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화. 내전 전조 ― 정보가 필요해요 (1)
적화신루 광동성 화도(花都) 지부.
그곳은 적화신루의 이총관인 황균이 머무르고 있는 장소였다. 광동성의 중앙 지역에 위치해 있어 여러 가지 정보들을 규합하기 용이할 뿐 아니라, 주요 문파들과도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정보 단체이니만큼 당연히 비밀리에 자리하고 있는 화도 지부에 손님이 찾아왔다.
그건 다름 아닌 육총관 어교연과, 그녀의 부총관인 경패였다.
꽤나 먼 곳에서부터 찾아온 두 사람.
허나 사전에 미리 연락을 취해 놓았기에 이곳의 수장인 황균은 두 사람의 방문에도 당황하지 않았다. 덕분에 화도 지부에 도착한 어교연과 경패는 곧장 황균의 집무실로 안내받을 수 있었다.
자신의 집무실에 자리하고 있던 황균은 안으로 들어서는 두 사람을 자리에서 일어나며 반겼다.
"어서 오시지요, 육총관. 부총관 자네도 먼 길 오느라 고생했네."
웃으며 맞는 황균을 향해 어교연과 경패가 포권을 취하며 인사를 건넸다. 그런 두 사람을 향해 황균이 앉으라는 듯 반대편에 자리한 의자를 가리켰다.
그렇게 세 사람이 마주 앉은 상황에서 어교연이 입을 열었다.
"잘 지내셨나요?"
"저야 뭐 언제나 똑같지요. 그나저나 무척이나 바쁘실 터인데 이리도 갑자기 찾아온다고 하셔서 놀랐습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적화신루의 총관들은 각자 담당 구역이 있고, 그곳을 위주로 활동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랬기에 특별한 일이 있지 않고서야 이렇게 직접 다른 총관을 만나러 움직이는 경우는 무척이나 드물었다.
질문을 던지는 황균을 향해 어교연이 답했다.
"그때 말씀드렸던 일 때문에 찾아뵈었어요."
"그때라면…… 사총관 일 말입니까?"
"네, 맞아요. 뭐 말씀 안 드려도 아시죠? 지금 사총관이 어디에 있는지."
"허허, 그럼요.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벌써 이곳 광동성을 자기 지역처럼 헤집고 다니는데 말입니다."
웃으며 말을 내뱉고 있었지만 그 말투에는 가시가 느껴졌다.
황균 또한 백아린을 견제하기 시작한 입장이었기에 그녀가 자신의 지역인 이곳 광동성에서 활약을 해 나가는 모양새가 곱게 보일 리 만무했다.
더군다나 백아린이 천룡성의 일을 맡고 있는 탓에 마치 자신이 부하라도 된 듯 그녀가 부탁하는 모든 일들을 도와야만 하는 입장이었다.
그 또한 황균으로서는 맘에 들 리 없었다.
어교연이 부총관인 경패까지 대동한 채로 이곳에 온 이유는 백아린이 보다 큰 활약을 이어 가기 전에 싹을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마교에서 뭔가 일을 벌이기 시작한 백아린이 말도 안 되는 일을 성공시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는 동안 생각지도 못한 일이 하나 벌어졌다.
바로 귀문곡이었다.
어교연이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제가 이곳에 오는 사이에 사총관이…… 또 크게 일 하나를 벌였더군요."
지금 그녀가 말하는 것이 귀문곡에 관련된 이야기라는 걸 황균 또한 단번에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귀문곡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황균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설마 이대로 그냥 두고 보실 생각은……."
"그럴 생각이라면 제가 이곳에 왔을 리가 없잖아요?"
확신 어린 어교연의 말에 황균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사실 어교연은 이곳에 도착하기 직전 전해 들은 귀문곡에 대한 정보 때문에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백아린이 귀문곡주의 죽음을 알림과 동시에,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귀문곡을 흡수해야 한다는 뜻을 상부에 보고한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의견을 받아들인 상부에서는 서둘러 무인들을 움직여 귀문곡의 거점들을 점령하려 하고 있었다.
이 소식을 접했을 때 어교연은 일순 눈앞이 깜깜해졌었다.
백아린이 또 하나의 말도 안 되는 성과를 내게 생겼기 때문이었다.
허나 이내 그녀는 생각을 바꿨다.
오히려 운이 좋았다고.
만약 지금 백아린을 제거하기 위해 움직이지 않았더라면 그녀를 건드리기는 더욱 어려워졌을 게다. 귀문곡을 흡수하게 된다면 적화신루는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세력으로 급부상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 일에 있어 일등 공신이 누구겠는가?
당연히 백아린이다.
더군다나 귀문곡에 관련된 이번 건수는 단순히 뛰어난 성과 하나를 냈다는 정도로 끝낼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적화신루의 역사에 남을 정도로 커다란 사건.
