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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201화 (200/293)

201화. 비밀 ― 당신도 와요 (1)

단엽과 한천이 탄 마차는 광동성의 중심 부분에 위치한 정호산(鼎湖山)으로 향하고 있었다. 정호산은 열대 식물들이 많은 곳으로, 그 꼭대기에는 커다란 호수가 자리하고 있기도 했다.

비취색의 아름다운 물길, 그리고 주변을 가득 채운 울창한 수풀들이 하나의 그림이 되어 아름다움을 뽐내는 정호산은 예로부터 빼어난 풍경으로 유명했다.

정호산을 향해 내달리던 마차가 이내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그리고 마차가 완전히 멈춰 서는 순간 닫혀 있던 문이 열리며 안에서 두 명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차에서 내려선 단엽과 한천은 찌뿌둥한 몸을 가볍게 풀었다.

꽤나 가파른 산길을 바라보며 단엽이 투덜거렸다.

"여길 올라가야 되는 거야?"

최대한 마차를 타고 움직이고 싶었지만 이곳부터는 산세가 가팔랐고, 그 때문에 직접 두 발로 움직여야 했다.

귀찮은 티를 팍팍 내는 단엽을 향해 한천이 말했다.

"순식간에 올라갈 수 있으면서 죽는소리는."

"뭐 그렇긴 한데. 다만 저런 놈들을 업고 움직여야 한다는 게 좀……."

말과 함께 슬쩍 뒤를 바라보는 단엽의 눈에는 마차 안에 널브러져 있는 두 명의 모습이 들어왔다. 곤죽이 된 채로 쓰러져 있는 황균과 어교연이었다.

밀담을 가졌던 그날 두 사람은 단엽과 한천에게 혼절을 할 때까지 두드려 맞았고, 그 이후로는 이렇게 짐짝처럼 끌려다녔다.

이곳까지 달려오는 며칠간 마차 바닥에 던져졌던 탓에 둘은 거의 죽을 지경이었다. 마차가 달리며 전해지는 충격을 온몸으로 고스란히 받아야만 했으니까.

허나 그들은 아무런 반항조차 하지 못하게 혈도가 점혈되어 있었고, 불편한 그 상태 그대로 몇 날 며칠의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잠시 쓰러진 두 사람에게 향했던 시선을 위로 돌리며 단엽이 중얼거렸다.

"주인하고 백아린은 도착했으려나?"

"글쎄. 연락이 언제 닿았을지 가늠하기 어려우니 가 봐야 알 것 같은데."

일총관 진자양에게는 이미 연락을 받아서 그가 도착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만 아직까지 천무진에게 간 백아린에게서는 받은 연락이 없어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렇게 단엽이 산 위를 바라보고 있는 찰나.

한천이 슬그머니 마차로 다가가서 어교연을 둘러업었다.

그러고는 아무렇지 않게 막 지나쳐 가려는 한천의 어깨를 단엽이 붙잡았다.

한천이 어색한 웃음과 함께 고개를 돌릴 때였다.

단엽이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어이, 어디서 수작질이냐."

"……응?"

"모르는 척하면 다냐. 네가 일부러 둘 중 가벼운 놈으로 든 거잖아. 내가 모를 줄 알아?"

"하하, 오해야. 그냥 난 가까운 쪽에 육총관이 있어서 든 거뿐이거든."

"그래? 그럼 네가 저 무게가 더 나가는 놈으로……."

단엽이 잘됐다는 듯 손을 떼고 황균을 가리키는 그 찰나 몸이 풀린 한천이 쌩하니 산 위로 달려 나갔다. 순간적으로 멀어지는 한천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단엽이 이내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저 망할 놈의 자식이."

점점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던 단엽은 이내 뒤편에 널브러져 있는 황균을 둘러멨다.

단엽은 반드시 응징을 하겠다고 다짐하며 이제는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멀어지고 있는 한천의 뒤를 내쫓기 위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정호산 꼭대기에 자리한 자그마한 거처.

