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화. 흑사오공 ― 마차를 지켜라 (1)
마차 안에 자리하고 있는 건 소교주 악준기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최측근인 파융과 동승하고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흑사오공이 정확하게 악준기를 향해 달려드는 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그의 의복에 묻어 있는 감 씨 가루, 그것이 문제였다.
흑사오공이 좋아하는 감 씨 가루를 미리 악준기의 의복과 신발에 묻혀 놨고, 자연스레 그 향기가 이끄는 곳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십천야의 일원인 양사창이 꾸민 계획.
그리고 계획은 그의 생각대로 진행되었다. 순식간에 악준기에게 다가간 흑사오공이 신발을 타고 올라가 드러나 있는 그의 살점으로 다가갔다.
자리에 앉은 채로 파융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악준기가 움찔했다.
미묘한 표정의 변화였지만 파융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소교주님 왜 그러십니까?”
그 순간 악준기의 손이 움직였다.
파앗!
발목을 향해 휘둘러진 그의 손바닥이 정확하게 그곳에 자리 잡고 있던 흑사오공을 쳐 냈다.
툭.
손바닥에 맞고 날아가 그대로 죽어 버린 흑사오공.
그걸 확인한 파융이 놀란 듯 중얼거렸다.
“이건 지네가 아닙니까? 왜 지네가…….”
하지만 파융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다급히 흑사오공을 쳐 낸 악준기가 손으로 입을 틀어막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크읍!”
고통에 찬 비명 소리.
그가 입을 틀어막은 채로 사시나무 떨듯이 부들거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악준기의 상태 변화에 파융이 놀란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소, 소교주님 괜찮으십니까?
허나 대답 대신 악준기의 입에선 틀어막은 손가락 사이로 피가 푹 하고 터져 나왔다. 그걸 본 파융의 얼굴은 사색이 될 수밖에 없었다.
굳이 왜 악준기가 피를 쏟아 내는지는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파융의 시선이 마차의 한쪽으로 날아가 죽어 버린 지네에게로 향했다.
‘독이다!’
흑사오공은 쉽사리 볼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기에 파융은 그게 뭔지 알아차리지는 못했다. 허나 피를 토하는 악준기의 모습, 그리고 한눈에 봐도 위험해 보이는 지네의 외관까지.
지금 상황이 어떠한 이유로 벌어졌는지 가늠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악준기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걸 알아차린 파융이 서둘러 창을 통해 바깥에 있는 수하들에게 소리쳤다.
“모두들 멈춰라!”
파융의 다급한 명령에 빠르게 달려 나가던 마차가 순식간에 멈춰 섰다. 그리고 동시에 마차를 호위한 채로 움직이고 있던 무인들 또한 서둘러 경계 태세로 전환했다.
마차를 멈춰 세운 파융이 서둘러 악준기에게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아직은 버틸 만해.”
말은 그리 내뱉었지만 악준기의 얼굴엔 핏기가 없었다. 파융이 서둘러 그의 몸 상태를 확인하려 했지만 악준기가 작게 고개를 저었다.
그러곤 힘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곳은 위험하다. 서둘러 움직여.”
숨을 헐떡일 정도로 고통스러워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준기는 침착하게 명령을 내렸다. 그의 상태가 걱정스러웠는지 파융이 표정을 구긴 채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런 몸 상태론…….”
“아직도 모르겠느냐? 이것이 진짜 나를 노린 거라면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일지를.”
악준기의 한마디에 파융은 그제야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이 정체불명의 지네가 소교주를 노렸던 거라면 여기서 끝은 아니라는 소리다.
파융이 안색을 굳혔다.
‘감히 누가 이곳 마교의 앞마당에서……!’
마교와 다소 떨어져 있다고는 하지만 이곳은 자신들의 구역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장소에서 적의를 드러냈다는 건 그만큼 쉽게 끝낼 생각이 없다는 걸 의미하는 바.
서둘러 이곳을 떠야 했다.
파융이 곧바로 답했다.
“즉시 마교로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끝내고 바깥에 명령을 내리려는 찰나였다.
