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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120화 (120/293)

120화. 나선칠선파 ― 무슨 의미지 (2)

주란의 입에서 나온 검왕이라는 이름.

무림의 역사상 검왕이라는 칭호를 받은 이는 꽤나 많았다. 하지만 현 무림에서 그리 불릴 수 있는 인물이라면 오직 단 한 명뿐이었다.

검왕 한신(韓信).

우내이십일성 중 최고로 손꼽히는 둘 중 한 명이자, 천하제일검이라 불리는 인물이다.

물론 지금은 모습을 감춘 지 꽤나 오랜 시간이 흘러 살아 있는지조차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그랬기에 많은 이들이 탄식했다.

천하제일검 한신의 무공이 이대로 사라진 것이 아니냐는 안타까움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한신의 무공이 지금 눈앞에서 펼쳐졌다. 그것도 고작 적화신루의 사총관이라 알려진 여인에게서 말이다.

믿기지 않았는지 주란이 되물었다.

"너…… 검왕을 알아?"

병기를 맞댄 상황에서 백아린이 최대한 고개를 앞으로 들이밀며 입을 열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데. 알고 싶으면 돈을 내든가. 물론 금액은 상당히 비쌀 거야."

말과 함께 백아린은 대검을 쥔 손에 더욱 힘을 불어넣었다. 가까스로 버티고 서 있던 주란의 몸이 조금 더 기울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결국 한쪽 무릎이 땅에 닿고야 말았다.

쿵.

마치 무릎을 꿇고 예를 갖춘 듯한 자세에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게 무슨 수치야!’

잠시 넋을 놓고 있던 탓에 빠져나갈 기회를 놓쳐 버렸다. 그 때문에 주란은 상당히 불리한 위치에 놓이고야 만 것이다.

그녀가 스스로를 다독였다.

‘정신 차려. 설령 지금 본 게 정말로 검왕의 무공이라고 해도, 이 계집이 검왕인 건 아니잖아?’

검왕 한신이라면 자신이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지만, 지금 마주하고 있는 건 백아린이라는 여인이다.

십천야의 일인인 자신이 이토록 어린 여인에게 진다는 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점점 자신을 무겁게 내리누르는 백아린의 힘을 느끼던 주란이 짧게 호흡을 내뱉었다.

"흡!"

동시에 검을 비스듬히 내려 대검의 균형을 옆으로 흘린 주란이 빠르게 옆으로 움직였다.

파라락.

낮게 낮춘 몸을 옆으로 이동시키며 순식간에 거리를 벌리려 드는 움직임이었지만, 백아린은 놓치지 않고 다가오고 있었다.

번쩍!

쾅!

떨어져 내리는 대검을 보며 주란은 뒤로 몸을 회전시켰다. 아슬아슬하게 비껴 갔지만 그 충격파 때문인지 주란은 계산보다 더 멀리로 밀려나고야 말았다.

"치잇."

가까스로 자리를 잡은 그녀는 서둘러 얼굴을 가리고 있는 가리개를 확인했다.

점점 격해지는 싸움으로 인해 이 가리개조차 번거로울 지경이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이걸 벗어 던지고 싶었지만 그 또한 그리 간단히 판단할 일은 아니었다. 혹시라도 자신의 얼굴이 외부에 알려지는 일은 피해야 움직이는 게 용이했기 때문이다.

그런 주란의 마음을 알아서일까?

백아린이 대검을 힘차게 위로 추켜올리며 입을 열었다.

"그 가리개 얼마 안 남은 거 같은데?"

"……시끄러."

이를 앙다문 주란이 천천히 검을 옆으로 움직였다.

스스슥.

환영처럼 넓게 퍼지기 시작한 검의 잔영들이 요사스러운 분위기를 풍겨 댔다.

백아린이 파괴적인 무공을 자랑한다면 주란은 섬세하고 빠른 쾌검이 주요 장점이었다. 그랬기에 지금 같은 싸움 방식이 아닌, 빠르게 치고 빠지는 형식의 공격을 이어 가야 그녀에겐 더욱 유리할 수밖에 없다.

처음엔 상대를 쉽게 생각하고 싸웠지만 이제는 아니다. 백아린의 진짜 실력을 조금씩 몸으로 느껴 버린 탓이다.

