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3화. 각자의 길 ― 부탁한다 (1)
천무진은 백아린, 한천과 함께 마교를 떠났다.
마교를 떠나기 전 천무진은 이곳에서 매듭지어야 할 일들을 간단히 끝냈다. 가장 중요한 건 역시나 의선과의 일이었다.
천무진이 천지광의 조종 아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몸 안에 있는 자모충의 존재를 없애야만 했다. 그 일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의선이었기 때문이다.
그다음으로 만난 건 마교의 소교주 악준기였다.
그에겐 크게 뭔가를 부탁하지는 않았다.
이미 십천야의 편으로 돌아섰고, 의지와는 달리 천지광을 거역할 수 없는 천무진으로서는 십천야를 방해할 만한 일을 벌일 수 없었으니까.
그랬기에 악준기에게는 마교를 잘 부탁한다는 말과 조만간 연락을 주겠다는 정도로 대화를 매듭지었다.
그는 이것저것 궁금한 눈치였지만 상대가 천무진이었기에 우선은 그저 믿고 사태가 흘러가는 걸 지켜보려는 듯싶었다.
그렇게 마교에서의 남은 일을 매듭지은 천무진과 일행들은 마차를 탄 채로 호남성 형동이 있는 북쪽으로 움직였다.
호남성은 마교가 자리한 광동성과 붙어 있는 곳이긴 했지만 그래도 거리가 제법 되었다. 마차를 타고 쉼 없이 달려도 열흘 이상은 걸릴 정도였다.
천무진 일행은 아무런 방해도 없이 계속 움직여 마침내 목적지인 형동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형동에 도착한 그들은 곧장 외곽에 위치한 도명객잔이라는 곳으로 움직였다. 마교에서 출발하기 직전 십천야로부터 형동에 있는 도명객잔으로 오라는 지시를 전달받았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세 사람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곳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도명객잔의 인근에 도착했을 무렵.
말 위에서 주변을 둘러보던 한천이 짧게 탄성을 토해 냈다.
“햐, 경관 참 좋네요.”
오는 내내 보아 왔던 아름다운 산들과 여러 갈래로 뻗어져 있는 강들까지.
호남성은 무척이나 아름다운 곳이다. 이곳에서 뻗어져 나가는 물줄기들은 대륙을 가로지르는 양자강으로 향하고 있었다.
거기다가 북쪽으로 더 올라가면 중원에서 가장 큰 담수호인 동정호(洞庭湖)가 자리한 곳이 바로 이곳 호남성이다.
곳곳에 위치한 기이한 모양의 봉우리들과 마치 그림에서나 볼 법한 아름다운 산세까지.
하지만 아쉽게도 그런 아름다운 풍경을 즐길 여유는 그리 많지 않았다. 천무진 일행은 이곳에서 십천야 쪽의 사람들을 만나야 했고, 그때부터는 목숨을 건 위험한 싸움이 시작될 테니까.
굳이 언급하지 않았을 뿐, 세 사람 모두 지금의 상황이 어떠한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사람의 표정은 하나같이 평온했다.
말을 타고 나란히 나아가던 한천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이런 경치 좋은 곳에서는 역시 술을 한잔해 줘야 하는데 말이죠.”
“그러게. 아쉬워서 어쩐대. 매일 같이 함께해 주던 술친구가 없어져서.”
“뭐 어쩌겠습니까. 성공해서 돌아오겠다는데.”
백아린과 단엽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한천이 어깨를 으쓱했다.
사실 예전엔 혼자라도 별로 상관없었다.
하지만 단엽과 술을 먹는 버릇이 들어서일까?
요즘 들어 이상할 정도로 혼자 하는 술자리가 즐겁지 않았다. 그래서 한천은 말만 안 할 뿐이지 매일 목이 빠져라 단엽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단엽만큼 한천을 즐겁게 해 주는 술친구는 없었으니까.
그렇게 아쉬움을 달래며 움직이던 한천의 눈에 목적지인 도명객잔이 보였다.
이곳에 도착하기까지 열흘이 넘는 시간 동안 제대로 된 숙소에서 잠을 청한 것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렇게 무리한 일정이었던 만큼 오늘은 객잔에서 쉴 수 있다는 사실이 한천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싱글벙글 웃고 있는 한천을 필두로 세 사람이 객잔 안으로 들어섰다.
내부는 이미 먼저 자리한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아직 해가 지지는 않았지만 이미 시간은 저녁 식사 시간에 가까운 탓에 손님들로 가득했던 것이다.
제법 많은 숫자의 사람들을 보며 한천이 곤란한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마교를 떠난 지금 천무진 일행 쪽에서 십천야에게 연락을 넣을 방도는 전무한 상황이다. 십천야 쪽에서는 이 객잔에 있으면 알아서 찾아오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일 층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고, 이 정도면 객잔의 방 또한 남아 있지 않을 것 같았다.