커다란 호수인 정호 인근에 자리한 그곳은 무척이나 경관이 빼어난 장소였다. 누군가가 주기적으로 관리는 하고 있었지만 긴 시간 사람이 찾지 않았는지 내내 조용하던 그 거처에 오랜만에 활기가 돌았다.

덜컹!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낸 한천이 만족스럽다는 듯 등에 업고 있던 어교연을 그대로 바닥에 툭 하고 떨어트렸다.

한천은 담장 너머로 보이는 정호라는 이름을 지닌 호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크, 경치 좋군."

"……좋겠지. 그렇게 불러도 뒤도 안 보고 달려갔으니."

이윽고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한천이 히죽 웃었다.

"그랬어? 워낙 급히 달리느라 못 들었네."

"귓구멍을 확 뚫어 줄까?"

마찬가지로 둘러메고 있던 황균을 패대기친 단엽이 웃으며 다가왔다. 그런 그를 향해 한천이 서둘러 손사래를 치며 거리를 벌렸다.

한천이 말했다.

"워워, 진정하게."

"진정하긴 이걸 확……."

주먹을 들어 올리며 당장이라도 휘두르려는 듯 시늉을 해 보이던 찰나.

움직이던 두 사람이 동시에 멈추어 섰다.

누군가가 멀리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단엽이 슬쩍 고갯짓을 하며 물었다.

"아는 사람이냐?"

멀리서 모습을 드러낸 세 명의 사내.

일총관 진자양과 그의 아래에 있는 두 명의 부총관이었다.

백아린을 대신해 루주의 자리에서 흉내를 내는 부총관인 주서호와, 이런 비밀에 대해서는 아무런 것도 모르고 정말 진자양의 일을 돕고 있는 석철지라는 자였다.

단엽의 질문에 한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응, 우리 편이다."

"그래?"

잠깐 내공을 끌어올리던 단엽은 모습을 드러낸 상대가 적이 아니라는 걸 알자 곧바로 힘을 거뒀다. 멀리에서 모습을 드러낸 진자양과 그의 휘하에 있는 두 명의 부총관이 얼마 안 있어 가까이로 다가왔다.

한천이 먼저 진자양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일총관님."

"먼 길 오느라 고생했네, 한천."

한천의 인사에 화답한 진자양의 시선이 이내 빠르게 다른 이들에게로 향했다. 쓰러져 있는 두 명의 총관들, 그리고 한천의 옆에 자리한 단엽까지.

잡혀 온 두 총관을 보는 순간 진자양의 표정은 노한 듯 분노로 가득했다.

허나 이내 그는 마음을 추스르고 곧바로 한천의 옆에 자리한 단엽에게 포권을 취해 보였다.

"대홍련의 부련주시지요? 적화신루 일총관 진자양이라고 합니다."

"아아, 난 뭐 없는 사람 취급해 주면 돼."

어차피 이번 일은 적화신루 내부의 문제다.

단엽의 성격상 원래 깊게 개입하지도 않겠지만, 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랬기에 자신은 없는 사람 취급하고 별로 신경 쓰지 말라는 뜻을 먼저 내비친 것이다.

그런 단엽의 모습에 진자양은 내심 놀랐지만 애써 감정을 감췄다.

소문으로 듣기에는 무척이나 난폭하고 말보다는 주먹이 앞서는 인물이라 들었다. 물론 그것이 틀리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생각보다 더 거물이로군.’

단엽이라는 사내를 생각은 않고 주먹만 휘두르는 다혈질에 난폭한 자라 여겼었다. 그런데 막상 만나 본 그는 단순히 난폭하기만 한 자가 아니었다.

자기가 나서야 할 때와 물러날 때를 아는 사내.

진자양이 단엽을 향해 말했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배려는 무슨. 그보다 이제 간섭 안 할 생각이니까 저 쓰러져 있는 두 놈들 옮기는 것도 이제 그쪽들이 알아서 해."

"물론이지요. 석철지, 주서호."

