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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124화 (124/293)

124화. 속내 ― 돌려주죠 (2)

백아린의 말대로였다.

순식간에 두 사람에게 날아든 한천이 다친 백아린의 상태를 위아래로 빠르게 훑어보더니 호들갑을 떨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우리 대장 상태가 왜 이러십니까? 누가 감히 대장을 이렇게 만들었어요?"

"별거 아냐. 호들갑 떨 거 없어."

백아린은 별거 아니라 말하고 있었지만 사실 그리 간단한 부상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강기를 정면으로 받아 냈으니 그 타격이 없을 리 만무했다. 하물며 그 강기를 날린 상대가 십천야의 일원인 반조였으니 파괴력은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었다.

백아린은 다시금 이마로 흐르는 피를 가볍게 닦아 냈고, 그런 그녀를 보며 한천이 표정을 찡그렸다.

"으, 우리 대장 고운 얼굴을 이리 다쳐서 어쩝니까?"

"됐다니까 그러네."

백아린의 말에도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한천이 다시 입을 열었다.

"대장을 이렇게 만든 놈들 어디 있습니까?"

"다 도망쳤어."

"그걸 그대로 놓칠 대장이 아니잖아요."

"제대로 속아 버려서 말이야."

반조가 날린 그 구슬에서 쏟아져 나온 연기는 보통의 것이 아니었고, 그 때문에 도망치는 두 사람을 잡지 못했다.

주란과 반조를 완전히 놓친 지금 남아 있는 거라곤 이곳에 남아 있는 화접들의 시신뿐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던 단엽이 입을 열었다.

"보통 놈이 아니었나 본데."

싸움의 흔적만으로도 이곳에서 어떠한 일이 벌어졌는지 얼추 머리에 그려졌다. 갈라져 있는 땅들과 주변을 휘몰아친 후폭풍의 흔적들이 꽤나 강렬했다.

그리고 이곳에 남겨져 있는 흔적들은 이 싸움에서 버텨 낸 백아린의 실력 또한 엄청나다는 걸 말해 주고 있었다.

단엽이 백아린과 한천을 번갈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대체 어떻게 적화신루에 저런 고수가 둘이나 있는 거지?’

단엽이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그때 천무진이 입을 열었다.

"여기서 떠들지들 말고 우선 거처로 돌아가야 할 것 같은데. 말대로 상처도 있으니 치료부터 받아야지."

"그럽시다, 대장. 어서 가죠."

"이 정도로 안 죽어. 그보다 먼저 뒷정리부터 해야지."

백아린의 시선에는 쓰러져 있는 화접들이 가득 차 있었다.

주란을 따라왔던 그녀들.

백아린의 손에 죽은 이들도 있었지만 그녀를 죽이기 위해 날렸던 반조의 강기에 휩쓸려 목숨을 잃은 이들도 상당했다.

지금은 그런 이들의 시신을 수습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였다.

뒷정리라는 말에 단엽이 물었다.

"뒷정리라니? 누가 남은 거야? 싸움이라면 내가 대신해 주지."

격한 싸움의 현장을 보는 것만으로도 몸이 달아올랐는지 그가 말했다. 그러자 백아린이 픽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쉽게도 네가 좋아하는 싸움은 아니네."

"에이, 뭐야. 그럼 뭔데?"

"이 시신들을 처리해야지. 그리고 혹시나 이 여인들의 얼굴을 아는 누군가가 있는지 찾을 생각이야."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부상을 입은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사망자들은 용모파기를 만들어 둘 생각이다. 그리고 그걸 가지고 조사를 해서 이 여인들의 신분을 밝혀낼 생각인 거다.

한천이 물었다.

"지금 이 몸으로 적화신루에 가시려는 겁니까?"

"응, 이 시신들도 그렇지만, 오늘 싸움으로 알게 된 게 조금 있거든. 새로운 정보를 기반으로 해서 의뢰를 해야 할 것도 좀 생겼고."

"새로운 정보라니?"

옆에서 천무진이 물어 오자 백아린이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받았다.

"별건 아니에요. 그냥 그들이 스스로를 십천야라 칭하더군요."

"십천야?"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열 명이나, 열 개의 단체로 구성되었다는 뜻이 아닐까 싶긴 한데…… 혹시나 그와 비슷한 이름을 지녔거나 아니면 연관성이 있는 단체를 찾아보려고요."

"그렇군. 십천야라……."

왠지 익숙한 이름에 천무진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아마도 과거의 삶에서 들어 본 적이 있는 이름인 듯싶었다. 완벽하지 못한 과거 기억의 조각들 사이에 남겨져 있던 이름이었기에 어렴풋이 뭔가가 떠오를 듯 말 듯한 느낌이었다.