그걸 지금 백아린이 성사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그랬기에 어교연은 보다 서둘러야만 했다.
이 모든 일이 성공한다면 그 이후 백아린을 제거하는 건 지금보다 훨씬 어려워진다. 차라리 거사가 벌어지기 직전인 지금이, 백아린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었다.
황균이 물었다.
"생각해 두신 바가 있으십니까?"
"그럼요. 얼마 전까지는 고민이 좀 있었는데, 오히려 이번 일로 인해 확실하게 마음을 정할 수 있었죠."
말과 함께 슬며시 미소를 지어 보인 어교연이 이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이이제이(以夷制夷:적을 이용하여 다른 적을 제어한다)."
의미심장한 그 한마디에 황균이 눈을 크게 치켜떴다. 그녀가 말한 두 적이 누구인지 파악하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겉보기엔 평범해 보이지만 이총관이라는 자리에 있는 만큼 황균은 눈치가 빠른 사내였다.
그가 놀랍다는 듯 탄성을 내뱉었다.
"귀문곡을 이용하실 생각이군요!"
"네, 맞아요."
"하하! 정말 대단하십니다. 이거야 원, 저도 이번에 육총관에게 한 수 배웠습니다."
실로 감탄한 얼굴로 황균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 그를 향해 어교연이 말했다.
"이번 일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이총관님의 힘이 필요해요."
"제 힘이 말입니까?"
"네, 사총관을 움직이게 만들 가짜 정보가 있어야 하니까요. 그리고 현재 사총관은 이곳 광동성에 있죠. 당연히 그 정보를 가장 손쉽게 바꿔치기할 수 있는 건 이총관님이시고요."
어교연의 계획은 간단했다.
현재 적화신루는 귀문곡을 흡수하는 것에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당연히 백아린 또한 그 일을 위해 움직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지금 그녀에게 일부러 정보를 흘릴 생각이었다.
귀문곡의 거점 중 하나에 대해서 말이다. 거기다가 가짜로 상부의 명령까지 첨부하면 된다. 그 거점을 손에 넣으라는 명령을.
그럼 백아린은 움직일 것이고, 정보 속의 귀문곡에도 마찬가지로 정보를 흘리면 된다.
그들을 공격하러 백아린이 온다는 사실을 말이다.
백아린에게는 그들의 숫자를 적게 알려 주고, 지원군 또한 보내 준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해서 그녀를 귀문곡의 거점으로 들어가게 만든다.
허나 이미 상대에게도 정보를 흘려 둔 상태이니 오히려 그녀는 혼자서 함정에 들어가는 꼴이 될 터.
귀문곡 또한 단단히 준비를 할 테니 백아린이 살아서 나올 리는 없다고 어교연은 확신했다.
어교연에게 계획에 대해 모두 전해 들은 황균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정말 좋은 계획이 아닐 수 없었다.
백아린을 완벽하게 죽일 수 있는 걸로 모자라 뒤탈도 없는 작전이었다.
직접 자신들의 손을 더럽히는 것도 아니고, 추후 이 일의 뒤처리를 할 때도 귀문곡에게 모두 덮어씌우면 그만이다.
가짜 정보를 흘린 거나, 거짓 명령을 내린 것 또한 어차피 당사자인 백아린이 죽어 버리면 그 누구도 알지 못할 일.
지금 이곳에 자리한 자신들만 입을 닫는다면 평생 세상에 드러날 일이 없는 비밀이었다.
황균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망설일 필요 있습니까? 곧바로 움직이시지요."
어교연이 당장이라도 계획을 실행하려는 황균을 향해 서둘러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잠시만요!"
"왜 그러십니까?"
"사총관에게 정보를 흘리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어요."
"다른 일이 말입니까? 그게 뭡니까?"
"천룡성 무인과 단엽을 사총관에게서 떨어트려 놔야 해요."
어교연은 이 일에 있어 가장 큰 변수는 백아린의 곁에 있는 이들이라 생각했다.
천무진과 단엽.
두 사람 중 누구 하나라도 그녀와 함께 움직이게 된다면 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그랬기에 이 작전을 완벽히 끝내기 위해서는 천무진과 단엽을 동행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또 다른 정보가 필요해요. 가짜라도 상관없으니 당장에 움직일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정보가요. 그런 정보로 두 사람을 속여서 백아린으로부터 떼어 놓도록 하죠."
두 개의 거짓 정보.
그것만 있다면 굳이 직접 손을 대지 않고도 어교연은 눈엣가시였던 백아린을 제거할 수 있었다.
실로 완벽한 작전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 한창 정보를 주고받는 곳이 광동성 지부다.
