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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117화 (117/293)

117화. 홍화루 ― 지금 당장 (1)

홍화루(紅花樓).

사천에 자리하고 있는 손꼽히는 기루의 이름이다. 구하기 힘든 각지의 술들을 마실 수 있고, 아름다운 기녀들이 즐비한 곳.

지상 낙원이라 불리며 기루를 좋아하는 사내들에겐 일생에 한 번은 꼭 가 보고 싶은 곳으로 손꼽히는 장소다.

커다란 전각은 다섯 개 층으로 되어 있는데, 위로 올라갈수록 가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실제로 가장 꼭대기 층인 오 층은 입장부터 보통 사람이 몇 년은 일해야 모을 수 있는 수준의 돈을 지불해야만 가능했다.

물론 그것은 오롯이 입장료였고, 그 이후에 드는 돈 또한 어마어마했다.

평범한 이들을 떠나 어지간히 돈이 있는 자들조차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특별한 곳. 그랬기에 이곳 홍화루의 오 층을 드나드는 이들은 엄청난 재력가들뿐이었다.

그리고 설령 돈이 있다고 해서 모두가 홍화루 오 층에 입장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특별한 조건이 있고, 그것을 만족시키는 자만이 출입할 수 있었다.

그런 홍화루의 입구로 한 명의 여인이 다가오고 있었으니, 그 정체는 주란이었다.

그녀는 사람 많은 홍화루의 입구로 들어서서 곧바로 계단을 통해 위층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각 층을 넘어설 때마다 그곳을 지키는 무인들이 있었지만, 주란은 그들에게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은 채 쭉쭉 올라갈 수 있었다.

그렇게 오 층에 도착하는 순간 그곳에는 여태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삼엄한 경비가 펼쳐지고 있었다.

꽉 닫힌 문을 앞에 둔 채로 도열해 있는 무인들을 향해 주란이 짧게 입을 열었다.

"짜증 나게 시야 가리지 말고 비켜."

그녀의 그 한마디에 곰처럼 커다란 덩치를 지닌 사내들이 황급히 양옆으로 갈라섰다.

주란은 곧바로 터벅터벅 안쪽으로 움직였다.

이윽고 열린 오 층의 내부, 그렇지만 그녀의 목적지는 이곳이 아니었다.

오 층의 한쪽에 위치한 자그마한 계단.

위로 향하는 그 계단을 향해 주란이 걸음을 내디뎠다. 그렇게 걸음을 옮기던 그녀는 밀려드는 하얀 연기를 보며 힐끔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 층은 십여 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그중에 일부의 문은 열려 있어 내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중 한 방의 내부에서 자욱한 하얀 연기가 뭉글뭉글 피어오르고 있었다.

지독할 정도의 연기 안에서는 눈이 풀린 뚱뚱한 사내가 헤벌쭉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옆에는 마찬가지로 몽롱한 표정의 여인이 반라의 상태로 누워 있었다.

주변에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와, 기괴한 모습 때문인지 이 모든 것이 꿈처럼 느껴지는 모습들.

허나 주란은 그런 이들의 모습을 보며 비웃음을 흘렸다.

‘한심하긴.’

홍화루의 오 층에서 이런 모습은 너무도 익숙한 것이었다.

이곳은 아편굴이었으니까.

게다가 이곳에서 사용되는 아편은 보통 접할 수 있는 종류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수십, 어쩌면 수백 배에 달하는 중독성을 지녔으며 그만큼 더 엄청난 환각을 보여 줬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이곳 홍화루의 아편을 접한 이라면 이후엔 다른 그 어떠한 것으로도 만족할 수 없었다. 그만큼 이곳에서 사용되는 아편은 특별했다.

계단을 밟고 올라선 주란은 이윽고 옆에 있는 벽면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녀의 손바닥이 벽 한쪽에 위치한 장치를 건드렸고, 곧바로 위쪽에서 자그마한 소리가 울렸다.

딸칵.

이음새가 풀리는 소리가 난 이후에야 주란은 손바닥으로 천천히 천장의 일부를 밀어 올렸다. 그러자 그곳에서는 여태까지 보이지 않던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주란은 곧바로 통로를 통해 위층으로 올라섰다.

그곳에 자리하고 있던 경비병이 서둘러 주란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오셨습니까 루주님."

모두가 이처럼 깍듯하게 구는 이유는 바로 이곳 홍화루의 주인이 바로 주란이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물었다.

"됐고, 지금 여기에 있는 나비가 누구야?"

주란의 아래에는 수많은 여인들이 있었는데 홍화루에선 그들을 가리켜 나비들이라 칭했다. 물론 그 나비들의 역할은 다양했다.

백접(白蝶)은 일반적인 기녀들이다.

사내들을 홀리고, 그들에게서 돈을 뺏어 낸다. 아편에 중독시켜 가진 결국 모든 재물을 자신들에게 넘기게 하는 이들.

물론 마찬가지로 아편에 중독당해 결국 목숨을 잃게 되는 존재이기도 했다.

무공을 모르는 백접과는 다르게 주란의 손발이 되어 움직이는 이들로는 혈접(血蝶)과 화접(花蝶), 그리고 풍접(風蝶)이 있었다.

