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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왕-109화 (109/293)

109화. 전세역전 ― 다시 한 번 말해 보지 (1)

무림맹의 회의가 있고, 삼 일의 시간이 지났을 무렵.

바깥에 나갔던 백아린이 새로운 소식을 하나 가지고 돌아왔다.

그건 바로 당자윤과 관련된 것이었다.

"방금 들어온 정보인데 어제 당자윤이 일어났다네요."

"……그래?"

천무진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무림맹주나 총군사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천무진과 백아린은 그에 대해 또 다른 뭔가를 의심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 당자윤이 동료들을 버리고 도망친 건 기정사실이나 다름없다. 허나 거기서 끝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다.

사라진 당자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별동대가 숨어 있던 곳에 적들이 들이닥쳤다.

단순히 운이 좋아 그런 위험한 순간을 벗어날 수 있었던 걸까? 아니면…… 그저 도망친 걸 넘어 동료들을 적에게 팔아넘긴 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지금 살아 있는 당자윤의 모습 또한 의심스럽다.

그 부분에 대해 알아야 했기에 천무진은 당자윤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천무진이 입을 열었다.

"슬슬 약속을 잡아야겠군."

안 그래도 회의장에서 나온 직후 당소련이 개인적으로 사천당문에 초대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치지 않았던가.

여유 시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약속을 잡지 않은 건 바로 그곳에 간 김에 당자윤을 만나고자 하던 계획이 있어서다.

사전에 백아린과 충분히 이야기가 되어 있었기에 그녀 또한 단번에 속내를 파악해서 말했다.

"그럼 연락 넣어 둘게요. 당자윤도 함께 보고 싶다는 뜻도 전달하고 이왕이면…… 누구를 만나는지 밝히지 않는 게 좋겠죠?"

혹여라도 천룡성의 무인을 만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뭔가 또 다른 수를 쓸 수도 있는 노릇이다.

그랬기에 아예 그럴 틈도 주지 않기 위해 그날의 약속은 비밀리에 진행하는 쪽이 좋았다.

천무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당소련에게 그렇게 부탁했으면 해. 우리와 만나는 걸 그가 절대로 알지 못하게 해 달라고."

"그럼 그렇게 하죠. 아마 곧바로 연락이 들어갈 테니 이틀 이내에 약속이 잡힐 거예요."

"가능하면 빠를수록 좋아."

"그렇게 전할게요."

상대에게 시간을 줄수록 좋지 않을 걸 알기에 백아린 또한 이 일을 최대한 빠르게 진행할 생각이었다.

물론 이 같은 부탁에 당소련은 의아하겠지만…….

그건 추후에 설명해야 할 일이다.

아직까지는 모든 것이 의심일 뿐, 명확한 건 없었으니까.

말을 마친 백아린은 곧장 바깥으로 나갔다.

수십여 일을 바삐 움직였던 여정으로 인해 다른 이들은 휴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유달리 그녀만큼은 그 이후에도 쉴 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 점이 고마웠고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했다.

천무진은 창문을 통해 멀어지는 백아린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커다란 대검을 휘두르긴 하지만 그녀의 뒷모습은 한없이 여리여리하기만 하다.

허나 이제는 안다.

저 여인이 가지고 있는 그 수많은 능력들을.

뛰어난 머리와 성실함, 그리고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강맹한 무공까지.

그랬기에 감탄과 동시에 의문이 든다.

‘왜…… 내 과거의 삶에는 백아린이란 이름이 없지?’

저 정도의 실력자라면 무림에서 이름을 날리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저번 삶에서의 천무진은 완벽하게 조종을 당했다.

몸과 마음을 조종당했고, 생각 또한 자유롭게 할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아무리 이름난 고수라 할지라도 모르는 경우 역시 분명 존재했다.

허나 백아린은 적화신루의 인물이다.

그리고 당시 자신을 조종했던 그 목소리의 주인공인 그녀는 적화신루를 없애려고 했었다.

당시 전해 들었던 적화신루에 대한 기억들.

허나 분명한 건 그 안에 백아린이라는 이름은 없었다는 거다.

저런 여인이라면 분명 요주의 대상이었을 터인데도 말이다.

대체 그 이유가 뭘까?

백아린이 적화신루를 떠났던 걸까? 아니면…… 혹시 그 전에 죽었을까?

많은 생각들이 들었지만 지금으로선 그것에 대한 답을 알 방도가 없다.

사실 천무진은 최근 생각이 많았다.