슈욱!
날아드는 하나의 화살을 알아차린 파융이 서둘러 몸을 비트는 것과 동시에 손을 움직였다.
파앙.
손아귀에 잡힌 화살이 부르르 떨려 왔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적이다!”
인근을 호위하고 있던 수하들의 외침 소리처럼 주변에서 수많은 인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같이 흑의에 복면을 착용한 그들이 숲길 곳곳에 위치한 나무들 사이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걸 확인한 파융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이런 망할…….”
슬쩍 모습을 드러낸 이들의 숫자만 해도 얼추 백여 명은 훌쩍 넘어 보였다. 그에 비해 자신들의 숫자는 채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머릿수의 차이가 아니었다.
자신의 바로 옆에서 독에 중독당한 채로 허덕이는 소교주 악준기. 그의 안위가 문제였다.
‘이곳에서 시간을 끌리다가는 소교주님이 위험하시다.’
서둘러 악준기를 데리고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 그것이 지금의 파융에게는 최선의 과제일 수밖에 없었다.
파융이 서둘러 소리쳤다.
“소교주님을 지켜라!”
생각지도 못한 적들의 등장에 잠시 당황하는 기색은 보였지만 이들은 파융이 이끄는 마극파천대의 무인들이었다.
뛰어난 무인들로 구성된 단체답게 그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진열을 정비했다.
순식간에 소교주의 마차를 겹겹이 지키고 선 그들은 무기를 꺼내어 든 채로 다가오는 상대를 맞이했다. 서서히 다가오던 정체불명의 습격자들.
그들을 이끌고 있던 자가 짧게 명령을 내렸다.
“쳐라.”
그 말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괴한들은 동시에 소교주 일행을 덮쳤다.
카카카캉!
사방에서 무기들이 충돌하는 소리가 울렸고, 파융은 마차에 앉은 채로 그 싸움을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싸움을 지켜보던 파융의 안색이 조금씩 굳어졌다.
‘……좋지 않아.’
자신들을 기습한 괴한들의 실력이 생각보다 너무나 뛰어났다. 그냥 어중이떠중이 같은 살수 집단이 아닌 제대로 훈련받은 무인들이 분명했다.
숫자 또한 갑절 이상 차이가 났기에 마극파천대의 진열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있었다.
거기다가 개중 일부는 마극파천대의 일반 무인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뛰어난 이들도 몇몇 존재했다. 그들을 막기 위해서는 파융이 직접 움직여야 했지만, 그러기에는 악준기가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이 싸움을 관망만 하고 있을 순 없었다.
그랬다가는 결국 마극파천대의 무인들 모두가 전멸할 것이고, 그 뒤의 상황이 어찌 될지는 굳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결국 싸움을 보고만 있던 파융은 결단을 내렸다.
‘……소교주님을 지킨다.’
그 하나의 목적을 위해 자신의 목숨은 아예 안중에서 지웠다.
파융이 막 고개를 돌렸을 때 악준기의 입을 틀어막은 손가락 사이로 재차 피가 흘러내렸다. 그 모습을 보자니 파융의 결심은 더욱 확고해졌다.
그가 입을 열었다.
“소교주님.”
“…….”
대답을 하는 것조차 힘든지 그저 시선으로 답을 하는 그에게 파융이 포권을 취했다. 그런 파융의 모습에 악준기의 눈동자가 크게 떠지는 그때였다.
파융이 말했다.
“소교주님을 모시는 건 여기까지인 듯싶습니다.”
“……무슨 뜻인가.”
간신히 물어 오는 악준기의 질문에 파융은 답하지 않았다. 대신 씩 웃어 보인 그는 마차 문을 열고 성큼 바깥에 내려섰다.
그가 싸움에 한창인 수하들을 향해 버럭 소리쳤다.
“삼 조와 사 조! 싸움에서 빠져 소교주님을 호위하라!”
이미 실력이나 머리 숫자 양쪽에서 밀리며 점점 불리해지던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두 개 조인 열 명이 넘는 무인들에게 뒤편으로 움직이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당연히 그들이 뒤로 빠지는 것과 동시에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진형이 무너져 내렸다.
