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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185화 (184/293)

185화. 함정 ― 이건 뭐지 (1)

휘장 속에 자리하고 있는 어르신의 손가락이 꿈틀했다.

"천무진이 마교에서 제 발로 걸어 나왔다고?"

"예, 그것도 일행들과 뿔뿔이 흩어졌다는 정보입니다."

"……."

일행들과도 흩어졌다는 수하의 보고까지 들은 직후 휘장 안에 자리한 그가 침묵했다.

천무진은 분명 치명적일 정도로 위험하고, 뛰어난 존재다.

허나 휘장 속의 존재는 천무진 하나만을 놓고 본다면 그를 그리 까다로운 존재로 여기지 않았다.

그에겐 천무진을 단번에 무너트릴 방도가 있었으니까.

그러나 천무진이 혼자가 아니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대홍련의 부련주 단엽, 그리고 의문의 고수인 적화신루의 백아린과 한천까지.

그 셋 중 단엽과 백아린은 최소 우내이십일성 이상의 경지에 들어섰다는 판단이 내려진 존재들이고, 한천이라는 자는 그 경지에 근접했거나 최악의 경우 마찬가지로 비슷한 수준의 실력자라 판단되는 인물이었다.

그런 괴물 같은 이들이 함께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가 준비한 작전을 실행시키는 건 무척이나 어려웠다. 최악의 경우 엄청난 피해를 감수해야 했는데…….

‘그런데 제 발로 알아서들 떨어졌다고? 우연인가? 아니면 설마…… 함정?’

속으로 되뇌던 그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무슨 일을 벌이려 하는지 천무진이 알 리 없지 않은가.

이런 상황에서 상식적으로 일부러 일행들과 떨어진 척하며 자신이 준비해 둔 계책을 펼치도록 유도하는 건 아닌지 의심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작전을 실행한 직후 운이 좋게 상황이 이리 흘러가는 거라고 보는 게 맞겠지만 최근 들어 천무진에게 당한 게 워낙 많았던 탓인지 말도 안 되는 의심까지 하기 시작했다.

"후우."

짧은 한숨을 내쉰 어르신이 이내 어둠 속에 자리한 누군가에게 말을 건넸다.

"어찌 생각하느냐, 반조."

그의 부름에 그림자 안쪽에 자리하고 있던 반조가 성큼 모습을 드러냈다. 반조가 웃는 얼굴로 물었다.

"뭐가 신경 쓰이시나 봅니다."

"쓸데없이 잡생각이 드는구나. 지금 이것이 함정일 가능성은 없는지 말이야."

"천무진이 어르신의 머릿속에 들어갔다가 나오지 않는 이상 이번 작전이 새어 나갔을 가능성은 없지 않을까요?"

반조의 말에 휘장 속에 자리한 존재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이야기한 것처럼 이번 일은 결코 바깥으로 유출될 만한 그런 게 아니었다.

휘장 안의 존재하는 그는 생각이 정리된 듯 한결 편안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면 이거야말로 절호의 기회인데……."

억지로 만들려고 해도 쉽지 않을 그런 기회가 얼결에 찾아온 꼴이 아니던가. 천무진이 단신으로 마교 바깥으로 나왔다고 하니 남은 건 그가 있는 곳을 찾아내 작전을 실행하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이미 십천야 쪽에서는 모든 준비가 끝나 있던 상황.

이번 작전을 위해 필요한 이들을 모두 이곳으로 호출해 대기시키는 것까지 완료된 상태였다.

그가 결국 결단을 내렸다.

"대기시켜 놓은 둘을 곧장 들라 하거라."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수하 한 명이 달려 나갔고, 이내 누군가가 방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입구에 선 두 명의 모습을 확인한 어르신이 짧게 말했다.

"들어들 와."

명이 떨어지자 그제야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두 명이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런데 모습을 드러낸 두 사람의 행색이 무척이나 신기했다.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려웠지만, 복색을 보고 추측건대 한 명은 사내였고, 다른 한 명은 여인이었다.

그리고 둘 모두 각자의 복장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사내는 긴 장포를 머리부터 눌러 써서 얼굴이 보이지 않았고, 여인은 붉은 면사가 달린 커다란 모자를 쓰고 있었다.

장포 사이로 슬쩍슬쩍 보이는 사내의 행색은 깔끔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반대로 여인의 옷차림은 무척이나 화려했다. 거기다가 커다란 붉은 면사가 달린 모자까지 쓰고 있으니 더욱더 시선을 잡아 끌었다.

안으로 들어선 두 사람은 휘장 건너의 인물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어르신을 뵙습니다."

"어르신을 뵈어요."

두 명의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이내 휘장 속 인물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두 사람을 향해 답했다.