저번 삶의 기억을 최대한 끄집어냈고, 또 그것들을 가지고 고민했다. 기억나지 않는 많은 것들을 생각해 내려 애쓴 덕분에 자잘한 몇 가지 일들도 덩달아 떠오르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개중에 그리 중요한 건 없어 보였다.

‘양휴도 어떻게 처리를 하긴 해야 할 텐데…….’

단엽이 잡아 왔던 그는 아직도 이곳 천룡성 비밀 거점에 있는 창고에 갇혀 있다.

전생에서 정체 모를 그녀의 첫 부탁으로 죽였던 대상.

아직까지도 그를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을 내리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잡아 두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잡혀 있는 장본인이야 당연히 불만이 많겠지만 그는 아마 모를 것이다.

어쩌면 지금 이곳이 그에겐 가장 안전한 곳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문득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천무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새로 알게 된 몇 가지 사실들.

혹시라도 양휴가 그중에 알고 있는 뭔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해서다.

천무진이 바깥으로 나오자 막 식사 준비를 끝낸 남윤이 다가왔다.

"작은 주인님 어딜 그리 급히 가십니까?"

"저기 창고에 있는 놈 좀 잠시 보려고."

"식사는 어쩌시고요."

"백 총관이 잠시 외출했는데 돌아오면 같이 먹을게. 그때 맞춰서 준비해 줘."

"예, 그리하지요."

알겠다는 듯 남윤이 다시금 주방으로 몸을 돌렸고, 천무진은 곧바로 창고로 다가갔다. 창고는 꽤나 두꺼운 돌벽으로 되어 있었고, 바깥에서 안을 확인할 수 있는 창문 하나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거기다가 입구는 쇠로 된 걸쇠가 달려 있어 보통 사람이 빠져나오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그런데 창고로 다가간 천무진의 귓가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사각사각.

아주 자그마한 소리였지만 천무진의 귀를 속일 순 없었다.

덜컹.

걸쇠를 여는 순간 그 사각거리는 소리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이윽고 천무진이 창고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빛 한 점 들지 못하도록 사방이 꽉꽉 막혀 있는 장소였지만 몇 개의 등이 있어서인지 내부는 환했다.

그리고 그 창고 구석에는 어색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양휴가 있었다.

천무진이 그를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오랜만이네."

반갑다는 듯한 인사. 그렇지만 막상 그 인사를 받는 양휴는 떨떠름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사내가 자신이 이곳에 갇혀 있는 원흉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다행히 죽이려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지만 양휴로서는 언제까지 이곳에 갇혀 있을지 몰라 그저 답답하기만 했다.

그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어, 언제까지 여기 가둬 둘 생각이오?"

"그건 아직 모르겠고. 그래도 살이 통통하게 오른 걸 보니 먹고 살 만한가 봐?"

"그, 그야……."

사람이란 게 참 무섭다.

처음엔 이런 곳에 갇혀 있다는 사실이 죽을 만큼 싫었는데, 시간이 흐르자 이 생활에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된 게 사실이다.

거기다가 매일 가져다주는 남윤의 음식은 무척이나 맛이 좋았다.

그렇게 하루 종일 먹고 자기만 반복하다 보니 조금씩 살이 오르는 건 당연했다.

그리고 이런 감옥 같은 생활이 점점 익숙해지는 양휴였다.

사실 양휴 정도의 실력이라면 이런 창고를 부수고 나가는 건 일도 아니었다.

허나 계속해서 주기적으로 점혈 상태를 확인하며 내공을 쓰지 못하게 해 버리니, 지금의 그는 일반인이나 다름없었다.

덕분에 그는 이곳 창고에서 몇 달을 꼼짝없이 갇혀 있던 상황이다.

궁금한 것이 있어 이곳에 찾아왔던 천무진이었기에 그는 빠르게 물었다.

"혹시 너 흑마신과 뭐 관련 있냐?"

"그런 거물을 내가 알 리가 없잖소."

급이 다를 뿐더러, 무림맹에까지 들어왔었던 정파 무림의 인물인 그와 사파의 인물인 흑마신은 거리가 있어 보이는 게 사실이었다.

천무진 또한 금방 수긍했는지 곧바로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럼 적면신의는?"

"전혀 모르는 사이요."

"흐음, 그러면 혹시 자모충은 알아?"

"그게 뭐요?"

오히려 그게 뭐냐고 물어 오는 양휴의 눈을 지그시 응시하던 천무진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됐다."

큰 기대를 한 건 아니었지만 정말 아무런 것도 모르는 듯한 표정을 보니 기운이 쑥 빠졌다.

