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같은 목적지 ― 맘에 안 든다니까 (2)
천무진 일행이 움직인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놀랍게도 그들에 대한 정보가 어딘가로 새어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바로 정체불명의 인물, 통칭 어르신이라 불리는 그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천무진이 움직였다고?"
"예, 방금 막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수하의 대답에 휘장 너머의 인물은 곧바로 질문을 던졌다.
"어디로 간다더냐."
"섬서로 간다고 합니다."
"망할, 그러니까 섬서 어디!"
휘장 안쪽의 그가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너무 광범위하게 말을 하니 순간 짜증이 확 하고 치민 탓이다.
그런 그의 반응에 보고를 하러 왔던 수하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아직 정확한 위치까지는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놀란 듯 수하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 그것까지는 아직……."
"쓸모없는 놈 같으니라고! 물러가라!"
괜한 불똥이 튈 것이 두려웠는지 수하는 곧바로 방을 빠져나갔다. 그렇게 보고를 하러 왔던 수하가 사라지자 휘장 안쪽에 있던 이가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여튼 요즘 따라 영 마음에 안 드는군."
천무진과 관련한 계획들이 연달아 실패로 돌아갔다.
그에 반해 천무진이 벌인 일들은 모두 자신들을 향해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날아와 박혔다.
상황이 이리되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휘장 안쪽에 있던 이가 목소리를 높였다.
"상무기!"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어둠 속에 있던 한 명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십천야의 일인이자, 정보 단체인 귀문곡의 수장 상무기가 나타난 것이다.
그가 입을 열었다.
"부르셨습니까?"
"방금 보고를 들었을 테니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 천무진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당장 알아보도록 해."
"명 받들겠습니다."
상무기가 포권을 취하며 대답하는 그때, 차가운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잊지 말거라. 이번에도 실수를 한다면 그때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라는 걸."
"……명심하지요."
상무기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자신에 대한 어르신의 신뢰가 많이 떨어졌다는 사실이 체감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의 원흉은 역시나 천무진 일행이었다. 개중에서 백아린에 대한 정보가 완전히 어긋나면서 주란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 버렸다.
그랬기에 상무기는 초조했다.
‘어떻게든 만회를 해야 한다.’
한 번 눈 밖에 난 자를 다시금 포용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어떻게든 잃은 점수를 다시금 회복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기회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서둘러 정보를 취합하기 위해 움직이려는 상무기의 발걸음을 휘장 속의 인물이 붙잡았다.
"천운백에 대한 정보는 없느냐?"
"예. 어디로 숨었는지 도통 흔적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허나 믿을 만한 이를 통해 들어온 정보로 파악해 보면 조만간 움직임을 감지해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알아내는 즉시 보고토록 하지요."
"그렇게 해. 언제나 제일 중요한 건 천운백의 행적이라는 걸 잊지 말도록 해라."
"옙, 그럼."
대답과 함께 상무기가 사라졌다.
그리고 이윽고 방에는 침묵이 찾아왔다.
홀로 남게 된 휘장 너머의 인물은 명령을 내리고도 그리 마음이 놓이지 않는 듯 긴 숨을 내쉬었다.
"흐으음."
갑작스럽게 섬서성으로 움직인 천무진.
섬서성이라면 중원의 요충지 중 하나이기도 하고, 구파일방에 속하는 화산파와 종남파가 위치한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화산파에는 십천야 소속의 무인 자운 또한 자리하고 있었다.
"섬서성이라…… 갑자기 왜 그곳으로 갔는지 모르겠군."
깊어지는 의문.
그리고 점점 복잡해지는 머리까지.
처음엔 한없이 우습게만 여겼던 천무진이라는 존재가 점점 자신을 옥죄어 오는 지금 이 상황이 그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휘장 너머에서 서성이던 그림자가 갑자기 우뚝 멈추어 섰다.
그러고는 이내 그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계획을 조금 더 앞당겨야겠어."