이대로 가다가는 모두가 죽을 것이 자명한 사실.
허나 파융의 선택은 이것이었다.
그가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빠진 조들을 제외한 모두는 나를 따르라! 우리는 이곳에서 소교주님이 도망치실 수 있는 시간을 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선택이라는 건 잘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소교주를 위해 살았고, 죽을 때도 그를 위해 죽는다. 그런 자신의 선택에는 한 점 후회도, 미련도 없었다. 그리고 그 같은 상관의 명령에 힘겹게 버티고 서 있던 마극파천대 무인들의 눈에도 짙은 투기가 맴돌았다.
열린 문을 통해 바깥 상황을 확인하던 악준기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너희들…….”
그 순간 뒤편으로 빠져 소교주를 호위하는 이들을 향해 파융이 버럭 소리쳤다.
“뭣들 하는 게냐! 어서 모셔라!”
명령을 마친 파융은 마차 안에 자리한 악준기에게 슬쩍 시선을 돌렸다.
오랜 시간 모셔 왔던 상관이다.
‘……반드시 살아남으셔서 대업을 완성시키시길 바랍니다.’
흔들리는 마교를 지켜 내기 위해서는 그의 힘이 필요했다. 소교주가 죽는 순간 마교의 운명 또한 바람 앞의 촛불이 될 거라는 걸 잘 알았다.
파융의 명령에 악준기가 탄 마차를 호위하던 무인들이 서둘러 움직였다.
“돌파한다!”
수하 하나의 외침과 함께 마차가 빠른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반대로 악준기를 지키기 위해 버티고 선 파융과, 마극파천대의 무인들은 달려드는 적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런 파융을 향해 복면을 쓴 괴한들 중 하나가 빠른 속도로 접근했다.
슈슈슉!
그가 내뻗은 검이 파융의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하지만 파융은 너무도 쉽게 그 공격을 옆으로 흘렸다. 동시에 그는 손으로 상대의 목을 꺾어 버렸다.
쓰러지는 복면인의 시체를 밟고 넘어서며 파융은 짙은 살기를 뿜어냈다.
적들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서던 파융이 말했다.
“덤벼라, 애송이들아.”
마차는 계속해서 달리고 있었다.
적들에게 습격당할 위험도 있었지만, 악준기가 독에 중독당한 탓에 서둘러 마교로 돌아가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열네 명으로 구성된 호위대가 마차를 지키며 빠르게 움직이던 와중.
그들 중 누군가의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뭔가를 확인하고 있는 그 사내는 다름 아닌 마차 안 비밀 공간에 감춰져 있던 흑사오공이 나오도록 만든 자였다.
마극파천대의 무인이었지만 그는 십천야에서 심어 둔 간자 중 하나였다.
달리고 있는 주변에는 단 한 명의 적도 보이지 않았다. 뒤편에 남은 파융과 마극파천대 무인들이 완벽하게 길을 틀어막아 준 덕분이리라.
소교주를 죽이기 위해 준비된 작전들.
당장의 상황만 봐서는 그 계획이 무위로 돌아간 듯 보였다. 허나 상황이 이리 흘러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자의 얼굴에서는 전혀 당혹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몇 가지 믿는 구석이 있어서였다.
첫 번째는 바로 악준기를 문 흑사오공의 독성이다. 제아무리 악준기라 한들 그 지독한 독을 버텨 내는 건 한계가 있었다.
시간 내에 도착하지 못한다면 죽음을 맞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그리고 당황하지 않는 두 번째 이유.
그건 바로…… 애초에 이같이 악준기가 도망칠 거라는 사실을 미리 예상해 두었다는 것이다.
사전에 예상한 일이었다는 건 곧 그에 맞는 대응책 또한 준비했다는 의미였다.
악준기의 숨통을 확실하게 끊기 위해 준비한 마지막 계획이 있었다.
선두에서 달리던 사내가 주변에서 함께 움직이는 이들을 힐끔 쳐다보더니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후후. 멍청들 하긴. 지금 자신들이 호랑이 굴로 들어가는 줄도 모르고.’