바로 그곳에서 황균이 거짓 정보를 넘겨주는 것이니 백아린으로서는 깜빡 속을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 거짓 정보에 속아서 가게 될 장소에는 적잖은 귀문곡의 인물들이 자리하고 있을 테고, 당연히 그곳에는 백아린과 한천 두 사람만이 자리하게 될 것이다.
완벽하게 함정에 빠진 두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자 어교연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꽤나 당황스러울 거야, 백아린. 애타게 지원군을 기다리겠지만…… 거긴 아무도 안 올 테니까.’
계획이 실행되기도 전이었지만 어교연은 확신했다.
이 작전이 실패할 리가 없다고.
그리고 그런 확신을 가져도 될 정도로 계획은 꽤나 완벽했다.
하지만 그 계획에는 하나 고려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백아린과 한천의 실력이었다.
* * *
사실 적화신루는 광동성에서 그리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아니, 비단 적화신루뿐만이 아니다. 개방이나 하오문 또한 다른 지역에 비해 유독 이곳 광동성의 정보력은 미흡했다.
그 이유는 역시나 이곳만큼은 꽉 쥐고 있던 귀문곡의 존재 때문이었다.
이곳 광동성에서만큼은 귀문곡이 최고였고, 그런 그들의 기세에 눌려 다른 여타의 정보 단체는 이곳에서 제대로 된 힘을 쓰지 못했었다.
허나 이제는 아니었다.
개방과 하오문은 아직까지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눈치를 살피고 있었지만 모든 걸 알고 있는 적화신루만큼은 달랐다.
그들은 단번에 광동성으로 세력을 뻗어 나갔다.
뒤늦게 개방과 하오문이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되어 움직인다 해도 정작 중요한 알맹이들만큼은 모두 자신들이 취할 수 있도록 말이다.
덕분에 원래도 바빴던 백아린은 요즘 따라 눈코 뜰 새 없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었다.
귀문곡의 일도 그랬고, 천무진을 돕는 것 또한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광동성으로 세력권을 넓히며 순식간에 밀려들어 오는 정보들 또한 적잖았기에, 그걸 토대로 천무진에게 도움이 될 만한 뭔가를 찾느라 바빴다.
그렇게 바삐 움직인 덕분일까?
새로이 뻗어 나간 활동 범위 덕분에 백아린은 여태까지 정리하지 못했던 몇 가지 의심스러운 부분들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걸 곧바로 천무진에게 알렸다.
그리고 천무진은 그 사실들을 미리 정해 둔 이를 통해 마교 소교주인 악준기에게 전달했다.
천무진의 거처에서 기다리고 있던 백아린이 돌아온 그를 반겼다.
"왔어요?"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네. 요새 바쁘잖아."
며칠 동안 잠깐을 제외하고는 쉽사리 보기 어려웠던 백아린이다. 그만큼 바빴던 그녀가 자신의 거처에서 기다리고 있자 천무진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런 그를 향해 백아린이 웃으며 말했다.
"누구 때문에 바쁜데요. 제가 바쁜 거에 절반 이상은 당신 때문이라고요."
그녀의 장난스러운 투정에 천무진 또한 픽 웃으며 백아린에게 다가갔다.
다가온 그를 향해 백아린이 다시 말을 건넸다.
"정보는 잘 전해 줬어요?"
"응, 뭐 당장에 별건 없겠지만 그래도 분명 도움이 될 것 같아."
십천야의 눈과 귀가 되어 주었던 귀문곡이 흔들리는 지금이 천무진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다.
적화신루가 세력을 넓혀 가며 새롭게 얻어 낸 정보는 유용하긴 했지만, 아직 마교 내부를 뒤흔들 정도로 큰 것들은 아니었다.
그 사실을 알기에 백아린이 아쉽다는 듯 말했다.
"보다 확실한 뭔가가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전부 의심스러운 정황뿐이라……."
"그것만 해도 어디야. 그걸 토대로 차차 알아내야지."
적화신루도, 소교주 악준기 휘하에 있는 정보 단체도 오늘 전달한 정보를 토대로 새로운 조사에 들어갈 계획이다.
아직까지 정확한 적이 누구인지 알아차리진 못했지만 천무진은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십천야의 한 명인 상무기를 제거하긴 했지만 그는 귀문곡의 인물이다. 그렇다면 직접적으로 마교에 개입한 십천야 또한 최소 한 명에서, 많게는 세 명까지도 있을 확률이 존재했다.
그들의 제거.
그것이 바로 천무진의 목표였다.
그 말을 끝으로 시답지 않은 대화를 이어 가던 두 사람을 향해 누군가가 급히 다가왔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인물.
바로 한천이었다.
모습을 드러낸 그는 천무진과 함께 있는 백아린을 발견하고는 투덜거렸다.
"여기에 계실 줄 알았다니까."
"무슨 일인데?"
물어 오는 백아린을 향해 다가온 한천이 빠르게 답했다.
"급한 호출이랍니다, 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