자신들을 부르는 소리에 부총관 두 사람이 빠르게 다가왔다. 진자양이 곧장 둘에게 명령을 내렸다.

"잡혀 온 죄인들을 가둬 두게."

"옙, 총관님."

석철지가 대표로 대답한 직후 두 사람은 바닥에 내팽개쳐져 있던 황균과 어교연을 끌고 뒤편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두 명의 부총관이 사라지는 사이, 한천이 물었다.

"총관님, 대장도 도착하셨습니까?"

"여기 있던 건 우리들뿐일세."

진자양은 이틀 전에 이곳에 도착했고, 당시에도 이곳엔 아무도 없었다.

그를 향해 한천이 재차 질문을 던졌다.

"혹 그러면 뭔가 소식을 들으신 거라도 있으신지요?"

"흐음, 글쎄. 아쉽게도 특별한 건 없네. 다만 내가 오는 와중에 전해 들은 바로는…… 오천에서 천룡성 무인 분의 흔적을 엄청나게 찾고 있었다고 하더군."

"천 공자님의 흔적을 말입니까?"

한천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되물었고, 진자양이 조심스레 말을 받았다.

"아무래도 그분께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더군."

진자양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온 바로 직후였다.

"뭐라고? 주인한테 무슨 일이 있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어교연과 황균의 일에는 관심도 가지지 않고 멀뚱멀뚱 서 있던 단엽이 눈을 부라리며 다가왔다. 순간적으로 뿜어져 나온 기세에 진자양은 자신도 모르게 반걸음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공격을 한 것도 아니거늘 절로 기에 눌려 버린 것이다.

당황했던 진자양은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는 답했다.

"정확한 것은 아직 저도 파악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천룡성의 무인 분이 실종되셨고, 그 때문에 적화신루의 모든 정보망을 총동원해서 흔적을 찾고 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이런 젠장!"

단엽이 화가 난다는 듯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그리고 표정의 변화가 생긴 건 한천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백아린의 염려대로 함정에 빠진 자신들이 아닌 다른 어딘가에서 일이 벌어졌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 대상은 천무진이었다.

단엽이 옆에 서 있는 한천에게 재빨리 말했다.

"야, 여기서 이러고 있을 거야? 지금 이놈들 처리하는 것보다 주인의 행방부터 찾는 게 먼저잖아."

"……아무래도 그래야 될 것 같네."

적화신루 내에서 총관의 위치에 있는 두 명이 동료들을 죽이기 위해 거짓 정보를 내보냈다. 분명 이건 적화신루 자체를 뒤흔들 커다란 사건이다.

허나 그렇다고 한들 천무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보다 먼저 처리해야 할 문제는 아니었다.

한천이 재빨리 앞에 있는 진자양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했다.

"일총관님, 죄송하지만 이곳을 맡기고 잠시 다녀와야 할 것 같습니다. 시간은 다소 걸리겠지만 부탁드리지요."

"그리하게."

한천의 말에 진자양은 고개를 끄덕였다.

적화신루에게 천룡성 무인인 천무진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고, 또 한천의 말은 제아무리 자신이라 한들 쉽사리 흘려들을 수 없었다.

한천은 적화신루의 인물이 맞다.

하지만 우습게도 그가 적화신루에 있는 이유는 백아린이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중요한 건 적화신루가 아닌, 백아린이었고 그녀의 명령만을 따랐다.

진자양은 그의 그런 점을 알았기에 적화신루의 부총관이라고는 하지만 한 번도 한천을 자신의 아랫사람이라 여기지 않았다.

그는 그저 그일 뿐이니까.

진자양에게 답을 받은 한천은 다급히 질문을 던졌다.

"마지막 소식이 온 건 언제고, 또 어디에 계신답니까?"

"내가 소식을 전달받은 것이 대략 육 일 정도 되었으니 그 정보가 오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을 계산하면 대략……."

말을 끌던 진자양이 계산을 마치고 한천의 질문에 답하려는 그때.

덜컹.

뒤편에 있는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 누구인지 가장 먼저 확인한 건 문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진자양이었다.