그 순간 주인장으로 보이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 한 명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어서 오시지요. 식사하시려고 오셨습니까?”
물어 오는 그를 향해 한천이 답했다.
“식사도 하고 여기서 며칠 묵으려고 하는데요. 방 남은 게 있습니까?”
“몇 개나 필요하신지요?”
“세 개가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요. 정 없으면 두 개라도 괜찮고요.”
한천의 대답이 떨어지자 주인장이 얼굴을 밝히며 말했다.
“어이쿠, 운이 좋으십니다. 방이 딱 세 개 남아 있었거든요.”
“호오, 그래요? 사람이 많아서 빈방이 없을 줄 알았는데…….”
“식사만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아무래도 모르시는 분들은 자리에 앉은 손님들만 보고 그렇게 생각하시는 경우가 좀 있습니다. 그럼 우선 위로 모시지요.”
말과 함께 객잔의 주인장은 세 사람을 대동한 채 위층으로 올라섰다.
그렇게 위층으로 올라가던 도중.
천무진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앞장서서 나아가던 객잔 주인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그의 질문에 천무진이 짧게 답했다.
“별거 아닙니다. 안내해 주시죠.”
“예, 그럼.”
잠시 멈칫했던 객잔 주인은 다시금 앞장서서 걸어 나갔고, 이내 세 사람은 안쪽에 위치한 방으로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간단하게 짐을 내려놓은 세 사람은 곧장 객잔의 일 층으로 내려갔다.
사람들이 와글거리는 객잔 일 층은 무척이나 소란스러웠다.
시끄러운 사람들 사이에 섞인 채로 천무진 일행은 한쪽에 비어 있는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러고는 이내 기다렸다는 듯 다가오는 점소이에게 몇 가지 음식들을 시켰다.
대부분이 간단한 것들이었기에 나오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마주 앉은 채로 세 사람은 식사를 시작했다.
나온 음식들을 먹으며 배를 채우던 도중 한천이 결국 참지 못하겠는지 젓가락으로 음식을 휘저으며 중얼거렸다.
“이거 참,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습니다.”
갑작스러운 한천의 뜻 모를 한마디.
그러자 백아린이 곧바로 말을 받았다.
“그렇게 말하기에는 너무 잘 먹고 있지 않았어?”
“하하, 최대한 맛있게 먹어 줘야 연기하는 사람들도 기분이 좀 날 거 아닙니까. 그래서 일부러 맛있게 먹는 척해 준 거죠, 뭐.”
한천의 목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객잔 내부의 분위기가 묘하게 변했다.
그걸 느끼며 한천이 젓가락을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탁.
방금 전까지 음식을 먹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던 손을 멈춘 한천이 접시 위에 올려져 있는 커다란 만두 하나를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그걸 한 입 베어 문 채로 주변을 스윽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이 정도면 적당히 장단에 맞춰 놀아 준 거 같은데…… 언제까지 모르는 척 이래 줘야 됩니까?”
한천의 그 말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시끄럽던 객잔이 놀라울 정도로 조용해졌다.
객작 일 층을 가득 채운 채로 떠들어 대던 오십 명이 훌쩍 넘는 인원들. 그들의 얼굴에서 일시에 표정이 사라졌고, 조금 전까지 시끄러웠던 것이 마치 꿈이었던 것처럼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수많은 인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침묵에 휩싸여 있는 객잔 내부는 숨이 막힐 정도로 답답했다.
그때 주방에서 객잔 주인 행세를 하던 노인이 걸어 나왔다.
그가 입을 열었다.
“허허, 알아차리고 계셨을 줄이야.”
놀란 듯 말하는 상대를 향해 천무진이 아까와는 달라진 싸늘한 말투로 퉁명스레 말했다.
“속이려면 제대로 해야지. 이렇게 허술한데 모르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닌가?”
사실 처음 객잔에 들어섰을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건 느꼈다.
곳곳에서 나누고 있는 다양한 대화들.
그리고 그 안에 뒤섞인 여러 감정들까지. 결코 연기로 보기 어려운 상황들이었지만 그 안에서 나누는 대화들을 집중해 듣는다면 다소 이상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스무 개에 가까운 탁자와 그곳에 앉은 손님들이 떠드는 모든 대화를 귀와 머리에 담을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가진 이들에 한한 이야기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방이 마치 준비된 것처럼 딱 세 개만 남아 있는 상황도 어찌 보면 별거 아니었지만 십천야와 관련된 장소인 이곳에서 벌어졌기에 의심이 들었다.
거기다가 위층으로 올라섰을 때 느꼈던 미심쩍음까지.