* * *
사천성 성도에서 시작하여 관도를 타고 달리던 마차가 이윽고 어느 마을에 들어섰다. 삼 일가량을 쉼 없이 달린 덕분에 시간에 비해 꽤나 많은 거리를 이동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렇게 삼 일을 달려 도착한 마을에 들른 이유는 며칠간 쌓인 여독을 풀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단엽이 수하들을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힘차게 달리던 마차가 이내 멈추어 섰다.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하자 마차 안에 있던 일행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흐암, 뻑적지근하네."
가장 먼저 내린 한천이 허리를 두드리며 죽는소리를 내보였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나머지 인원들 또한 마차에서 내려섰다.
백아린이 뒤편에 서 있는 천무진을 향해 말했다.
"우선 방부터 잡죠."
그녀의 말에 천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삼 일 동안 달리는 마차에서 쪽잠을 자는 걸로 대신했기에 오랜만에 들른 마을에서만큼은 편하게 쉬는 걸로 체력을 보충해야 했다.
문을 열고 들어선 객잔 내부에는 저녁 시간이라 그런지 꽤나 많은 손님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백아린이 다가온 점소이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단엽이 짊어지고 있던 봇짐을 풀어 한천을 향해 휙 던졌다.
그리 크지 않은 봇짐이었기에 한천은 어렵지 않게 받아 냈다.
봇짐을 건네받은 한천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이걸 왜 나한테 주는 거야?"
물어 오는 질문에 단엽이 짧게 답했다.
"내 짐 좀 맡아 줘. 난 잠깐 나갔다 와야 해서."
"밥은 먹고 움직이지?"
"금방 오니까 먼저들 먹고 있어."
이 마을에서 수하를 만날 거라는 걸 사전에 전해 들었기에 일행은 갑작스럽게 단엽이 나가는 이유를 굳이 캐묻지 않았다.
"그럼 서둘러 다녀올게."
말을 마친 단엽은 들어섰던 객잔 문을 열고 훌쩍 바깥으로 걸어 나왔다.
객잔 밖으로 나온 그는 곧바로 근처에 있는 큰길을 향해 움직였다. 그러고는 인근에 지나가는 이에게 물어 목적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단엽은 걸음을 옮겨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 사이로 섞여 들었다.
만나기로 한 장소가 시장통에 위치한 자그마한 노점이었던 탓에 주변은 무척이나 시끄러웠다.
사람도 많고, 소란스러웠지만 수하를 만나기로 한 장소를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만나기로 약속한 노점에는 단 한 명의 손님만이 자리하고 있었던 탓이다.
노점 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건 젊은 사내였다.
대홍련의 인물을 발견한 단엽이 성큼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이내 수하가 자리하고 있는 탁자의 맞은편에 털썩 주저앉았다.
단엽이 가볍게 손을 들어 올렸다.
"여어."
벌떡.
단엽의 등장에 사내는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 높여 입을 열었다.
"부련주님을 뵙……!"
고함에 가까운 소리에 화들짝 놀란 단엽이 손을 들어 올려 때리는 시늉을 하며 서둘러 말했다.
"내가 왔다고 동네방네 소문이라도 낼 생각이냐? 빨리 앉아."
"죄송합니다!"
"조용히 좀 하라고."
미간을 찡그렸던 단엽은 이내 손을 내밀었다.
재차 날린 경고에 수하가 입을 굳게 닫았을 때다.
단엽이 입을 열었다.
"서찰."
단엽의 그 한마디에 사내는 품속에 고이 가지고 있던 종이 한 장을 꺼내 재빨리 건넸다.
그런 수하를 슬쩍 바라본 단엽은 이내 그에게서 건네받은 서찰로 시선을 돌렸다. 서찰을 펼치자 안에는 단엽이 궁금해하던 것들에 대한 간단한 정보들이 적혀져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역시나 지금 단엽이 찾고 있는 그자가 어디로 가느냐였다.
그리고…… 서찰을 확인하는 순간 긴가민가했던 목적지에 대한 확실한 결론이 나왔다.
목적지를 확인한 단엽이 씩 웃었다.