들려온 소리에 단엽과 한천이 고개를 돌리려는 찰나, 진자양의 입이 열렸다.

"적어도 어디에 계신지는 지금 알겠군. 자네 뒤일세."

진자양의 그 말과 동시에 고개를 돌린 한천은 입구를 통해 막 걸어 들어오는 한 쌍의 남녀를 볼 수 있었다.

천무진과 백아린.

두 사람이 막 이곳에 들어선 것이었다.

백아린은 앞에 있는 일행들을 확인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말했다.

"뭐야? 여기들 다 모여 있네?"

"대장!"

다급히 한천이 백아린에게 향하는 사이, 단엽 또한 천무진을 향해 움직였다.

순식간에 천무진 앞에 도착한 단엽은 그의 팔을 잡고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했다. 어딘가 다친 곳이 없는지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이 말이다.

갑작스러운 단엽의 행동에 천무진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갑자기 뭐 하는 거야?"

"아니, 실종됐었다면서? 근데 멀쩡한데?"

"일이 좀 있긴 했는데……."

말을 하던 천무진이 슬쩍 옆에 있는 백아린을 바라봤다. 자연스레 단엽의 시선 또한 그녀에게로 향했고, 천무진이 말을 이었다.

"백아린 덕분에 별문제 없이 돌아왔다."

"건방진 여자, 또 한 건 했나 보네?"

"그놈의 입을 확."

백아린이 때리는 시늉을 하자 단엽이 재빨리 뒤로 물러나며 거리를 벌렸다. 그 틈에 재빨리 둘 사이에 끼어든 한천이 서둘러 백아린을 말렸다.

"반가워서 저러는 겁니다. 방금 전까지 천 공자님한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엄청 화를 냈거든요. 그동안 별 내색 안 하더니만 꽤나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화, 화를 내긴 내가 언제?"

단엽이 절대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쳤고, 백아린이 팔짱을 낀 채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호오, 그랬어?"

"아니라니까!"

"화를 내는 거 보면 좀 수상한데……."

투덕거리며 싸워 대는 넷을 바라보는 진자양의 표정이 묘했다.

사실 눈으로 보면서도 놀라운 광경이었으니까.

천룡성의 무인 천무진과 대홍련의 부련주 단엽. 그리고 적화신루의 루주인 백아린과, 또 그런 그녀를 따르는 정체불명의 무인 한천까지.

면면을 따져 보면 하나같이 대단한 이들이다.

그런 그들이 마치 어린아이들처럼 서로에게 장난을 치고 웃고 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정겹게 느껴졌다.

쉽사리 볼 수 없는 장면에 잠시 넋을 잃고 있던 사이 백아린이 진자양에게 다가왔다.

"일총관님을 뵙습니다."

"……오랜만이오, 사총관."

주변에 다른 눈들이 있었기에 진자양은 백아린을 사총관으로 대했다.

그를 향해 백아린이 곧장 말을 이어 나갔다.

"서찰을 통해 연락을 드렸으니 대충 어떠한 상황인지 아실 거예요. 회의를 통해 둘의 처리에 대해 논하고자 합니다."

"그래야 할 것 같아 회의장을 미리 준비해 두었소. 원하는 때 시작하면 될 터, 미리 말만 전해 주시오."

"역시 일총관님이시네요."

말도 하기 전에 미리 모든 준비를 끝내 둔 진자양의 일 처리에 백아린이 만족스럽다는 듯 말했다.

그녀가 재차 입을 열었다.

"그럼 곧 연락드릴게요."

말을 끝낸 백아린은 아직까지도 뒤편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세 사람에게 다가갔다.

그녀가 다가가서 입을 열었다.

"다들 밥 먹었어?"

"아뇨, 죽어라 달려오느라 바빴는데 식사를 할 틈이 있었겠습니까."

죽는소리를 해 대는 한천을 향해 고개를 작게 젓던 백아린이 이내 밝게 웃으며 말했다.

"자, 그럼…… 밥부터 먹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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