백아린이 땅에 박아 두었던 대검을 다시금 둘러메며 말했다.

"어쨌든 사정이 이러니 잠깐 적화신루에 다녀올게요. 이후의 이야기는 그때 하도록 해요. 해가 뜨면 시신들 처리가 어려워질 수 있어서요."

말을 마친 그녀가 성큼 움직이려 할 때였다.

한천이 서둘러 뭔가를 말하려 했지만, 그보다 먼저 천무진이 입을 열었다.

"시신을 정리한다는 건 좋은 생각이지만, 지금 당신이 움직이는 건 그다지 좋지 못한 계획인 것 같은데."

"이건 제 일인 걸요."

"그건 당신 생각이고. 주변 사람들 생각은 좀 다른 거 같은데."

말과 함께 천무진이 슬쩍 옆에 있는 한천을 향해 고갯짓을 했다.

백아린이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한천의 얼굴을 확인하는 걸 보며 천무진이 말을 이었다.

"아무리 봐도 다른 사람들은 당신이 좀 쉬었으면 하는 것 같군그래."

"하지만……."

"그 의뢰는 부총관 혼자서도 할 수 있잖아. 그렇지?"

"물론입니다. 이번 일의 뒤처리는 제가 알아서 하죠. 그리고 이곳에 있는 시신들은 저희 쪽 사람들이 올 때까지만 단 소협이 잠시 지켜 주면 될 것 같습니다."

"좀 귀찮긴 하지만 이 정도야 돕지 뭐. 어려운 건 아니니까."

단엽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한천의 말을 받았다.

생사를 오갈 정도의 큰 부상이 아니라고는 해도, 분명 그냥 놔둘 정도로 가벼운 상태도 아니었다.

세 사람이 모두 이렇게 나오자 백아린은 결국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요. 그럼 여긴 두 사람한테 맡기고 전 돌아가도록 할게요. 됐죠?"

백아린이 뜻을 접자 한천이 한결 가벼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천무진이 이내 입을 열었다.

"그럼 부총관이 적화신루에 의뢰하고, 단엽 네가 이곳을 맡도록 해. 난 백아린을 데리고 의원한테 들렀다가 갈 테니까."

"거처로 가면 남윤 영감님도 계신데 굳이 의원까지……."

백아린이 괜찮다며 손사래를 치는 그때였다.

천무진이 보다 목소리에 힘을 주며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잔소리 말고 그냥 따라와. 영감이 실력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곳 성도에 있는 유명한 의원에게 가는 게 나아."

"대장, 그렇게 하도록 하죠."

옆에서 한천까지 거들고 나오자 백아린은 못 이기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이 정리되자 모두는 각자의 역할을 위해 자리를 잡았다.

천무진과 백아린이 떠나기 직전.

옆으로 다가온 한천이 다친 그녀의 상태를 다시금 확인하며 투덜거렸다.

"조심 좀 하고 다니라고요. 어디 가서 다치고 다니지 말고. 이래 가지고 불안해서 어디 내놓겠습니까?"

"누굴 어린애로 알아?"

"어린애면 차라리 다행이죠. 다 커 가지고 이리 다치고 다니니 걱정이 안 됩니까?"

한천이 쏟아 내는 투덜거림을 들으며 백아린은 도리어 피식하고 웃음을 흘렸다.

이 모든 잔소리가 자신에 대한 진정 어린 걱정에서 나온 것임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한천이 불만스럽게 말했다.

"웃긴 왜 웃으십니까."

"이렇게 잔소리 듣고 있으니 옛날 생각이 좀 나서."

"참내, 하여튼 변한 게 없으시다니까."

마찬가지로 가볍게 웃음을 흘려 보인 한천은 이내 옆에 있는 천무진을 향해 말했다.

"알아서 잘 하시겠지만 우리 대장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천무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이내 옆에 있는 백아린을 향해 말했다.

"가지."

그렇게 한천은 두 사람이 사라지는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런 그를 향해 단엽이 말을 걸었다.

"어이 한천. 계속 뭐 하고 있어? 안 갈 거야?"

"……가야죠."

말을 마친 한천이 씨익 웃어 보였다. 가늘게 뜬 눈을 한 그가 단엽을 향해 말했다.

"그럼 이곳은 맡기고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곧바로 몸을 돌리고 멀어지는 한천을 바라보던 단엽이 팔짱을 끼고 있던 손을 풀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네."

* * *

한천은 익숙하게 한 장소를 찾아 모습을 드러냈다. 사천성 성도에 있는 꽤나 이름난 포목점이었다.

시간이 아직 새벽인지라 문은 굳게 닫혀 있었기에 한천이 문고리를 잡고 안쪽에 신호를 보냈다.