각자 맡은 바는 조금씩 달랐지만 결론적으로 꽤나 치명적인 무공을 익혔다는 점에서는 같았다.

개중에서 가장 강한 이들은 혈접, 그다음이 화접, 풍접 순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흑접(黑蝶).

그들은 무척이나 특별한 존재고, 그 숫자 또한 많지 않았다.

주란의 물음에 사내가 곧바로 답했다.

"화접들이 있습니다."

"……그래?"

그녀는 백아린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그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할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걸 위해 필요한 이들, 그것이 바로 이 나비들이었다.

주란이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내는 눈치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그가 서둘러 물었다.

"몇 명이나 대기시켜 놓을까요?"

사내의 질문에 주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백아린, 무공 등급 육(六)급으로 분류된 자.

사실 실력 좋은 화접 서너 명이면 처리하고도 남을 일이라 보였지만 그녀는 보다 확실하게 일을 마무리하고자 했다.

혹시 모를 만약의 사태로 인해 자신의 계획이 틀어지는 건 용납할 수 없었으니까.

잠시 고민하던 주란은 결국 결정을 내렸다.

그녀가 말했다.

"서른 명이 필요해."

"알겠습니다, 루주님. 곧바로 인원을 뽑아서 올리지요. 그런데 언제쯤 움직일 생각이십니까?"

물어 오는 수하의 질문에 주란이 새하얀 손가락으로 자신의 턱을 어루만지며 잔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의 새빨간 입술이 움직였다.

"지금 당장."

* * *

총회가 끝난 직후 백아린과 한천은 곧바로 천룡성의 비밀 거점이 있는 성도로 움직였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기에 새벽 무렵까지 쉬지 않고 달리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닫혀 있는 거점의 문을 열고 들어서던 두 사람의 앞에 단엽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막 무공 훈련을 끝마쳤는지 한껏 땀을 흘린 상태였다.

단엽이 두 사람을 보며 입을 열었다.

"늦게도 오네. 대체 여태까지 뭐하고 싸돌아다니다 온 거야?"

"아직도 안 자고 뭐 합니까?"

한천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자 단엽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했다.

"안 자긴. 이미 자고 일어나서 주인하고 땀 한 바가지 실컷 흘린 거구만."

"에엑? 이렇게 이른 시간에요?"

"이 시간까지 자는 건 우리 중에 한천 너밖에 없다고."

"그건 동감."

단엽의 말에 백아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끼어들었다.

그러고는 이내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백아린의 시선에 막 방에서 걸어 나오는 천무진이 들어왔다.

그 또한 두 사람을 발견하고는 곧장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거리를 좁힌 천무진이 입을 열었다.

"다녀온다는 일은 잘 마무리된 거야?"

"그럼요. 별일 아니었거든요."

"적화신루 총회가 별일이 아닌데 열리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뭐……."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백아린은 슬쩍 웃음만 흘렸다. 이번 임시 총회가 벌어진 이유에 대해 아직까지 천무진에게 말하지 않았던 그녀다.

허나 감출 이유도 없었기에 백아린이 입을 열었다.

"사실 얼마 전에 개방 방주님이 저희 루주님을 만나 뵙고 싶다고 요청했거든요. 그 일로 잠시들 모였어요."

"그날이로군. 어쩐지 당신한테만 할 이야기가 있다더니……."

천무진은 무림맹에서 개방 방주 장량이 따로 백아린과 대화를 나누고 싶다며 자리를 가졌던 일을 기억해 냈다.

당시에 적화신루의 인물인 백아린과 따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기에 이상하다 생각했거늘, 바로 이 같은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던 모양이다.

천무진이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했는데? 아, 혹시 비밀이면 말 안 해도 상관없고."

편한 대로 하라는 천무진의 말에도 백아린은 솔직히 답했다.

"루주님께서 개방 방주님의 요청을 수락하셨어요. 조만간 자리가 마련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

천무진이 그러냐는 듯 담담하게 대답을 할 때였다.

그를 가만히 바라보던 백아린이 기습적인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적화신루의 루주님을 만나 보고 싶지 않으세요?"

백아린의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한천이 움찔했다.

그녀의 정체를 아는 그로서는 이런 질문이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질문을 던진 것일까?

천무진이 만약에라도 적화신루의 루주를 만나고 싶어 한다면 그는 상당히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질 수도 있는 상대였기 때문이다.

허나 그런 한천의 걱정은 곧 사라졌다.

천무진이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곧바로 답을 했기 때문이다.

그가 말했다.

"그다지."

너무도 빠르게 돌아온 답변에 의외라는 듯 백아린이 물었다.

"왜요? 당연히 만나 보고 싶어 하실 것 같은데……."

"지금은 굳이 그럴 필요성을 못 느껴서."

백아린의 능력에 만족하고 있었기에 천무진은 굳이 적화신루 루주를 만나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그녀가 모든 걸 알아서 해 주고 있었기에, 굳이 적화신루의 루주를 만나 뭔가를 더 얻어 낼 필요가 없었으니까.

