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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197화 (196/293)

197화. 처벌 ― 대가를 치러야지 (1)

촤악!

얼굴을 덮는 강렬한 물줄기에 부총관 경패는 다급히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벌써 몇 바가지는 족히 될 법한 물을 얼굴에 부어 대는 한천이 앞에서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경패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속으로 이를 갈았다.

‘이 잔인한 새끼.’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그런 속마음과는 달리 경패는 애써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몇 번이나 물을 얼굴에 뿌리고서야 한천이 웃는 얼굴로 물었다.

"이보게 경패. 이제 술이 좀 깨지?"

"깨, 깼소."

사실 한천의 얼굴을 보는 순간 놀란 경패는 이미 술기운이 모두 날아간 상태였다. 그리고 그걸 한천이 몰랐을 리 없다. 그저 이런 식으로 경패를 괴롭히고 있는 것일 뿐.

과거 한천에게 신나게 두들겨 맞은 이후 언제나 그의 앞에서는 주눅 들어 있는 경패다.

온몸이 물에 흠뻑 젖어 있는 경패와 마주한 한천이 입을 열었다.

"잘 지냈어? 신수가 훤한데?"

"나, 나야 뭐 별일 없이 지냈소."

"말 놓으라니까 그러네."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는 한천이었지만 경패는 움찔하며 황급히 손사래 쳤다.

"나, 나는 이것이 편하오."

"그래? 뭐 그게 편하다면야 억지로 시킬 순 없는 노릇이고. 난 그래도 이게 편하니까 계속 반말한다?"

한천의 말에 경패는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바로 그때 한천이 말했다.

"어쨌든 별일 없이 지냈다니 다행이네. 난…… 별일이 좀 있었거든."

의미심장한 말과 함께 한천이 경패의 눈동자를 마주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 경패는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자신의 상관이 무슨 일을 벌였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경패 입장에서도 그건 그리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아무리 마음에 안 든다고 해도 같은 적화신루의 인물을 귀문곡에 팔아넘기는 것 같아 찜찜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가 어교연이 보다 높은 자리에 오른다 한들 부총관인 경패에게는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어차피 담당하는 구역만 달라질 뿐, 그 외 별다른 혜택이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허나 그렇다고 해도 부총관인 경패로서는 직속상관인 어교연의 명령을 따라야만 했다.

그렇게 벌인 일.

분명 한천은 죽었어야 했는데…….

‘대체 어떻게 살아서 이곳에 있는 거지?’

의아함이 밀려드는 그 순간 한천의 입이 열렸다.

"내가 여기 있어서 좀 놀란 모양이던데. 왜? 뭔가 좀 켕기는 일이라도 있는 건 아니지?"

"가, 갑자기 찾아와서 좀 놀란 것뿐이오."

"정말 그거뿐인가?"

말을 하며 히죽 웃어 보이는 한천의 모습에 자연스레 오금이 저려 왔지만…….

"그럼 다른 게 뭐가 있겠소."

최대한 침착하게 마음을 다잡은 경패가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뗐다. 이유야 어찌 됐든 그 일에 자신 또한 개입된 건 사실이고, 그것이 들통난다면 결코 징계 정도로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설령 예전 그날보다 훨씬 더 두들겨 맞는다고 해도 결코 발설할 생각이 없었다.

딱 잡아떼는 경패를 바라보는 한천의 입꼬리가 꿈틀거렸다.

‘모르쇠로 일관하겠다?’

상대가 이렇게 나온다면 진실을 캐는 게 쉽지 않은 건 사실. 하지만 애초에 한천은 이 같은 반응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렇게 쉽사리 사실을 실토할 문제는 아니었으니까.

한천이 움직이는 걸 보며 곧 두들겨 맞겠다는 생각에 경패가 질끈 눈을 감았을 때였다.

"너 바보냐?"

들려오는 한천의 목소리.

