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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241화 (240/293)

241화. 명령 ― 해야 할 이야기가 있어 (1)

가부좌를 튼 채로 운기조식에 빠져 있는 천무진의 몸 주변으로 잔잔한 기운이 연기처럼 흩어져 나왔다.

평온한 겉모습과는 달리 현재 천무진의 몸 안은 엄청난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는 중이었다.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는 힘.

천운백에게서 마지막 절초를 전수받고 새로운 내공의 흐름에 대해 배웠다. 그것에 맞춰 혈도를 따라 움직이던 기의 흐름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쿵쿵쿵!

가부좌를 틀고 있는 천무진의 몸 안에서 폭발이 일었다. 그것은 내부에 있는 혈도를 연신 두드렸고, 그것에 따라 기가 통하는 길목은 점점 넓어져 갔다.

절초인 천추나락은 보통 인간의 몸으로는 견딜 수 없는 그런 부류의 초식이었다. 그랬기에 천추나락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신체를 만드는 것이 우선이었다.

기이한 방식으로 몸 안에서 폭발을 일으켜 혈도가 새로운 자극에 적응하게 하고, 또한 막대한 기가 단번에 쏟아져 나올 수 있도록 변형시킨다.

물론 이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몸 안에 있는 수없이 많은 혈도. 그 길을 따라 움직이는 기의 흐름이 막히지 않도록 연신 몸 안에서 폭발이 일었고, 그때마다 천무진은 내장이 찢겨 나가는 듯한 고통에 휩싸였다.

보통 사람이라면 버틸 수 없을 그런 고통을 천무진은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을 견뎌 냈다.

이런 고통들이 모여 자신이 가야 할 그곳으로 도착하게끔 만들어 준다는 걸 알았기에.

그렇게 오늘도 두 시진 가까운 시간 동안 혈도를 넓히는 데 주력하던 천무진이 천천히 눈을 떴다. 가부좌를 틀고 있던 그는 온통 땀범벅이었다.

거기다 자리에 앉아 있기만 했거늘 마치 온종일 움직인 것처럼 온몸의 근육들이 저렸고, 심적으로도 매우 지친 상태였다.

눈을 뜬 채로 가볍게 심호흡을 내뱉는 천무진의 옆에서 천운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몸은 좀 어떠하냐. 꽤 힘들 터인데.”

천운백으로서는 이미 한 번 경험해 본 일.

지금 천무진이 어떠한 지옥에서 살고 있을지 너무도 잘 알았다. 거기다가 천무진은 당시 자신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혈도를 넓히는 데 소요하고 있다.

순간적으로 감내해야 할 고통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천무진은 근처로 다가온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려 시선을 맞추고는 가볍게 어깨를 움직여 보였다.

“아직은 버틸 만한 것 같군요.”

“쯧, 강한 척하기는. 네 녀석 얼굴이나 보고 말하거라.”

천운백의 말투에는 천무진의 상태에 대한 걱정이 가득했다. 천무진은 이 두 시진의 시간이 지나면 언제나 산송장처럼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핏기 하나 없는 얼굴. 그리고 가볍게 떨리는 몸까지.

천운백은 천무진이 상당히 무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장이 뒤틀리는 이 고통을 무려 두 시진이나 참아 낸다는 건 인간으로서 쉽사리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자신만 해도 반 시진에서 한 시진 정도 내공이 흐르는 혈도를 천천히 넓혀 고통을 최대한 줄여 가며 천추나락을 익혔었다.

혈도가 이런 기의 흐름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최대한 여유를 준 것이다.

그에 반해 천무진은 두 시진이나 혈도를 넓히는 데 사용하고 있다.

혈도가 익숙해지려고 하면 더욱 큰 힘을 밀어붙여 또 한 번의 고통을 감내하는 식으로 빠른 성과를 보기 위해 나아가고 있었다.

물론 이것도 천운백이 말리고 말려서 이 정도로 줄어든 것이지, 처음 천무진은 네 시진에 가깝게 이 같은 고통을 견디려 했다.

그런 그를 천운백은 크게 꾸짖었다.

모든 일에는 순리가 있고, 빠르게 성취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건 아니라고. 결국 천무진 또한 어느 정도 생각을 굽히고 하루에 딱 두 시진만 이렇게 운기조식을 통해 몸을 바꿔 나가고 있었다.

덜덜 떨리는 무릎을 손으로 누른 채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세우는 천무진을 보며 천운백이 안타까운 어조로 말했다.

“왜 이리도 급한 게냐?”

천운백의 물음에 몸을 일으켜 세운 천무진이 자세를 바로잡으며 답했다.

“……아시지 않습니까. 제 상황을.”

천무진으로서는 급할 수밖에 없었다.

기억이 돌아오고 몰랐던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오히려 머리는 예전보다 더욱 복잡해졌다.

거기다 상황 또한 달라져 있었다.

허나 그건 천무진이 바라던 방향은 절대 아니었다.