쿵쿵.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고 얼마 되지 않아 안쪽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내 졸린 눈을 한 삼십 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사내가 문을 열며 모습을 드러냈다.

장현(裝峴)이라는 이름의 사내로 적화신루 성도 지역의 거점을 관리하는 인물이었다.

"하암, 누구……."

눈을 비비던 장현은 곧바로 한천을 알아보고는 군말 없이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을 조금 더 열어 주었다. 한천이 안으로 들어간 직후에야 그는 문을 걸어 잠그며 뒤로 따라붙었다.

한천이 웃으며 말했다.

"미안하군. 잠을 방해한 건가?"

"뭐 괜찮습니다. 저희 같은 이들에겐 익숙한 일이니까요."

장현이 실실 웃으며 대꾸했다.

정보 집단의 일원으로 살며 이런 일은 꽤나 비일비재했으니까.

장현이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그런데 오늘은 혼자십니까? 총관님은 어디 계시고요."

이곳 성도 거점을 찾아올 때는 대부분 둘이 함께였다. 백아린 혼자 찾아오는 일도 종종 있었지만, 반대로 한천 홀로 이렇게 나타나는 경우는 드물었다.

"우리 대장이 좀 다쳤거든."

한천의 말에 장현이 움찔하며 물었다.

"혹시 큰 부상이십니까?"

"가볍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해서 움직이지 못하거나 할 정도는 아니야. 상처 덧날까 봐 의원을 찾아가시게 하고 혼자 온 거야."

"휴, 그나마 다행이군요."

한천의 말에서 백아린의 부상이 생사를 오갈 정도로 큰 것은 아니라는 걸 안 장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포목점의 안쪽까지 들어선 상황인지라 한천이 자연스레 이곳에 온 목적으로 대화를 이어 갔다.

"오늘 여기에 온 것도 그것과 관련해서야. 우리 대장을 건드린 놈들을 좀 찾아야 할 것 같아서."

"뭔가 단서가 있습니까?"

"우선은 건드렸던 놈들의 시신들이 남아 있어. 얼굴 확인하고 용모파기 완성해서 주변에 쫙 돌려. 어떻게든 찾아야 할 테니까."

"그거야 어렵지 않죠."

"그리고…… 십천야라는 이름을 지닌 놈들에 대해 알아봐 줬으면 해."

"십천야요?"

처음 듣는 이름에 장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중원에 있는 꽤나 많은 단체들의 이름을 아는 그였지만 그 안에 십천야라는 자들은 없었다.

장현의 표정을 응시하던 한천이 작게 말했다.

"역시나 모르는 모양이군."

"예, 들어 본 적 없는 이름입니다."

"그리 쉽게 찾을 수 있는 놈들은 아닐 거야. 십천야라는 이름과 관련 있을 법한 단체나, 상징적인 뭐라도 좋으니 전부 조사해 봐. 중요한 일이니 서둘러 줬으면 좋겠고."

"예, 그리하지요."

"잠 방해해서 미안하고. 부탁한 일 끝내고 좀 더 쉬도록 해."

"그럴 여유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해 보도록 하죠."

"이 기회에 봉급이라도 좀 올려 달라고 해. 자네가 하는 일이 얼만데."

어깨를 툭툭 치며 건네는 한천의 농담에 장현이 웃음을 터트렸다. 언제나 유쾌한 한천이었기에 두 사람은 어느덧 꽤나 친해져 있었다.

말을 끝내고 막 몸을 돌리려던 한천이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어 서더니 입을 열었다.

"아 참, 이 말을 빼먹을 뻔했네. 십천야에 대한 정보가 들어오면 우리 대장 말고 나한테 먼저 말해 달라고."

"왜 그러십니까?"

평소와는 다른 요구에 장현이 물었다.

그런 그의 질문에 한천이 환하게 웃으며 말을 받았다.

"왜긴, 그냥…… 우리 대장을 건드린 그놈들의 면상이 궁금해서 말이야. 내가 먼저 좀 보고 싶어서."

웃고 있는 한천과 마주하고 있던 장현은 움찔했다.

분명 평소처럼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소름이 오싹 돋았다.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고 있었거늘 신기하게도 눈만큼은 웃고 있지 않았으니까.

이곳 사천에 자리를 잡은 이후 계속해서 보아 온 이들. 이제는 한천에 대해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장현의 착각이었던 듯싶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사내가 그간 자신이 알아 왔던 그 한천과 동일 인물이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으니까.

한천의 손이 장현의 어깨로 다가왔다.

가볍게 어깨를 두드리는 그 손길에도 움찔 놀란 그를 향해 한천이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부탁할게. 알았지?"

마른침을 꿀꺽 삼킨 장현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마구 끄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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