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흑주염 ― 이건 돌이 아니오 (1)
적화신루에서도 오랜 시간 조사해 봤지만 정체를 알아낼 수 없던 돌멩이. 그런데 그 돌멩이를 본 양휴의 표정이 뭔가 이상했다.
미묘한 그 변화를 단번에 눈치챈 백아린은 품에 넣으려던 돌멩이를 쥔 채로 양휴를 향해 빠르게 다가갔다.
그녀가 양휴의 코앞으로 돌멩이를 들이밀며 입을 열었다.
"당신 이 돌멩이에 대해 알죠?"
"그건……."
"시치미 뗄 생각은 버려요. 봤거든요, 이 돌멩이를 확인하는 순간 흔들리던 당신의 눈동자를."
백아린이 확신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많은 인원과 협력체를 동원하고도 알아내지 못한 이 돌멩이의 정체, 그런데 놀랍게도 그것에 대해 아는 이가 바로 코앞에 있었던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천무진 또한 놀란 얼굴로 백아린과 양휴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재촉하는 백아린의 말에 양휴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가 이내 결정을 내렸는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하, 하나만 약속해 주시오. 그럼 모두 말해 주겠소."
"뭔데요?"
"날 살려서 내보내 주시오."
잔뜩 긴장된 얼굴로 내뱉은 그 한마디.
어떻게든 이 기회를 잡아 살아서 나가겠다는 의지가 가득 담긴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런 양휴의 모습에 오히려 나머지 네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애초에 이곳에 온 이유가 바로 마교로 떠나기 전에 양휴를 풀어 주기 위함이었으니까.
잠시 일행들 사이에 감돌던 침묵.
그 침묵을 깨며 백아린이 입을 열었다.
"……그럴 생각이었는데요?"
"그럴 생각이었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풀어 줄 생각이었다고요. 당신이 말하기 전부터 지금 바로요."
백아린의 생각지도 못한 그 대답에 양휴가 놀란 듯 입을 벙긋거릴 때였다.
양휴를 바깥으로 빼낼 마차를 가지러 갔던 남윤이 나타나며 입을 열었다.
"작은 주인님, 명하신 대로 저분을 바깥으로 모셔다 드릴 마차를 가져왔습니다."
쐐기를 박듯이 내뱉어진 남윤의 말에 당황한 양휴가 물었다.
"……날 죽일 생각 아니었소?"
"죽이긴 왜 죽여. 뭐 네가 내가 찾던 그들과 연관된 작자였다면 모를까, 그게 아닌 이상 애초에 죽일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어."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천무진이 기가 차다는 듯 대꾸했다.
돌아오는 천무진의 대답에 그제야 양휴는 긴장이 쫙 풀리며 온몸의 근육이 전부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양휴가 억울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미, 미리 좀 말해 주지 그러셨소! 그랬다면 이렇게 애간장 녹이면서 지내진 않았을 터인데……."
"그렇게 순순히 다 속내를 드러내면 그쪽이 내 질문에 제대로 답이나 했겠어? 어쨌든 원하는 대로 살려서 보내 줄 생각이니 됐잖아? 물어보는 질문에 답부터 하지."
계속해서 알아내지 못하고 있던 돌멩이의 정체에 대해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천무진은 양휴의 말을 자르며 재촉했다.
천무진의 말대로 살려서 보내 달라는 자신의 바람은 이루어지긴 했지만 양휴는 뭔가 억울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지만 지금에 와서 숨기려고 했다가는 정말로 여태 걱정했던 것처럼 영영 이곳에서 나가지 못하거나,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기에 양휴는 솔직하게 알고 있는 것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가 말했다.
"그럼 우선 말을 꺼내기 전에 그 물건부터 좀 확인했으면 하오."
양휴의 말에 백아린은 슬쩍 천무진 쪽을 보며 의사를 확인했다. 돌멩이를 건네도 되겠냐는 눈짓에 천무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백아린은 곧장 들고 있던 돌을 양휴에게 넘겼고, 그는 손톱으로 그걸 가볍게 긁기 시작했다. 그러자 돌멩이에서는 회색에 가까운 가루가 떨어져 내렸다.
그것까지 손바닥에 받아 확인하고 나서야 양휴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역시 이거였군."
"그 돌의 정체를 알겠어요?"
중얼거리는 목소리를 듣기 무섭게 백아린이 물어 올 때였다. 양휴가 들고 있던 돌멩이를 돌려주며 말을 받았다.
"이건 돌이 아니오."
"돌이 아니라고요? 그럼요?"
"……소금이오."