할 이야기는 끝이 난 듯 보이던 천무진이 갑자기 앉아 있는 양휴를 향해 다가갔다.

상대가 순간적으로 거리를 좁혀 오자 양휴가 움찔하는 그때였다.

지척에 도착한 천무진이 발로 그의 허벅지를 툭툭 쳤다.

그런 천무진의 행동에 양휴가 고개를 들어 상대를 올려다보며 더듬거렸다.

"왜, 왜 그러시오?"

"일어나 봐."

천무진의 말에도 양휴는 눈치만 살필 뿐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천무진이 재차 말했다.

"뭐해. 일어나 보라니까."

다시금 재촉을 하자 결국 양휴는 울상을 지은 채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그가 일어난 엉덩이 아래쪽에서 뭔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의 정체는 다름 아닌 장롱이나, 미닫이문에 사용되는 쇠로 된 경첩의 일부였다.

그리고 천무진은 일어난 양휴의 뒤편에 있는 벽의 일부가 파여져 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제야 천무진은 이곳에 들어오기 직전 들었던 사각거리는 소리의 정체를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창고에서 빠져나가겠다고 저 자그마한 경첩으로 열심히 벽을 긁어 댔던 모양이다.

몸을 굽혀 경첩을 확인하던 천무진이 이내 그걸 양휴를 향해 툭 던졌다.

그러고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뭐, 열심히 파 봐."

생각지도 못한 말과 행동에 양휴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도망치려 했다는 사실이 들통났으니 뭔가 압력을 행사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이 쇠로 된 경첩을 뺏어 가기라도 할 거라 여겼다.

그런데 오히려 열심히 해 보라며 경첩의 쇳조각을 던져 주니 기가 막힐 수밖에.

당황한 그가 엉거주춤 경첩을 든 채로 되물었다.

"왜 돌려주는 거요?"

질문을 던지는 양휴를 향해 천무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열심히 파서 창고를 빠져나와도 어차피 장원 바깥으론 도망 못 치거든. 뭐 그래도 시간 보내기에는 좋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취미가 있으면 좋잖아?"

말을 끝내고 어깨를 으쓱한 천무진은 곧바로 창고를 나가 버렸다.

그리고 열렸던 창고의 문이 다시금 닫힘과 동시에 바깥에서 걸쇠를 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한참을 멍하니 서 있던 양휴는 이내 자신의 손에 들린 경첩과, 며칠 동안 힘겹게 파고 있던 벽 아래쪽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러고는 이내…….

"에잇! 젠장! 괜한 헛수고나 했네."

탕!

경첩을 냅다 집어던진 양휴는 그대로 바닥에 벌렁 드러누웠다.

천무진이 양휴가 갇혀 있는 창고에 다녀간 지 약 두 시진 정도가 흘렀을 무렵이다.

사천당문의 당소련과 약속을 잡기 위해 나갔던 백아린이 돌아왔다.

거처에 도착한 그녀는 곧바로 천무진의 방으로 향했다.

입구 앞에서 백아린이 문을 두드렸다.

"들어가도 되죠?"

"물론이지."

천무진의 승낙이 떨어지자 그녀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백아린의 등장에 천무진이 곧바로 물었다.

"약속은 잡혔어?"

"네, 다행히도 곧바로 연락이 오더라고요. 바로 일정 확정 짓고 왔어요. 당자윤도 합석하게 해주기로 했고, 저희의 부탁대로 우선 이 사실을 당사자에겐 알리지 않겠다는 약조도 받았고요."

천무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일정은 어떻게 하기로 했어?"

가능하면 빠른 시일 안에 만나기를 원했던 천무진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잘 아는 백아린이 직접 나섰던 일이니…….

그녀가 답했다.

"내일 저녁이요."

"내일이라……."

생각보다 빠른 일정이 마음에 들었는지 천무진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나 깔끔한 일 처리를 자랑하는 백아린답게, 이번 일 또한 천무진의 마음에 딱 들 정도로 잘 마무리 지은 상황이었다.

사실 이 모든 일들을 자신 혼자 감당해야 했다면 얼마나 힘들었을지 감도 오지 않았다.

거기다 이처럼 모든 일에 최상의 결과를 끌어내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런 부분에서 백아린은 천무진에게 천군만마와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지그시 백아린을 바라보던 천무진이 말했다.

"고생했어."

그의 진심 어린 고생했다는 말에 백아린이 웃으며 답했다.

"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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