선명하게 적힌 두 글자가 너무도 강렬하게 눈에 들어와 박혔다.
화산(華山)
처음부터 어느 정도 예상해서였을까?
최악의 결과였지만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
‘결국 이렇게 되네.’
단엽이 살의를 불태우는 상대, 그가 화산파가 있는 화산으로 간다는 정보였다.
최악의 경우 화산파와도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상황.
그렇지만 그 또한 단엽은 두렵지 않았다.
그런 걸로 물러설 정도였다면, 굳이 이곳까지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테니까.
서찰의 내용을 확인한 단엽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는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가 맞은편에서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서 있는 수하를 향해 말했다.
"잘 받았다."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그렇게 크게 말 안 해도 알겠거든?"
"죄, 죄송합니다."
"됐어, 인마."
아직 경험이 많지 않은 무인이라 그런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
단엽은 젊은 수하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이내 몸을 돌린 단엽은 곧바로 나머지 일행들이 머물고 있는 객잔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기에 단엽은 금방 객잔에 도착할 수 있었고, 일행이 자리 잡은 방으로 안내를 받았다.
방에는 막 식사를 시작한 인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단엽이 등장하자 백아린이 입을 열었다.
"막 식사를 시작하려던 참인데 잘됐네. 어서 오라고."
단엽은 곧장 빈자리에 가서 앉았고, 그런 그를 향해 한천이 말을 걸었다.
"벌써 만나고 온 거야?"
"말했잖아. 금방 온다고. 서찰 하나 받아서 내용 확인하는 게 전부라 별거 없었어."
말을 하며 단엽은 젓가락을 들어 올렸다.
며칠 간 쉼 없이 달렸다는 말은 식사 또한 변변치 않았다는 의미였고, 덕분에 제대로 된 음식을 마주하는 것도 삼 일 만의 일이었다.
막 음식을 입에 넣은 단엽에게 천무진이 말했다.
"목적지는 확실하게 정해진 건가?"
"뭐 그렇지."
"어딘데?"
"……화산."
"하아, 역시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틀리질 않는다니까."
단엽의 대답에 한천이 한숨과 함께 중얼거렸다.
단엽이 살기를 뿜어 대는 상대다. 보통 악연이 아닌 것이 분명한데, 그런 자가 화산으로 갔단다.
이번 일이 생각보다 복잡해진다는 기분이 들었다.
한천이 입을 열었다.
"그 죽여야 될 놈이라는 놈 다음 기회로 넘기는 게 낫지 않겠어? 얼굴에 상처를 내서 화가 났다는 건 알겠는데 그 정도로 이렇게 찾아가는 것도 그렇고, 굳이 화산과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는데 위험을 안기에는 좀 애매하지 않나?"
한천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분명 단엽은 대홍련의 부련주고, 그만큼 무시할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
그랬기에 한천은 더욱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었다.
그렇게 높은 위치에 있는 인물일수록 다른 문파와 문제를 일으키는 건 최대한 피해야 했다.
개인 간의 문제가 아닌, 단체끼리의 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다 여겨서다.
특히나 대홍련은 사파.
잘못했다가는 정사 간의 문제가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 모든 피해는 고스란히 단엽이 받아야 할지도 몰랐다. 그런 부분이 신경 쓰였기에 한천은 다음 기회를 노리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한 것이다.
한천의 말에 단엽은 잠시 침묵했다.
손에 쥐고 있는 젓가락으로 앞에 놓인 음식을 가볍게 들쑤시던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물론 내 얼굴에 상처를 낸 것만으로도 죽을 이유는 충분하지. 그렇지만 그 녀석을 죽이려는 건 비단 이거 때문만이 아니야.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어."
그 말을 내뱉은 단엽이 고개를 들어 올려 세 사람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이내 말을 이었다.
"내가 찾아가려는 그자가…… 내 누이를 죽였거든."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한마디, 하지만 그 말에 분위기는 순식간에 차갑게 식어 버렸다.
그제야 한천은 알 수 있었다.
그날 본 평소와는 너무도 달랐던 짙은 살의의 정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