이제부터는 철저하게 자신의 방식으로 이 싸움을 풀어 나가야만 했다.

변화된 주란의 모습에 백아린 또한 침착하게 대검을 움켜잡았다.

‘이 싸움 길게 끌어선 안 돼.’

사실 표현하지 않았을 뿐이지 백아린 또한 상대의 실력이 그리 녹록지 않다 다시금 느낀 상황이었다.

방금 전의 격돌에서 승자는 분명 자신이었다.

그건 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만족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목표는 나선칠선파를 사용함으로써 이 싸움을 끝내는 것이었으니까.

허나 상대는 그 공격을 받아 냈다.

물론 그로 인해 내상을 입고 피를 쏟아 내기도 했지만 결론적으로 그녀는 아직까지도 건재했다. 거기다 한층 더 신중하게 변한 표정은 이 싸움이 보다 복잡하게 변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해 주는 것만 같았다.

시작부터 자신만만하게 승리를 자신하던 상대.

그리고 그만한 자부심을 내비칠 정도로 분명 실력이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대체 이런 자들이 어디에 숨어 있다가 나타난 걸까?

만약 천무진의 의뢰가 아니었다면 백아린 또한 아직까지도 이런 이들이 무림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살았을 게다.

그리고 이처럼 큰 힘을 가진 이들이 고아들에게 그처럼 끔찍한 실험을 자행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그랬기에 더욱 화가 났다.

이런 큰 힘을 지니고 있으면서 고작 하는 짓이 아무런 것도 없는 고아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짓이라니…….

백아린은 정보 단체란 그저 정보를 팔아 돈을 버는 집단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사방에서 모이는 모든 정보를 하나로 조합하여 벌어질 수 있는 사건을 미리 알아내는 것은 정보 단체만이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최악의 사건이 벌어지는 걸 미연에 방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

그 또한 정보 단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 여겼다.

그랬기에 백아린은 확실한 결단을 내린 상황이었다.

‘너희들은 내가 막아.’

천무진을 도와 끝까지 이들의 계획을 막아 내는 것.

그것이 지금의 무림을 살아가는 한 명의 무인이자, 정보 단체인 적화신루의 수장인 자신이 가야 할 길이라 여겼다.

그녀의 확고한 의지만큼 강렬한 빛이 대검으로 밀려오고 있었다.

쿠쿠쿠쿠!

검의 진동에 대기가 미칠 듯이 요동친다.

더욱 힘을 모을 시간을 주면 안 된다 여긴 주란이 날아들었다.

그녀의 모습이 백아린의 눈에 들어왔다.

‘어딜!’

그녀의 빠른 검이 밀려들어 왔다.

츠츠측.

수십 개의 변화무쌍한 검로가 파도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날아들었다.

거대한 대검을 든 백아린은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그 공격을 옆으로 쳐 내며 빠르게 손바닥을 휘둘렀다.

파앙!

장력이 날아드는 순간 주란은 허공으로 몸을 날리며 그 공격을 비껴 냈다.

동시에 그녀의 발이 백아린의 머리를 향해 휘둘러졌다.

유성탈각이라 불리는 각법으로 꽤나 파괴력이 있는 무공이었다. 백아린은 황급히 대검을 들어 올려 쏟아지는 각법을 받아 냈다.

파파팡!

백아린의 몸이 뒤로 주욱 밀려 나갔고, 곧바로 주란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스슥!

낮게 밀려 들어간 주란의 검 끝에 느껴진 미묘한 감각. 그녀의 눈동자가 꿈틀했다.

‘닿았다!’

백아린을 향해 휘두른 자신의 검 끝에 처음으로 감각이 느껴진 것이다. 그리고 주란의 예상대로 그녀의 검이 백아린의 옆구리를 가볍게 스치고 지나갔다.

허나 주란은 알지 못했다.

자신이 겨우 이 정도로 미묘할 정도의 경미한 상처를 내고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 말은 곧 그만큼 백아린의 능력이 상상 이상이었다는 걸 의미하기도 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좋아하기엔 아직 일렀다.

바닥을 긁으면서 치솟아 오르는 대검에서 힘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으니까.

크크크킁!