처음부터 여정을 나온 소교주 일행의 길 안내를 하던 건 자신이었다. 자연스레 지금 또한 선두에서 일행들을 안내하고 있는 중이었다.
마교가 있는 방향으로 움직이고는 있었지만…….
소교주를 호위하는 일행들과 함께 달려 나가던 사내의 눈동자가 어느 장소에 이르는 때였다.
피잉!
파공음과 함께 몇 개의 커다란 창이 하늘 위에서 떨어져 내렸다.
파바박!
강렬한 소리와 함께 땅에 틀어박힌 창이 마치 감옥의 쇠창살처럼 길목을 막아섰다.
애초에 누군가를 노리고 날아든 공격은 아니었기에 피해를 입은 이들은 없었지만, 재빨리 움직이던 마극파천대의 무인들을 멈춰 세우는 것에는 성공했다.
누군가가 서둘러 소리쳤다.
“마차를 지켜라!”
명령이 떨어지는 그 순간 선두에 있던 내부의 간자는 서둘러 마차 바로 옆에 다가가 붙었다.
재빨리 전열을 정비하는 그때 기다렸다는 듯 일련의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선두에는 길을 막아서게끔 커다란 창을 던진 한 사내가 위풍당당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번 일을 꾸민 범인이자 십천야의 일원.
양사창이었다.
복면을 쓴 채로 나타난 그가 자신을 경계하고 있는 마극파천대의 무인들을 보며 픽 하고 웃음을 흘렸다.
양사창이 입을 열었다.
“이걸 어쩌지? 여기까지 오느라 꽤나 고생들 했을 터인데…… 이리 죽게 돼서 말이야.”
그 말과 함께 양사창의 무리들이 나타난 곳을 제외한 나머지 방향에서도 적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포위를 당한 걸 깨달은 마극파천대 무인들의 안색이 굳어졌다.
양사창이 굳게 문이 닫혀 있는 마차를 향해 소리쳤다.
“소교주님! 언제까지 그리 숨어 있으실 생각이십니까! 슬슬 그 잘난 얼굴을 보이시지요!”
비웃음 가득한 그 외침에 마극파천대 무인들이 이를 악물었다.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걸 잘 알았지만, 이 와중에서도 어떻게든 악준기를 지키고 이곳을 돌파하는 것이 자신들의 임무였다.
그렇게 그들이 각자의 무기를 빼 든 채로 길을 트기 위해 움직이려던 그때.
양사창이 손가락을 퉁기며 말했다.
“끌고 나와.”
그 말이 떨어지는 찰나였다.
마차 바로 옆에 자리한 채로 마극파천대 무인들 사이에 자리하고 있던 간자가 갑자기 움직였다. 그는 곧바로 마차 문을 열었고, 이내 손을 뻗어 안쪽에 자리하고 있던 악준기를 바깥으로 끄집어낸 것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기에 마극파천대 무인들은 아무런 대응조차 하지 못했다.
“상유! 네, 네놈이 지금 무슨 짓을……!”
마극파천대 무인들 중 하나가 놀란 듯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상유라 불린 그 간자는 서둘러 악준기의 손목을 움켜쥐지 않은 손을 들어 올리며 멈추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워워, 진정하라고. 지금 내 손에 누가 있는지 잊은 건 아니겠지? 내가 지금 마음만 먹는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다들 알 거 아냐.”
말과 함께 상유의 시선은 자신의 손에 이끌려 마차 바깥으로 끄집어내려진 악준기를 향했다. 그는 시체를 연상케 할 정도로 새하얀 얼굴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상유의 얼굴에 맺힌 자신감 가득한 얼굴.
마교의 소교주가 자신의 손안에 있었고, 조금 힘을 주는 것만으로도 숨을 끊는 것 또한 가능한 상황이었다.
마극파천대 무인 중 하나가 분한 듯 외쳤다.
“이 배신자!”
“배신자? 하하!”
상유는 배신자라는 말에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고는 이내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말은 정확하게 해야지. 난 배신자가 아니야. 원래부터 저쪽 편이었거든.”
