다.

물론 그 일에 대해 직접 전해 들으니 불쾌감이 치밀어 오르는 건 사실이었지만 천무진은 최대한 그런 감정을 감췄다.

천무진이 말했다.

“매유검, 자꾸 기어오르는데 말이야…….”

말을 슬며시 끌며 천무진이 몸을 일으켰다. 그렇게 자신에게 상체를 들이민 매유검을 향해 몸을 기울인 채로 천무진이 곧바로 말을 이었다.

“잊지 말라고. 너랑 나는 어르신께 있어 가진 의미가 달라. 그 말은 네가 아는 건 나 역시 모두 다 안다는 소리고. 그러니 말이야…….”

말과 함께 천무진이 손을 뻗어 매유검의 이마 부분을 꾹꾹 눌렀다.

그런 천무진의 행동에 뒤집어쓴 장포 아래쪽으로 드러난 매유검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상대의 변화를 확인하며 천무진이 매유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네 주제를 알아.”

쾅!

매유검이 주먹으로 탁자를 강하게 내려쳤다. 동시에 탁자는 반으로 갈라졌고, 그 위에 있던 음식들이 바닥으로 마구 나뒹굴었다.

그렇지만 당사자인 두 사람은 그런 상황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상대방을 노려보고만 있었다.

그때.

끼이익.

식사를 위해 모여 있던 장소 한쪽에도 휘장이 자리하고 있었고, 그 안쪽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십천야의 수장인 천지광의 등장이었다.

그의 등장에 천무진이 자리에 착석했다.

매유검 역시 화를 억누르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야만 했다.

전혀 아무렇지 않은 표정의 천무진.

하지만…… 그 속내는 달랐다.

‘……사부님.’

함정인 줄 알면서도 홀로 적진으로 들어선 천운백이다. 자신에게 살아 돌아오겠다 굳게 약속했지만 그게 쉽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

천무진은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다.

천지광에게 방해가 되는 일을 할 수 없는 천무진으로서 큰 도움을 줄 순 없었지만, 할 수 있는 한에서 최대한의 손을 써 둔 상황이다.

남은 건 그저…….

나타난 천지광을 위해 다른 이들과 동시에 술잔을 들어 올린 천무진이 그것을 입가에 가져다 댔다.

쓴 술이 목구멍을 타고 흘러내렸다.

소매로 입가를 닦아 내는 천무진의 눈동자가 꿈틀거렸다.

……하늘이 우리 편이기를 바랄 뿐.

* * *

자운은 조수아를 대동한 채로 산동에 도착했다.

그리고 지금 산동으로 움직인 건 비단 이 두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현재 자운은 대략 육십여 명에 달하는 무인들과 함께하고 있었다.

그들 모두가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 또는 각 지역의 이름난 문파나 가문들에서 뽑혀 나온 인물들이었다.

마치 천룡성을 도와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지만…… 사실 이들 모두는 각 문파에 숨겨져 있던 십천야 쪽 사람들이었다.

자운은 그런 그들을 이끌며 조수아를 목적지인 산동 제녕(濟寧) 인근까지 유인했다.

화산파가 있는 섬서성에서 이곳 산동 제녕까지.

점점 거리가 가까워져 올수록 조수아의 표정은 밝아졌다. 오랜 시간 만나지 못했던 천운백과의 만남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무려 이십 년이다.

강산이 몇 번은 변했을 정도의 그 긴 시간을 그저 마음으로만 함께했을 뿐, 얼굴조차 보지 못했다.

젊은 시절 처음 만나 사랑에 빠졌고, 그 이후 잠깐의 행복했던 순간을 제외하고는 계속된 기다림의 시간들이었다.

객잔 방 한쪽에 위치한 창가에 선 채로 조수아는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미 해가 지고도 한참은 지난 시간.

모두가 잠이 들었을 정도로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상할 정도로 정신이 또렷했다.

곧 있을 천운백과의 만남이 그 정도로 그녀를 설레게 했던 것이다.

그를 만나면 하고 싶은 말이 너무도 많았다.

어떻게 이십 년이 넘게 코빼기조차 보이지 않았느냐고. 그 아름답고 젊은 시절은 다 지나고 지금의 자신은 너무나 늙어 버렸다며 원망을 하고 싶었다.

나쁜 놈이라고 욕도 실컷 퍼부어 주고 싶었고, 원망 어린 말들도 쏟아 내고 싶었지만 그렇게 해도 속이 풀리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사실 그 어떠한 말들보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보고 싶었다고.

당신이 너무도 보고 싶었다고.

창을 통해 바깥의 풍경을 바라보던 조수아가 중얼거렸다.

“당신은 정말 나쁜 사람이에요. 그렇지만 저도 참 바보네요. 그런 당신이 이렇게 보고 싶어서야 미워할 수도 없잖아요.”

자신을 혼자 내버려 둔 것이 미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팠다.

천운백이 짊어져야 할 무게를 알았기에.

그 또한 자신을 그리워했을 거라 믿었기에.

이상하게 마음이 너무도 설레 쉽사리 잠조차 오지 않는 밤, 그렇지만 내일의 이동을 위해서는 제대로 휴식을 취해 둬야 할 것이다.

막 조수아가 억지로 침상에 누워 잠을 청하려 할 때였다.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사고! 일어나 계십니까?”

목소리의 주인공은 자운이었다.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침상에서 몸을 일으킨 그녀가 물었다.

“무슨 일이지 자운.”

“천룡성 쪽에서 급한 도움이 필요하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지금 바로 움직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조수아는 침상에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잠 한숨 자지 못했지만 그런 건 전혀 상관없었다.

그 말은 곧 천운백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보다 빨라진다는 의미였으니까.