생각지도 못한 말에 눈을 감았던 경패가 조심스레 눈을 뜨고는 이내 자신의 앞에 자리한 한천을 향해 물었다.

"무, 무슨 소리요?"

"모르는 척하려는 모양인데, 좋아. 계속 모르는 척하면서 내 이야기 들어."

한천은 미리 준비해 온 말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어차피 적화신루를 통해 흘러 들어온 정보야. 계속해서 캐내면 결국 그게 어디서 나온 건지 밝혀질 거라는 소리지.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

"무슨 소리신지 나는……."

여전히 모르는 척하는 경패의 말을 자르며 한천이 다시금 말했다.

"결국 누군가는 잡히게 된다는 소리야. 그렇다면 과연 그게 누굴까?"

"……."

"정말 그 일을 주도한 주모자? 아니, 그럴 리는 없겠지. 그들은 이미 자신들이 빠져나갈 방도를 미리 마련해 두고 일을 벌였을 테니까."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 생각할 시간을 준 한천이 경패의 표정을 살피다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그 일의 범인이 나오지 않는다면 주모자들 입장에서 어떻겠어? 당연히 곤란하겠지? 하지만 되지도 않는 자를 범인으로 만든다면 그게 통할까? 바보가 아니고서야 그런 얄팍한 수가 통할 거라 생각하진 않을 거야."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는 경패의 어깨에 손을 올린 한천이 말했다.

"그런 상황에서 가장 사용하기 좋은 패가 누굴지는 생각해 봤어?"

말을 끝낸 한천이 어깨에 올렸던 손을 떼어 천천히 경패를 가리키며 다시 입을 열었다.

"바로 너야."

움찔.

경패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한천을 바라봤다. 속으로는 크게 놀랐지만, 눈을 크게 뜨는 것 외에는 그걸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그 순간 한천이 마치 쐐기를 박듯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밝혔다.

"아마도 그들은 그 모든 죄를 너에게 뒤집어씌우겠지."

한천의 모든 이야기가 끝이 났다.

그리고 잠시 경패는 침묵했다.

그렇게 침묵 끝에 꺼낸 그의 대답은…….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소."

경패의 대답은 아까와 같았다.

경패 또한 적화신루에 몸담고 여러 가지 경험을 겪어 온 인물이다. 의심스러운 정황만으로 그리 쉽게 속내를 드러낼 리 없었다.

"하, 이 친구 생긴 것처럼 이리 우직하기만 해서야 원."

막말을 내뱉던 한천이 갑자기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전서구 한 마리가 날아들고 있었다.

푸드드득.

날갯짓을 하던 전서구는 이내 한천의 팔에 내려앉았고, 그는 곧바로 발목에 묶여 있는 자그마한 종이를 펼쳤다.

종이 안의 내용을 확인한 한천의 눈동자가 꿈틀거렸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조심스럽게 살피고 있던 경패는 뭔가 일이 생겼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순간 종이에서 눈을 뗀 한천이 말했다.

"마침 잘됐네. 따라오라고. 못 믿겠다면…… 직접 눈으로 보여 줄 테니까."

* * *

한천은 경패를 끌고 어딘가를 향해 빠르게 움직였다. 뒤를 쫓으면서도 경패는 마음이 계속해서 불편했다. 방금 전 들었던 한천의 이야기가 마음에 남아서였다.

‘……진짜일까?’

아닐 거라 고개를 저으면서도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는 건 역시나 자신의 상관인 어교연이 어떤 사람인지 알기 때문이다.

그녀는 욕심이 많았다.

그랬기에 백아린과 한천을 귀문곡의 손에 넘겨 죽일 계획까지 짜지 않았던가.

그런 어교연이 자신의 모든 걸 잃을지도 모르는 상황이 온다면 과연 무슨 일을 벌일지는 쉽게 예상할 수 없었다. 가장 측근인 자신조차도 필요하면 버릴 수 있는 인물이라는 걸 알고 있다.