"오랜만이구나. 매유검(枚柳劍), 적련화(赤蓮花)."

지금 모습을 드러낸 이들 중 장포를 눌러쓴 자의 이름이 매유검이었고, 면사가 달린 모자를 쓴 인물이 적련화였다.

모종의 이유로 한동안 사라졌다시피 하던 십천야의 두 명이 천무진 때문에 오랜 은거를 깨고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어르신을 향해 인사를 건네는 두 사람의 모습을 구석에 숨은 채로 지켜보던 반조가 슬쩍 바깥으로 사라졌다.

반조가 사라진 직후 어르신이 말했다.

"너희들이 움직여야 할 때가 온 것 같구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장포 속에서 답하는 매유검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건 지금 그가 내뱉은 말처럼 아주 오랫동안 기다려 왔기 때문이다. 움직여야 할 때를 위해 아주 오랜 시간 지옥과도 같은 삶을 버텨 왔다.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오고야 만 것이다.

매유검이 물었다.

"표적은 역시 천무진 그놈입니까?"

"그래, 그놈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오랫동안 준비한 계획을 차질 없이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두 사람에게는 각자의 임무가 있었고, 그 내용은 엄연히 달랐지만 결국 이어지는 하나의 목적.

그것은 바로 천무진이었다.

어르신이 휘장 건너에 있는 두 사람을 향해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지금부터 매유검 넌 자유다."

그 한마디에 무릎을 꿇고 있던 그의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 어르신의 한마디에 오랜 시간 그를 묶어 왔던 쇠사슬이 끊어져 나간 느낌이었다.

매유검이 떨고 있는 사이 어르신의 말이 이어졌다.

"적련화."

"예, 어르신."

"천무진에게 가거라. 그리고 말하거라."

말을 끝낸 그가 휘장에 자신의 입을 가져다 댄 채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부탁이 있다고. 그 말이면 된다. 그럼 그는…… 네 것이 될 것이다."

어르신의 말에 고개를 숙인 채로 적련화가 답했다.

"예, 천무진을 반드시 제 것으로 만들어 돌아오겠습니다."

휘장 가까이에 선 채로 무릎을 꿇고 앉은 두 사람을 내려다보던 그가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좋다! 그럼 가거라!"

어르신의 커다란 외침에 두 사람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명령이 떨어진 이상 더는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으니까.

짧게 예를 갖춰 인사를 건넨 두 사람은 곧장 몸을 돌려 바깥으로 걸어 나갔다.

바로 천무진을 찾아갈 요량으로 두 사람은 곧장 바깥을 향해 바삐 움직였다.

그렇게 나아가던 통로의 끝자락에는 두 사람을 기다렸다는 듯 한 명의 사내가 몸을 기댄 채로 자리하고 있었다.

대화가 시작되기 전에 방에서 나갔던 반조, 그였다.

반조가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군, 매유검."

"……반조."

매유검이 걸음을 멈추어 서자,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던 적련화 또한 움직임을 멈췄다. 하지만 그녀는 걸음만 멈추었을 뿐 반조에게 인사를 건네거나, 아니면 아는 체를 한다거나 하는 그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매유검이 물었다.

"무슨 일이지?"

물어 오는 질문에 시선을 그에게로 돌린 반조가 답했다.

"경고를 하나 해 주려고."

"경고?"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천무진 그 녀석 생각만큼 만만한 놈이 아니거든."

"……큭, 큭큭!"

반조의 그 말에 매유검이 웃음을 터트렸다.

장포를 뒤집어쓴 그가 갑자기 웃어 젖히자 반조가 슬쩍 표정을 굳혔다.

허리를 젖힌 채로 웃어 대던 매유검이 갑자기 돌변했다.

후욱!

거리를 좁히고 들어온 그가 반조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꾸욱.

멱살을 쥔 채로 강하게 힘을 주는 매유검을 향해 반조의 웃는 얼굴 또한 차갑게 식어 갔다. 멱살을 잡힌 채로 반조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이, 죽고 싶은 거냐?"

반조의 그 말에 반응한 것은 당사자인 매유검이 아니었다. 뒤편에서 일련의 과정을 모두 보고 있던 적련화가 오히려 움찔했다.

살기를 흘리기 시작한 반조를 향해 매유검이 장포로 가려진 얼굴을 슬그머니 들이밀었다. 거의 유일하게 드러나 있는 그의 입술이 꿈틀거렸다.

"한심하기 짝이 없군. 벌써부터 겁을 집어먹은 거냐, 반조?"

겁을 먹은 거냐고 윽박지르듯 말하는 매유검의 행동에 반조가 비웃듯 입꼬리를 비틀고는, 이내 멱살을 쥐고 있는 그의 손을 쳐 냈다.