“…….”
조롱하듯 말하는 상유의 모습에 마극파천대 무인들 모두가 아무런 대꾸조차 하지 못했다.
자신들이 지켜야 할 악준기가 그의 손안에 있었고, 구해 낼 방도가 없다는 사실에 막막함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유에게 끌려 나와 거의 쓰러질 듯이 비틀거리는 악준기의 모습을 바라보는 양사창의 얼굴엔 만족감이 가득했다.
계속해서 눈엣가시와도 같았던 자다.
어쩔 수 없이 살려 뒀었지만, 예전부터 얼마나 제거하고 싶었던 자인가.
천무진이 날뛰는 바람에 예정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죽이게 되긴 했지만, 원래부터 언젠가는 제거해야 할 상대였다.
자기 몸 하나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는 악준기를 보며 양사창은 자신의 계획이 제대로 먹혔음을 느꼈다. 흑사오공의 독이 그를 꼼짝도 하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양사창이 입을 열었다.
“잘난 소교주님께서 꼴이 말이 아니군요. 그러게 얌전히 계셨으면 적어도 몇 년은 더 살았을 텐데 왜 그리 설쳐 대서는 죽음을 자초하십니까.”
말과 함께 양사창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손이 움직이는 것에 따라 주변을 포위하고 있던 수하들도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곳에 있는 소교주 쪽 인물들은 단 한 명도 살려 보낼 수 없었다.
양사창이 말을 이었다.
“마교는 제가 알아서 할 터이니 걱정 말고 이만 가시…….”
그때였다.
“큭, 큭큭큭!”
갑자기 들려온 웃음소리.
그리고 그 웃음소리가 터져 나온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이었다.
웃음을 터트린 건 상유에게 팔목을 잡힌 채로 비틀거리고 있던 악준기.
바로 그였다.
잠시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던 상유가 이내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웃어? 이게 실성을 했나.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인데 넌 이제 곧 죽을…….”
말과 함께 막 쥐고 있던 팔목을 비틀려고 하는 그때였다.
퍼억!
갑자기 뻗어진 악준기의 반대편 손이 정확하게 상유의 가슴을 꿰뚫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양사창이 움찔했다.
허나 가장 당황한 건 가슴을 꿰뚫린 상유, 본인이었다.
상유가 지금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크게 치켜뜬 채로 자신의 가슴에 틀어박힌 손과, 그 공격을 펼친 악준기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 순간 악준기가 입을 열었다.
“……죽는 건 내가 아니라 너다.”
말과 함께 몸 안에 틀어박힌 악준기의 손에서 내력이 쏟아졌다. 동시에 이를 버티지 못한 상유의 몸이 터져 나갔다.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는 즉사.
갑작스러운 상황에 적과 아군 모두에게서 침묵만이 감돌고 있을 때였다.
악준기는 상유가 움켜쥐고 있던 자신의 팔목을 툭툭 털었다.
그렇게 고개를 든 악준기의 얼굴은 아까와는 전혀 달라져 있었다. 핏기 하나 느껴지지 않던 새하얀 얼굴은 평소처럼 돌아와 있었고, 고통스러워하던 표정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거기다 방금 전 뿜어낸 내공까지.
양사창은 돌변한 악준기의 모습을 보며 뭔가 일이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뭐지?’
밀려드는 불안감.
이 불안감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악준기가 입을 열었다.
“이제 나오시지요.”
그 정체 모를 한마디에 마극파천대의 수하들 중 하나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동시에 그는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볍게 쓸어내렸다.
그리고 손이 지나가는 것에 맞춰 그 뒤편에서는 새로운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중년의 사내였던 얼굴이 젊은 인물의 것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얼굴은 양사창 또한 잘 아는 이의 것이었다.
양사창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십천야의 일원인 그조차도 당황하게 만든 인물.
천무진이었다.
그가 악준기를 향해 입을 열었다.
“고생했어.”
천무진의 그 한마디에 악준기가 빙긋 웃으며 답했다.
“별말씀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