바닥 안에 박혀 있던 커다란 돌멩이가 뽑혀져 나오며 주란에게 날아들었다. 놀란 그녀가 서둘러 몸을 낮추며 그 공격을 피해 내는 그 순간 백아린의 몸이 날아들고 있었다.

쩌엉!

대검을 막아 낸 주란의 몸이 뒤로 사정없이 밀려 나갔다.

손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고통에 그녀는 절로 이를 악물었다.

가까스로 균형을 잡는 데 성공한 주란은 멀리에 서 있는 백아린을 바라보며 질린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대체 뭘 먹고 다니면 이렇게 무식하게 힘이 센 거야?’

저런 체구에서 나온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의 힘.

순간 자신이 베고 지나간 백아린의 옆구리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살짝 찢겨진 옷에는 피조차 묻어 있지 않았다.

그에 비해 자신은…….

기겁한 채로 팔목을 움켜쥐고 있던 자신의 모습에 화가 났는지 주란은 살의를 쏟아 냈다.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수하들의 시선이 피부에 와 닿는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무표정한 모습들이었지만 그 안에 과연 어떠한 생각들이 있을까를 생각하자 화는 더욱 깊어졌다.

‘저 망할 년!’

죽인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공격으로 이 싸움의 분위기를 바꾸고, 어떻게든 자신이 더욱 압도적이라는 사실을 모두에게 보여 줘야만 했다.

자신이 모시는 어르신에게도 호언장담하지 않았던가.

백아린 정도 죽이는 건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다고.

그래 놓고 이런 꼴사나운 모습을 보인다는 건 주란으로서는 결코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살기 가득한 눈동자로 주란이 무엇인가 결단을 내렸다.

그녀가 슬그머니 검의 손잡이를 꾸욱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이내 주란에게서 내력이 폭발하듯 쏟아져 나왔다.

쏴아아아!

동시에 주란이 허공으로 치솟아 오르며 화려한 검기에 휩싸인 검과 함께 매섭게 아래로 치고 들어왔다.

순식간에 좁혀 오는 거리, 그렇지만 움직임이 단조로웠기에 반응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백아린의 대검이 번개처럼 날아드는 주란의 몸을 반으로 갈랐다.

하지만 검 끝에는 아무런 감촉도 없었고, 표적이었던 주란은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다.

타다다닥.

빠르게 보법을 밟으며 신묘한 모습을 보여 주는 주란의 움직임에서 이상한 변화가 감지됐다.

꿈틀.

왼쪽으로 치고 들어오는 공격, 그렇지만 백아린의 감각이 소리쳤다.

이건 속임수라고.

그랬기에 그녀는 다소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날아드는 검의 방향이 아닌 반대쪽으로 대검을 움직인 것이다. 동시에 수십 개의 잔영들이 사방에서 요동치며 백아린에게 밀려들었다.

츄르르륵!

눈을 현혹시킬 정도의 화려한 검무.

거기에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기의 흐름까지.

당장이라도 다시금 왼편으로 무기를 옮겨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찰나에도 백아린은 꿈쩍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오히려 전혀 이상이 없어 보이는 오른쪽을 대검으로 지킨 채로 왼쪽에 날아드는 공격에는 손을 내뻗었다.

생각지도 못한 행동에 주란의 눈꺼풀이 꿈틀했다.

수십 개로 변한 검의 잔영들 사이로 손을 집어넣는 백아린의 행동은 흡사 죽고 싶어 안달이 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불러일으키게 만들었다.

당장이라도 쏟아지는 검의 폭풍 속에서 백아린의 손은 찢겨져 나갈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팍!

수십 개의 환영들 속에서 백아린이 정확하게 뭔가를 움켜잡았다. 동시에 검날을 움켜쥔 그녀의 손바닥에서는 거칠게 피가 터져 나왔다.

막으면 될 공격을 굳이 왜 이런 식으로 받아 냈는지 의문이 들 법도 한 그 찰나, 반대편을 막고 있는 대검 쪽으로 뭔가가 연달아 밀려들었다.

차차차창!

하지만 아쉽게도 그것들은 대검에 막혀 그대로 힘을 잃고 튕겨져 나가야만 했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그것들의 정체는 실보다 얇은 수십 개의 비침들이었다.

처음부터 화려한 움직임이나, 쏟아지는 검기들은 모두 눈속임이었다. 진짜로 노리던 건 바로 검과는 반대편으로 날아든 이 비침들, 이것이었다.