양휴의 입에서 나온 그 한마디에 천무진을 비롯한 나머지 모두의 표정이 변했다.
소금이라니?
이 돌멩이가 소금이라고?
모두의 마음을 대변하듯 백아린이 믿기지 않는다는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이렇게 단단한 게 소금이라고요?"
"그렇소. 허나 말대로 일반적인 소금은 아니오. 물에도 쉽게 녹지 않고, 이렇게 서로 뭉치는 성질도 지녔소. 거기다 특별한 과정까지 거치면 지금처럼 아예 돌덩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정도로 단단하게 뭉치는 특성을 가졌지. 그리고 바다에서 생기는 소금이 아닌, 바위에 나타나는 암염(巖鹽)의 일종이오. 흑주염(黑珠鹽)이 바로 이 소금의 이름이오."
길게 이어지는 양휴의 설명을 가만히 듣고 있던 백아린이 이내 침착한 어조로 물었다.
"어떻게 이런 걸 알고 있죠?"
물어 오는 질문에 양휴는 잠시 머뭇거렸다.
순간적으로 망설이긴 했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이미 이 정도를 알려 줬다면 이 소금에 대해 알아내는 건 시간문제였으니까.
굳이 감춰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건…… 이 소금이 내 가문인 양가장에서만 만들 수 있는 물건이기 때문이오."
양가장이라는 말에 천무진이 꿈틀했다.
저번 생에서 두 번째 표적이었던 곳, 바로 그게 양가장이었기 때문이다.
돌인 줄 알았던 것이 실은 소금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천무진의 머리를 관통하며 하나의 생각이 쭉 이어져 나갔다.
무림맹 홍천관의 창고에서 보았던 이 돌의 모양을 하고 있던 소금들은 바로 양가장에서 들어온 것들이었다.
몽혼약의 재료가 된다 판단되는 이 돌이 양가장에서만 만들어진다는 건 곧 그들이 자신이 찾는 십천야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뜻이었다.
백아린이 천무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여기서부터는 자신이 아닌 그가 질문을 해야 할 때라 여겨서다.
천무진이 양휴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감추려 하고 있었지만 천무진의 심장은 아주 빠르게 뛰고 있었다.
‘그들에게 한 걸음, 아니 그 이상 다가갔다…….’
지금 알아낸 이 일은 보통의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이들을 조종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몽혼약의 결정적인 재료가 어디에서, 누구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는지를 알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말은 곧 저번 생에서 자신이 겪은 조종당하던 삶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는 의미였다.
두근, 두근.
미칠 듯 뛰는 심장.
천무진은 길게 호흡을 하며 날뛰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이내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이것도 알고 있나? 이 돌…… 아니, 소금에서 환각 증상을 일으키는 효과가 있다는 거."
마약과도 같은 가루.
사람의 정신을 점점 흐릿하게 만들다 결국 자아를 잃게 만드는 무서운 물건이다.
물어 오는 천무진의 질문에 양휴가 두 눈을 크게 치켜뜬 채로 답했다.
"무슨 소리요. 이건 그냥 소금인데 환각 증상이라니?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소."
"……."
천무진은 양휴를 가만히 응시했다.
얼굴에 드러나는 표정에서는 전혀 거짓말을 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거기다 조금만 생각해 봐도 그런 위험한 물건이었다면 쉽사리 흑주염이라는 이름이나, 이것이 소금이라는 사실을 밝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지금 이처럼 행동할 수 있는 이유라면 두 가지 중 하나일 터다.
이게 몽혼약의 재료가 아니거나, 아니면…… 양휴가 정말로 모르거나.
확실한 증거는 없었지만 천무진은 후자 쪽에 더 가능성이 있다 생각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양휴의 말 또한 진실일 거라 여겼다.
정말로 이건 단순한 소금일 수도 있다.
바위에서 나오는 아주 독특한 소금.
하지만 천무진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흑주염이라는 이 소금의 알갱이는 회색과 흰색 사이. 그렇지만 막상 몽혼약이 피어오르던 향로 안에 있던 건 붉은색의 가루였다.
그 말은 곧 단순히 이 상태로는 그런 약의 효과를 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소리다. 이 흑주염에 뭔가 작업을 할 것이고, 그 이후에는 붉은색을 띠게 될 공산이 크다.
그리고 그때서야 이 소금이 진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의 정신을 빼앗아 버리는 그 지독한 몽혼약의 모습을.
꽈드득.
천무진은 주먹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드디어 놈들에게 치명타를 가할 수 있는 단서를 얻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긴 과거의 악몽을 끊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은 듯한 느낌이었다.