손을 밀쳐 낸 반조가 입을 열었다.

"여전하네. 그 성격 하나는."

말을 하는 반조를 장포 사이로 매섭게 노려보던 매유검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는 이내 정면에 자리하고 있던 반조를 스쳐 지나가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잘 보고 있으라고. 그 천무진이라는 이름뿐인 놈을 내가 어떻게 만드는지."

말을 끝낸 매유검은 유유히 사라졌고, 그 뒤를 적련화가 빠르게 뒤쫓았다.

그렇게 두 사람이 사라진 공간을 잠시 바라보던 반조가 손을 들어 올려 방금 전까지 멱살을 잡혀 구겨진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다듬었다.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로 반조가 중얼거렸다.

"하여튼 성깔하고는."

* * *

천무진, 단엽과 헤어진 백아린과 한천은 곧장 목적지를 향해 움직였다. 두 사람이 도착한 장소는 신월산(新月山)이라는 이름을 지닌 곳이었다.

신월산은 엄청나게 큰 산은 아니었지만, 산세가 험한 탓에 많은 이들이 오가는 장소 또한 아니었다.

더군다나 지리적으로 이점이 있지도 않아, 굳이 산을 넘을 바에는 바로 옆에 있는 길을 통해 움직이는 것이 오히려 시간 절약에도 좋았다.

그랬기에 신월산은 많은 이들이 찾지 않는 산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신월산의 중턱.

그곳에는 꽤나 오래되어 보이는 장원 한 채가 자리하고 있었다. 장원은 여섯 개의 건물로 구성되어져 있었다.

산 중턱에 위치한 것치고는 꽤나 큰 장원이었지만 오랜 시간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았는지 상태는 썩 좋지 못했다.

장원의 외벽은 헐어서 곳곳이 무너져 있었고, 무성하게 자란 잡초와 나무들로 인해 마치 흉가 같은 으스스한 분위기마저 풍겼다.

꽤나 상해 있는 장원에 들어선 한천은 발아래에 굴러다니는 깨진 집기들을 피하며 괜히 겁먹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으으, 이거 딱 귀신 나오게 생긴 집 아닙니까?"

"귀신은 무슨.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먼저 와 있는 사람들 없는지 찾아봐."

백아린의 핀잔에 한천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내 주변을 확인했다. 허나 근처를 돌아봐도 딱히 어떠한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결국 두 사람은 장원 내부에 있는 건물 중 한 채에 들어섰다.

건물 안은 바깥과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정리가 되지 않은 탓에 꽤나 엉망이었다. 곳곳엔 거미줄이 자리하고 있었고, 퀴퀴한 냄새도 풍겼다.

방 안에 굴러다니던 의자들 중 그나마 멀쩡한 것들을 고른 두 사람은 그 위에 몸을 실었다.

자리에 앉기 무섭게 한천이 입을 열었다.

"이거 우리 두 사람이 제일 빨리 온 거 같은데요?"

"뭐 아직 약속 시간보다 한참 이르긴 하니까."

백아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천무진과 함께 떠나다 보니 미리 약속된 시간보다 하루 반나절 이상을 먼저 도착하게 된 꼴이었다.

그래도 먼저 와 있는 인원이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두 사람이 가장 빠르게 도착한 모양이었다.

백아린이 말했다.

"아무래도 여기서 이틀 정도 지내야 할 수도 있겠는데."

"아이고, 여기가 이럴 줄 알았으면 인근 마을에서 술이라도 사 오는 건데."

안타깝다는 듯 중얼거리는 한천을 바라보던 백아린이 이내 품 안에서 가져온 서찰을 꺼내 펼쳤다. 그 서찰은 자신들이 손에 넣으려 하는 귀문곡 거점에 대한 간략한 정보들이었다.

그렇게 약 일 각가량 앉은 채로 서찰을 보고 있던 백아린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녀가 서류에서 시선을 떼더니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려 천장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건 옆에 자리하고 있던 한천 또한 마찬가지였다.

순간적으로 지붕 위쪽에서 느껴졌던 미약한 기척.

그걸 두 사람이 놓칠 리가 없었다.

그렇게 천장을 올려다보는 채로 백아린이 입을 열었다.

"부총관."

"네, 대장."

"……지금 이건 뭘까?"

"글쎄요. 적어도 귀신은 아닌 거 같은데."

말과 함께 한천이 허리에 차고 있던 검에 손을 가져다 댔다.

바로 그 순간!

우콰콰쾅!

소리와 함께 천장이 부서지며 십여 개의 그림자가 두 사람을 향해 빠르게 떨어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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