그리고 이 비침은 주란의 검 손잡이에 감춰져 있던 암기였다.

그녀가 허공으로 치솟았을 그때부터 시작된 일련의 움직임. 화려함으로 감추려 했지만 그 움직임을 백아린이 알아차리고 당하지 않은 것이다.

기의 흐름 속에 숨겨 두어서 파악하기 힘든 암기들.

그걸 정확하게 막아 낸 백아린의 선택은 정말이지 완벽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런 치명적인 일격이 막혀 버린 지금, 주란은 그것에 대한 대가 또한 치러야 했다.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 아직까지도 검을 움켜쥐고 있던 백아린의 입이 움직였다.

"암기는 말이야, 이렇게 쓰는 거야."

말과 함께 검을 움켜쥐고 있던 백아린의 왼손의 꿈틀했다.

그리고 그 순간 주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백아린의 손을 장식하고 있던 붉은 장신구, 그곳에서 무엇인가가 쏟아져 나왔다.

얇은 은빛 실.

그렇지만 이것은 그냥 평범한 실이 아니었다.

주란은 황급히 몸을 틀며 날아드는 실을 피했다. 허나 워낙 거리가 가까웠던 탓에 그 모든 걸 피하는 건 불가능했는지 세 개에 달하는 얇은 실이 그녀의 몸에 기다란 상처를 남기고 사라졌다.

백아린의 숨겨진 또 하나의 병기.

귀린사(鬼燐絲)였다.

평소 장신구를 즐기지 않는 그녀가 항상 몸에 두르고 다니는 붉은 천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는 팔찌.

그것은 단순한 장신구가 아닌 수십여 가닥의 얇은 실이 감춰져 있는 치명적인 무기였다.

귀린사의 실에 공격을 당해 주춤했던 주란이었지만 그녀는 채 밀려드는 고통을 느낄 여유조차 없었다.

이미 머리 위로 다음 공격이 이어지고 있었으니까.

부웅!

떨어져 내리는 대검의 움직임을 확인하는 순간 주란은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내공이 실린 일격. 주란은 백아린에게 잡혀 있는 검을 놓으며 다급히 양손에 내력을 담아 위로 움직였다.

재빠른 선택 덕분에 다행히도 대검을 받아 낼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신체의 일부가 날아가는 최악의 상황은 막을 수 있었지만 그 충격파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쾅!

폭발하듯 터져 나가는 공간 안에 자리하고 있던 주란의 몸이 훨훨 날아가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데굴데굴 몇 바퀴나 굴렀던 그녀가 서둘러 가슴을 움켜쥔 채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파앙!

그녀는 이미 죽어 버린 화접 중 한 명이 떨어트린 검을 재빠르게 주워 들어 앞을 겨눴다. 혹여라도 백아린이 다시금 달려들 것을 방비하기 위해서였다.

허나 백아린은 공격을 펼쳤던 그 자리에 서서 그녀를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주란의 입에서 거친 숨과 함께 피가 터져 나왔다.

"쿨럭."

순간 피를 토하던 그녀의 얼굴에서 가리개가 흘러내리려 했다. 놀란 주란이 황급히 손을 들어 올려 가리개를 움켜쥐었다.

격한 싸움과 연달아 토해 낸 피 때문에 가리개가 원래의 기능을 상실해 버린 모양이다.

‘이런 망할…….’

어깨와 팔뚝. 그리고 배까지.

세 곳을 베였고, 이번 폭발에 휘말리며 내상뿐만이 아니라 신체 곳곳에 타격을 입었다.

가뜩이나 좋지 않은 상황에서 이렇게 가리개까지 흘러내리려 하니 손 하나가 덩달아 묶여 버렸다.

직접 겪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주란은 지금 이 모든 걸 믿을 수가 없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어떻게든 혼자서 백아린을 죽이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많은 수를 동원해서라도 그녀를 죽이는 것으로 목표가 변해 있었다.

다만 문제는…….

‘저 녀석들 정도로는 무리야.’

자신이 대동한 화접들만으론 백아린을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자신의 상태가 멀쩡했다면 모를까 지금 이 상태로는…….

이 모든 것은 자신 있게 펼쳤던 필살의 일격이 어그러지며 시작됐다.