어지럽게 돌아가는 상황들, 그렇지만 천무진의 마음은 확고하게 정해져 있었다.

천무진이 말을 이었다.

“사부님의 말씀대로입니다. 저는 제 인생을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가 아닌 스스로 결정하고 싶습니다. 천무진으로 살아갈지, 아니면 십삼 호로 살아갈지 그걸 정하는 건 다른 누구의 의지도 아닌 제 결정이어야 하니까요.”

천룡비공의 절초를 전수하는 날 사부인 천운백이 천무진에게 했던 그 한마디.

무진아, 너의 인생을 살거라.

그 한마디가 계속해서 머리를 떠돈다.

그리고 그거야말로 천무진이 바라는 바이기도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했다.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정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이.

하지만 지금의 천무진은 자신의 인생을 살 방도를 알지 못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자신은 십천야의 수장인 천지광의 명령을 어길 수 없었으니까.

그랬기에 알고 싶었다.

왜 자신이 그의 명령이라면 따를 수밖에 없는지, 또 따른다면 그것이 과연 어느 정도 선까지인지를.

분명 지금의 천무진은 천지광의 명을 따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과거의 생과는 달리 지금의 그에겐 자신의 의지 또한 있었다. 이전처럼 완전한 꼭두각시가 아닌 자율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건 엄청나게 달라진 사실이었다.

과연 이 상황에서 자신은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 답을 천무진은 찾고 싶었다.

천무진은 주먹을 쥔 채로 바닥을 바라봤다.

실로 복잡한 마음.

그렇지만 결국 스스로 삶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이 또한 천무진이 짊어져야 할 고민이었다.

천운백은 그런 그를 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이 옆에서 뭐라고 한다 해서 도움이 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까.

그저 묵묵히 천무진이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다 해도 괴로워하는 천무진을 보며 천운백은 마음이 아플 수밖에 없었다.

이 일의 뒤에 천지광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까.

한마디로 천룡성에 얽힌 악연으로 인해 지금 천무진의 인생 또한 이리된 것이 아닌가.

혼자 서 있는 천무진을 바라보며 천운백은 마음으로나마 그를 응원했다.

‘무진아, 스스로를 믿어라.’

이 지독한 싸움의 끝.

이 모든 걸 끝낼 수 있는 건 오로지 천룡이 된 천무진밖에 없었으니까.

천룡성의 절초를 위해 시간을 보내던 천무진은 다른 일행들이 기다리는 귀림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슬슬 말해 줘야 하나.’

매번 녹초가 되어 들어오는 자신을 보며 백아린은 따로 말은 안 했지만, 무척이나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직까지 천룡성의 절초를 익히기 시작했다는 걸 전하지 않았기에 대충 둘러대고 있었는데, 이제는 감추는 것이 미안할 지경에 이른 것이다.

천무진이 천룡성의 절초를 익히기 시작한 것에 대해 말하지 않은 이유는, 그것을 말하게 된다면 현재 자신의 상황 또한 밝혀야 한다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믿고 함께해 주는 백아린.

그녀에게 이런 사실을 감추고 있는 것이 싫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여인이었기에 더더욱 진실을 밝히기 어려웠다.

사실은 자신이 십천야고, 어쩌면 영영 적이 될지도 모르는 관계라는 말을 어떻게 할까.

천무진은 백아린을 잃고 싶지 않았다.

과연 모든 걸 알면 그녀는 어떠한 표정을 지을까?

그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천무진은 가슴에 커다란 돌멩이 하나를 얹고 사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귀림원으로 향하던 천무진의 뒤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천무진.”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천무진이 슬쩍 뒤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그가 익히 알고 있는 인물인 매유검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미 목소리를 듣는 순간부터 상대의 정체를 알았던 터라 천무진은 별반 놀라지 않으며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지?”

“뭐긴. 어르신의 명을 전하러 왔지.”

“어르신의 명?”

되묻는 천무진을 향해 매유검이 성큼 다가서며 말했다.

“응, 네가 우리 편으로 돌아오긴 했는데 지금까지는 딱히 이렇다 할 뭐가 없어서 말이야. 네게 보다 확실한 임무를 주실 듯하다.”

“임무라면 뭘 말하는 거냐?”

“그거야 나도 모르지. 다만 앞으로 나흘에 한 번씩 그사이에 있었던 일에 대해 정확하게 보고하라고 하시는군. 빼먹지 말고 꼭 보고 올리도록 해.”

명령하듯 말하는 매유검의 말투에 천무진이 불쾌한 비웃음과 함께 답했다.

“나흘에 한 번 보고라. 힘들 것 같은데. 귀찮은 일은 질색이라서. 상황 봐서 특별한 일이 있으면 그때나 연락하도록 하지.”

말을 끝낸 천무진이 막 매유검을 무시하고 지나쳐 가려고 할 때였다.