천무진이 슬쩍 몸을 돌렸다.
뒤편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일행들을 향해 천무진이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목적지를 바꿔야겠어."
"양가장에 갈 생각이에요?"
"응, 마교는 그 이후에."
양가장은 마교로 가는 길목과는 전혀 다른 곳에 위치해 있었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이라면 양가장의 위치가 섬서성이긴 하지만, 사천성과 밀접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구석에 자리한 채로 흘러가는 상황을 그저 눈으로만 담고 있던 한천이 입을 열었다.
"허어, 가뜩이나 긴 여정이 더 길어지게 생겼군요."
마교를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긴 여정이었거늘, 양가장이라니.
하지만 말만 그리 내뱉었을 뿐 한천 또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지금 이 상황에 무척이나 흥분했는지 상기된 표정이었다.
천무진이 입을 열었다.
"영감."
"네, 말씀하시지요. 작은 주인님."
문 바깥에서 조용히 자리하고 있던 남윤이 곧바로 답했을 때였다. 천무진이 성큼 창고를 나가기 위해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가지고 온 마차 원래 자리로 가져다 놔."
"예?"
남윤이 놀란 듯 되물었을 때였다.
천무진이 말을 이었다.
"지금 풀어 주려 했는데…… 막 계획이 바뀌었거든."
천무진의 말에 가장 당황한 건 양휴였다.
당장이라도 나갈 것처럼 한껏 들떠 있던 그가 당황한 듯 소리쳤다.
"뭐, 뭐요? 분명 풀어 준다 하지 않았소!"
"약속은 지켜. 다만 내가 움직이기 전에 당신이 먼저 양가장 쪽에 연락을 넣거나 하면 귀찮아져서 말이야. 사건을 일단락하자마자 풀어 줄 테니까 한동안만 더 창고에서 지내."
"아니 그런 게 어디……!"
양휴가 억울하다는 듯 몸을 벌떡 일으켜 세우고는 말을 이어 나가려던 그때였다.
툭.
가볍게 어깨 위에 얹어진 손을 느끼는 순간 그가 움찔하며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곱상한 외모의 사내 단엽이 웃는 얼굴로 자리하고 있었다.
단엽을 보는 순간 양휴의 거칠었던 목소리가 거짓말처럼 사그라졌다.
그가 자신을 질질 끌고 이곳까지 왔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갑작스레 바짝바짝 마르는 입 안의 감각을 느끼고 있을 때 단엽이 웃는 얼굴로 말했다.
"며칠 더 쉬고 있어. 알았지?"
"하, 하지만……."
"쉬고 있으라니까. 혹시 맨 정신으로 있기 힘들면 내가 한동안 기절해 있게 해줘?"
말과 함께 주먹을 들어 올리는 단엽의 모습에 양휴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가 황급히 자리에 앉는 것까지 확인하고서야 단엽은 주먹을 거두고 재빨리 먼저 움직이기 시작한 나머지 일행의 뒤를 쫓았다.
그렇게 모두가 빠져나간 창고.
이내 커다란 철문이 닫혔다.
끼이이익.
쿵.
닫히는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양휴의 깊은 한숨 소리가 귓가에 가득했지만 일행 중에서 그런 부분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창고 밖으로 나온 천무진은 곧장 뒤편에 있는 이들에게 말했다.
"안에서 말한 것처럼 일정이 좀 변했어. 출발은 한 시진 후에 할 생각이니 그때 다시 모이도록 하자고."
목적지가 바뀌었으니 그사이에 해야 할 일들이 생겼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역시나 적화신루에게 할 새로운 의뢰였다.
천무진이 백아린의 이름을 불렀다.
"백아린."
"의뢰하실 생각이죠?"
굳이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백아린은 이미 천무진의 생각을 읽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대답 대신 던진 물음에 천무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흑주염에 대한 정보가 필요해. 시간은 없지만 구할 수 있을까?"
물어 오는 천무진의 질문에 백아린은 챙겨 들고 있던 짐을 옆에 내려놓고는 그에게 성큼 다가섰다.
숨소리가 느껴질 정도로 지척까지 다가선 그녀.
다른 이들은 모르지만 그녀만큼은 지금 천무진이 얼마나 이 기회를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지 잘 알고 있었다.
백아린은 천무진이 어떠한 인생을 살아왔는지 아는 유일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랬기에 다소 시간도 촉박하고 어려운 의뢰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구해 줄게요. 어떻게든."
걱정 말라는 듯한 믿음직스러운 그 모습에 천무진이 픽 웃으며 입을 열었다.
"……부탁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