아직까지도 이해가 가지 않는지 주란이 숨을 헐떡이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내 공격을 읽어 낸 거지?"

자신의 검에 숨겨진 특수 제작된 암기를 이용해 수도 없이 많은 이들을 죽여 온 주란이다.

그리고 이건 단순하게 암기를 사용하는 게 아니었다. 자신의 무공과 결합되어 완벽한 하나의 초식으로까지 승화시킨 공격이었다.

그런데 그걸 읽어 냈다.

그것도 채 뭔가가 벌어지기도 전에.

대부분은 암기의 존재를 눈치채기도 전에 비침에 맞아 즉사했다. 허나 개중에는 뒤늦게라도 알아차리는 이들 또한 종종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미리 그쪽으로 공격이 올 거라는 걸 눈치채고 공격에 대응하는 자는 처음이었다.

물론 그렇게나마 알아차린 이들도 황급히 날아드는 암기를 받아 내다가 일부의 비침에 당하거나, 반대편에서 날아드는 주란의 검공에 피해를 입기 일쑤였다.

무조건적으로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는 필살의 공격이라 여겼던 일격.

그런데 막혀 버렸다.

대체 어떻게?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어 오는 주란을 향해 백아린이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그냥 내 감이 말해 주더라고. 오른쪽이 위험하다고."

대답을 들으니 더 기가 막혔다.

고작 감? 그 감 때문에 이런 판단을 했단 말인가?

물론 뛰어난 무인일수록 이같이 생사의 기로에서 그 감각은 승패를 결정짓는 역할을 하기도 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저 감 때문에 날아드는 검을 직접 손바닥으로 잡는 행동은 쉬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말대로 지금 백아린 또한 검날을 움켜쥐었던 왼손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최악의 경우 손바닥이 날아갔을지도 모르는 행동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해내는 그 밑바탕에는 분명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을 게다.

그 모든 걸 알면서도 주란은 기가 막힌다는 듯 말했다.

"너 진짜 단단히 미쳤구나. 네가 천무진처럼 목숨이 더 있는 것도 아니잖아? 대체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는 거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내뱉는 주란의 말.

그렇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백아린의 표정이 변했다.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어서였다.

‘……저게 무슨 말이지?’

목숨이 더 있다니?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주란의 한마디, 그렇지만 그 말은 백아린에게 혼란으로 다가왔다.

전혀 이해할 수가 없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괜히 말을 걸며 시간을 끌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곧장 다시금 달려들려던 백아린이었거늘, 그 말을 듣는 순간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의미지?"

물어 오는 백아린의 모습에 주란이 잠시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피식 웃었다.

"뭐야 몰랐구나."

"무슨 의미냐고."

"흐음, 말해 줘야 하나. 그러니까 그게……."

말꼬리를 흐리던 주란이 갑자기 옷자락을 펄럭였다. 그러자 그 안에서 감춰져 있던 몇 개의 벽력탄이 앞으로 날아들었다.

콰콰쾅!

커다란 폭발과 동시에 주란은 뒤로 슬쩍 물러났다.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백아린은 부상당한 자신과 이곳에 있는 화접들만으로는 상대할 수 없는 실력자였다.

‘전열을 가다듬고 다시 돌아와야 해.’

기회는 분명 있다.

죽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이 일을 어르신에게 보고하기 전에 자신이 이끄는 홍화루의 최정예들, 혈접들을 대동한 채 다시 움직인다. 그리고 그때는 반드시 백아린이라는 저 계집을 죽이고야 말 것이다.

벽력탄으로 폭발을 일게 하긴 했지만 이것으로 백아린을 어쩔 수 있다 생각한 건 아니다.

이로 인해 피어나는 연기로 시야를 가리고 그 틈에 빠르게 도망칠 계획이었던 것이다.

그녀가 빠르게 몸을 돌리며 막 허공으로 날아오르던 그 찰나였다.

연기가 가득한 하늘이 갑자기 갈라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백아린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그녀의 등장에 도망치기 위해 날아오르던 주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대검을 힘껏 추켜올린 채로 낙하하고 있는 백아린이 작게 중얼거렸다.

"가긴 어딜 가."

그 말과 함께 대검에서 터져 나온 빛이 주란을 향해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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