매유검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이상하네. 넌 안 할 수가 없을 텐데. 이것이 어르신의 명인 이상 말이야.”

그의 말에 천무진이 곧바로 반박할 때였다.

“특별한 명령도 아닌데 그게 뭐 대수라고. 내가 원한다면 이런 명령은 언제든…….”

어길 수 있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솟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것이 한계였다.

하지 않겠다는 대답조차 할 수 없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천무진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스스로 할 거라는 사실을 알았으니까.

그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 차마 입으로라도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변해 버린 천무진의 상태를 알아서일까?

놀란 듯 눈을 치켜뜨고 서 있는 천무진에게 다가온 매유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뭐, 대충 자기 주제를 안 것 같은데 긴말은 안 할게. 첫 보고는 이틀 후로 하지.”

말과 함께 매유검은 품 안에 준비해 두었던 서찰 하나를 천무진에게 휙 하고 던졌다.

날아드는 서찰을 천무진은 어렵지 않게 받아 냈다.

이게 뭐냐는 표정을 지어 보이는 그를 향해 매유검이 말했다.

“그곳으로 와. 이틀 후 신시(申時). 거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

“기억해. 이틀 후다.”

아무런 대답조차 하지 못하는 천무진에게 한마디를 덧붙인 매유검은 긴 장포 자락을 휘날리며 그대로 모습을 감췄다.

매유검이 사라졌거늘 천무진은 그 자리에서 떠나지 못한 채로 굳어있었다.

스스로 인생을 선택하기 위해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인지하려는 지금, 이거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어르신 천지광의 명령은 그게 아무리 작은 거라 할지라도 어기지 못한다는 것.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던 부분이긴 했지만,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사실에 천무진은 더더욱 깊은 고민에 빠졌다.

너무도 막막해 가슴이 답답해질 지경이었다.

“……망할.”

천무진이 중얼거렸다.

* * *

이틀의 시간이 지났다.

매유검의 말대로 천무진은 그가 남긴 말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랬기에 매유검이 건네준 서찰에 적힌 장소로 가기 위해 천무진은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때마침 적화신루에 다녀오던 백아린과 입구에서 마주쳤다.

백아린이 천무진을 발견하고는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

“또 사부님 뵈러 가는 거예요?”

물어 오는 질문에 천무진은 순간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까지 아무런 것도 말해 주지 않은 상황.

결국 천무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해야만 했다.

“응, 잠깐 뵙고 오려고.”

“……오늘도 늦어요?”

아무렇지 않게 물었지만, 그 목소리 안에서 느껴지는 걱정을 어찌 모를까.

입술을 지그시 깨문 천무진이 곧장 답했다.

“오늘은 그렇게 늦진 않을 거야.”

“그래요?”

한결 밝아지는 백아린의 표정을 보며 천무진은 이내 며칠 동안 해 왔던 고민에 대한 답을 내렸다.

천무진이 나지막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백아린.”

“네?”

“저녁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좀 있는데.”

“중요한 이야기예요?”

“아주 많이.”

진지해 보이는 천무진의 얼굴에 백아린은 이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녀를 향해 천무진이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럼 다녀올게.”

“조심해서 다녀와요.”

서로를 향해 다정한 말을 주고받은 뒤 천무진은 몸을 돌려 가야 할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그는 매유검에게서 받은 서찰에 적힌 장소로 곧장 움직였다. 천무진이 향한 곳은 마교 외성에 위치한 무관이었다.

간단한 절차를 통해 안으로 들어선 천무진은 무관 안쪽에 위치한 곳으로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장원 내부에 있는 그 은밀한 장소는 무관과 어울리지 않게 조용했고, 또한 인근의 기척 또한 느껴지지 않았다.

천무진은 곧장 장원 내부에 위치한 건물로 들어섰다.

건물 내부에 있는 기척을 느낀 천무진이 그쪽으로 다가가며 표정을 구겼다.

가뜩이나 유쾌하지 않은 자리다.

그런데 오늘 이곳으로 오라고 한 매유검이 방 안에서 코빼기도 비치지 않고 있으니 짜증이 절로 솟구쳤다.

천무진이 입을 열었다.

“어이! 매유검, 사람을 오라고 해 놓고는…….”

그때.

“오랜만이구나.”

천무진의 목소리를 자르며 들려오는 노인의 목소리. 그걸 듣는 순간 천무진은 움찔했다.

이 목소리의 정체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으니까.

천무진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가 들려온 방을 향해 재빠르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이내 문을 열고 방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천무진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방의 절반 이상을 가리고 있는 휘장이었다.

휘장으로 막혀 있는 방 내부의 한쪽.

그리고 그 안쪽에서 움직이는 그림자.

휘장 너머의 움직이는 존재를 확인한 천무진이 입을 열었다.

“……어르신.”

어르신이라는 말을 꺼내는 순간 닫혀 있던 휘장이 스르륵 열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노인 한 명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십천야의 수장 천지광.

그가 천무진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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