만나고 싶은 생각도, 그렇다고 딱히 궁금한 것도 없다. 단 하나만을 제한다면 말이다.

천무진은 저번 생에서 알게 된 사실을 상기하며 입을 열었다.

"딱 하나 궁금하네. 얼마나 대단한 무공을 지녔는지. 알려진 것에 비해 엄청난 실력자일 것 같아서 말이야."

마치 엄청난 무공을 지녔다는 말을 듣기라도 한 것 같은 천무진의 말투에 백아린이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저희 루주님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을 텐데요. 무공 수준이 어느 정도신지 저희들도 모르거든요."

전혀 알려지지 않은 루주에 대한 정보들.

그러니 천무진은 딱히 대답할 수가 없었다.

저번 삶에서 적화신루의 루주가 무림을 통틀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고수를 제압하고, 곧바로 사파 제일의 정보 단체인 귀문곡이 운영하는 귀살이라는 살수 집단을 단신으로 쓸어버렸다는 걸 설명할 방도가 없었으니까.

그랬기에 그는 대충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그냥 느낌이 그래."

"흐음."

백아린이 수상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그뿐이었다. 그냥 느낌이 그렇다는데 뭘 더 캐묻기에도 애매했다.

적화신루의 루주에 대한 대화가 끊기자 천무진이 이내 두 사람을 향해 물었다.

"밥은?"

"아, 그러고 보니 정신이 없어서 한 끼도 못 챙겨 먹었네요."

백아린의 말에 그제야 한천 또한 생각났다는 듯 배를 움켜쥔 채로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고는 엄살 가득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이고, 등가죽이 배에 다 들러붙겠네."

죽는시늉을 하는 한천을 뒤로한 채로 천무진이 입을 열었다.

"뭐하느라 밥도 못 먹고 다녀."

"워낙 바쁘다 보니 밥 먹는 것도 깜빡했네요."

뭔가에 열중하면 자주 식사를 거르는 그녀였다. 그걸 알기에 천무진이 밥은 먹었냐고 물었던 것이고, 이내 예상과 다르지 않은 대답에 식당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럴 줄 알았어. 미리 음식 준비해 놓으라고 했으니까 가서 밥부터 먹지. 식긴 했지만 그래도 먹을 만은 할 거야."

생각지도 못한 배려에 백아린이 놀란 듯 눈을 치켜떴고, 뒤편에 있던 한천이 엄지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역시 천룡성의 무인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니까요 하하."

"언제는 천룡성 무인이 왜 그렇게 쪼잔하냐고 나한테 그러더니만."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단엽이 툭 하니 말을 던졌고, 한천이 당황한 듯 손사래를 치며 말을 받았다.

"아니 내가 언제 그랬다고 그럽니까? 말은 바로 해야지 우리 대장하고 짝짜꿍이 되어 가지고 술도 못 마시게 하고 그래서 조금 섭섭하다 뭐 이런 이야기한 거 가지고 그리 말을 확대 해석 해서야 원."

"정확하게 한 말 다 기억하는데 여기서 말해 줄까? 천무진 그 사람은 맨날 눈에 잔뜩 힘만 주고……."

"아아앗!"

황급히 손으로 입을 막으려는 한천과, 그런 그의 손을 피해 움직이는 단엽의 모습을 보며 백아린은 실소를 흘렸다.

웃기게도 적화신루의 총회에 있을 때보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들과 함께 있는 지금이 더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이들은 꿍꿍이를 가지고 뒤에서 뭔가 계획을 꾸며 대지는 않을 테니까.

하나같이 앞과 뒤가 다르지 않은 이들.

밥은 먹었냐고 서로에게 묻고, 저런 가벼운 장난을 치기도 하는 사이.

언제나 치열한 삶을 살아와야 했던 백아린이었기에 이 자리가 좋았다.

이토록 젊은 나이에 적화신루 루주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녀 또한 수많은 일을 겪어왔다.

잠시 가만히 웃고만 있던 백아린이 이내 천무진을 향해 입을 열었다.

"식사를 하는 건 좋은데…… 조금 있다가 해야 할 것 같아요. 당장은 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말과 함께 백아린은 품에 넣어 두었던 서찰을 꺼내어 가볍게 흔들었다.

개방 방주에게 전해야 할 서찰이었다.

그녀가 말했다.

"미리 개방 쪽에 연락을 넣어 놨거든요. 이 각가량 후가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이라서요."

"오래 걸리는 건가?"

"아뇨, 서찰만 전해 주면 되니까 금방 끝날 거예요. 반 시진도 안 걸릴걸요."

"그럼 다녀와. 식사는 그 이후에 하면 되니까."

"그래도 되겠어요?"

"오래만 안 걸리면. 미리 말하지만 늦으면 아마 아무것도 안 남아 있을 거야."

"걱정 말아요. 다 먹기 전에 휙 하고 다녀올 테니까."

말을 마친 그녀가 곧바로 거처를 나서려고 할 때였다. 한천이 물었다.

"저도 따라갑니까?"

물어 오는 질문.

그녀가 대답했다.

"됐으니까 부총관은 밥이나 먹고 있으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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