그 모든 것이 하나가 되자 굳이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세 사람은 이곳에 있는 그 모두가 준비된 것들이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노인이 물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나누는 대화들이 전혀 연관성이 없잖아. 거기다가 탁자마다 정해진 규칙이 있나 보네. 한쪽은 웃고, 또 누구는 심각하고. 한 사람이 계속 같은 감정만 가진 것도 웃기는 일 아닌가.”
말을 마친 천무진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가 주변을 스윽 둘러보다가 이내 손가락으로 위쪽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위층만 해도 그래. 아무리 식사 시간이라도 그렇지 한 사람도 방에 없는 게 말이 돼?”
“……그런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군요.”
“됐고, 이게 무슨 짓이지? 너희는 또 누구고.”
이곳은 십천야 쪽에서 정해 준 장소.
이들의 정체가 십천야와 관련되었을 거라고는 예상하고 있었지만 천무진은 확인차 물었다.
바로 그때였다.
“어이, 천무진. 내가 한 음식은 좀 어땠어?”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그리고 동시에 주방 안쪽에서 한 명의 사내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십천야의 일원.
반조였다.
그가 웃는 얼굴로 세 사람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생각해 보니 구면인 사람이 한 명 더 있네.”
반조의 시선은 어느새 백아린에게 향해 있었다. 그리고 백아린 또한 반조의 얼굴을 보며 반년 전쯤 있었던 그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다른 십천야인 주란을 거의 죽음까지 몰아넣었던 상황.
그러던 도중 반조가 나타나 주란을 구해 냈고, 백아린을 속여 도망까지 쳤던 자다.
천무진이 슬쩍 음식을 확인하며 말했다.
“네가 한 거야? 어쩐지 형편없더라니.”
“하! 말이 너무 심한데. 나름 음식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그럼 이번 기회에 그 생각은 바꾸는 게 좋겠군.”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그사이였다.
백아린을 향해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던졌던 반조의 모습에 의아했는지 한천이 물었다.
“저 사람 누굽니까? 대장을 아는 거 같은데요.”
“응, 알지. 뭐 그리 좋은 기억은 아니지만. 그때 내가 싸웠던 십천야를 데리고 도망친 그자거든.”
“……저놈이요?”
한천 또한 백아린에게 있었던 그 날의 일을 알고 있었다. 당시 그녀는 주란이 이끌고 왔던 수많은 화접들에게 협공을 당했었다.
물론 백아린이 압도적으로 그들을 물리쳤지만.
상대가 당시 그 일에 개입된 자라는 걸 아는 순간 한천이 갑자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퉤.
한천이 아직 입에 남아 우물거리고 있던 만두를 옆으로 뱉어 냈다.
당시 백아린은 다쳤고, 그 사실을 떠올린 순간 먹고 있던 만두를 입에 머금고 있는 것조차 불쾌해졌으니까.
그 모습에 반조가 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음식을 버리면 상처인데.”
“하하, 제가 좀 비위가 약해서 말입니다. 우리 대장한테 손댄 작자가 한 음식을 먹어 주기는 좀 그래서요.”
가시가 가득 담긴 말투에 반조의 눈이 꿈틀했다.
제법 패기 있는 모습이었지만 상대의 도발적인 어투가 반조의 심기를 건드렸다.
반조가 물었다.
“당신이 그 부총관?”
“한천입니다. 이름으로 똑똑히 기억해 주시죠.”
“이런. 미안하지만 잔챙이는 별로 기억 못 하는 편이라.”
“누가 잔챙이인지는 나중에 알게 되겠죠.”
히죽 웃어 보이며 대답하는 한천의 모습에 반조의 여유 가득한 얼굴이 처음으로 반응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지는 않을 터.
그런 상황에서 저 같은 여유를 보이는 사실이 못내 신경에 거슬렸다.
과연 지금 저 말은 단순한 오기일까 아니면…….
자신의 앞에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는 한천의 모습에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며 반조가 답했다.
“기대하지. 그런 날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서로에게 날을 세운 채로 두 사람이 대화를 주고받은 직후였다.
천무진이 물었다.
“근데 이게 무슨 짓이야? 약속 장소로 왔는데 정체를 숨긴 채로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이라니.”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좀 있어서 말이야.”
반조의 대답에 어느새 천무진의 옆으로 다가온 백아린이 말했다.
“아마도 우리를 의심하고 있었던 거겠죠. 아니야?”
말을 끝내는 동시에 백아린의 시선은 반조에게로 향해 있었다.
순간 움찔한 반조는 고민스럽다는 듯 손으로 턱을 어루만지다 이내 답했다.
“음…… 아니라고는 못 하겠네.”
“의심한다고? 우리를?”
“아니, 넌 아니고. 아무래도 우리 입장에서는 저 두 사람을 의심할 수밖에 없잖아?”
천무진의 물음에 고개를 저은 반조가 백아린과 한천을 바라보며 말했다.