그녀가 서둘러 겉옷을 걸치며 바깥으로 뛰쳐나왔다. 그러고는 이내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는 자운을 향해 말했다.

“서두르자고.”

말과 함께 먼저 객잔 바깥으로 뛰쳐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자운의 입가에 슬쩍 웃음이 걸렸다.

조수아를 이곳 산동 제녕까지 유인해 왔다.

그리고 이제 남은 건 그녀를 인질로 천운백을 끌어들이는 것뿐.

함께 이곳까지 온 인물들 중 하나가 자운의 옆으로 다가왔다.

“자운 대협, 준비 끝났습니다.”

그 말에 자운이 픽 하고 웃었다.

“……그래?”

그가 뒤편으로 고개를 돌렸고, 거기엔 어느새 이곳까지 함께 움직인 육십 명이 넘는 무인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며 자운이 말했다.

“가지.”

그 말과 함께 자운이 성큼성큼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천룡성에서 연락이 왔다는 가짜 소식으로 조수아를 속인 채로 움직이기 시작한 일행들은 곧바로 근처에 있는 숲길을 통해 사람들의 인적이 없는 곳으로 움직였다.

너무도 은밀한 곳으로 향하고 있었지만 조수아로서는 전혀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

함께 움직이고 있는 이들 모두가 정파의 인물들이고, 또 천룡성과 관련된 일이다 보니 비밀스럽게 진행하는 것 또한 예상 범위 안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숲길을 따라 점점 깊은 곳으로 향해 가던 중 목적지 인근에 도착하자 자운이 준비해 두었던 계획을 시작했다.

그가 소리쳤다.

“사고, 저깁니다! 저곳에서 천룡성의 무인을 뵙기로 했습니다.”

숲 속에 자리하고 있는 한 채의 초가집.

그 초가집을 확인하는 순간 조수아의 심장은 미친 듯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초가집을 향해 빠르게 나아가던 자운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며 뒤쪽으로 신호를 보냈다.

“모두 대기! 이곳에서 우선 주변부터 확인하고 들어간다. 근방에서 사건이 하나 있었던 모양인데 증거를 찾아야 한다.”

갑자기 멈추어 서더니 근방에서 있었던 사건의 증거들을 먼저 찾으며 움직이라는 명령을 내리자, 조수아가 다급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게 무슨 소리지?”

“사실 이곳에서 이번에 천룡성과 함께하는 일에 대한 단서를 주기로 한 자와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죽었다더군요. 천룡성의 그분은 저 안을 조사하고 계실 테니 인원이 많은 우리는 바깥부터 확인하려고 합니다.”

말을 마친 자운이 막 걸음을 옮기다 멈칫했다.

그 자리에 선 채로 머뭇거리는 조수아의 모습을 봐서다. 그리고 다 알면서 괜히 모르는 척 입을 열었다.

“왜 그러십니까?”

“난 천룡성의 무인이 계신 저곳으로 가 봐도 될까? 먼저 만나서 물어보고 싶은 이야기가 좀 있어서.”

“그렇게 하시죠. 그럼 저는 외부 수색을 끝마치고 바로 합류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마워.”

짧게 인사를 건넨 조수아는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자운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러고는 이내 주변을 둘러보던 움직임을 멈춘 채로 아주 은밀하게 그 뒤를 따라 움직였다.

자신이 속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조수아는 곧장 건물의 입구까지 내달렸다.

안쪽에서는 한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걸 느끼는 순간 조수아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후우.”

이십 년 만의 만남에 손끝이 떨려 왔다.

그렇게 심호흡을 끝낸 그녀가 문을 열고 성큼 안으로 들어섰다.

조수아가 안으로 들어서며 입을 열었다.

“세상에 이십 년이나 연락도 안…….”

말을 내뱉는 그 순간 그녀의 얼굴을 향해 새하얀 가루가 밀려들었다. 방 안에 있던 누군가가 기다렸다는 듯 들어서는 조수아를 향해 가루를 뿌린 것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당황스러운 상황.

거기다가 천운백과의 만남을 기대하며 잔뜩 들뜬 상황인지라 그대로 당할 법도 하련만…… 그녀는 뛰어난 무인이었다.

그 와중에도 조수아는 재빠르게 반응했다.

파앙!

한 번 숨을 들이쉬었던 그녀가 서둘러 손을 움직여 재차 밀려드는 가루를 밀어냄과 동시에 상대를 향해 일장을 후려친 것이다.

그에 방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자는 그대로 반대편 쪽으로 밀려 나가 쓰러졌다.

가슴을 움켜쥔 조수아가 거칠게 기침을 토해 냈다.

“콜록!”

순간 머리가 핑 하고 돌았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렇지만 조수아는 버텨 냈다.

그제야 그녀는 방 내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신의 공격조차 받아 내지 못하고 쓰러진 상대가 천운백이 아니라는 건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주춤거리는 그녀의 뒤편으로 자운이 다가왔다.

어지러워지는 정신을 붙잡으며 조수아가 소리쳤다.

“자운! 여기에 수상한…….”

말을 내뱉던 조수아의 표정이 조금씩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다가오는 자운.

그리고 그의 뒤를 따라오는 육십에 달하는 무인들까지.

별다른 행동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조수아는 알 수 있었다. 그들의 이글거리는 시선이 향하는 곳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이거 함정이었나?”

눈치 빠른 그녀의 말에 자운이 픽 웃으며 대꾸했다.

“역시 사고십니다. 눈치가 빠르시군요.”

“대체 왜…….”

“이유가 뭐겠습니까?”

파앙!

검을 뽑아 든 자운이 여전히 미소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당신이 천운백, 그를 유인할 미끼가 되어 줘야 하거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