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지 고민이 깊어지던 그때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한 한천이 걸음을 멈췄다.

정신없이 뒤만 쫓던 경패가 걸음을 멈추고는 이내 놀란 듯 중얼거렸다.

"여긴……."

그가 당황한 이유는 이 장소가 익숙했기 때문이다. 지금 눈앞에 있는 건 다름 아닌 이곳 화도에서 자신이 머무는 거처였다.

이해가 안 간다는 듯 한천을 바라보는 그때.

한천이 물었다.

"네 방이 어디야?"

"저기요."

경패가 가리킨 쪽을 확인한 한천이 주변을 둘러보다 이내 가볍게 손짓했다.

"따라오라고."

말을 마친 그는 가장 가까운 높은 건물 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그러고는 그곳에서 넙죽 엎드린 채로 몸을 감췄다.

얼결에 그런 한천을 따라 지붕 위에 자리한 경패 또한 마찬가지로 커다란 몸을 힘겹게 감췄다.

그가 옆에 엎드려 있는 한천을 향해 입을 열었다.

"대체 여기서 뭘 하려고……."

"쉿!"

한천이 검지를 입에 가져다 대며 조용히 하라는 시늉을 해 보였다. 그렇게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닫은 경패를 향해 한천이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보고만 있으라고. 방금 심어 놓은 정보원으로부터 중요한 정보가 들어왔거든."

뜻 모를 말이었지만 경패는 한천이 시키는 대로 입을 닫고 가만히 그곳에 자리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숨을 죽인 채 약 일 각가량 몸을 감추고 있던 그때였다.

너무 움츠리고 있었던 탓에 찌뿌둥하다는 생각이 들 무렵, 어둠을 틈타 그림자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갑자기 드러난 그림자의 존재를 확인한 경패는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새카만 흑의에 복면을 쓴 상대는 얼굴을 알아보기 어려웠다. 정체불명의 인물은 경패가 머무는 건물의 위쪽에 모습을 드러내더니 곧바로 주변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이내 빠르게 바닥에 착지하고는 창문을 통해 방 안으로 들어섰다.

‘저, 저놈이!’

막 몸을 일으켜 세우려는 경패를 한천이 빠르게 내리눌렀다. 그러고는 자신을 바라보는 그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그건 가만히 있으라는 신호였고, 경패는 이를 갈면서도 결국 한천의 명령대로 그곳에 가만히 있어야만 했다.

열린 창문을 통해 내부에서 움직이는 정체불명 괴한의 움직임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벽에 붙어 있는 족자의 앞에 선 채로 자신의 품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이내 뭔가를 꺼내어 들더니 그걸 그 뒤편에 숨기고는 바람처럼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휘익!

상대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숨을 죽이고 있던 한천이 이내 경패의 어깨를 툭툭 치며 작게 속삭였다.

"가 보자고."

말을 끝낸 한천은 경패와 함께 조용히 바닥으로 내려선 후, 빠르게 방 안으로 들어섰다.

내부로 들어서기 무섭게 경패는 방금 전 정체불명 괴한이 뭔가를 넣은 족자를 향해 움직였다. 곧바로 족자를 옆으로 밀자, 이내 뒤편에 감춰 뒀던 종이 한 장이 툭 하고 떨어져 내렸다.

바닥에 떨어진 종이를 서둘러 주워 들은 그가 안의 내용을 확인하는 그때였다.

"이건……."

새카맣게 변한 낯빛으로 내용을 확인하는 그때.

옆으로 다가온 한천이 슬그머니 종이 안에 담긴 내용을 보며 혀를 찼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나?"

그 종이의 정체는 전표였다.

그리고 그 전표의 발행인은…… 귀문곡과 관련된 인물이었다.

전표를 와락 구긴 경패는 반대편 손으로 얼굴을 감싸 안았다. 지금 이 방 안에 몰래 들어와 넣은 전표가 가지는 의미를 모르지 않아서다.