적화신루는 계속해서 십천야와 대립해 왔던 자들이다. 물론 천무진을 위해 자신들을 돕겠다고 나서긴 했지만…… 천무진 몰래 무슨 일을 꾸밀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그래서 최대한 이 객잔에서 시간을 끌며 혹시 다른 누군가가 근처에 따라붙는 건 아닌지, 아니면 이 두 사람이 뭔가 속셈을 지니고 있는 건 아닌지를 확인하려 했다.
물론 그 계획은 이들이 자신들의 정체를 너무도 빨리 알아차려 버린 탓에 물거품이 되어 버렸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실패한 건 아니었다.
천무진 일행이 이곳에 오는 내내 그 경로를 따라 뒷조사를 해 왔다. 그리고 이들이 딱히 누군가를 만나거나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곳에서 하려던 일까지 성공했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지금으로써는 이걸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반조가 손바닥을 짝짝 치자 객잔 내부에 있던 모두가 바깥으로 걸어 나갔다.
객잔에 천무진 일행과 반조, 이렇게 넷만 남게 된 직후 그가 말했다.
“일이 이렇게 됐으니 어쩔 수 없나. 이번 일은 여기서 그냥 마무리 짓고, 각자 정해진 대로 하자고. 천무진은 날 따라오고, 두 사람은 인근 다른 마을에서 대기하거나 여기에 있거나 마음대로 해. 아까 객잔 주인 행세하던 노인을 붙여 줄 테니까 우리 쪽에 연락을 취할 거면 그를 통해서 하면 돼.”
반조의 말에 천무진의 시선이 백아린과 한천에게로 향했다.
여기서부터는 천무진 혼자 가야만 했다.
십천야의 거점으로 가고, 그곳에서 혼자만의 싸움을 시작해야 하는 그다.
헤어져야 하는 순간이 다가왔음을 느낀 천무진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반조를 향해 말했다.
“……먼저 나가 있어. 인사 좀 하고 갈 테니까.”
“빨리 끝내고 와.”
반조는 곧장 객잔 바깥으로 나갔다.
내부에 세 사람만 남게 된 상황에서 천무진은 옆으로 몸을 돌렸다. 그가 바로 옆에 있던 백아린의 양손을 꼭 쥔 채로 입을 열었다.
“다녀올게.”
“네, 몸조심해요.”
손을 마주 잡은 채 서로를 향해 최대한 밝은 미소를 보여 주는 두 사람.
이내 천무진의 시선이 옆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그곳에 서 있던 한천이 갑자기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전 대장에게 하신 것처럼 다정하게 손까지 잡아 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럴 생각은 나도 없거든?”
특유의 장난기 가득한 모습에 천무진이 기가 막힌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그 모습을 보고서야 마찬가지로 한천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천무진은 알고 있었다.
왜 그가 그런 실없는 소리를 내뱉었는지.
위험하고 중요한 길을 나서는 지금 천무진의 무거운 마음을 한결 가볍게 해 주고 싶어서일 게다.
한천은 그럼 사람이었으니까.
한없이 가벼워 보이지만 하는 행동마다 의미가 있는 사람.
처음 봤을 때는 상상조차 못 했던 일이지만, 이 사내는 꽤나 믿음직했다.
그랬기에 천무진이 진심을 담아 부탁했다.
“한천, 부탁할게. 백아린을 도와줘.”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그게…… 제가 가장 자신 있는 일이니까요.”
씩 웃으며 말을 내뱉는 한천의 모습이 그리도 듬직해 보일 수가 없었다.
한천에게 백아린을 부탁한 천무진은 다시금 그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최대한 가까이 두긴 했지만 정확하게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랬기에 떨어지는 발걸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었지만…….
천무진이 꼭 쥐고 있던 양손을 천천히 조금씩 놓았다.
두 사람은 그저 서로를 바라보기만 할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말없이 서로를 향하는 시선.
그렇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천무진은 백아린에게 십천야와 관련한 아무런 부탁도 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아무런 부탁도 할 수 없다고 해야 옳았다.
천지광의 명을 어길 수 없는 천무진이었으니까.
하지만 상관없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백아린은 자신의 모든 생각을 알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천무진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갈게.”
그의 말에 백아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무진은 그렇게 한천에게, 그리고 곧이어 백아린의 소매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치치에게도 잠시 시선을 주다가 이내 몸을 돌렸다.
이제부터는 각자의 자리에서.
그렇지만 또 서로를 위해.
그렇게 싸워 가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객잔 문을 열고 나서는 천무진의 시선에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던 반조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가 천무진을 향해 손을 들어 올리며 말을 건넸다.
“작별 인사는 잘 끝냈나?”
한쪽에 몸을 기댄 채 물어 오는 반조를 향해 천무진이 퉁명스레 답했다.
“곧 다시 만날 텐데 작별 인사는 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