귀문곡에게 비밀리에 돈을 받고 거짓 정보를 흘렸다는 식으로 자신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했던 것이 분명했다.

물론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자신이니 당사자인 백아린이나, 적화신루의 루주를 만나게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그 전에 죽여 입을 막으려 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새하얗게 질린 경패를 바라보던 한천이 입을 열었다.

"당장에 결정하라고 하지는 않겠어. 지금 뭘 이야기할 필요도 없어. 하지만 적어도 이곳에 있다가는…… 네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르겠군."

"……동감하오."

고개를 끄덕이는 경패를 향해 한천이 다독이듯 말했다.

"이야기는 네 마음이 바뀌는 그때 듣는 걸로 하지. 시간은 많지 않겠지만. 우선은 목숨부터 챙기자고. 그게 우선이니까."

말과 함께 다가온 한천이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밖으로 나가서 쭉 가다가 두 번째 갈림길에서 왼쪽 모퉁이로 들어가면 자그마한 과일 가게가 하나 나올 거야. 거기 가서 내가 보냈다고 하면 거처를 마련해 줄 테니 우선 그곳에서 몸을 숨기도록 해."

몸을 감출 거처까지 준비해 주는 한천의 모습에 경패가 감동한 듯 속내를 감추지 못한 채 감사의 뜻을 내비쳤다.

"고맙소.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은혜는 무슨. 당연히 돕고 살아야지. 우리는 같은 적화신루의 동료 아닌가."

한천이 씩 웃으며 말했다.

한천은 지붕 위에 올라선 채로 이제는 사라져 버린 경패가 향했던 방향을 응시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스윽.

누군가가 한천의 뒤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그 대상은 놀랍게도 방금 전 경패의 거처에 비밀스럽게 잠입했던 그 정체불명의 괴한이었다.

뒤편에 나타난 괴한의 존재를 슬쩍 곁눈질로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한천은 놀라거나 하는 일말의 반응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뒤편에 나타난 괴한이 한천에게 다가오며 천천히 얼굴을 가리고 있던 복면을 풀어 젖혔다.

그리고 그 복면 뒤편에서 드러난 얼굴은…… 단엽이었다.

성큼 다가선 그가 한천의 옆에 선 채로 입을 열었다.

"네 거짓말에 완전히 속아 넘어간 거 같은데?"

단엽의 말에 한천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받았다.

"뭐, 아예 거짓말은 아니지."

사실 이 모든 건 한천과 단엽이 준비한 함정이었다. 물론 지금 말한 대로 모든 것이 거짓은 아니었다.

황균이나 어교연은 최악의 경우 부총관들을 희생시킬 계획을 준비해 둔 것 같았으니까.

다만 상대방이 그렇게 믿게 만드는 것은 정황 증거만으론 모자랐다.

의심이 확신으로 바뀔 수 있을 만큼 눈에 보이는 한 방이 필요했고, 그걸 위해 굳이 단엽이 이처럼 괴한 흉내를 내며 전표를 숨겨 놓는 일을 벌인 것이다.

의심할 수 있는 정황과, 그걸 뒷받침할 증거까지.

두 가지가 하나가 되니 결국 경패는 스스로가 위험하다 여기게 된 것이다.

거기다가 한천이 당장에 말하지 않아도 된다며 다독인 탓에 우선은 시간을 벌며 고민을 해 보자는 생각도 있겠지만…….

이미 손안에 들어온 경패를 구슬리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지붕 위에 선 채로 멀리를 내다보던 한천이 기지개를 켜며 중얼거렸다.

"그럼 한 놈은 우선 끌어들였으니 이제는 다음 녀석한테로 가 볼까?"

애초에 목표는 경패 하나가 아니었다.

다음 표적, 그건 바로 이총관 황균의 부총관인 종치수(宗馳穗)라는 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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